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론적 상상제국의 아이들 / 김영찬

                                                                          김영찬(문학평론가)  1. 상상하는, 포스트모던 오이디푸스 그는 지금 논쟁 중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조자룡이며, 쟁점인즉 이렇다. 장판파 전투에서 조자룡의 활약을 전하는 ??삼국지??의 기록이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지어낸 거짓말인가. 온갖 희한한 사료와 문헌은 물론이고 각종 치사하고 비열한 ‘논쟁의 기술’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총동원된다. 문제의 장면이 ‘사실’이라 확신하는 그는 논쟁술의 현란한 비급신공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으나, 상대는 의외로 만만치 않다. 그러니 “아버지를 능가하는 사람,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거대한 사람”이라는 탄식이 나올밖에. 의표를 찌르는 그 상대의 교활한 논쟁술 앞에서 참혹한 패배와 굴욕을 뒤집어쓰기 직전, 무언가 돌연 나타난다.[…]

방법론적 상상제국의 아이들
김영찬 / 2006-03-28
묘妙 / 이대흠

 이대흠 묘(妙) 소태처럼 쓴 것은 아니고 쌉싸름한, 없는 입맛 헹구어주는 씀바귀나물 같은, 설탕처럼 단 것은 아니고 좀 달짝지근한, 싱거운 듯, 조깐 심심한 듯, 갓 짠 참기름처럼 진한 것은 아니고 꼬순내 나는 듯한, 모굿대랑 피마자 잎이랑 호박잎이랑 비온 뒤 그것들 데쳐서 곤자리 젓에 매운 고추 버성버성 썰어 넣어 식은 밥 한뎅이 싸서 함뽕 했을 때처럼 혀가 살아 징그랍게 맛나던, 당신의, 당신이라는. 내게 슬픔이 있다면 묵은 매화 껍질 뚫고 자라난 여린 가지 한숨처럼 눈뜨는 꽃눈 같은 것이라고 신선이 춤추는 형국이라는 그 마을 살보다 붉은 언덕 너머로 옷고름처럼 풀어진 하얀 길 위로 내[…]

묘妙
이대흠 / 2006-03-28
금기와 위반의 알레고리 / 윤대석

  윤대석(문학평론가)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줄여서 『재즈』로 명기함)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 『재즈』는 실제 세계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이 말은 『재즈』에서 헬기가 한강에서 솟아나와 ‘재즈 교회’ 신도들을 구출해간다거나, 아침에 지하방에서 출근해서 3층으로 퇴근한다든가 하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는 『재즈』에서 기이한 사건이나 개연적인 사건 모두가 알레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작품의 화자도 그것을 표나게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처제가 오면 그 침대를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해 공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걸 못하게 하면…… 그는 죽는다. 그런데도 그런 공상을 하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그의 단칸방에는 침대가 없다고. 아내의 동생을 탐하는[…]

금기와 위반의 알레고리
윤대석 / 2006-03-28
서성이는 것들 / 장대송

 장대송     서성이는 것들    씨고구마를 훔쳐 먹다가 낡은 담장에 붙은 풀들이 무성한 것을 보았다 마루 끝을 서성이던 여인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그림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종자물만 남은 우물을 하늘이 들여다보고 있다 무심하다 흘러가던 시간이 마르고 있다  나뭇잎에 불던 바람이 방향을 틀자 땅이 비틀거린다  저기 저 서성이는 것들이 세상에 슬픈 빛을 잡아 하늘에 올릴 것이다 가을에도 싹을 새로 밀어 올리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문밖을 서성이고 있다 나를 꾀어내어 어디로 데려가도 따라갈 것이다        쑤욱 빠져나가는 것들  생각의 시작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게 영그는 모습은,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는 일이라는 것,[…]

서성이는 것들
장대송 / 2006-03-28
무서운 식사 外 / 이정민

 이정민 무서운 식사 새싹비빔밥을 먹는다 무공해 건강 메뉴 웰빙에 물든 공룡처럼 빨강 노란 꽃장식도 씹어 먹는다 여리고 고운 것들은 뭐든지 비벼 먹자 달콤 새큼 비릿한 핏빛 고추장에 썩썩 비벼서 단숨에 먹어 치우자 내 배는 공룡의 배 끝없는 허기가 나를 키우고 끝도 없는 허기가 나를 삼킨다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종말이 오리니* 다 삼켜 버린 입 어두컴컴한 구멍만 남아 묵묵히 전하리라 미친 허기에 휘둘려 자신을 먹어 치운 가련한 종족의 최후 * 개그맨 김현숙의 개그에서 인용 심벌즈 주자 교향악단 맨 뒷줄 구석진 자리 양손에 광나는 쟁반을 들고 벌 받는 웨이터처럼 서 있던[…]

무서운 식사 外
이정민 / 2006-03-27
하늘 거울 外 / 김영석

 김영석 하늘 거울 아주 먼 옛날 하늘이 내려와 푸른 호수가 되고 호수는 올라가 푸른 하늘이 되어 마침내 거울이 생겨났다네 그때부터 거울 속에는 새와 물고기가 함께 노니는 그림자가 늘 어른거린다네 그러나 거울은 제 빈 몸을 씻어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고 지운다네 그림자는 거울을 떠나 살 데가 없고 거울은 그림자 없이 살 수가 없어 샘물 같은 그림자 맑게 지우며 날마다 거울은 새 얼굴로 태어난다네. 숨바꼭질  꿈을 꾸었다 어느 공터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가 내 눈빛을 받자 제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어 나는 그 돌멩이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반쯤 허물어진 빈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였다[…]

하늘 거울 外
김영석 / 2006-03-27
그리운 목련 外 / 윤성택

 윤성택 그리운 목련 겹겹 바람을 껴입은 목련나무 봉오리 꼬깃꼬깃 잎들이 접혀 있다 지난해 북향 창가에 떨어진 채 타들어가듯 검어진 꽃잎들, 다시 뿌리로 끌어올려져 가지 끝 꽃받침에 편지처럼 물려 있다 두툼하게 말아 쥔 꽃눈을 들고 서성거리다 막다른 곳을 향해 뻗어가는 골목 끝에서 불빛 벙그는 밤, 불잉걸처럼 밝은 창문을 향해 마침내 목련은 접어두었던 면을 편다 나는 나를 잊고 너를 잊었으나 한 잎씩 천천히 환한 창에 대고 읽는다 목련 읽는 향기가 그윽하다 중심에서 하나씩 지는 꽃잎을 생각하면 몇 장 사연을 내밀한 틈에 어떻게 밀어 넣은 것인지 잊고 있던 그 자리에 왜 나를 세워둔[…]

그리운 목련 外
윤성택 / 2006-03-23
문서 A 外 / 최종천

  최종천 文書A   한때 거리의 그림자 속에서 허기에 지쳐 바람을 파먹던 입이 오늘 진리의 논증을 窮究하는 중이다 인간이란 한낱 서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그것이 걷는다고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고 드높이 솟은 굴뚝이 외쳤다 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증오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하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 매장되기 직전의 死者의 눈망울이 잡고 있는 하나의 풍경을 위해 우리들의 세계는 존재한다 어떠한 자명한 것도 사물도 見解 속에 녹아버린다 마침내 진리는 흥정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눈물을 모르는 이기주의만큼이나 우리들의 열정은 위험한 것 무조건적으로 고독한 자들아 완전무장하라! 그대들 고독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지 않는가 영혼은 이렇게 흔해[…]

문서 A 外
최종천 / 2006-03-22
실종 外 / 최문자

 최문자 실종                                                  상수도보호구역 입간판을 지나 습지로 갔다. 너를 찍을까 했다, 흘러간 너를. 너를 따라 디카를 들고 습지를 절벅거릴 때 렌즈가 뿌옇게 흐려졌다. 눈물일까? 그래서 이번엔 눈물을 찍을까 했다. 포착된 눈물 안에 새떼가 가득 날아오고 새와 새 사이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에 줌 렌즈를 들이댔다. 멀리 지나가던 열차가 새에게로 다가오며 울음소리를 깔아뭉갰다. 새털과 함께 날아간 소리와 눈물.  추억돼야 할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간단한 설명조차 들려주지 않고 등불처럼 하나하나 꺼져간다. 빈 렌즈 앞을 바람이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바람을 찍을까 했다. 바람이 돼서 한 남자가 지나간 거리 줌으로 바람을 잡는다. 예정된 이별이 보인다.[…]

실종 外
최문자 / 2006-03-22
김원일의 <어둠의 혼> 중에서 / 고인환

  이현용우리에게 아버지는 하늘, 국가, 권위 등으로 변주되며 사회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기능해 왔으며, 한편으로는 가족 공동체의 초석이 되어 왔다. 수많은 고난을 헤치고 고구려를 건국하는 주몽신화는, 현실을 규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현실을 초극하려는 욕망이 교차되는 인생의 본질을, ‘아비찾기’ 모티프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아버지 찾기의 원형성은 우리 근대사나 현대사의 전개 과정과 맞물려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우리의 근대사는 아버지의 권위로 상징되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서구의 합리주의에 의해 교체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개화기의 계몽주의는 전통적 질서의 붕괴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을 일본에 의해 수입된 신문물을 통해 극복하려는 욕망의 발현이었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 의붓아버지(일본 제국주의)에 의존한다는 역설적[…]

김원일의 <어둠의 혼> 중에서
고인환 / 200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