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하나 外 1편 / 김준태

물방울 하나 김준태    밟으면 땅에 스며들어 뿌리를 적신다  하늘의 별빛 몇 점도 비춰 들어와 담긴  둥근 물방울 하나!  밟으면 지진이 일어난 듯 내 온몸을 흔든다.    술 두 잔   깊은 밤  적막 속 호올로 술을 따른다  한잔은 내 잔 한잔은 북쪽시인 잔,  《문장웹진 1월호》  

물방울 하나 外 1편
김준태 / 2009-12-30
그릇 / 권혁웅

[권혁웅의 상상 이야기 _1]   그릇    권혁웅           @ 중국식 만찬 이과두주, 공부가주, 오가피주, 죽엽청주……는 죄다 배이름입니다. 일엽편주 같은 거지요. 한 번 타면 떠내려 갈 수밖에 없거든요. 제법 격류거든요. 타는 곳은 아는데 내리는 곳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배들이지요.    @ 가야식 만찬 경남 창녕의 송현동 고분에서 발견된 순장은 참 아프다. 아리따운 소녀도 아프지만,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들어간 주인 때문에 더 아프다. 자기 혼자는 억울하니, 시종들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심보 말이다. 밥 한 그릇으로 만족할 수 있겠냐고, 국그릇도 있고 반찬 그릇도 옹기종기 좀 모여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릇
권혁웅 / 2009-12-30
예멘식 작별 인사 / 이병률

예멘식 작별 인사 이병률    최선을 다해 갔다. 단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열흘 동안 그 나라에 머무는 동안 큰 사고만 없기를 바랐다. 최악의 사고가 번번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려면 아예 그곳에 가지 않아야 했으나 참아지지 않았다. 평생 가보지 않아도 될 곳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곳.  여행 짐을 꾸리면서 가방에 넣어둔 음료 하나. 예멘(Yemen)의 사나(Sanaa)에 도착해 며칠 만에 음료수를 싸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저녁 무렵, 그것을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산책 삼아 걷다가 어느 기념품 가게 소파에 앉아 음료를 마신 뒤 빈 병을 탁자 위에[…]

예멘식 작별 인사
이병률 / 2009-12-30
가로수 관리인들 / 김행숙

[가로수 프로젝트_1]   가로수 관리인들    김행숙         “식물의 세계에서 미친 짓이란 없다. 우리는 식물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라고 얼마 전 네덜란드 식물학자 마르셀 디케Marcel Dike는 한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 수잔네 파울젠Susanne Paulsen,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것은 수잔Susan(ne Paulsen)이 했던 질문이며, ‘녹색 엄지손가락’을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수잔들이 한 질문이다. 왜 질문의 형식을 취하면 모든 것이 모호해져버리는지. 이를테면, 식물, 이 명사는 모든 명사들처럼 두 개의 입술을 지퍼처럼 단단하게 잠그고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갑자기 입술이 벌어지면서 입속의 검은 구멍이 나타난다. 구멍은 깊어지기[…]

가로수 관리인들
김행숙 / 2009-12-30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 김연경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김연경    1988년, 우리 가족은 월세 단칸방에서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익돌이 피아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우리 삼남매에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골목 어귀에 있는 〈훈이네 복덕방〉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고 뭘 가르쳐 주지도 않는 이상한 가게였다. 그 집 큰아들은 이미 직장에 다녔고 작은아들도 내년에 제대하면 얼마 안 있어 졸업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어른들은 저렇게 놀아도 되는 모양이고 〈훈이네 복덕방〉은 어른들의[…]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김연경 / 2009-12-30
홍진에 묻힌 분네 / 이청해

홍진에 묻힌 분네이청해   멀리에서 보면 그 아파트는 공동 주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 같았다. 중첩된 산의 연봉들이 새가 내려앉듯 끝나는 지점에 신기루처럼 서 있는 점이 그러했고, 타워 형으로 입체감을 주며 올라가다 꼭대기쯤에 이르러 종이학의 날개마냥 이리저리 지붕을 접은 꼴이 그러했다. 허기진 낙타 몰골의 중년여자가 아파트 앞에 나타난 것은 가을이었다. 그녀는 등산복 차림인 채로 불타는 단풍을 배경으로 지고 어정어정 걸어가서는, 여기에 왜 이런 건물이 있지? 하는 얼굴로 8층짜리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각 집의 베란다며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 놀이터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에 유심히 눈길을 주었다. 한참 만에 도리질을 치고 그녀는 진입했던 곳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홍진에 묻힌 분네
이청해 / 2009-12-29
천국의 열쇠 / 정지아

천국의 열쇠정지아  쿵쿵 벽이 울린다. 말없는 아버지의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는 지팡이로 벽을 두드린다. 목이 마르다는 말일 때도 있고 배가 고프다는 말일 때도 있고 요강이 찼다는 말일 때도 있다. 크고 작은 ‘쿵쿵’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저 소리를 어머니는 늘 정확하게 읽어 냈다. 어머니는 삼 년 전 세상을 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는 가갸거겨, 글자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언어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언어는 여전히 해독불가다. 그는 어린아이의 장난질에 다리를 뜯긴 개미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제 몸 하나 일으켜 세우는 일이 그에게는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눈 뜨는 순간부터[…]

천국의 열쇠
정지아 / 2009-12-29
아나키스트 外 1편 / 허연

아나키스트  허연   우물이 오염됐다고 아무리 서류를 작성해도 우물은 바뀌지 않았다. 부적응의 천재가 우물을 폭파시키자 마을에는 우물이 새로 생겼다.  어떤 갈등도 농담으로 무마가 되지 않을 때 이미 서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무마하지 않는 것. 격음(激音)을 좋아하는 것, 격음이 아닌 건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것.  ‘ㅊ’ ‘ㅋ’ ‘ㅌ’ ‘ㅍ’    패배   초월은 멀다. 유럽 어느 캠프촌에서 만난 자들 오토바이로 몇개월째 세계일주 중이거나, 집 팔고 직장 때려치우고 1년 넘게 지구를 떠돌고 있다는 한국판 베가본드들.  지레 고개가 숙여졌는데…..  둘러앉아 캔맥주 기울이며 그들이 한다는 말 “서울 아파트값 요즘 얼마나 해요?[…]

아나키스트 外 1편
허연 / 2009-12-29
오늘의 체조 外 1편 / 김지녀

오늘의 체조  김지녀    여기는 걸어도 걸어도 똑같은 나무가 줄지어선 곳 식욕을 잃은 위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달려 외롭다 외로움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하루에 세 번 밥과 약을 꼭꼭 챙겨 먹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곳엔 이름 모를 병이 많고 설명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아픔도 많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이 갑자기 잠에 빠져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겨울, 아프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체조는 혈액순환에 좋은 배 두드리기 팔과 다리를 가장 멀리까지 뻗어보기 심장이 뜨거워졌습니까 팔과 다리가 조금은 길어져 누군가를 안아주었습니까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은 버릇이고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고[…]

오늘의 체조 外 1편
김지녀 / 2009-12-29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外 1편 / 김남극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김남극    놀러 와 꽃잎 지는 날 슬쩍 손금 내밀고 여린 선들이 만들어낸 물결 같은 당신의 그 복잡한 시절들을 내 손금에 연결해 그리고는 지워 저 적멸보궁 쯤 가서 버리든가 상왕봉 지나 북대 절 뒷마당에 쏟아버려 그리고 다시 손 내밀어 잡아줄게 손금 없는 손으로 산 아래까지 몸을 굴려 둥굴어질 때까지 작아질 때까지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문득 잎이 지듯이     나는 어두워진다    그대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어둠을 보았다 손으로 뭉쳐질 듯한 어둠이 짐승처럼 나를 노리고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을 빼다가 빼다가 지치면 그대는[…]

놀러 와, 잎이 지는 날 外 1편
김남극 / 200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