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 신용목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어제는 겨울 산을 오르다 뜬금없이, 도토리의 키를 재보고 싶었습니다. 높은 구름의 시름을 바지랑대로 받쳐주고도 싶었고, 겨울 해의 기울기를 낚시대로 건져올리고도 싶었지만, 정말 도토리라고 다 고만고만하기야 할까! 기어이 도토리를 찾았습니다. 도토리들이 참나무 발치에 송글송글 흩어져 있더군요. 우리가 다 똑같다고 치부한 것들이 사실은 논리와 논증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무기력과 자포자기를 심어놓은 원인은 아닐까. 사안의 경중과 대안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그것이 그것일 뿐’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을 무력화한 것은 아닐까. 도토리를 한 움큼 쥐고 정말 도토리 키를 쟀습니다. 참 흡족하게도, 모양도 빛깔도 키도[…]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 2008-12-30
소걸음으로 지나온 60년, 탈향에서 귀향까지 / 이호철&500|김이은

  소걸음으로 지나온 60년, 탈향에서 귀향까지    대담 이호철(소설가)진행?정리 김이은(소설가)  작가와 작가 이호철&김이은 인트로 근황 탈향에서 귀향 형편 형편만큼 한솥밥 먹는 사람 전쟁이란 게 그런거야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의식 문학의 본령 눈치의 상상력 번역은 문학적인 감성이 있어야 한다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문학은 내 운명 서울은 만원이다 문학은 조촐하고 삶의 질박함을 보여주고 놀라운 감동이 있는 것 문학에 맛을 들여라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김이은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단의 큰 어르신을 뵙게 돼 기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건강을 가장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이호철  건강은 좋은 편예요. 요가도 하고, 좀 전에도 등산하고 왔어요, 저 건너[…]

소걸음으로 지나온 60년, 탈향에서 귀향까지
이호철&500|김이은 / 2008-12-30
훔침과 감춤 / 한유주

훔침과 감춤 ― 조연호      한유주      촛농에 손가락을 담가 지문을 얻는다. 이것을 보지 마. 구겨진 촛농의 표면에 단 한 줄의 등고선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내가 잃어버린 단어들을 누군가가 흰 글씨로 새겨놓았다. 나의 단어들은 역사를 갖지 못한다. 나의 단어들은 기원을 갖지 못한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거북이들은 등껍질에 지진과 화산분출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오늘의 하늘을 봐. 멸종된 단어들이 자전과 공전을 혼동하고 있다. 달의 궤적을 따라. 별들의 항로가 우리의 미래를 설득하는 시간, 내가 기르던 모든 식물들은 일시에 쥐고 있던 칼을 내려놓았다. 나는 미명과 박명이라는 단어들의 뜻을[…]

훔침과 감춤
한유주 / 2008-12-30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보낸 3년 / 한상준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보낸 3년      한상준      며칠 새로 비가 오더니 바람이 분다. 찬 기운이 제법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한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비가 올는지 눈이 내릴지를 가늠하며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살아가면서 잠시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내가 답답함을 느끼는 때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등의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이다. ‘그렇다, 아니다’라는 답과 해결 방안 없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달리 무엇을 한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마음은 답답해진다. 아직도 수양이 부족하고 천성적으로 결핍된 무엇이[…]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보낸 3년
한상준 / 2008-12-30
문풍지 외 / 박두규

박두규   문풍지 세월이 간다 문득 이파리 하나만 달고     문풍지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온 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문의 틈새를 살고 있으나사실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솜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바람 타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문풍지는 문풍지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안이어서도 안 되고 밖이어서도 안 되는안과 밖의 경계를 살아야 하는 문풍지.      세월이 간다      내 서성이던 젊은 날의 배경은 늘 해가 저물고 쉽게 어둠에 젖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강가의 느릅나무 한 그루와[…]

문풍지 외
박두규 / 2008-12-30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1회 / 강영숙

장편연재 1회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1. 자이언트, 내가 때려 줄게  자이언트가 마마의 몸을 한 손으로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어요. 마마는 시멘트벽에 찰떡처럼 달라붙었다가 땅 위로 풀썩 쓰러졌죠. 우는 줄 알았는데 실실 웃고 있었어요. 자이언트는 마마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이 허공으로 향하도록 잡아당겼어요. 마마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죠. “이게 실실 쪼개네.” 자이언트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어요. 마마는 마른 갈대 잎을 입술로 불 듯 푸푸 바람을 내뿜으며 대답했어요. “푸푸, 그래 쪼갠다 이 돼지새끼야.” 순간 자이언트가 마마의 뺨을 갈겼습니다. 저는 마마의 목이 똑 부러졌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마는 실실 웃었어요. 입으로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자이언트는[…]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1회
강영숙 / 2008-12-30
연재를 시작하며 / 강영숙

연재를 시작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즐겨 찾으시는 《문장 웹진》에 연재를 시작하며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같은 연말이 되면 얀 가바렉의 섹소폰에 중세풍의 성가가 어우러진 오피시움 음반을 들으며 북쪽 도시를 향해 달려가곤 합니다. 이번엔 고대 캄보디아의 악기 연주와 재즈가 결합된 크메르 재즈 음반이 추가되어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모두가 황폐해지지 않고자 애쓰는 이때에, 이 귀한 지면에 저의 서툰 언어들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무척이나 떨립니다. 더구나 저는 글을 쓴 경력도 아주 짧은 신인에 불과합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쩌나, 혹시 너무나 마음에 들어 사탕이라도 왕창 보내주시면 어쩌나[…]

연재를 시작하며
강영숙 / 2008-12-30
현기증 / 박금산

현기증      박금산      음악은 누군가의 욕망이었다. 나는 체 게바라를 생각하고 있었고, 아프리카풍의 쿠바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다. 소파가 많은 거실에서는 아프로쿠반 음악이 아프리카와 쿠바, 그리고 체 게바라로 나뉘어 떠돌고 있었다. A가 도착할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파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럴 거라고 예측한 시각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등받이 없는 소파를 골라서 눕고 다리를 뻗었다. A는 금, 토, 일, 3일 동안 해변의 펜션에서 지내다 오는 길이었다. 휴가 기간은 경유지에서 보낸 밤과 하늘에 떠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6일이었다. 바깥 현관문이 열렸다 닫혔다.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현기증
박금산 / 2008-12-30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보아요 / 조해진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보아요     조해진      옛날, 아주 옛날 유리로 된 높은 산꼭대기에 황금과 유리로 지은 성이 있었다네. 그 성에는 마법에 걸린 아름다운 공주가 갇혀 있었다네. 공주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금은보석을 성의 지하 창고에 쌓아 두고 있었다네. 많은 기사들이 공주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성으로 가려 했으나 그 누구도 비탈이 심한 유리로 된 산을 오르지 못했다네. 공주는 산 밑으로 굴러 떨어져 날카로운 유리에 박힌 채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기사들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네. 어느 지혜롭고 총명한 젊은이 한 명이 시라소니의 발톱을 자신의 손과 발에 붙이고는 유리[…]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보아요
조해진 / 2008-12-30
저 들판 작은 교회 / 강형철

강형철    저 들판 작은 교회      톱밥 난로 투둑투둑 뜨겁던 교회마루 틈은 할머니 집사님 흘린 눈물로까만 때가 스며 있던 교회그 눈물들이 양초 속에서 매끄럽게 윤이 나던들판 가운데 작은 교회  종루에 매어진 끈을 잡아당기면종소리는 겨울 투명한 들녘을 가로질러나락 벤 자리를 더듬다가장독대 간장독을 지나초종, 재종으로 성도들을 부르던 교회  성탄절 새벽송을 부를 때면 첫사랑 손스침의 감격이 펼친 찬송가 위에구주 예수 탄생처럼 명료하던 곳  주일을 못 지키는 일이 있어도힘든 친구 손을 놓지 못했던 교회  끝내 기울어져 전나무를 잘라 받쳐 쓰다가 결국 사라지고 없는 교회우리들 마음 그 끝에 세워진 저 들판 작은 교회[…]

저 들판 작은 교회
강형철 / 200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