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중에서 / 고인환

  이현용 채만식(1902-1950)의 문학 활동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근대적 문물에 대한 매혹의 도구이면서, 암울한 조선의 현실이 부가한 자괴감과 고통의 표출 수단이었다.  채만식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희곡, 비평, 동화, 방송극, 수필, 꽁트 등의 다양한 장르실험은 물론이고 표준어와 방언을 혼용해서 자유로운 언어실험을 시도했다. 풍자적인 언어 활용 기법, 다양한 장르 변용, 생생한 방언 구사 등은 서구적 근대 소설의 양식과 전통 양식과의 접합을 꾀했던 작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판소리 양식이나 사설체, 구어체 서사 역시 전통과 새로운 문물이 혼합되어 있던 당대 현실의 모순적인 양상을 반영하는 실험이라 할만 하다. 우리의 근대사가 보여주는[…]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중에서
고인환 / 2006-01-03
서영은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통해서 본 ‘거짓말’의 의미 / 김용규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각자의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람이나 희망도 없이 힘들고 지겨운 일들을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카뮈는 이러한 우리의 삶을 ‘시지프의 형벌’에 비유했겠습니까? 우리가 「사르트르의 『구토』를 통해서 본 ‘삶’의 의미」에서 이미 살펴보았듯, 시지프의 형벌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일이 너무 가혹해서뿐만은 아니지요. 힘들여 밀어올린 바위가 항상 곧바로 굴러 떨어져 그 힘겨운 노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인간에게는 보람 없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 없다고 했지요. 이유인즉, 인간이란 잠시도 쉬지 않고[…]

서영은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통해서 본 ‘거짓말’의 의미
김용규 / 2006-01-03
잠자는 꽃 / 진산

     –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아느냐?– 뭐예요, 사부님?–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을 이름이다. 또한 내가 선인에게 전수받은 심법의 이름이기도 하다.– 심법이 뭔데요, 사부님?– 마음을 쓰는 법이다. 사람들은 병기와 몸 쓰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무공인 줄 안다. 하나 병기와 몸을 쓰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이 가면 몸과 병기는 그 뒤를 따르는 법이다.– 어려워요, 사부님.– 모든 제자들 중에 오직 네게 이 심법을 전수하겠다.– 왜요, 사부님?– 너만이, 내 모든 제자들 중에 오직 너만이 다른 자를 위해 대신 눈물 흘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이 심법을 익히기 위해 너는[…]

잠자는 꽃
진산 / 2006-01-03
이 세상 모든 책들의 어머니- 출판편집자 / 이기인

"책을 낳는다, 책을 키운다, 책을 품은 사람 "   -출판 편집자 최양순 편집장과의 만남-   "평소 책읽기와 문학, 그리고 문화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장래에 도전해 볼 만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모든 이들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이즈음의 우리 사회는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관점에서 평소 문학과 책읽기에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이후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고 또 평소 쌓아온 자기만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갈 만한 여러 직업의 세계를, 이미 그 업종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들로부터 전해 듣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편집자주)   아주[…]

이 세상 모든 책들의 어머니- 출판편집자
이기인 / 2006-01-03
누에막 살던 연순이네 外 / 조정

 조정 누에막 살던 연순이네  못을 쳐 지네 스무 마리씩 묶어서 거는 사내가 기우뚱 올라 선 사다리 사이로 누에 철이 소낙비처럼 지나가는 중이었으니 닭뼈를 던져두면 비자나무 그늘로 슴슴슴슴 지네가 모여들었다 청상의 코를 물어뜯어 제 여자를 삼은 사내는 동각뜰에서 칠흑처럼 짓이겨져 죽지 않고 동네 곁을 살아내며 내 친구 연순이를 낳고 그 애 동생 순복이를 낳고 그 아래 길남이를 낳고 내가 놀러 가면 얼굴이 깨어지게 웃어 주었다 닭죽 솥을 열고  복 복자 써진 사발에 그득 떠주기도 했다 병 있는 집에서 음식을 얻어먹은 나는 매를 맞았고 사내는 녹슨 못에 지네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떴다[…]

누에막 살던 연순이네 外
조정 / 2006-01-02
칼 外 / 박용하

 박용하 칼  할머니가 무를 썰고 있다 어머니가 무를 썰고 있다 나는 서툴게 연필을 깎고 있다 얼마나 멀리 떠나왔던가 앞을 밀기도 전에 뒤에 떠밀리며 왔던가 눈 퍼붓던 젊은 밤에 도끼로 발가락을 내리친 적도 있다 입술로 시퍼런 대검의 날을 애무한 적도 있다 내가 무를 썬다 아내가 무를 썰기도 한다 아이는 씽씽 연필깎이로 예쁘게 연필을 깎는다 마당엔 잔디가 깔려 있고 시퍼런 도끼는 없다 모든 밤 삶과 함께 자란 내 모든 눈물과 그 눈물이 기억하고 있던 육체와 그 육체가 서서 입맞추던 팔월의 바람과 함께 펄럭이던 내 모든 죽음은 정답다 동해와 함께 자란 내 모든[…]

칼 外
박용하 / 200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