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작아졌다 外 1편 / 임경섭

임경섭 신발이 작아졌다   신발이 작아졌다는 것은 이미 다 자란 아이에게 성장을 꿈꾸게 하는 것도 손발이 팅팅 부어오른 옆집 아줌마의 림프부종을 알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신발이 작아졌다  그리곤 한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언덕 위 정보화도서관 진흙이 말라붙은 작은 공터에 갈 곳 잃은 발자국 한 켤레가 놓여있다 칠 벗겨진 담벼락에 기대어있는 그늘 속에 온몸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부산한 오후 속에 처음 보는 고요한 폰트 모양으로 뻗어있는 시옷 저 발자국  신발의 일부였을 동안 얼마나 무거운 생애를 짊어지고 다녔는지 선명한 흔적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흐릿한 알몸으로 끔벅끔벅[…]

신발이 작아졌다 外 1편
임경섭 / 2009-10-28
문장 웹진 신작 단편, 작가가 직접 읽어드립니다 /

작가의 육성으로 신작단편소설 들려드립니다!국내 첫 시도, 문장 웹진 10월호부터 계속 서비스   우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현역작가들이 자신이 쓴 최신 단편소설 한편을 독자들에게 직접 읽어주는 코너가 문장에 새롭게 마련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장 웹진/ 이달의 작품/이달의 소설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한 작가낭송 코너. 2009년 10월호에 단편소설을 실은 작가 세 분 (안보윤,김주희,명지현)부터 낭독을 시작, 오늘 (10월 27일) 드디어 낭독파일을 웹진에 올렸구요. 해당 작품 제목 옆에 부착한 소설낭독듣기 라는 배너를 클릭하시면 낭독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장 웹진에 실리는 단편소설은 작가들이 계속 직접 작품을 읽어주는 낭독 서비스를 독자들에게 제공할 예정입니다. 국내 문예지 어디서도 시도해본적이 없었을[…]

문장 웹진 신작 단편, 작가가 직접 읽어드립니다
/ 2009-10-27
소설 김알렉산드라 中에서 / 정철훈

소설 김알렉산드라 중에서  정철훈 김알렉산드라 01 김알렉산드라 02      1.  – 할아버지, 그네를 밀어주세요.  세료자의 목소리가 창문을 넘어온다.  – 빨리 안오면 그네는 큰 애들 차지가 된단 말이에요.  그럼 다시 기다리면 되지. 날 방해하지 마라. 깊은 잠을 자고 싶구나. 세료자야, 넌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게 그네든, 이 할애비든. 그네를 타고 날아오르렴. 아, 이 말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이 할애비의 가슴에 살고 있는 또다른 입술이 말을 하는 것이다. 핏줄 속으로 세월이 흘러가는구나. 검고 푸르딩딩한 세월, 죽음이 휩쓸고 간 시간 속에서 너만 홀로 푸르고 푸르구나.  나는 그네를 타고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는 너를 눈으로 쫒는다.[…]

소설 김알렉산드라 中에서
정철훈 / 2009-10-27
지뢰 유실 구역 / 정운균

지뢰 유실 구역  정운균                  “이제 그만 여길 떠나야겠어.”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하도 낯설어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의사를 묻는 대신 적요한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깊은 응시의 의미를 알지 못해 나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지붕 위로 규칙적인 빗소리가 흘렀다. 그 저음에 맞춰 그는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도 흔들렸다. 퍼덕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문 너머 마당에 꿈틀거리는 노란 마대자루가 비를 맞고 있었다. 그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물러서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와 호응하듯 마대자루가 거칠게 꿈틀거렸다. 나는 그의 가슴에 몸을 바싹 붙였다. 손을[…]

지뢰 유실 구역
정운균 / 2009-10-26
바람자루 속에서 2 / 김도연

바람자루 속에서 2― 멧돼지의 탄식   김도연    경찰서에서 돌아온 그는 집 안 곳곳에 눌어붙은 듯한 어둠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듯 오디오의 볼륨을 평소의 네 배로 올렸다. 둥당거리는 경쾌한 드럼 소리와 함께 흑인 가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Come on everybody, clap your hands(자, 모두 함께 박수를 쳐 봐요)! 그는 냉장고에 있던 캔맥주를 마시며 4/4 박자의 리듬이 뚜렷하게 빠른 노래 〈Let's twist again〉에 맞춰 거실에서 장판에 발바닥을 비비며 춤을 췄다. 어쩌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과다한 기대와 약간의 불안에 들떠서.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서늘한 맥주가 속옷과 가슴을 흥건하게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며칠째 청소를 하지 않아[…]

바람자루 속에서 2
김도연 / 2009-10-26
강묘희 미용실 / 백영옥

강묘희 미용실  백영옥    예약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막 현관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왔을 때,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찌꺽찌꺽 밥솥에 달린 분출구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곧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굉음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조팝나무의 꽃처럼 펑펑 피었을 뜨거운 밥나무, 밥솥 안에 가득 담긴 하얀 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집 안에 가라앉았던 스산한 어둠이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다. 뜨거운 밥알 몇 개를 입 안에 오물거린다. 씹을수록 순한 단맛이 입 안에 퍼진다. 김 팀장님. H 작가 원고, 정말 미리 좀 볼 수 없을까? 진짜 유출 안 한다. 약속할게! 문학 담당[…]

강묘희 미용실
백영옥 / 2009-10-26
三冬이 깊다 外 1편 / 이향지

이향지  三冬이 깊다   돌 틈에 三冬 들었다 흙과 돌에 남아 있는 온기를 다 짜내어 저의 種子를 지키고 있다  냉혈의 씨앗이다 냉혈일수록 씨앗이 뜨겁다 뜨거운 씨앗일수록 깊은 얼음 속에 꼭꼭 채워 놓아야 썩지 않고 때 맞춰 發芽한다 제 몸이 차가울수록 자기 안쪽 불씨부터 단단히 빗장질러 놓아야 때 맞춰 解氷을 본다  털 없는 몸이다 모두의 三冬이 깊다  냉혈이란 얼마나 가늘고 기다란 형벌인가 얼마나 비루하고 쓸쓸한가 三冬은 알고 있다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는 어떤 봄도 오지 않는다, 상대를 꺾으려고 비축해 두었던 毒을 자기 자신을 향해 주입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순간에야 형벌이 끝난다  三冬이 三冬[…]

三冬이 깊다 外 1편
이향지 / 2009-10-26
물의 언덕 外 1편 / 곽효환

곽효환  물의 언덕   자궁을 닮은 거대한 호수 그러나 그 위에 세운 고대 도시 아스텍의 기억은 물의 흔적을 잃어버린 물의 언덕 위에 있다  몇 백만 년 전 커다란 양철독수리가 하늘 위를 빙빙 배회하고 그 뱃속에서 붉은 고원으로 쏟아져 나온 언어 이전의 삶을 산 사라진 사람들 바람의 방향을 따라 물의 비탈을 따라 산 밑의 마을로 더 큰 마을로 작은 도시로 큰 도시로 더 큰 도시로 갔다가 마침내 다시 물의 언덕 위의 신전으로 돌아오다  어디일까 수십억 광년의 침묵이 고였다가 맨 처음 물로 흐른 물의 언덕은 그 기억의 형해만 남은 물의 신전은   삶 이후의[…]

물의 언덕 外 1편
곽효환 / 2009-10-26
막차 外 1편 / 정철훈

정철훈  막차   막차에서는 양계장 냄새가 난다 닭털이 눈발처럼 날리는 양계장 닭털이야 과장이지만 몇 안 되는 승객들의 눈꺼풀은 닭을 닮았다  하품은 전염병처럼 입천장에 들러붙고 온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코끝이 빨갛게 취해서 비스듬히 기울거나 아예 목을 뒤로 젖힌 채 졸고 있다  앉은 자세로 보건대 삶은 온전한 질서가 아니다 아침에 보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빨려가 버린 느낌 빈 좌석에는 어떤 온기도 남아 있지 않다  남은 승객은 겨우 셋 차량기지로 들어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문 쪽으로 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일어날 생각도 없이 앉아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제 깃털을 노란[…]

막차 外 1편
정철훈 / 2009-10-26
파적 外 1편 / 신덕룡

신덕룡  파적   아직도 투표를 하지 않았느냐는 전화가 왔다.  허리가 반으로 꺾인 노인이 걸어간다. 기표(記標)하듯 지팡이로 따박따박 땅을 짚으며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데  어촌횟집 닫힌 문 앞에서 졸고 있던 발바리 한 마리, 컹컹 짖더니 뒤를 따른다. 몇 걸음 걷고 돌아볼 때마다, 꼭 그만큼 물러선다.  슬로비디오로 보는 술래잡기 같다.  낮은 자세로 길을 살피던 조심스런 마음이 엉켰다 풀어 놓는 헐렁한 손짓, 저 헐렁 헐렁이 파적(破寂)이다.  진보와 보수, 어떤 패가 내 손에 쥐어지는 행운이나 불운이겠느냐만 셈이란 늘 뜻밖의 일이니 저렇듯 주고받는 장단이 때론 그립다.   술병들   아파트 복도에 내놓은 빈병들 많다. 소주병 맥주병들 틈에 양주병도 섞여[…]

파적 外 1편
신덕룡 / 200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