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돌고 돈다 外 1편 / 우승미

  단편 「지하철은 돌고 돈다」 중에서  단편 「수지가 삼킨 달」 중에서   지하철은 돌고 돈다  작가의 말 상갓집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새 운데다 술까지 마신 터라 몹시 지쳐 있었다. 지인을 땅속에 누이고 돌아서니 내 몸 누일 곳이 필요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 어느 한 곳이 구멍이 난 것처럼 휑해서 냉큼 그리로 달려가 빈 의자에 앉았다. 의자 한 줄을 몽땅 차지하고 옆자리에 누운 노숙자를 발견한 것은 그 후였다. 한 시간 동안 냄새와 싸우며 그 자리를 지켰다. 옆자리에 누운 사람이 무안할까 봐, 였다면 좋았겠지만, 오로지 앉을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소설의 인물들은 조금씩 작가와 닮아있고, 어느 면에선 작가의[…]

지하철은 돌고 돈다 外 1편
우승미 / 2009-08-31
국민 의연금 납부사 / 허문재

국민 의연금 납부사   허문재    뉴스 속보였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를 휩쓸고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도시의 80프로가 물에 잠기고 수천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도둑이 들끓기 시작하고 살인과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은 선진국이라고 배웠습니다. 미국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저들이 하루아침에 떼강도나 떼도둑으로 돌변하다니,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차라리 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이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미국에서 살인과 약탈이라뇨? 미국은 절대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홍수가 나면 의연금을 걷고 이재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일찍이[…]

국민 의연금 납부사
허문재 / 2009-08-31
곡선을 걷는 시간 / 염승숙

곡선을 걷는 시간   염승숙    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 모든 휘어진 것들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거나, 정신적 혹은 물리적 충격이 가해졌거나. 노인의 굽은 등과 허리, 사춘기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이나 오래된 연인들의 등 돌린 마음, 사고에 의해 부러진 뼈, 아주 추운 겨울날 주머니 안에서도 곱아드는 손, 허리가 꺾인 붓의 단면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이때 시간이라는 개념마저도 물리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므로, 어쩌면 휘어진다는 건 ‘충격’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곰곰 생각해 본다. 굽고, 곱고, 휘고, 둥근 그 모든 것들은 그러나 결국, 곧아지기 위해 일생을 견뎌야 하는 불행한 존재들은[…]

곡선을 걷는 시간
염승숙 / 2009-08-31
숨결 / 김정남

숨결  김정남    1 붓을 잡은 손이 자꾸 곱아든다. 장갑을 끼면 터치감이 좋지 않아서 맨손으로 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대기 속으로 희부연 빛살들이 시름시름 쏟아진다. 하루 중에 제일 싫은 시간이다.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는 빛이 좋을 리 없다. 서쪽 담장에서 알록달록한 꽃밭을 그리던 주(周) 씨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실 이 일도 그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판타지 월드’라는 놀이 공원에 채색 작업을 시작한 것은 연초부터다. 이월 중순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일시불로 돈을 받기로 했다.  “거의 다 그렸네요? 카우보이들이 뛰쳐나오겠어요.”그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회전목마 기구에 카우보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는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결
김정남 / 2009-08-31
젖소와 함께 티타임 外 1편 / 황성희

황성희젖소와 함께 티타임젖소의 무리들이 나타난 것은 오후 무렵.주차장을 가득 메운 젖소들은 느긋하게화단의 풀을 뜯고 인도 위로 배설을 한다.놀이터에 진을 친 사자들에겐 벌써 이름이 붙었다.서두르지 않으면 새로운 이웃이 늘어난다.저기요, 삼삼오오 주차장의 젖소들은 이상합니다.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하체가 필요하다.뿌리에서 나뭇잎에 이르는 나무의 줄거리와도 같은.거실 바닥에 놓여진 두 발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오른쪽과 왼쪽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걱정 말아요, 당신은 코끼리처럼 보이지 않아요.식탁 위 화병처럼 나는 안정된 자세로 놓여있다.새로운 종을 발굴하고 학명을 붙이는 일에 골몰합시다.그래도 시계 밖으로 시간이 흘러나오면 고장이지요.아파도 결석은 안 된다 선생님 말씀처럼 받아들이길.가면을 벗는 게 부담스러우면 그냥 공존하면 어때요.아파트 주차장을[…]

젖소와 함께 티타임 外 1편
황성희 / 2009-08-31
은행꽃은 어디로 갔을까 外 1편 / 채향옥

채향옥은행꽃은 어디로 갔을까옛적 백정들은 죽기 전에잡은 소를 마름질하는 데 쓰는아주 작은 칼, 은행꽃을아들에게 물려주었다는데요마른침을 삼키며 물려주었다는데요뜨거운 말은 마른침과 함께 삼켰다는데요그리고는 소 울음을 울다 죽었다는데요봄이 되면 은행꽃이 피는데요옛적 아비가 삼켰던 말의 씨앗이라는데요바람이 저 먼저 애달아 치성으로 짝을 지어 주면그 자리에 옹알이 같은 말들이 열리는데요그것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소 울음을 울며밤으로 낮으로 익어 가는데요눈빛도 형형하게 익어 가는데요마침내 누른빛으로 익어서또 마침내는 떨어지는데요그 가죽 안에는 또,말의 사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는데요진앙지울음의 고삐는 단단히 틀어쥐라는 말씀인 양울음의 뼈에 닿지 말라는 말씀인 양아들은 아버지의 목울대를 물려받았다는데아버지,한고비 넘기던그날 밤큰오라비 목울대가울음의 밑바닥을느리게,짚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장웹진 9월호》  

은행꽃은 어디로 갔을까 外 1편
채향옥 / 2009-08-31
수몰지구 外 1편 / 전윤호

전윤호수몰지구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서둘러 댐을 쌓았다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피해 주기 싫었다막힌 난 수몰지구다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은 오고 소나기 내리고흘러넘치는 미련을 이기지 못해수문을 연다콸콸 쏟아지는 물살에 수차가 돌고나는 충전된다인내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를꽃 피는 너의 마당이잠기지 않기를전화기를 끄고 숨을 참는다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뿐이다법흥사 발전소앞마당에 소방차가 서 있는절은 거대한 화력 발전소주차장엔 버스들이 불타고산문도 불타고 사천왕상도 불탄다성냥알처럼 불이 붙은 신도들이 지나가는석탑도 불타고 복전함도 불탄다산 위로 오르는 길은 심지처럼 뻗어있고적멸보궁에서 울려 퍼지는목탁 소리도 불타고 백팔 배도 불탄다불타서 끌어올리는 사자산 푸른 하늘저[…]

수몰지구 外 1편
전윤호 / 2009-08-31
아름다운 연애 外 1편 / 이경임

이경임아름다운 연애세계는 한여름 광장의 낡은 벤치나는 그곳에 걸쳐진 두꺼운 외투너무 어울리지 않아연애밖에 할 것이 없다내가 너에게 입 맞추는 순간집의 창문, 종려나무에 흘러내리는 빛,혹은 서늘하게 반짝이는 침엽수림나침반도 없이욕설도 찬사도 없이우리의 입술들을 반죽해서 빵을 굽고빵을 나누어주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약한 자들과 교활한 자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심부름꾼들과 정치가, 성직자와 사기꾼색정광과 전쟁광과 강박적인 시민들과학자들과 장사꾼들과 시한부 환자들과 감상주의자와 염세주의자들어릿광대와 유령들과 철학자들예술가와 어린 아이들과 죽은 사람들이한 식탁에 둘러 앉아 빵을 먹는다빵은 늘 모자라고식사는 불평 속에서 끝난다세계는 한여름 광장의 낡은 벤치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린다우리는 너무 무력해서연애밖에 할 것이 없다내가 너에게 입 맞추는 순간하얀 비둘기, 뫼비우스의 띠,혹은[…]

아름다운 연애 外 1편
이경임 / 2009-08-31
발치 外 1편 / 송기영

송기영발치그이가 난 이래로 나는 죽 더부살이를 했어요. 남들은 운명이라 그러더군요. 기쁠 때나 슬플 때에도 그이는 나를 위해 일했지요. 가끔 단단하게 박힌 못을 뽑거나 소주병을 따 주기도 했고요. 또 옆집의 그녀를 씹을 때면 기꺼이 힘을 빌려 주기도 했어요. 그이는 참,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이는 강했어요. 그래서 그이와 그렇게 끝날 줄 생각지도 못했죠. 기생한 지 고작 삼십 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이는 너무 닳아 납작, 엉그름졌죠. 의사는 그이의 사랑이 다 됐다고 내게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진 아직 남은 이가 있으니 괜찮겠죠. 생각보다 이별은 쿨해서 좋았어요. 그이에게서 어렵지 않게 쏙 빠져나왔으니까. 혼자 남은[…]

발치 外 1편
송기영 / 2009-08-31
외곽으로 간다 外 1편 / 백무산

백무산외곽으로 간다지구에 아직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폭설이 내려서 다행이다숲이 있고 사막이 있고 경이로운 것들이 있어 다행이다난 종종 별이 그리워 지구의 외곽으로 간다하늘의 별이 아니라내가 밟고 선 우주의 바다에 뜬 작고 푸른 별태고가 그리워서가 아니다그 먼 길을 다 걸어온인간이 그리워서다한두 생애 동안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다 걸어온 인간을 보고 싶은 것이다계통 발생의 길 전부를 걸어이제 막 당도하고 싶은 것이다내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법륜처럼 다 굴려 보고 싶은 것이다그럴 것이다부분은 불멸이지만전체란 참 허망할 테지?별이 그립지 않을 때도 나는 버릇처럼내가 사는 외곽보다 먼 외곽으로 간다세상의 외곽에는 별똥별이 떨어지고먼 길 걸어 이제[…]

외곽으로 간다 外 1편
백무산 / 2009-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