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집의 불빛 / 이승희

 이승희 먼 집의 불빛 아기의 첫 걸음마처럼 꼭 그렇게 켜지던 먼 집의 불빛들이 어느 새 모닥불처럼 붙어서 탐스럽게 피고 있더군요. 골목길 속으로 들어갈수록 이 불길도 확확 타올라 골목마다 앵두알처럼 열리기도 하고, 채송화 씨앗처럼 날리기도 했지요. 불빛에 붉게 젖은 저 손바닥만 한 창 너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낮은 처마 아래로 모여든 반쯤 몸을 내민 불빛들이 어둠에 대고 치는 발장난 같은 이 어둠은 그래서 따뜻합니다. 불빛 속에 손을 넣어보았나요? 이 간지러운 물기 만져지는 속을 걸어보았는지요. 그림자조차 먼지처럼 가벼운 그 어둠을 사랑해보았는지요. 불 켜진 집, 흉터 같았던 흉터는 말하자면 상처의[…]

먼 집의 불빛
이승희 / 2007-03-31
귓속의 하루 / 윤예영

 윤예영 귓속의 하루 달팽이관에 앉아 느릿느릿 귀기울입니다. 수챗구멍으로 떨어지는 물소리 변기에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세상의 끝으로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 비가 옵니다. 세상은 무한팽창우주처럼 혹은 이스트를 넣은 봄처럼 부풀어 오르고 오늘도 반가운 귀울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도 닿지 못한 멋쩍은 부름들, 그런 것들은 죄다 파도에 밀려 돌아옵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집니다. 부서진 이름들을 하나씩 쓰다듬어 봅니다. 달팽이관에 앉아 몸을 말아봅니다. 느릿느릿 곱아드는 것은 그건 사실 깊숙이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사막을 그리는 바다가 불 속에 작은 손을 담그는 일입니다. 저기 세상의 끝의 커다란 구멍으로   큰 바다가 떨어집니다. 파리지옥에 빠진 달 새벽달을 본 사람은 알지 달[…]

귓속의 하루
윤예영 / 2007-03-31
골목의 아이 / 김유진

  골목의 아이 김유진 그리하여 도착한 골목의 어귀에서 마주친 것은 맹렬히 돌진하는 한 마리 코끼리였다. 먼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해일, 정적을 부수는 기차의 기적소리 같은 난폭함으로 그는 앞발을 들어 대지를 내리찍었다. 몸체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지는 상점의 진열장들, 가래를 뱉던 노파가 그의 왼쪽 뒷발에 짓밟히는 광경들을 보며, 나는 오줌을 지렸다. 무너진 돌담 위에 앉아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젖은 손을 가슴팍에 문질렀다. 가슴에 찍힌 손자국에서 지린내가 올라왔다. 그가 허공에 콧물을 내뿜으며 길 반대편으로 사라지자, 상점으로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로한 얼굴로 구겨진 땅을 밟았으나 펴지지 않았다. 늙은 개가 울었다.   여자는[…]

골목의 아이
김유진 / 2007-03-31
툭, / 김경인

 김경인 툭,                               문득, 저물녘 태양이 성큼 자란 꼬리를 물끄러미 돌아다보고 겨울 내내 상자를 들락거리던 도마뱀 여자가 별자리 점괘 속으로 낯설고 지루한 여행을 떠날 때  의심 많은 새떼의 부리는 날로 뾰족해져 빛나는 열쇠를 잔뜩 감춘 아침을 쪼아대고 때마침 바람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에서 이라크에서 인디아에서 동시에 불어오고 언니, 나는 부끄러워요. 다국적 기업에 취직하다니 울먹이던  십년 전 차에 치어 죽은 후배는 문득 옛날 일터로 돌아와  맥도날드 유리창을 닦다 반사된 제 얼굴을 못 알아보고  허물을 벗어버린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준비를 마칠 때 봄은 묵묵부답 깊어가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꽃들은  툭,                               두 개의 입술                  […]

툭,
김경인 / 2007-03-31
요즘 내 문제는 / 김경미

 김경미 요즘 내 문제는 한강 철교 위 자살소동자처럼 아슬아슬하지 않은 것 박살, 이 자주 나는 것 박살, 을 자주 내는 것 나는 지금 거리를 걷고 있지만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저녁을 먹고 있지만 대체 뭘 하는 걸까 -내 프린터 음성서비스에는 조폭형도 있다 야 야, 찍는다! 찍는다구! 야 야, 다 끝난 거, 알아 몰라! 모르는 것 아직도 자꾸 첫 시작인 줄 아는 것 유월 넝쿨장미 앞에서 여전히 털썩 주저앉는 것 * 마음먹고 꽃을 심어도 피지 않을 수 있고 무심코 꽂아놓은 버들이 그늘을 이루기도 한다* 적자생존,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 시중[…]

요즘 내 문제는
김경미 / 2007-03-31
놋쇠방울소리 / 서정춘

 서정춘 놋쇠방울소리                                                              어느 여름 날 밤이었습니다 마부 자식의 몸에서 망아지 냄새가 난다는 내 나이 아홉 살 때 나는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과 그 말 머리에 흔들려서 찰랑거린 놋쇠방울소리가 하도나 좋았습니다 그러면 나도 커서 마부가 되겠노라 마부 아버지의 마구간에 깃든 조랑말과 눈도장도 찍으며 그 똥그랗고 검은 눈동자 속으로 들어가 별 하나 별 둘을 들여다보는 별밤지기 아이였답니다 이런 날 밤이면 이따금 조랑말의 말 머리에서 찰랑거린 놋쇠방울소리가 밤하늘로 날아올라 별빛에 부딪치고 바스라지는 그 영롱한 부스러기 소리들을 눈이 시리도록 우러렀던 나만의 황홀한 밤이 있었습니다 저기                     저기 거기 물 건너 저 사람 홀연히[…]

놋쇠방울소리
서정춘 / 2007-03-31
뒤꿈치가 깨진 외 3편 / 조정

  조정     뒤꿈치가 깨진 애기 옹관 통일호가 닿은 종각역 버들 귀 뒤꿈치가 깨진 낚시 몇 물고 있는 바다와 헤어져 돌아설 때 소처럼 움찔 검은 바위가 왼쪽 운동화를 벗기고 오른발은 바위틈에 빠져 깊고 손에 든 핸드폰은 떨어져 턱을 찧었다 얽은 바위가 한 입 깨물다 놓아준 살에 피가 천천히 배어나왔다 너도 속 시원하냐 운동화 한 짝을 들고 걸었다 잣알만 한 상처를 열고 나오는 피에게 빨리 포구를 빠져 나가는, 꼬리뼈 짜릿한, 서대 말리는, 벽 칠하는, 검은 흙에 돋는, 무릎 단단하게 늙은, 돌담으로 가둔, 같은 말은 빼고 배, 무단횡단, 평상, 남자, 쌍떡잎별들, 팽나무, 집들만 보여주었다 두둑과 두둑 사이[…]

뒤꿈치가 깨진 외 3편
조정 / 2007-03-30
심윤경의 <토토로의 숲> 중에서 / 고인환

  최아영심윤경의 「토토로의 집」은 흔들리는 가족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려한 문명의 빛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의 문제는 ‘지금, 여기’의 가족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네 식구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부림치며 “통증과 신음을 혀 밑에 가두는” 엄마의 숨 막히는 절규(絶叫)는, 윤리․도덕으로 포장된 낭만적 가족의 신화를 “천리 밖으로 밀어내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화자는 조실부모하고 외삼촌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안간힘을 쓰고 기어 올라간 인생의 최고 정점인 군대(군무원으로 근무)에서, 인생의 최저 하락점을 묵묵히 감내하며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을 만난다. 서울에 살던 부유한 남편과 지방에 살던 가난한 화자는 열정적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이들이 결혼한 이듬해[…]

심윤경의 <토토로의 숲> 중에서
고인환 / 2007-03-23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 (1) / 김용규 (철학자)

 “오늘, 그러니까 12월 22일, 우리는 세묘노프스키 광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십자가에 입맞추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칼을 빼어들었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얀 수의가 주어졌습니다. 이윽고 형이 집행되었고 우리 가운데 세 사람이 처형장 기둥 쪽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나는 여섯 번째였고, 세 명씩 호명되었지요. 그러니까 난 두 번째 차례에 속하였습니다. 숨이 붙어있는 시간이 채 1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집행 중지를 알리는 종이 울렸고 결박되어 있던 사람들이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황제폐하가 우리를 살려준다는 특명을 내렸다는 것을 전달했습니다.”  이 글은 절대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서본 '죄와 벌'의 의미 (1)
김용규 (철학자) / 2007-03-15
소설가 이기호씨의 라디오 진행솜씨는 어떨까요? /

국내 유일 인터넷 문학라디오 문장의소리-행복한문학여행의 새 진행자소설가 이기호님의 첫번째 방송이 3월 12일 바로 오늘 저녁 6시 경에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갈팡질팡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등의 작품을 발표, 특유의 유쾌한 입담과 경쾌한 시선으로 주목 받고 있는 소설가 이기호님의 방송진행솜씨는 과연 어떨까요? ^_^ 기대해주세요!  문장의소리

소설가 이기호씨의 라디오 진행솜씨는 어떨까요?
/ 2007-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