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 권혁웅

[권혁웅의 상상이야기_5] 숟가락 권혁웅       @ 아주 작은 숟가락 어휴, 저 귀지 좀 봐. 우유만 부으면 인디안밥이네.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아주 조그만 숟가락. 그것도 밥이라고, 귓밥을 퍼내는 데 쓰는 그런 숟가락. 이걸로도 고봉밥을 만들 수 있겠어. 그녀가 소근 댔다.   @ 아주 큰 숟가락 북두칠성 혹은 작은곰자리가 국자 모양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손잡이 끝에 놓인 별이 북극성이다. 모든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북극성을 임금의 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자를 휘휘 돌리는 자가 밥줄을 쥐고 있는 자라는 뜻.   @ 첫[…]

숟가락
권혁웅 / 2010-03-31
황금비녀 / 이문영

                     황금 비녀     "그러니 너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소원은 위험한 거야. 그것을 진심으로 바랄수록… …"      1.    정말 그 소원을 빌 건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고개만 흔들지 말고.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이렇게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소원이라는 것, 인간의 소원이라는 것이 신의 은총으로 주어지면 충분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너도 여기 와서 알았겠지만 구멍이 모두 여섯 개 있는 거 보았지? 오로라, 아구이돈, 칼라, 아란다, 녹스, 듀란. 이 여섯[…]

황금비녀
이문영 / 2010-03-30
묵지(墨池) 外 1편 / 이용헌

묵지(墨池)* 이용헌      벼루의 가운데가 닳아 있다 움푹진 바닥에 먹물이 고여 있다 바람을 가르던 붓끝은 문밖을 향해 누웠고 막 피어난 풍란 한 그루 날숨에도 하늑인다 고요가 묵향을 문틈으로 나른다 문살에 비친 거미가 가부좌를 푼다 격자무늬 창문을 살며시 잦힌다 달을 품은 하늘은 한 장의 묵화 어둠 갈아 바른 허공에도 묵향이 퍼진다 지상의 화공이 붓을 들어 꽃을 그릴 때 천상의 화공은 여백만 칠했을 뿐 달을 그린 화공은 어디에 있는가 길 건너 미루나무 먹빛으로 촉촉하고 검푸른 들판위에 연못이 잠잠하다 갈필(渴筆)로 그리다 만 한 생애만이 마음속 늪지에서 거친 숨 적시고 있다    […]

묵지(墨池) 外 1편
이용헌 / 2010-03-29
「껍데기는 가라」 읽기 / 김종광

「껍데기는 가라」 읽기 김종광         신동엽 선생님이 쓰셨다. 1967년 1월 《52인 시집》에 처음 발표되었다. 신동엽,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이다. 글쎄, 요새 공부 덜 된 청춘들은 연예계 실력자인 어느 개그맨을 떠올리지도 모르겠지만, 선생은 우리에게 진정한 시인이었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신동엽과 김수영으로 대표 되던 시대가 있었다. 두 분 모두 현실비판 의식과 저항의식이 투철한 문학을 했으며(요즘말로 좌파였으며), 특히 4.19 혁명정신을 가장 빛나게 한 분들이었다. 우리의 영웅이었던 두 분은 68년과 69년에 차례로 요절했다. 나는 신동엽 선생님의 시가 더 좋았다. 특히 선생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좋았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껍데기는 가라」 읽기
김종광 / 2010-03-29
그 곳은 질문금지입니다 / 박은주

그 곳은 질문금지입니다 – 편혜영 『재와 빨강』(창비, 2010) 박은주         어느 날 그렇게 되었다 1972년 국가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자주적인 총력체제의 구축’이라는 미명하에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강력한 국가’의 수립을 정당화시켰다. 이에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자신의 희생과 저항’을 숙명적 관계로 인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내세웠던 1972년의 국가는 이제 ‘죽고’ 사는 문제로 방향을 전환한다. 국가가 달라졌다. 분명한 것은 전보다 더 영리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개인의 신체는 ‘죽고’ 사는 문제를 주관하시는 국가에 의해 감시당한다. 『호모사케르』(새물결, 2008)에서 조르조 아감벤은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인[…]

그 곳은 질문금지입니다
박은주 / 2010-03-29
서쪽으로 4센티미터 / 편혜영

서쪽으로 4센티미터 편혜영       잠은 뒤숭숭했다. 호텔에서의 잠은 늘 그랬다. 풀 먹인 듯 서걱거리는 침구와 건조한 공기, 오래된 카펫의 먼지 냄새, 몸에 맞지 않는 방 안의 온도, 거리의 불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두꺼운 커튼과 어둠 속에서도 제 할 일을 하며 시각을 표시하는 침대 옆의 야광시계 같은 것들에 익숙해지려면 언제나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호텔을 떠나야 했으므로 호텔에서의 잠은 늘 쪽잠에 가깝기 마련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일행들이 지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꿈도 없는 잠을 자다가 미약한 움직임 때문에 깼다고 했고 누군가는[…]

서쪽으로 4센티미터
편혜영 / 2010-03-29
어둠의 인사법 外 1편 / 신용목

어둠의 인사법 신용목         천년 전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백년 전에 사라진 목소리를 흰 종이에 옮기며   십년 전의 청춘을 이야기하는 사람   내가 처음 들은 음악은 바람이었다 넘어질 때에만 다음을 보여주는 페이지처럼   떨어지다 우연한 난간에 발을 세우는 눈송이 그 심장으로 끓고 있는 허공을 나는 몸속에 하얗게 적어넣었다 언제나 음표의 바깥에서 음악은 시작되고   수은등 터진 속살이 환하게 고이는 붉은 수조의 따뜻함을 지우며 겨울이   바닥에 차갑고 흰 붕대를 감아놓을 때 몸속의 페이지는 찢어졌다 밤마다 불룩한 주머니를 뒤집어놓는 공기처럼 쏟아진 곳까지 모두 몸이 되는 이야기  […]

어둠의 인사법 外 1편
신용목 / 2010-03-26
3초 튤립 外 1편 / 이혜미

3초 튤립 이혜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 자신조차도   아주 잠시동안 그녀는 완벽했다 새의 입 속처럼 붉게 젖었다   그녀는 자기가 튤립이 된 줄도 모르고 노란 꽃술을 머리에 얹은 채 터질 듯 아름다웠다 섬광이 비추었다   신맛을 생각할 때처럼 곧이어 전혀 다른 것이 밀려들어와 빛을 덮었다         4학년의 곤충채집       오늘의 우리는 왠지 혀를 깨문 것 같은 표정   발이 몸에서 멀어져가는 것이 두려워 그물 장대를 깃발처럼 휘두르며 초록을 향해 횡단합니다   가장 섬세한 바늘을 꺼내 몸의 중심을 휘저으면 소용돌이를 닮은[…]

3초 튤립 外 1편
이혜미 / 2010-03-26
춤꾼 外 1편 / 장석남

춤꾼 장석남         바람 불면 나는 춤꾼   어깨에서 초생달을 쳐올리면 댓잎 소리가 쏟아진다 발끝으로 다시 받아 쳐올리면 열 이레쯤 달이 되어 정수리 너머로 숨었다 오므린 손끝에서 붉은 해당화가 술래도 없이 바삐 떨어져 내렸다   바람 자면 나는 돌멕이에 앉아 가르마를 타며 춤을 꿈꾼다         童話       산으로 가면 무지개를 만드는 공장이 나오지요. 님을 만드는 공장이 나오지요. 재를 삼킨 하늘 아래 꽂감을 숨긴 호랑이가 나오지요.   정관수술을 하고 산 속 집으로 가던 홀아비는 오랜만에 삼겹살을 사고 상추를 뜯어 행궈 입이 터져라고 싸[…]

춤꾼 外 1편
장석남 / 2010-03-26
한 잎의 그늘 外 1편 / 김성태

한 잎의 그늘 김성태         잎맥처럼 흘러내리는 두시의 햇빛 쥐어짜며 명함 파러 가는 가로수길 점선으로 곧게 뻗은 십 차선 바코드 끝 젖무덤만한 산 아래 고궁이 놓여있다 복도난간에서 봄을 수유 받는 사원들처럼 매일매일 오후의 시계가 수작 피웠으면… …하는데 이분의 신호등이 화끈 켜진다   버드나무 그늘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 물컹한 응달은 시간이 파놓은 웅덩이다 가시 돋친 햇빛들이 잎사귀에 몸을 부비며 달밤 문풍지처럼 뜨거운 실루엣을 발라낸다 숲을 이루지 못한 이파리가 계절을 떨어뜨리고 은박봉투나 찢어서 잉어 찌를 던질까…말까… 손목시계는 돌아가고 나이테는 돋는다   한 그루의 남자가 한 겹의 그늘을 꺼내는 동안[…]

한 잎의 그늘 外 1편
김성태 / 201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