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하는 사람 / 조영석

 조영석 달리기하는 사람 아무리 달려도 지평선은 더 멀리 달아난다 그의 땅은 꼬리를 끊은 도마뱀처럼 뒷걸음질로 사라지고 RH-A형의 피가 그 위로 흐르고 길은 꺾어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사이로 적도의 섬까지 흘러간다 새까만 여인들은 바다 끝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태양을 향해 엉덩이를 흔들며 추파를 던지고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달린다 수북한 털 속으로 바람이 숨어들고 길은 다시 세렝게티로 머리를 틀고 뗀석기 하나 들지 않은 몸으로 유인원들이 코끼리 떼 사냥을 간다 바스락거리는 풀밭을 지나 코끼리 떼는 그들의 무덤을 지나 사막으로 흘러들고 길가엔 앙상한 갈비뼈가 모래를 덮고 잠을 자고 개망초가 무더기 무더기 길은 몸을 틀어 다시 그는[…]

달리기하는 사람
조영석 / 2006-12-29
나를 잃다 / 은미희

  나를 잃다 은미희 헉! 상혁은 숨이 멎는 듯했다. 아니, 처음부터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려니, 평소대로 똑같으려니 생각하면서 건성 지나쳤다. 그러다 불현듯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불을 맞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니, 더 양보해서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몇 초 동안은 자신의 의식이 빚어낸 혼란이거나 잘못 본 거라 생각했고, 그것마저도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자 비로소 숨이 멎을 듯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찾아왔다는 표현 역시 너무 밋밋했다. 일시에 쳐들어왔다거나, 허방에 빠지는 듯 아득함을 느꼈다거나, 무언가 묵중한 둔기로 뒤통수를 한 방 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고 해야 옳을 표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나를 잃다
은미희 / 2006-12-29
두고 온 사람 / 이덕규

 이덕규 두고 온 사람 사선으로 내리긋는 싸락눈발이 면도칼처럼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날렸던가, 젊은 부음을 듣고 몇몇이 밤도둑처럼 쇠눈 밟으며 남도 들녘을 건널 때 가물거리는 먼 불빛을 찾아 헤매다가 벌판 가운데 무너진 무연총 같은 자가웃 눈더미를 헤치고 누군가 꽁꽁 얼어붙은 짚단 한 뭇을 꺼냈다 이미 오래 전에 빛을 잃은 사람처럼 컴컴한 짚단 앞에 우리는 무릎 꿇고 자꾸 움츠러드는 가슴을 좁히고 좁혀 불을 붙였으나, 마지막 성냥 한 알의 유황마저 팟, 비명처럼  제 몸만을 태우고 불발로 사그러졌다 한 점 불씨가 되지 못하고 검게 그을린 얼굴들이 잠깐 환하게 드러났다 이내 어둑해지고      우리는 이제[…]

두고 온 사람
이덕규 / 2006-12-29
수구암 마당에서 / 박선욱

 박선욱 수구암 마당에서                        바람이 자취도 없이 와서 문 여닫는다 마당에 서 있는 밤나무 그 아래 수북이 떨어진 낙엽 가만 가만히 쓸어 올린다 둥그렇게 손바닥 모아 깔때기마냥 비틀어대며 순식간에 회오리진다 지구의 자전축과 같은 각도로 아니 그보다 훨씬 변화무쌍한 각도로 위로 갈수록 꽈리처럼 벌어진 채 후르르 후르르 맴돌며 올라 간다 마당에서 누가 팽이를 돌리듯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누가 채를 치듯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낙엽 밤나무 굵은 둥치 옆에서 겅중겅중 뛰는 듯 수구암 지붕 위까지 훌쩍 날아올라 팽이가 커져서 위태로울 무렵 허공중에 속절없이 놓아버린다 팽이도 없이 채도 없이 말아 올려 낙엽들 마당에[…]

수구암 마당에서
박선욱 / 2006-12-29
뱀춤 / 심재상

   심재상 뱀춤   -립싱크 랩소디 22 먹장구름처럼 캄캄하게 당신 덮쳐와 뭉텅 잘라져 나간 내 혓뿌리 엉겁결에 핏줄기 내뻗치듯 두 가닥 새순 돋아나 날름대며 넘실대며 허공의 온갖 소리들 핥아대는 자웅동체의 고만고만한 내 방언들 짠한 내 새끼들 쩍쩍 갈라터지는 등도 푸르고 둥둥 소리 나는 배도 푸르네 홈쇼핑 키드 -립싱크 랩소디 23 내 몸속에 숨어 있다는 10센티의 꿈을 찾아 정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만 고물고물 자란다는 영혼을 찾아 이미 오래 전에 활동을 멈춰버렸다는 내 성장판을 찾아 가상의 키높이 구두를 찾아 사이버 줄무늬 싱글을 찾아 미래의 성장동력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로또를 찾아 거품의 임계점을[…]

뱀춤
심재상 / 2006-12-29
은행 강도 / 박진규

  은행 강도 박진규 그의 운동화에 비에 젖은 은행잎이 들러붙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나 뒤돌아서 우리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앞서서 걷기만 했을 뿐이었다. 입술이 바짝 타는 우리와 달리 그는 가끔씩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금방이라도 양손이 닭발처럼 오그라들 것만 같은 그런 오후였다. 비는 아침나절에 멎어 하늘은 파랗고 맑았지만 우리는 하늘 따위나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살폈다. 다행히 우리를 눈여겨보지는 않았고 신발에 들러붙은 은행잎을 바닥에 비벼 털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제자리에 서 있다가 계속해서 동일한 보폭으로[…]

은행 강도
박진규 / 2006-12-29
두 명의 아이 / 김행숙

 김행숙 두 명의 아이 두 명의 아이가 손바닥을 맞추며 놀고 있을 때 세 번째 아이는 담장에 장미넝쿨이 장미화, 장미화, 장미화를 팡 팡 터트렸을 때  두 명의 아이가 줄을 잡고 돌리며 들어와, 우리 집에 들어와, 우리들은 재밌다는 듯이 부를 때 세 번째 아이가 줄을 넘을 때 네 번째 아이는 너희 집은 어디니? 어른이 물을 때 다섯 번째 아이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이 구슬은 누가 흘리고 갔을까? 구슬을 굴리면 색깔이 바뀔 때 두 명의 아이가 세 번째 아이를 골목이 사라질 때까지 쫓아갈 때 골목이 다 사라진 후에 두 명의 아이가 이상하다는[…]

두 명의 아이
김행숙 / 2006-12-29
박씨 건어물 상회 / 김수우

 김수우 박씨 건어물 상회 멸치와 뱅어들이 꾸려온 한 가계가 팽팽합니다 수만 길 바다를 끌던 치열은 이제 박씨네 수저통과 형광등에 퍼덕입니다 노모의 관절염과 전세계약서, 과외비 속으로 녹아듭니다 다려도 다려도 우툴두툴한 꿈속으로 유영하는, 소금버캐 눈물을 가진 저, 비린 것들    억년 지층에 갈피갈피 엎드렸던 묵언기도입니다    북어와 새우들이 하루를 엽니다 수평선이 걸어옵니다 딱딱한 침묵이 툼벙툼벙 물소리를 냅니다 자갈치 건어물 골목, 아직도 헤엄치는 것들로 파도 높은데, 비탈이 된 가슴패기를 자꾸 흔드는 가을입니다 아가미, 벌렁입니다 죽음을 삼켜 삶을 토해내는  저, 마른 것들 고요입니다  사만 오천 킬로 해저산맥을 걸어가는       한 잎 주소 한[…]

박씨 건어물 상회
김수우 / 2006-12-29
고양이 경전 / 안명옥

 안명옥 고양이 경전 곤하게 내가 잠든 사이 또 다른 내가 일어난다 나는 나를 새끼처럼 놓아두고 어둠을 향하여 사뿐히 걸어 나간다 어둠은 경전 나는 먼지 뒤집어 쓴 어둠을 한 장씩 넘긴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발톱이 곤두선다 나는 어둠을 건드리고 어둠을 찢어먹는다 어둠의 지붕을 어슬렁거리며 어둠 안쪽의 풍경을 튕겨낸다 어둠이 어둠을 튕겨내는 동안 나는 어둡게 성장한다 앙상한 밤 뼈에 뽀얀 살이 오르고 밤의 꽃들이 피어나는 거리 떠나온 것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는 나는 어둠이 몸 뒤채는 틈에 더 깊은 어둠으로 굴러 떨어진다 어둠이 묻은 몸은 윤기가 잘잘 흐르고 어둠을 먹을수록 눈빛은 살아나 반짝거린다[…]

고양이 경전
안명옥 / 2006-12-29
[re]부탁말씀.. /

저희 웹진을 눈여겨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의 어려움은 충분히 알겠으나 저작권 문제가 민감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저희 웹진에서도 필자 분들의 저작권 보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 양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예대 준비를 하고 있는 입시생입니다.전반적인 문화자료를 얻는데 있어서 웹진이 너무 큰 도움이 되는데요..아쉬운 점이 기사를 스크랩해 나가고 있는 저로써는..인쇄를 따로 할수 없다는게 참 아쉽습니다. 그냥 뽑으려고 하면 짤려서 나오고 하더라구요.. 혹시 기사 자체만 인쇄할수 있게끔 올려주실순 없으신가요?

[re]부탁말씀..
/ 2006-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