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를 보고 싶다, 볼 권리가 있다 / 강성률

 예술영화를 보고 싶다, 볼 권리가 있다 강성률 2006년 한국영화는 자국 시장에서 무려 6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수치에 무감각한 사람에게라도, 이것은 놀랍고도 놀라운 기록임에 분명하다. 1993년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고작 15.9%였다. 이때 ‘한국영화는 끝났다’라는 패배적 입장이 영화인들 사이에 팽배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직배로 들어온 할리우드 영화도 더 이상 한국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지 못할 뿐더러 한국시장에서 서서히 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다. 한국영화는 자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맹주로 우뚝 선  지 오래 되었다. 일본은 한국영화의 주 수출국이고,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문화 패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예술영화를 보고 싶다, 볼 권리가 있다
강성률 / 2007-03-31
아내의 이구아나 / 김혜정

  아내의 이구아나 김혜정 새벽 다섯 시. 일요일인데도 습관적으로 눈이 떠졌다. 검푸른 미명이 들어찬 방안은 더없이 고요했다. 어젯밤 분명히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 모서리로 밀려나 있는 베개와 침대 시트의 혈흔만이 아내가 들고 난 자리라는 것을 소리 없이 말해주었다.   어젯밤 동료들과 마신 술 탓인지 아내의 머리칼에서 나는 사향의 유혹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정해진 요일에만 관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내가 제시한 결혼 조건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제발 한 번만. 안 돼. 그날이야. 아내의 매몰찬 어투에 슬그머니 오기가 났다. 어떻게 된 게 툭하면 그날이야?[…]

아내의 이구아나
김혜정 / 2007-03-31
지역의 시를 읽다 / 김남석

 지역의 시를 읽다 ―늘어가는 지역 잡지들을 위하여 김남석 1. 범람하는 시 잡지와 지역으로 흩어진 시 한국 문단에는 문학잡지가 참으로 많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문학은 없는데 문학잡지만 늘어난다고 한 마디씩 하기 일쑤이다. 이제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잡지가 늘어나는 이유는? 가장 일상적인 답변은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답변에는 모순이 내재한다. 늘어난 잡지는 대개 시인을 양산해서 다시, 지면의 품귀 현상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잡지를 늘릴 이유가 없지 않을까. 도리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시인의 숫자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문학하는 사람의 근원적인 욕망 때문이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발표하고[…]

지역의 시를 읽다
김남석 / 2007-03-31
문조 / 함순례

 함순례 문조 하루가 지났다 이틀 지나고 집 비운 사이 새는 소파 등받이에 홀연히 앉아 있었다 냉장고 화장대 위로 부르는 손짓대로 날아들었다 알맹이만 쪼고 뱉은 조 껍질들이 사방 흩어졌다 집은 이제 새장이 되었다 새는 자기가 빠져나온 집을 모른 척하거나 넌지시 건너 볼 뿐   새장을 열어 주고 물과 먹이 드나들던 길에 골똘해진 나는 갇혀 있던 시간 길어 올리며 고요해졌다 물방울 튕기며 깃털을 다듬고 손거울 바라보며 호르르- 울던, 그 노래가 그리워졌다 찌끼 가라앉히고 맑게 뜬 청주 같은, 부드럽고 연한 새소리는 긴 발효의 나날 걸어와 내민 둥근 악수였다 나는 새장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새털 하나[…]

문조
함순례 / 2007-03-31
쓸모있으십니까 / 안보윤

  쓸모있으십니까 안보윤 너는 삼겹살집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꾹 다문 입술 아래로 턱이 복숭아씨처럼 동그랗게 도드라져 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눈두덩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짙은 화장 때문이 아니라 네가 머리를 너무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네 얼굴에 감긴다. 너는 몸보다 머리를 더 많이 흔들면서 춤을 춘다. 알록달록한 풍선문 옆으로 커다랗고 검은 스피커가 두 개 놓여 있다. 음악이 쉬지 않고 쾅쾅 울린다. 하나같이 비트가 빠른 곡들이다. 대박촌 삼겹살 일인분에 천구백 원, 개업기념 특별이벤트, 테이블 당 소주 한 병씩을 공짜로![…]

쓸모있으십니까
안보윤 / 2007-03-31
어머니는 아직도 生産을 하신다 / 정낙추

 정낙추 어머니는 아직도 生産을 하신다 노인네가 부지런 떨어 내 일자리 내 꿀 다 뺐는다고 호박벌 끔찍이 욕할 게다 매일 새벽 노련한 솜씨로 수꽃 따서 암꽃에게 접붙이는 팔순 넘은 어머니 이골 난 뚜쟁이 무면허 인공수정사 어머니가 새벽 품삯으로  낙태시킨 애호박 하나 들고 와 지지고 볶은 아침상 식구들은 즐겁다 사랑니를 뽑았다 사랑이 밥 먹여 주느냐고 질긴 삶을 씹다가 지친 어금니는 사랑니를 탓한다 한 때는 삶의 전부가 사랑으로 도금된 세월이 있었다 밥에 섞인 돌마저 사랑의 힘으로 바싹 깨물던 이빨들이 하나씩 흔들리는 지금 사랑의 기준은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계산된다 사랑은 아무도 볼 수 없고[…]

어머니는 아직도 生産을 하신다
정낙추 / 2007-03-31
입동(立冬) 날 / 전동균

 전동균 입동(立冬) 날 개 짖는 소리에 눈 뜨니 새벽 세시 반이었다 물 한 잔 마시고 서리 내린 풀밭을 헤치고 나가 오줌을 갈기고 지붕까지 내려온 귀 먹먹한 하늘을 보고 들어왔더니 입성이 남루한 한 청년이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죄 지은 듯 고개 숙인 채 스물다섯이라고, 교통사고로 생을 버렸다고, 오늘 밤엔 오갈 데가 없다고, 나는 말없이 내가 깔고 있던 전기담요를 건네주고 돌아누웠다 아침까지 내내 큰 바람이 불었다 미촌못이 얼었다 시퍼런 하늘물살 일으키며 떠다니던 흰뺨검둥오리들, 그 느릿느릿한 일렬종대(一列縱隊)의 평화가 사라졌다 어쩌다가 그 행렬 끝에서 새끼오리 한 마리 짧은 날개 파닥파닥거릴 때 붉은[…]

입동(立冬) 날
전동균 / 2007-03-31
국제시장 1955, 눈꽃 / 장이지

 장이지 국제시장 1955, 눈꽃 ―굳세어라 금순아?1 국제시장 입구 오망이 꿀꿀이죽 무쇠 솥 위로도 허기진 눈꽃이 풀풀 날리느니,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는 밥이 내리느니. 금순아, 하늘에 파랗게 언 네 얼굴. 바다에 살얼음 깐 거울을 보고 있느냐. 흥남 부두 엘에스티 고동 울리는데 빙경(氷鏡) 속에서 돌꼇잠을 자는 시간이여. 울어도 울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검은 바다. 얼어서 검어진 네 손에 입김을 불던 오라비를 찾느냐. 그 꽝꽝한 거울 속 눈보라를 헤치며, 헤치며. 파도가 살갗을 에는 바다에 너를 버리고 삼팔따라지로 구르고 굴러 국제시장이다. 달러 장사치이다. 쪽을 찐 호남 안깐을 너처럼 안고 숨죽여 울던 밤이여. 가늘한 허리의 안깐을[…]

국제시장 1955, 눈꽃
장이지 / 2007-03-31
노적가리 판타지 / 박상우

  노적가리 판타지 박상우 밤 10시 53분, 하행선 마지막 열차가 떠난다. 출구를 빠져나온 서너 명의 여객들이 지친 기색으로 역사를 빠져나가자 대합실에 무거운 냉기가 감돈다. 열차가 떠난 뒤에도 그는 개찰구 옆의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본다. 저녁 7시경부터 그때껏 근 네 시간 가까운 집중이다. 개찰구를 닫고 대합실 안으로 들어온 역무원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묻는다.   “기다리는 사람이 안 왔나 보죠?” 돌연한 물음에 그는 막막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주일 이상 깎지 않은 수염이 평상적인 생활을 접은 사람의 몰골을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합실의 흐린 불빛이 그의 낯빛을 납빛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그는 역사를 나서 몇[…]

노적가리 판타지
박상우 / 2007-03-31
어머니 병 팔러 가셨다 / 임희구

 임희구 어머니 병 팔러 가셨다                                1                                   아들 출근하고 나면 술자리가 길어져 새벽에야 돌아오면 일이 겹쳐 이삼일씩 근무하고 오면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 독거노인처럼 혼자 지내신다  혼자 주무시고 혼자 일어나시고 혼자 씻으시고 혼자 아침상 차리시고 혼자 식사하시고 혼자 설거지하시고 혼자 소화시키시고 혼자 티브이 보시고 혼자 생각하시고 어떤 날은 기운 없어 문턱도 못 넘으시니 혼자 마냥 누워 계시고 간간이 걸려오는 먼 자식들 안부전화 혼자 쓸쓸히 받으시고       2   현관에 빈 술병들이 모여 있다 날마다 혼자인 듯 사시는 어머니 빈병 모아 놓으셨다 자식들이 몇이나 있는데 혼자 사시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 병 팔러 가셨다
임희구 / 2007-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