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잡부 / 김종광

  겨울 잡부 김종광 곰팽은 뭉그적거리다가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한 보름쯤 되어, 활짝꽃(여자친구 별명)마저 서울로 올라가버리고, 학교에서건 마을에서건 학생 그림자 보기가 어려워졌을 무렵에야 귀향했다. 그러나 집에서 간신히 열흘을 버텼을 뿐이다. 농사철인 여름방학 때도 그랬지만 농한기인 겨울방학에도 집은 있기 어려운 곳이었다. 소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광부였던 아버지가 퇴직금과 진폐증 치료금으로 받은 돈으로 소를 열 마리 들여놓은 거였다. 소 열 마리 밥 주고 똥 치우느라고 아버지는 종일 바빴다.  “아버지, 아무래도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되유. 역시 학생은 학교와 가까운 데 있어야 공부가 되는 것 같어유. 겨울방학을 캠퍼스에서 보내께유.” 아버지는 한참을 어이없어하다가[…]

겨울 잡부
김종광 / 2006-08-31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 장옥관

 장옥관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그래,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함부로 몸을 만지지 말라는 거지 초경의 딸아이가 껴안으려는 나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래, 열두 살이라면 고치를 만들고도 남을 나이 늘 열어 놓던 방문도 자주 닫히고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일기장은 두꺼워지고 있으리라 지난달에는 전화 요금이 두 배로 늘었다 늦은 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 공명통 같은 고치 속에서 콧등에 난 수두자국 같은 네 몫의 시간을 너는 맨발로 건너가고 있으리라 누구도 손 뻗어 거들 수 없는 어둠이기에 팔짱 낀 시간 견딜 수밖에 없겠으나 며칠째 굳게 닫혀 있는 고치 속이 하 궁금해 들여다보니[…]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장옥관 / 2006-08-31
그림자의 집 / 안성호

 안성호    그림자의 집 내 그림자는 창 너머 앞집 창가에 놓인 화병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그림자는 무릎을 꺾고 걸어 나와서 내 그림자를 끌어당겨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녀의 집은 극장인지 모른다 커튼 뒤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의 천국 不具한 욕망들의 집 그녀는 방문을 잠근 채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내 그림자는    납작해진 넙치 마냥 그녀의 집을 유영하고 있다. 그녀가 불을 끄고 창문을 닫는다 누군가 골목길을 뛰어온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린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뒤로 그림자 하나 서 있다 이별 가로등 밑, 옷걸이에 걸린 노란 우의처럼 고개 숙인 그녀 벤치를 지나는 누군가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몸에 딱[…]

그림자의 집
안성호 / 2006-08-31
구름표범나비 / 이민하

 이민하 구름표범나비  나는 너를 개미라고 부르겠다 버거운 사체를 나르는 너의 팔에 매달려 나는 죽어서도 복에 겨운 지렁이가 되겠다 봄날 소풍 도시락을 싸는 너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나는 너를 제비라 부르겠다 그러면 너는 짧은 여름날 나무에 목을 매달고 담석처럼 꺼내는 매미의 눈물 그러면 나는 나무 너의 열차가 지하의 처녀막을 뚫고 용솟음치면 커피나무가 되어 헤프게 검은 물을 따른다 나의 뒷날개는 회록색 무늬, 구름을 닮아 구름표범나비 너를 낳은 너의 이름은 오늘도 애지중지 미행을 한다 내장을 노리는 그의 핏물 낀 송곳니를 피해 장애물경마 기수처럼 우리 달릴래? 달릴래? 그러면 너는 바람 먼 곳에서 눈앞에서 공중에서 정교하게[…]

구름표범나비
이민하 / 2006-08-31
봄비가 내리네 / 이정록

 이정록                        봄비가 내리네    또 욱신거린다고요 욱신욱신이, 그 무슨 꼬까신이라고 안방 아랫목 이불 속까지 끌고 들어와 벗겨 달라 주물러 달라 그런대요 작년만 해도 한쪽뿐이더니 아버님 떠난 지 열다섯 해 이제야 짝을 맞췄군요 평생신발을 얻었군요 봄비가 오려나요 아버님 무덤에도 욱신욱신, 잔디 돋겠네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연꽃잎이다 구멍가게 처마에 돼지저금통 한 꾸러미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연꽃잎 같다 딸국딸국 다보탑을 바치는 개구쟁이부처에게  풍경소릴 들려주는 꿀꿀이부처 한적한 분교 초등학교 처마엔 동종이 하나 더 한적한 구멍가게 처마엔 커다란 연등이 하나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보시를 떠나는 분홍 꽃돼지들 한[…]

봄비가 내리네
이정록 / 2006-08-31
골목 / 강연호

 강연호 골목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았다 그 골목에 나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나하고는 안 놀아서 나는 아이들하고 놀지 않았다 골목은 집도 절도 아니었고 다만 열쇠구멍 같았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 구멍 밖으로 세상은 아득했고 몰래 훔쳐보기에는 골목의 외등이 너무 환했다 나는 하릴없이 돌을 던져 등을 깨뜨리곤 했다 고개 숙여 물끄러미 제 발치께나 응시하는 외등의 사색은 깊었다 나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돌연 주먹을 날리거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자라서 구멍을 잘도 빠져나갔다 용용 몰랐지? 열쇠를 흔들며 아이들이 떠나간 뒤에도 골목에 아이들은 여전했다 다만 그 아이들이 나하고는 안 놀았던 그 아이들인지는 알 수[…]

골목
강연호 / 2006-08-31
모닥불 / 김세인

                                                                            장맛비는 지겹도록 쏟아지고 있다.  이쯤 되면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우르릉 쩍하고 빛을 뿜어낼 것도 같은데 비는 얌전하게, 너무나 얌전하게 내숭을 떨 듯이 계속 같은 줄기로만 이어지고 있다. 나는 방금 전에 덮어둔 일기장을 열어, 기분-꿀꿀함이라고 적은 오늘의 핵심 어휘를 ‘기분-적막함’이라고 고쳐 놓는다.   오늘 아침 등교할 때는 날이 개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오후부터 비가 세차게 퍼부었고 야자가 끝날 때는 우산을 든 엄마들이 학교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 우산 속을 헤집고 맨몸으로 빗길에 한발을 내딛었을 때, 어디선가 불쑥 엄마가 나타난다면 하는 공연한 망상이 날 괴롭혔다. 교문 앞에서도 차들이 줄지어[…]

모닥불
김세인 / 2006-08-23
SF문학(7)-미래소설과 미래세계 / 박상준

200년 후를 예측한 최초의 미래소설   오늘날 ‘미래소설’은 원래 SF의 한 하위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영역으로 취급될 만큼 질적, 양적으로 많은 성과를 쌓아나가고 있는 분야입니다. 이런 소설을 쓰려면 가까운, 또는 먼 미래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야  하지요.서양문학사에서 최초로 ‘미래의 역사’ 서술을 시도한 작품은 1763년에 영국에서 발표된 작자 미상의 <조지 6세의 시대:1900년부터 1925년까지>라는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집필 당시인 18세기의 정치적 문제를 20세기라는 미래의 배경에다 투영시킨 내용이지요. 또 1771년에는 프랑스에서  루이스 메르시에라는 작가가 <서기 2500년의 추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의 한 파리[…]

SF문학(7)-미래소설과 미래세계
박상준 / 2006-08-21
인터넷문학라디오, 야외 공개 녹음 행사 개최! /

인터넷 문학라디오 '문장의소리-행복한문학여행'이 문장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아주 특별한 이벤트! 문장의소리 여행지기인 시인 이문재님의 진행으로 마리아치 라틴, 소히 등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도종환시인, 신달자 시인, 소설가 윤대녕 님 등을 모시고 문학과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일시 : 2006. 08.26 18:00-19:30장소: 여의도 원효대교 아래 야외무대 참가신청: 문장의소리 사연 및 청취소감 게시판을 통해 선착순 접수 (약 100명 관람가능) 신청하기

인터넷문학라디오, 야외 공개 녹음 행사 개최!
/ 2006-08-18
김연수의 <스무 살> 중에서 / 고인환

  박은성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는, 정의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민주화 투쟁의 후끈한 열기와, 역사ㆍ이념에 대한 환멸을 전제로 대중문화와 몸을 섞은 자발적이고 유희적인 충동만큼이나 두꺼운 벽이 가로 놓여 있는 듯하다. 김연수의「스무 살」은 이 사이에 낀 세대의 초상을 포착한 작품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독특한 젊음의 한 표정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 속 화자가 스무 살이 된 것은 1989년이다. 1989년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이며, 우리에겐 이념의 열정이 막 스러지던 때이다. 화자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없다. 그러니 무엇 하나에 심취하여 열정적으로[…]

김연수의 <스무 살> 중에서
고인환 / 200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