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사내 / 장만호

 장만호 울고 있는 사내 격정과 결의, 사이에서 사내는 울음을 참고 있다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넘어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울음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슬픔이 밑바닥에서부터 끓기 시작한 격정이 사내의 몸 속을 휘돌아 다니다 사내의 애를 끓이고 있다 이제 곧 여자가 일어설 것이고 사내는 애가 탈 것이다 얻어맞은 팽이처럼 압력밥솥의 꼭지처럼 부르르 떨 것이다 그때까지는 저렇게 뜸을 들이고 있을 거다 울음이,  익혀둔 울음이 희디 흰 쌀밥처럼 부풀어 오를 때까지 장대비  장대비 온다 우산을 뚫고 들어와 지금, 내 몸에 박히는 비 죽창처럼 떨어져 흥건하게 고이는 비 장대비 온다 처마 밑에서 비스듬히  하늘을 올려다 보는[…]

울고 있는 사내
장만호 / 2006-07-28
[알림] <웹진 문장> 8월호가 나왔습니다 /

 집중적인 폭우와 오랜 장마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께 저희 《웹진 문장》이 작은 위로나마 되기를 바랍니다. 문학의 힘이 위대하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실의와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직접적인 위로와 격려의 글은 아니더라도 시와 소설에 깃든 사유와 정서적 연대가 내일을 향한 디딤돌이 되어 줄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재앙은 새로운 건설의 시작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이 고난을 헤쳐가시길 바랍니다. 8월호의 소설란은 신진 여성 작가들이 열어주었습니다.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박주영의 단편 「어느 거리와 우수의 신비」를 통해 새로운 감성의 신비로운 사유체계를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노는 인간』으로[…]

[알림] <웹진 문장> 8월호가 나왔습니다
/ 2006-07-28
누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 홍성식

 홍성식 누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어깨 둥글고 턱선 고운 누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멀건 멸치국물 국수 보며도 제 허기보다 버짐 핀 사내동생 먼저 떠올리는 물 낡은 나일론치마 단발머리 계집 야물고 새침한 눈매 앙다문 빨간 입술로 읍내 건달 휘파람 잠재우던 서슬 푸른 치마, 바로 그 치마 걷어 올려 김 오르는 가래떡 같은 종아리로 동짓달 찬 내 건너며 업힌 코흘리개 달래는 나눗셈 서툰 열일곱 파락호 아버지 술주정에 열두 살 많은 새어머니 박대, 노망 난 조모 요강 수발에도 달랑대는 막내 고추만 보면 웃었으나 지난겨울 초경 속곳 빨면서는 기어이 흑흑대던 어깨 둥글고 턱선 고운[…]

누이 하나 가지고 싶었다
홍성식 / 2006-07-27
거지 / 최승호

 최승호 거지 지갑이 없다 휴대폰이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면 모래알 몇 개 그게 내 전재산이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그렇다고 주머니를 돌멩이로 잔뜩 채운다 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카드가 없다 현금도 없다 주머니엔 모래알 몇 개 알몸에 옷을 걸쳤지만 나는 지금 거지다 고비사막에 나타난 거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때때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하는 인생을 모르는 거지 사막을 모르는 거지 바람에 너펄거리는 거지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러나 사막은 더 가난하다 사막은 벌거벗었다 게다가 벙어리인 사막 장님인 사막 귀머거리인 사막 나중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기지 않을까 벙어리 사막을[…]

거지
최승호 / 2006-07-27
어느 거리의 우수와 신비 / 박주영

  어느 거리의 우수와 신비 박주영  나는 서른하나, 그리고 독신주의자이다. 나는 꼬박꼬박 월급과 보너스를 주는 직장이 있고, 목돈 마련을 위해 저축과 투자에도 열심이고, 위험에 대비한 보험과 노후를 위한 연금도 차곡차곡 준비해두고 있으며, 내 명의로 된 27평의 아파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한 살에 독신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주장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결혼을 할 테지만 서른한 살에는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니까. 한 서른다섯 살쯤, 혹은 마흔 살쯤 그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당연한 듯 믿어줄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사람들조차도 나의 독신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낱 객기로 받아들이고, 아직[…]

어느 거리의 우수와 신비
박주영 / 2006-07-27
일주일 / 구경미

  일주일 구경미  1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하루도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지나친 날이 없다. 아침에는 그날 하루 동안 할 일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는다. 가령 고무지우개가 달린 HB연필 하나 사는 것까지도. 그런 다음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해 순서를 매긴다. 물론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생각해서 매긴 순서이므로 그 순서대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실행에 옮긴 계획에는 완료의 표시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사소한 것이지만 깜빡 잊을 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가위표를 긋는다. 저녁에 수첩을 들춰보면 동그라미와 가위표가 표시된 계획들이 피곤한[…]

일주일
구경미 / 2006-07-27
울음 / 안찬수

 안찬수    울음 모든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 울음이다 너와 나의 구분을 뛰어넘는 것이 울음이다 하늘이 다르게 보이고 땅이 다르게 보인다 밀려든다, 울음의 물결이, 울음의 파도가 우는 사람 앞에서 우는 나무는 우는 나무 옆에서 우는 새는 우는 새 위에서 우는 구름은 우는 구름 아래에서 우는 천둥은 떨림으로, 설렘으로, 흐느낌으로 하나다 울음을 울 수만 있다면 낡고 낡은 삶을 산다고 탓할 수 없다 눈물을 흘릴 수만 있다면 일상이 구차스럽다고 탓할 수 없다 우리는 울음 속에서 평화를 느끼고 우리는 울음 속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울음은 어린아이 울음은 노인 더 이상 울음을 울 수 없게 된[…]

울음
안찬수 / 2006-07-27
뜨거운 국밥 / 공광규

뜨거운 국밥 공광규 몸과 맘이 안성맞춤인 여자는 말하네안성휴게소에서 퍼먹던뜨거운 안성국밥을 잊지 못하겟다고 그러고 보니 사람은 하늘과 땅의 국밥이네인생은 생로병사의 국밥이고정치는 자본과 권력의 국밥이고종교는 뭐랄까? 하여튼 위장과 무엇의 국밥이고연애는 핑계와 의심과 질투와 거짓말이 결합한뜨거운 국밥이네 그러고 보니 세상은국밥으로 건너가는 것이네국과 밥의 경계를 서로 뜨겁게 허물어몸과 맘의 온도가 같아지는 것이네너무 뜨거워 위험해지기도 하는 것이네 오늘, 몸과 맘이 안성맞춤인 여자에게이렇게 말해야겠네우리, 오늘 뜨거운 국밥이 될까?몸과 맘의 온도가 서로 같아지는 국밥?국과 밥처럼 평등하게 섞여서로 맛있어지는 관계가 될까?  혈맹국의 아침 공광규 낡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기숙사 삐걱거리는나무침대 하얀 시트 위에서 눈을 떴을 때창문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침대에 걸터앉아헌[…]

뜨거운 국밥
공광규 / 2006-07-27
작가, 금기에 도전하다 / 양진오

  작가, 금기에 도전하다 -남정현의 「분지」 양진오 반공주의의 형성과 확대재생산.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인의 삶을 규율하는 문화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인의 삶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현대문학의 장을 규율하는 문화적 조건이기도 했다. 식민 통치, 미군 주둔, 분단체제 형성, 한국전쟁 발발, 권위주의적 독재 등 한국 사회의 퇴행적 사건과 역사에서 기원한 반공주의. 이 괴물 같은 반공주의에서 자유로운 한국인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반공주의는 한국인의 삶을 규율해 왔으며, 현재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렇게 얘기할 때, 한국 현대문학을 반공주의에 완벽하게 규율된 문학으로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은 확대재생산되는 반공주의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 금기에 도전하다
양진오 / 2006-07-27
죽음의 순간은 통감(痛感)의 속도보다 빠를 테니까 / 윤병무

 윤병무 죽음의 순간은 통감(痛感)의 속도보다 빠를 테니까 그렇게도 길 위의 주검을 피해왔건만 오늘밤 방심(放心)한 사이 덜컹 아니 물컹 밟아버리고 말았다. 고양인지 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차바퀴 아래서 이미 터져 있을 살이 더 으깨지고 으스러져 있을 잔뼈도 더 바스러졌겠지. 따지고 보면 내 맨발이 밟고 간 것도 아닌데 하고 여길 만도 한 게, 나 걷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많은 미물(微物)들을 (짓)밟고 지나갔겠는가. 언젠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모기를 맹렬한 손바닥으로 때려잡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늘밤 이미 다른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시체를 내 차가 다시 밟고 지나갔다고 왜 마음 불편한 걸까? 내 마음[…]

죽음의 순간은 통감(痛感)의 속도보다 빠를 테니까
윤병무 / 200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