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서 본 ‘권태’의 의미 / 김용규

“폭 좁은 철도를 끼고 있는 어느 초라한 기차역에 우리는 앉아 있다. 다음 기차는 빨라야 네 시간이나 지나서 온다. 기차역 일대는 삭막하기만 하다. 우리는 배낭 속에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 꺼내 읽어 볼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어떤 물음이나 문제에 관해 골똘히 사색에 잠겨 볼 것인가?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기차운행 시간표를 훑어보거나 또는 이 역과 – 우리는 더 이상 잘 모르는 – 다른 낯선 곳과의 거리가 다양하게 표시되어 있는 안내도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다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본다. 겨우 15분이 지났다. 그래서 우리는 국도 쪽으로 건너가 본다. 우리는 그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서 본 ‘권태’의 의미
김용규 / 2006-02-27
민중의 아픔을 껴안은 모더니스트 / 김규동 & 고운기

  대담 김규동(시인) 진행?정리 고운기(시인)   동영상 보기 Intro. 근황 시인 김기림과의 만남 평양종합대학 시절 월남 이후, 서울에서의 생활 박인환, 김수영과의 인연 시세계의 변화 문단의 원로로서 후배 문인들에게   함북 종성, 그리고 어린 시절 고운기: 오늘은 김규동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1925년에 태어나셔서 1948년에 등단하시고 현역시인으로 활동하시는 우리 문단의 가장 큰 어른이십니다. 작년에 『느릅나무에게』를 출판하신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지나온 생활의 문단 이야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 작년이 우리 나이로 여든 하나 되셨는데 『느릅나무에게』라는 시집을 내시고 현역으로 활동하시며 정정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김규동: 책을 낸다는 것은[…]

민중의 아픔을 껴안은 모더니스트
김규동 & 고운기 / 2006-02-23
김소월 「왕십리」를 다시 읽는다 / 장철문

   장철문    이태 전인가, 약속이 있어서 왕십리역에 간 적 있다. 상대가 조금 늦겠다고 해서 지하철역 근처를 무료하게 서성거렸다. 소월의 흉상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 뒤쪽에는 발표 당시의 옛투로 「왕십리」가 새겨진 시비가 서 있었다. 잘되었다 싶어 느긋한 마음으로 시를 읽는데, 처음 읽은 것도 아니련만, 새삼스레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전혀 없이, 무연하게 바라본 그 시는 가슴을 흥분으로 뛰게 했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질리지 않는 첫연의 리듬감, 그 유장한 리듬감은 시어를 해석하려는 충동을 번번히 밀어내곤 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리듬 뒤에 가려진 모호한 의미와 극적 전환들은 적잖은 시간 시를 읽고 써온[…]

김소월 「왕십리」를 다시 읽는다
장철문 / 2006-02-22
세탁소 外 / 이문숙

 세탁소 사무실  생기  슬리퍼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은 1991년 《현대시학》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문숙 시인의 첫 시집이다. 등단작 「천마표 시멘트」를 비롯한 6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휘황한 현실의 풍경 뒤에 버려진 누추한 사물들의 환생을 그려내며, 덧없고 비루한 삶의 조건을 넘어선 생명의 약동을 보여준다. 먼지 쌓인 환풍기, 비닐 철사 옷걸이, 더러운 하천가의 나무들, 철거당한 집터 등 무심한 시선이 쉽게 지나칠 만한 사물들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시인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물들에게서 집요하게 읽어내는 것은 그것들에 투영된 우리의 고통이다. 시인은 사물과 그것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고통과 교감하고, 그것을 끌어안는다.

세탁소 外
이문숙 / 2006-02-22
몸 속의 길 外 / 조문경

 조문경 몸 속의 길 가마솥에 시래기를 넣고 장작불을 지핀다 얼마 후 굳게 닫힌 솥뚜껑 사이로 김은 새어나오며 들썩들썩거린다 웅크리고 있었을 물의 몸 쉐엑-하는 소리를 내며 한 곳으로 힘차게 하얀 기둥을 만들며 천장으로 올라간다 티비에서 본 토네이도 모양인데 그 기둥을 물속에 숨어 있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때까지는 기다리고 어느 때까지는 자기도 모르는 채 가지고 살던 아궁이 불이 활활 타오르자 순식간에 이뤄낸 저 길 여전히 솥뚜껑은 닫혀 있지만 물은 안 것이다 몸은 가장 절정일 때 길이 된다는 것을 천장을 감싸던 김이 흩어진다 제가 오른 길을 거두어 또 다른 몸이 된다[…]

몸 속의 길 外
조문경 / 2006-02-21
한밤의 가수 外 / 정영

  정영 한밤의 가수 – 오늘은 오늘로 충분해 1 노인은  숨을 놓기 직전 낙엽 더미를 주머니에 우겨 넣는다 후생에선 사랑을 사는 티켓이란 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으리란 듯 소녀는 노래한다, 오늘은 오늘로 충분해 노인과 소녀와 나는 겨우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소녀는 노래한다, 뾰족한 사랑이 빠져나가자 난 무너졌다오 나는 이제 의자라고도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 한 장에 쪽, 두 장에 쪽쪽…… 스물네 장은 온종일 쪽쪽쪽쪽쪽쪽…… 우리 다방으로 와요 사랑을 파는 티켓다방으로 와요 낙엽과 의자와 나는 겨우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젖은 낙엽들이 지워지는 고백처럼 보도블록에 달라붙어 있는 거리에서 ‘무언가’의 삐뚤어진[…]

한밤의 가수 外
정영 / 2006-02-21
SF문학<2>-SF는 미래예측이 아닌 미래창조이다 / 박상준

 SF와 미래 예측이전에 저는 ‘다가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훌륭한 SF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어떠어떠한 과학기술이 이미 어느 SF에 일찍이 등장한 적이 있다면서 그 선견지명에 감탄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들입니다.1726년에 발표된 <걸리버 여행기>는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가 당시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쓴 것이지만 SF의 시조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는 반중력장치가 등장하죠. 바로 하늘에 떠 있는 나라 라퓨타(사진 아래 왼쪽)가 이 원리를 쓰고 있습니다.1911년에 나온 ‘장르SF'의 시조 <랄프124C41+>에서 작가 휴고 건즈백은 TV전화, 형광조명, 신소재, 자기녹음테이프, 마이크로필름, 스텐레스스틸, 전송신문, 태양전지, 자동판매기 등 수많은 과학문명의 이기들을 미리 선보인 바[…]

SF문학<2>-SF는 미래예측이 아닌 미래창조이다
박상준 / 2006-02-21
먹이사슬 / 조윤

  조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과 유사한 표정과 비슷한 보폭과 속도로 길을 건넜다. Y형은 신호등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다.” “네. 잘 지내셨어요?” “앉아서 이야기하자. 어디로 갈까? 다방 좋아하냐?” 다방이라면 미스 김, 미스 정 등이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간드러지는 미소를 던져주는 곳일런가. 걸쭉한 트로트가 흐르고 마담 누님의 껌 씹는 소리가 들리며 담배 냄새 찌들어 있는 소파. 70년대식의 로맨스 혹은 신파의 중심. 중절모를 쓰고 느끼한 미소를 던질, 삶의 달인이 된 자세로 욕지거리와 음습한 이야기를 지껄일, 그 푸진 인간의 냄새가 뒤범벅이 되어 있을 다방이[…]

먹이사슬
조윤 / 2006-02-21
암벽 속의 구름 外 / 양애경

 양애경 암벽 속의 구름                   중국 낙양에서 백마사 방향으로 나가면 수천 년 묵은 석회암 절벽지대가 있고 거기엔 작고 큰 자연동굴 수천 개가 있어 수백 년 전의 크고 작은 부처님 상이며 그림이며 수백 년 전에 거기 살며 섬기던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 있지요 동굴이야 수천 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이야 어디 백 년을 살려구요 죽고 다시 태어나 향 피우고 죽고 다시 태어나 보살 하나 새기고 동굴 임자들은 자주자주 바뀌며 그렇게 오래 지나왔지요 제가 전생에 살던 별은 안드로메다 성운에 있는, 지금 사는 은하계와 쌍둥이 은하계 지구의 쌍둥이 별이었는데 그때의 제 반려와는 정말 행복한[…]

암벽 속의 구름 外
양애경 / 2006-02-21
길을 묻다 外 / 박남준

 박남준 길을 묻다 새벽, 미명, 밤과 낮, 바람의 바다에 나아갔다 파도는 끈질기게도 밀려오는가 반문해본다 저토록 변함없는 것이 있었는가 젊은 날 얼마나 전능의 신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는가 어리석고 간절한 소원의 맹세들이라니 눈 감았던가 나를 관통하여 온 시간들 별빛의 지표를 물어가던 머나먼 길들을 생각한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유하는 것만이 오직 지켜내는 것이라 여겼다 세상의 문밖을 기웃거렸다 다만 하루의 날이 저물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젖은 발길 앞에 결기의 맹세를 두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어제와 나의 오늘들 모든 비상하는 것들은 언제나 까마득한 것이었으니 어찌 우러르지 않았을까 발목을 꺾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깊은 숲 속으로[…]

길을 묻다 外
박남준 / 200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