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 김명철

김명철    악어       시외버스 터미널 뒤편 듬성한 소나무 숲,내장 하나 없이 가죽만 남은 악어 한 마리가 앞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일어선다.녹슨 철제 더미 풀숲에서 얼어붙었던 입을 쩍 벌린다.금 갈듯 탱탱한 악어의 눈동자에 송곳 같은 눈발이 꽂혀도 입 벌린 채 미동도 없다.   어린 누 한 마리쯤 통째로 삼키던 아래턱의 기억이 눈뭉치 뒤덮인 솔잎에 촘촘히 걸린다. 송곳니와 송곳니 사이에서 무뎌진 야성이 떨고 있다. 기아로부터의 탈출과   아마존의 쥐라기 같은 열대 남미 혁명을등짝에 가파르게 질러진 몇 줄기 빙곡(氷谷)으로   한껏 입을 벌리고 악어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내[…]

악어
김명철 / 2008-12-30
폭설 / 김왕노

김왕노    폭설      욕설이 쏟아지는 밤이다. 나를 향한 욕설이 오랜만에 시원하다. 대놓고 욕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절, 욕설로 남부순화도로가 통제되는 밤이다. 누가 욕먹지 않는 자 욕으로 나를 치라고 하였나. 욕 한 번 제대로 먹지 않는 거리가 청사가 펑펑 내리는 욕설에 묻힌다. 생에 처음 보는 대설이라고 누가 중얼거리는 밤, 오랜만에 가져 보는 자학의 밤, 욕설이 내린다. 욕먹을 짓 하였지만 제대로 사과 한 번 하지 않는 시절로 누가 욕을 수없이 퍼붓는다. 욕먹어도 욕인지 뭔지 모르는 무식한 놈들아, 밤새 욕설이 몇 세기만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블랙홀로 […]

폭설
김왕노 / 2008-12-30
물의 방중술 / 박지웅

박지웅    물의 방중술     연못에 신방이 차려졌다 신부가 알몸으로 들어가 눕는다 신랑의 육체를 돌며 천천히 꼬리치는 비단잉어, 스르르 밑으로 내려가입으로 물의 지퍼를 내린다그렇다고 해서 농익은 몸 와락 껴안는 것은신부에게는 미안하고 또 무력한 포옹이다손끝만으로도 쉽게 으스러지는 무른 살로는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안을 수 없다 신랑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슬그머니 놓는 것,태생적으로 불을 지피지 못한다 해도하룻밤이라면 하룻밤, 백 년이라면 백 년을제 몸 뚫고 지나가는 신부의 숨결이 되어주는 것빈틈없기에 오히려 느슨한, 거리를 두고 지켜주는 것때로는 문지르고 싶어도 때로는 눌러쓰고 싶은 이름이 있어도태연한 포옹으로 다만, 물들게 하는       뼈저린[…]

물의 방중술
박지웅 / 2008-12-30
녹스는 식물들 / 신미나

신미나    녹스는 식물들      바람도 없이 그네가 흔들린다  노란색 하품이 포물선을 그리며 멀어져 가면  두꺼비집 속으로 들어가 모래알갱이가 되었다   철봉을 잡았던 손바닥에 쇠 냄새처럼  이 저녁의 공기는 비리고   플라타너스 잎사귀 한 장  이끼 낀 미끄럼틀에 내려와 앉을 때  엄마가 다시 오지 않는 하늘에 기린 구름  자꾸만 모래가 고이는 신발을 벗고  코끼리처럼 커다란 두 귀를 펄럭이며   나는 시소, 시소       하얀 옷소매      한밤에 누가 내게 전하는 기별이길래 얼굴에 머리카락 한 올 내려앉는 기척으로 귀 울림이 왔다 가나   글 모르는 친척들의 뒤주[…]

녹스는 식물들
신미나 / 2008-12-30
곰소 / 이근일

이근일    곰소    곰소엔 곰이 살지 않고, 소금을 이르는 은어(隱語)만 반짝인다 소금밭에 11월 대신, 6월의 빛살이 말갛게 일렁이고 네가 내 심장에 심어 놓은 글라디올러스가 더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창공을 찢으며 날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 없으므로를 적시며 바닷물이 고요히 흘러들고 있다 너는 없고, 차오르고 또 차오르는 너의 음성만 있으므로, 나는 저 있으므로에 앉아 꿀차를 마신다 내 심장 속 달콤한 피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너의 음성은 음성에서 멀어지고 바닷물은 바닷물에서 멀어져 짜디짠 시간이 된다 망중한 그 시간 위로 떠오른 한 척의 폐선이 다시금 밀회 속으로[…]

곰소
이근일 / 2008-12-30
한 나무 아래 사흘을 머물지 않는다 / 이흔복

이흔복  한 나무 아래 사흘을 머물지 않는다       여기 내가 있다 나무들 낙엽 지니 바람 일어 서늘하다그 나무들 야물고 단단하다  해는 갔다 해는 오고잠이 들 둥 말 둥 몽매간에어허 이상도 해라한 번도 본 적 없는난새 봉새[鸞鳳]를 보았다  난새는 부지런 부지런히먼 길을 가고봉새는 천 리를 쉬지 않고 날아도오동이 아니면 깃을 쉬지 않는단다  어디 내가 있느냐?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제행은 만물이 아닐 터물(物)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행이며그 행으로써 무상한 것무엇이 있고 다시 무엇이 있으리  내가 무엇하러 났느냐?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떠날 것인가?      날 두고 내가 떠나가면 떠나 버리면      산 뒤에 또[…]

한 나무 아래 사흘을 머물지 않는다
이흔복 / 2008-12-30
/ 최금진

최금진    닭    양계장 백열등은 등대 같아서 아침에 씩씩한 선원처럼 마당으로 나갔다간 저녁엔 그저 한 뭉치 고깃덩어리가 되어 돌아오지요 길은 거기서 거기란 사실에 대해 우리의 지도자는 일찍이모든 길은 감옥으로 통한다고 말씀하셨지요주인 영감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모이를 주고요아들은 매달 같은 날짜에 나타나 살림을 깨부수지요팔과 다리를 잘라 놓으면 꼭 치킨 같은 이들이아침이면 동산아파트 칸칸에 서서 체조를 하지요날개 없는 자들의 해탈을 위한 오랜 수도법이거든요제 삶은 비교적 모범적이라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은 더는 아프지도 않고 또 행복하지도 않아요안쪽에 빛을 켜 놓으면 바깥이 안 보이는 양계장 무사안일을 쪼아 먹다 보면 저절로 살이 찌고폐계는 폐계 대로의[…]

최금진 / 2008-12-30
<2>"'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 고봉준

  사랑과 감정이 금기어가 된 도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알파빌(Alphaville)>은 ‘감정’이 부재하는 세계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사랑’이 금지된 도시가 나옵니다. 동료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수사요원 레미 코션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감정마저 통제하는 알파 컴퓨터의 개발자 본 브론(폰 브라운) 박사를 찾기 위해 ‘피가로-프라우다’의 기자로 위장하고 도시 알파빌에 들어가지요. 알파빌은 논리가 지배하는 도시입니다. 도시라기보다는 국가에 가깝고, 그보다는 ‘세계’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지요. 그곳을 지배하는 건 브라운 박사가 개발한 알파 60이라는 컴퓨터입니다. 그곳은 감정이 죄가 되는 곳입니다. 단적으로 ‘사랑’이 금지된 곳이지요. 사랑만이 아닙니다. 눈물, 희망, 절망, 고독 등의 인간적 감정은[…]

<2>"'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고봉준 / 2008-12-22
문학공연 실황 동영상, 올렸습니다. /

문학공연 실황 동영상, 올렸습니다.지난 11월에 열렸던 문학공연2008 전국청소년시낭송축제 기념 콘서트(11/22)와2008 시민과 청소년이 함께하는 문학나눔콘서트(11/24)의공연실황 동영상을 도서관> 영상정보관> 문장TV(취재파일)에 올렸습니다.미처 오지 못하셨던 분들은 영상으로나마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가기

문학공연 실황 동영상, 올렸습니다.
/ 2008-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