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7회 / 강영숙

장편연재 7회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9. 베이비, 미안해 뜨거운 여름이었어요. 목이 타 수시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었어요. 몸이 금세 땀에 젖었고 옷도 후줄근해졌어요. 빈 물통들이 좁은 승합차 안 곳곳에서 통통 튀어 올랐어요. 겨드랑이부터 젖기 시작해 양 앞가슴 쪽으로 점점 퍼졌던 땀 얼룩도 생각나는군요. 사실은 그 여름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줄기, 흙내 섞인 퀴퀴한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진동했어요. 마치 동물들이 떼 지어 시내 구경이라도 나온 것 같았죠. 정말 이상한 건 우리가 빌딩 앞에 도착해 승합차에서 내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토네이도 같은 폭풍이 몰아치면서 계절이 초겨울로 변했다는 사실이었어요.[…]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7회
강영숙 / 2009-06-30
건축가, 빈자의 미학 혹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 / 이기인

그의 이야기는 처음 긴 강을 사이에 둔 듯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그러다가 강물소리처럼 흘러갔다 이야기는 중간 중간 생소한 물결처럼 내 귀를 스쳤다. 수면 위의 빛과 바람이 부셨다 그 강물에 ‘풍덩’ 빠져 있던 조약돌들이 어느덧 어른어른 내 마음으로 굴러오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말을 이어야 했다.    선생님 안녕세요.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속도를 내어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 네  .     건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방식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 비전문가들이 보면 건축은 너무 어려운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가, 빈자의 미학 혹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
이기인 / 2009-06-30
저수지 속으로 난 길 외 3편 / 천수호

천수호   저수지 속으로 난 길  가마우지 바다  빨간 잠  나는 기형이에요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저수지 속으로 난 길 외 3편
천수호 / 2009-06-29
피시방 라이프 / 임정연

피시방 라이프  임정연    “내 고추 보여 줄까?”구석진 계단참에서 아이가 손을 잡아끌었다. 해진 바짓단이 까맣게 때가 전 운동화 위를 덮고 있다. 아이는 씨익 웃더니 바지 지퍼를 잡아 내렸다. 스르륵 내려오던 바지가 발목에 걸린 채 멈추었다. 아이는 또 씨익 웃었다. 그러고 나서 흰 팬티를 끌어내렸다. 소름이 돋은 허벅지 사이로 고추가 숨어서 대롱거렸다. 아이가 속삭였다.“만져 볼래?”“흥.”코웃음을 치자 아이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만져 봐. 그리고 나 천 원만 줘.”“없어.”꿈도 꾸지 말라는 듯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눈을 흘기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등 뒤에서 아이가 비굴하게 말했다.“배고파 죽겠어.”아이가 배를 만지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멍청이.”아이에게 혀를 날름 빼물고 나서 그냥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피시방 라이프
임정연 / 2009-06-2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선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젯밤에 무명실로 칭칭 감아 놓은 손끝이 여태 욱신거린다. 봉숭아 꽃잎에 백반가루를 너무 많이 넣어 찧었나. 작년보다 진하게 꽃물을 들이려고 조금 욕심을 부렸다. 다섯 손가락 끝마디가 검붉게 물들어서 찬바람이 불 때까지는 아버지 눈을 조심해야겠지만 오래오래 봉숭아 꽃물을 보고 싶었다. 손톱이 더디 자라면 좋겠는데, 애가 탈수록 더 잘 자란다. 그렇듯 간절히 바라는 일은 등을 보이기 일쑤이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예감하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무엇을 바라게 되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반드시 되어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선 / 2009-06-26
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 김명인&15|김행숙

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대담  김명인(시인)진행  김행숙(시인)  인트로  바다 밑을 들여다보는 적막한 시간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아버지의 고기잡이」 시를 쓰는 일은 절체절명의 일    낚싯대가 드리운 우주   김행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과 함께 시 이야기, 삶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은 1973년에 등단하셨고 첫 시집을 79년에 내셨습니다. 첫 시집이 나온 지 올해가 정확히 30년 되는 해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여덟 권의 시집(『동두천』(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바다의 아코디언』(2002), 『파문』(2005))과 함께 묶이고 펼쳐지며 살아오셨는데요.김명인  시를 쓰기 시작한 걸로[…]

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김명인&15|김행숙 / 2009-06-26
우리들의 사생활 / 하재연

우리들의 사생활―신해욱                                하재연         광장에서, 그녀와 2009년 6월 10일 나는 신해욱 시인과 시청 앞에 있었다. 함께 전철을 타고, 해 지는 광장으로 가 주저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는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죽이던 흐느낌도”라고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지금이 2009년이 아니라 1987년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 뒤로 빌딩들에서 점멸하는 네온사인을 보며 해욱은 말했다. “저걸 보고 있으니까 블레이드 러너의 첫 장면이 생각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고, 거기서 빛나던 자본주의의 꽃, 그 상징으로서의 네온은 2009년 광화문의 빌딩들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1987년 또는 2019년, 그리고[…]

우리들의 사생활
하재연 / 2009-06-26
내가 바로 배호라니까 외 1편 / 서효인

서효인  내가 바로 배호라니까   여섯 살 그녀에게 최초의 공연은 돌잔치였다 그녀는 볼록 튀어나온 배에 두 손을 얹고 나른한 표정을 하다 오른손을 들어 기지개를 켜며 엇박자로 윗입술을 오물거렸다 사람들은 까무러치며 그녀를 깨물고 까꿍, 까꿍, 까불었다 그녀의 옹알이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였다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고 먹고 마셨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떠올리며 그녀는 삶과 사랑과 이별을 아냐고 끊임없이 엇박자로 되물었지만 남자는 냄새나는 입을 볼에 비빌 뿐, 남자의 수염만큼 까칠하고 험하고 귀찮은 예술의 길이여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목울대를 꼰다 꼬들꼬들한 꼬마의 목소리가 꿈처럼 퍼진다 경박한 화장을 하고 싸구려 한복을 입고 열창한다 냉정한 심사위원이여 내가 바로 배호다 엇박자로 들어가는[…]

내가 바로 배호라니까 외 1편
서효인 / 2009-06-26
내 잠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외 1편 / 이수명

이수명  내 잠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내 잠으로 들어오지는 않고염소는 홀로내 잠을 핥기만 하고 풀밭을 끌고 다니며풀을 놓치고 내 잠의 범람에 떠밀려 가요 번개 속으로 들어가번개를 싫어해요 내 잠으로 들어오지는 않고염소는 홀로내 잠을 만들고 땅 밑을 어슬렁거리며땅을 떨어뜨리고   물고기는 어디에    물고기는 자발적으로 물고기이다. 물고기를 올리고 내린다. 물고기는 물고기와 동등하며 아직 제자리에 있다. 물고기가 아직 제자리에 있다면 물고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물고기가 아직 입을 벌리고 있다면그 입속으로사라져 버린 방향방향의 지느러미 몸속으로 계속 떨어지는 망치가 있어망치처럼굳어진 물이 있어 물고기가 아직 부서져 있다면  물고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돌을 잠재운 그 짧은 비늘들은 《문장웹진 7월호》  

내 잠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외 1편
이수명 /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