가가의 토요일 / 조명숙

  가가의 토요일 조명숙    * 이것은 부산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수영역 2번 출구 앞 부산은행 모퉁이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파는 한 남자의 토요일에 대한 이야기다.158센티미터의 키에 60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사십대 후반의 이 남자는 코가 낮고 손이 두툼했다. 겸손한 입매를 가졌으나 작은 키를 의식해선지 턱을 바짝 치켜든 자세여서 고집스러운 데가 있었다. 다리는 짧고 팔은 길어서 전체적으로 덜 진화된 듯한 몸피를 가진 그를 사람들은 가가(呵呵)라 불렀다. 날씨가 어떻다든가, 시절이 어떻다든가, 기분이 어떻다든가 하고 대화를 시도했을 때 그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가가’뿐이었기 때문이다.가가의 ‘가가’는 낮거나 높고, 음울하거나 경쾌하며, 짧거나 길었다. 가가의[…]

가가의 토요일
조명숙 / 2010-07-16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 김충규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김충규 그 밤에,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먼 국경지대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 허공이 꺼멓게 그을려지고 굳은 핏덩이를 식빵 사이에 넣고 우걱우걱 씹는 소년들 그들의 눈이 너무 맑아서 무진장 슬픈  그 밤에,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고양이가 곁에 있다면 그의 발등을 혀로 핥아주고 싶어 골목을 어슬렁거렸으나 그 많던 고양이들 한 마리도 출몰하지 않고 가로등이 지겹게 지쳐 있고 바람의 얼룩이 허공에 가득한  그 밤에,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뒷산에서 나온 시신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암매장당한 시신은 빛을 봐 즐거울까  내 목덜미를 핥는 공기의 혀가 징그럽게 느껴진다  까마귀 우는 환청이[…]

(까마귀 우는 환청이 들렸는데)
김충규 / 2010-07-16
저 사랑하는, / 임후남

  저 사랑하는, 임후남 밥벌이를 위해 방 한 칸 세들었다책상을 들이고컴퓨터를 들이고커피믹스를 사들인다밥벌이를 하는데내 몸만 세 드는 것이 아니다 내 몸에 내가 세 산다월세 한 번 내지 않고밤이고 낮이고 몸을 쓴다내 몸에 함께 세 든 나의 정신은때때로 몸을 나가도내 몸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누구인가내 몸을 온전히 세 내 준 이버스 차창에 흔들리고빗길에 가랑이 젖고신도림 환승역에서 떠밀리고 그러다 문득 슬며시 앉고 싶어 하면곁에 앉아바싹 야윈 다리를 주물러 주는 이냄새나는 내장도 천천히 비워 주는 이말간 눈으로 내 몸을 열고 들어오는저 사랑하는,  《문장웹진 8월호》  

저 사랑하는,
임후남 / 2010-07-16
가는 봄 / 이병초

  가는 봄 이병초 독사 대가리같이 꼿꼿할 먹고사리 끊으러 왔다가 누가 다 끊어갔는지 그 꼴도 못 보고 새순 돋는 밤나무 곁에 앉는다 누덕누덕 기웠어도 빛이 새는 그늘을 비껴 산 속으로 뻗어간 길을 짚어 보는데 눈두덩에서 송화가루가 묻어난다  가랑잎들 위에 깔리는 멧새 소리 사이사이로 봄날이 빠져나간다 빛이 새는 망태 같은 그늘을 지나 새똥 깔겨진 바위턱 싸리꽃 무더기를 돌아 헛발질로 길들여진 밭은 숨소리를 벗어나면 햇살에 걸려 파닥거릴 산뽕잎도 눈이 시겠지 멧새 소리를 빠져나가는 봄날은 먹고사리도 잊어먹고 눈두덩이 씀벅거리겠지  돌모댕이에 핀 고사리처럼 목이 가늘어지는 그리움도 가슴에 숭숭 뚫린 구멍을 바람 소리로 메우겠다   《문장웹진[…]

가는 봄
이병초 / 2010-07-15
그리운 고래 / 정다혜

  그리운 고래 정다혜 사업 실패로 술고래가 된 아버지바다 같은 어머니의 짠 눈물 속에서술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 불렀다그것이 아버지의 노래가 아니고 슬픈 고래 울음 소린 것을 알았을 때아버지 회유할 수 없는 바다로 떠나셨다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바다는가난과 고통의 망망대해, 어머니는고만고만한 여섯 마리의 새끼고래와 함께머리에 짐 지고 쉼 없이 떠돌아야 했다그때 우리를 꿈꾸게 했던 것은희망봉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사해死海 그 바다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밤마다 일기장에 유서 같은 시를 썼지만돌아보면 그 깊은 침잠이 나를 키웠다  인생이란 바다를 건너가기 위해누구든 고래가 되어야 하는 법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친 것은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법이제 나도 제법[…]

그리운 고래
정다혜 / 2010-07-15
시 쓰고 자빠졌네 / 서효인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시 쓰고 자빠졌네
서효인 / 2010-07-15
망설이고 주저하지 말기 / 신해원(기타리스트)

망설이고 주저하지 말기 신해원(기타리스트) 제가 만약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곳에 시선을 팔기보다는 좀 더 음악에 매진하며, ‘모자라고 미숙하여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제 음악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겁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학교와 사회,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필요 이상의 고민으로 망설이고 주저하며 그 주변을 배회하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열다섯 사춘기.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두려웠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막연한 그리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실의 여선생님을 무척이나 짝사랑했던 어느 계절이 있었고, 그해 가을 저는 ‘기타’라는 악기를 처음[…]

망설이고 주저하지 말기
신해원(기타리스트) / 2010-07-14
문장의 소리, 제211회 방송이 업데이트됐습니다. /

문장의 소리, 제211회 방송이 업데이트됐습니다. 이번 초대작가는 소설가 이신조 님입니다. ^_^ 방송 들으러 가기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 1998년 『현대문학』 신인공모에 단편 「오징어」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서평산문집 『책의 연인』 등 1999년 제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문장의 소리, 제211회 방송이 업데이트됐습니다.
/ 2010-07-12
그레이브 키퍼(Grave Keeper) / 임태운

그레이브 키퍼(Grave Keeper) 임태운                                                           고아원에 있을 때 가끔 유령과 대화를 나누는 녀석들을 본 적이 있다. 유령을 본다니, 우습지도 않았다. 그저 정신병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날 친동생처럼 챙기던 챔파 형은 유령은 진짜 있다고 말했다.‘유령과 대화 할 수 있는 건 축복받은 재능이래. 그래서 그런 애들은 좋은 집에서 데려간다고 하더라고.’ 내 이름은 뭉크. 묘지기다. 무덤 위에 낀 잡초를 제거하거나 성묘객들이 놓고 가는 꽃 나부랭이나 쓰레기들을 치우는 잡일꾼이다. 따분한 일이다. 내가 배정받은 이곳 브룬티 공동묘지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기사가 잠들어 있는 왕립 묘지도 아니고, 세상을 놀라게 한 마법을 만들어낸 마법사들의 묘지도 아니다. 하다못해[…]

그레이브 키퍼(Grave Keeper)
임태운 / 201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