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살의 동네야구 / 박상

                                 열아홉 살의 동네야구                        “나랑 한 게임 붙자.” 남호우의 말은 의외였다. 실연의 아픔을 좀 더 달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 자신과 상대해 줄 것을 제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놈이 싸우려고 시비 걸 때의 자세와 비슷했다.  박상   비의 수압이 몹시 과격한 날이었다.  아파트 창밖으로 죽죽 그어지고 있는 비를 보고 있으니 집에 있는 건지 잠수정에 타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부모님이 한 날 한 시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런 일도 버젓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걸 보니 인생이란 장르가 개판인 거다.   유일한 친척인 삼촌이 내가 살 아파트를 구해 주고 어려운 일을 돌봐준다. 그는[…]

열아홉살의 동네야구
박상 / 2009-02-24
이파리들의 악수 / 신용목

 이파리들의 악수      신용목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힘은 강철로도 막지 못합니다. 그것은 햇살의 힘이고 순환의 힘이며,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생명의 힘입니다. 가장 위대한 지구의 자력 발전소인 나뭇잎을 보면서 나는 저것들이 하나하나 '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파란 손바닥들이 드넓은 우주를 받치고 있는 것. 실로 그들의 협동이란 두 개의 손을 지닌 우리가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늘이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는가 하면, 광합성을 통해 지구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합니다. 분명 손은 내 몸의 가장 먼 말단이었으며 그리하여 상대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닿는 소통의 최첨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파리들의 악수
신용목 / 2009-02-24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문인수&486|이선우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예술위원회 선정 2008 ‘올해의 시’ 수상자 특별 대담     대담  문인수(시인)진행?정리  이선우(평론가)    * 문인수, 「불가촉천민-인도 소풍」(『배꼽』, 문학동네, 2006) 중에서  인트로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시를 떠나 시와 함께 시로 돌아오다 시인에게 폐경기란 없다 전업시인에게는 아내가 있다 시는 자기용서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다 길 위에서 시를 만나다 눈이 젖어도 눈물 흘리지 않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시를 여행하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다 숨은 문재를 발굴하는 평론가가 필요하다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이선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선우입니다.문인수  반갑습니다. 문인수입니다.이선우  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2008 ‘올해의 시’에 선생님의 시집『배꼽』(창비,[…]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문인수&486|이선우 / 2009-02-24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문인수&486|이선우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 예술위원회 선정 2008 ‘올해의 시’ 수상자 특별 대담     대담 문인수(시인)진행?정리 이선우(평론가)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이선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선우입니다.문인수 반갑습니다. 문인수입니다.이선우 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가 선정한 2008 ‘올해의 시’에 선생님의 시집『배꼽』(창비, 2008)이 선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금메달을 타게 되셨는데,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인수 축하 고맙습니다. ‘올해의 시’는 매분기별 리그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상인데요. 많은 문인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상이어서 다른 상에 비해서 좀 더 다른 고마움과 기쁨이 있습니다.이선우 ‘올해의 시’ 뿐 아니라, 그동안 여러 상을 타셨거든요. 살펴보니까[…]

스스로 외딴 사원*이며 그곳으로 가는 젖은 길인, 詩人
문인수&486|이선우 / 2009-02-24
오래된 일기 / 이승우

     이 승 우    오래된 일기 방 오래된 일기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쓸 때 사람들의 관계가 부채의식, 혹은 죄책감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녹음을 위해 책을 읽는데 한 해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떠올라서 목이 잠겼다. 빚을 좀 갚는다고 이 소설을 썼는데,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빚을 하나 늘어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된 노트 한 권이 나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처음에 그 노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규가 펼쳐보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첫장을 넘겼다. 잊고 있었던, 이숙한 내 필체가 마치 화석에 찍힌 아득한 시절의 발자국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첫[…]

오래된 일기
이승우 / 2009-02-23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3회 / 강영숙

장편연재 3회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4. 이층집으로 들어갔다     여자애들은 한밤중에 잘못 얻어 탄 미친 자동차 같았어요. 앞뒤 연결이 안 되고 뭉텅뭉텅 끊어지다 결국 화면을 태워 먹는 불량 필름처럼 위태로워 보였죠. 계속해서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아 올렸어요. 멀리서 보면 순정파 여고생들 같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좀 무서웠어요. 전혀 의외의 순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말들을 맥락도 없이 지껄여댔고 그 목소리는 성대가 결절된 듯 거칠고 탁했어요. 나는 우리에게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했고, 도무지 인생의 접점이라는 게 없을 것 같았던 그 여자애들과 내가 함께 시궁창에 빠질 거라고는 전혀[…]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3회
강영숙 / 2009-02-23
물구나무서서 보다 / 정희성

  정희성 물구나무서서 보다 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집 잃은 시민들이 시위하다 불타 죽은 아침 억울해 울면서 항복하듯 다리를 들고 팔목이 시도록 맨손으로 우리는 이 땅을 디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난이 제 탓만도 아닌데 우리들의 시대는 집이 헐린 채 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도심 속의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 사람들한테 쫓겨 가자 지구로 간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요르단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소년은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난감 총을 들고 전사의 꿈을 키우고 있고 아마 머지않아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이상한[…]

물구나무서서 보다
정희성 / 2009-02-23
입김 / 고운기

  고운기  입김 ―어느 날의 일기에서   ― 2000년 1월 7일. 추운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기가 쉽지 않다. 도쿄는 서울보다 기온이 높고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없지만, 우리처럼 온돌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전기난로와 온풍기를 아무리 돌려도 서늘한 느낌을 몰아낼 수 없다. 더욱이 혼자라는 것이 추위와 가세한다.  오래전 어느 겨울, 식구들이 왔었다. 집 사람과 큰아이 그리고 막 돌이 된 둘째 아이. 백일도 지나지 않은 그 아이를 떼어 놓고 나는 떠나 와 있었다.     아이가 낯선 사람처럼 나를 쳐다본다.     기숙사는 단칸방, 독신자용 숙소여서 네 식구에겐 비좁았다. 집사람은 작은아이를 데리고 침대에서, 나는 큰아이를 데리고 바닥에[…]

입김
고운기 / 2009-02-23
망각이 완성될 때까지 / 황규관

  황규관 망각이 완성될 때까지   파괴 없이 창조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창조 없는 파괴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경구는 항상 빛나지만 지금, 나를 휩쓸고 가는 바람의 끝은 폐허다 처음부터 다시 말하마, 폐허를 기만하는 희망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족해지는 필요 공간을 얻기 위해 우리 부부는 집을 팔면 남을 차익을 먼저 떠올리고 이제 누구도 냇가에 핀 작은 꽃에게 무심한 햇볕과 구불구불한 냇물을 북돋아주지 않는다 버리고 떠나면 그 뿐 나보다 벌이가 못한 초로의 사내와 둥지가 깨져버린 산비둘기가 뒤를 잇겠지 그렇게 나도 여기까지 왔고 나 또한 파괴자에 다름 아닌 것, 그러므로 떠나는[…]

망각이 완성될 때까지
황규관 / 2009-02-23
분노의 포도 / 권혁웅

  권혁웅 분노의 포도 ―드라마 6 주(朱)와 강(姜)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한 잎새 아래 모여 있는 포도 알들마냥 한 지붕 아래서 두 가족이 종주먹처럼 살았다 작은 부엌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주, 오른쪽이 강이었다 아니, 반대였던가? 둘은 동고동락했다 문제는 동거동락이라는 오자(誤字), 취기는 본래 좌우를 가리지 못한다 술에서 깬 강 옆에는 사우디에 가 있던 주의 마누라가 누워 있었다 엎질러진 포도주였다 배반이 낭자하다의 그 배반이 아니었던 거다 아이는 작은 주(朱)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저씨가 이름과 방을 바꾸었던 셈이다 호형호제를 잘하면 호부호형을 못한다 아니, 호가호위였던가? 어느 날, 주의 마누라가 아이의 진짜 생일을 말했다 포도주가 아니라 샴페인을,[…]

분노의 포도
권혁웅 / 2009-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