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잃다 外 / 박성우

  박성우    날개를 잃다 매월 마감 날은 눈치를 보아야 했어 여섯시까진 야간학교에 가야 했는데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김부장은 첫 수업이 몇 시에 시작하느냐 마지막 수업은 몇 시에 끝나느냐 꼬치꼬치 캐물었어 미싱소리 보다 그 소리가 지겨워서 야근을 했지 그렇지만 야근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었어 한번은 마감 날이었는데 야근을 하지 않았어 미친 척 한 거지 퇴근카드를 찍고 나니 내 날개가 우스워 보이더군 그래서 잠시 접어버리고 싶었어 학교로 가는 버스를 열 대 쯤 그냥 보내주고 연탄구멍 같은 거리를 걸었어 파란색 빨간색 불꽃들이 반짝였고 오빠 쉬었다 가, 날 유혹하기도 했지만 가스냄새가 너무 향기로워서 들어가지 못 했어[…]

날개를 잃다 外
박성우 / 2005-10-28
노래를 찾아 다시 나선 길 / 한동헌

  한동헌(‘노래를 찾는 사람들’ 대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재건해 보겠다고 나선 지 오 년이 넘은 것 같다. 무슨 생각에서 이렇게 무모한 일에 나섰는지 그때의 심정을 정확하게 되살릴 수는 없어도,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간의 대기업 생활을 마감하고 음악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그때의 의욕 과잉 상태는 기억한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지만……. 어찌되었든 2004년부터 조금씩 재건의 움직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이대 대강당에서의 공연을 통해 노찾사의 새 출발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번 공연의 홍보 과정을 통해서 노찾사의 유산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만큼 그동안 잠자고 있던 노찾사라는 사회적 존재를 다시[…]

노래를 찾아 다시 나선 길
한동헌 / 2005-10-28
구름에게 묻다 外 / 이면우

 이면우 구름에게 묻다 나는 이번 생을 부지런히 몸 움직여 살았다 그래야 죄 덜 만들 듯했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름다움에서 너무 멀리 와 버린 한 사내가 솜뭉치 같은 흰구름 잠깐 올려다본다. 바로 그 얼굴이다! 산 넘고 강 건너 헤매던 어디쯤 네 발로 엎드려 마시던 옹달샘에 비치던. 그 때 그 찬물처럼 달게 살아냈던가? 라고 소리 안 내고 물어보았다. 나무와 사람 막 숲에서 걸어 나온 듯 키 큰 낙엽송 초록 바늘잎과 붉은 기둥의 대조가 햇빛 속에 환하다. 한 남자가 낙엽송 그늘 속에 서서 이 쪽을 보고 있다 한 순간 남자마저 나무 같다.[…]

구름에게 묻다 外
이면우 / 2005-10-28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 이시영 & 박형준

  대담 이시영(시인) 진행?정리 박형준(시인) 동영상 보기 프롤로그미당과 김수영에 대하여민중문학의 어제와 오늘나는 다만 거기에 있었다사람과 문학좋은 시란 무엇일까젊은 시인들내심 선생과의 인터뷰를 댁이나 그것도 안 된다면, 선생께서 ‘바다 호수’라고 명명하셨던 한강변의 운치 좋은 카페에서라도 진행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선생을 거의 거리에서 뵈었다. 창비가 마포에 있을 때 나는 창비와 가까운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점심 무렵 거리에서 산책을 하시던 선생께 인사를 꾸벅 하면 선생은 “태준이 판 돌리러 가나”하고 말씀하셨다. 불교방송국에서 PD로 근무하고 있던 후배 시인 문태준을 나와 혼동하신 것이었다. 이런 사정은 문 시인 쪽도 마찬가지여서, 그도 몇 번 내 이름으로 호명된 모양이다.[…]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이시영 & 박형준 / 2005-10-28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 이시영 & 박형준

사람의 삶 박형준 :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 시절 이야기에는 위험 속에 상존하는 열정이 들어 있는데, 그것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선생님의 시세계로 들어가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깊은 산 골짜기에 막 얼어붙은 폭포의 숨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거기 있어라 다른 입김이 와서 그대를 녹여줄 때까지 「노래」라는 시를 인용하시고 “나는 나의 시가 지금 막 얼어붙은 겨울 폭포의 숨결을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생생히 되살리는 일에 기여하길 바란다”(『곧 수풀은 베어지라라』, 1995)라고 하셨습니다.   간략하게 선생님의 시집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시집은 크게 보면 여덟 번째 시집인 『은빛 호각』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으리라는[…]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이시영 & 박형준 / 2005-10-28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중에서 / 고인환

  이현용얼마 전 미국 언론에서 보도한 뒷맛이 개운하지 못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이 동양 미인의 기준을 변화시키고 있다. 아시아인들이 한국 미인들의 얼굴형을 기준으로 성형수술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의 마지막 대목이 씁쓸했다. 그런데 그 한국 미인들의 얼굴형이 서구적 미인의 그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롱다리, 작은 얼굴, 볼륨 있는 체형, 8등신, 하얀 피부 등 서구적 아름다움의 이미지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불’의 시대였던 1980년대 대학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혔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뿌연 최루탄 연기 속, 전투경찰과 맞서 화염병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청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오늘날 폭도로 오해받기 쉬운[…]

송기원의 <아름다운 얼굴>중에서
고인환 / 2005-10-27
밤, 전철 外 / 이경림

 이경림 밤, 전철 봐라! 저기, 몸통은 보이지 않고 창자가 훤히 보이는 어떤 검은 짐승이 치타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 누가!  저 번개같은 놈의 속에다  유리창을 달고 저리 환하게 불을 켜 놓았을까 채 소화시키지 못한 먹거리들이 꽃처럼 어른거린다 거그…… 쩌어그! 저그, 너털 구름같은 것 붙잡고 누군가 흘러가고 있구나. 삶은 고구마같은 것이 불그스레하니 가고 있구나. , 쩌어그! 급류 속에서 누가 허우적대는가  거그! 물안개같은 것들은 미쳐서 머리채를 산발하고 물위를 긁매는구나 쩌어그! 횡한 들판에서 돌개바람은 마른 풀더미같은 것 친친 감고 오르는구나  죽은 에미 치마꼬리같은 거 붙잡고 징징 짜고 있구나 쩌어그, 덤프트럭이 모래를 줄줄 흘리며[…]

밤, 전철 外
이경림 / 2005-10-25
윤성학 시인(2013)
이 밥통아 外 / 윤성학

  윤성학     이 밥통아     사랑이 밥통과 같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부엌에서 가장 어리석고 아둔한 음운을 가진 부속 사랑이 그렇게 둔탁한 발성과 모서리 없는 몸을 가졌다는 걸 일찍이 알지 못했네   오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속이 비쩍 다 마르도록 전원을 끄지 않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너의 이름을 부른다       上流에서     며칠째 장맛비가 내리는데 강가에 나갔습니다 상류에서 자꾸만 우는 소리가 들려서 우산 쓰고라도 나가봐야 했습니다 강물은 젖이 불어서 날더러 빨아달라고 빨아달라고 졸라대는 것이었습니다 댓발이나 나온 그 유방을 빨 줄을[…]

이 밥통아 外
윤성학 / 2005-10-25
걸레가 있었어요 / 손홍규

 손홍규 아영은 핫팬츠를 입고 이 도시에 나타났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가 훤했다.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맨다리는 희고 매끄러웠으나 모기 물린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다. 얼마나 긁어댔는지 피 튀긴 흔적도 선명했다. 발뒤꿈치에 붙은 일회용 밴드가 떨어질락 말락 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발바닥과 샌들이 부딪히며 딱, 딱, 껌 씹는 소리가 났다. 아영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재빠르게 퍼져 갔다. 소문은 한 다리 건널수록 과장되었다. 아영의 사타구니에 걸레가 달려 있다는 둥, 쥐어짜면 시큼한 내를 풍기는 구정물이 흐른다는 둥,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세부 설명도 곁들여졌다. 아영이 걸레라고 불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반일 무렵 이 도시 어디에서든 쇠파이프나 사시미를[…]

걸레가 있었어요
손홍규 / 2005-10-25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外 / 김근

 김근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비 내린다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싱싱한 뼈마디 철그럭거리며 할아비들 온밤 내내 여기에 도착한다 초록재 주홍재로 흩어지지 못하는 할미들 다만 낡는다 낡아 삭는다 원삼 족두리 간 데 없고 할아비들 일제히 총구를 들이댄다 헤진 군복 소매에서 기어 나온 강아지풀 총구 끝에서 녹슨다 녹슬어 툭툭 떨어져 내린다 비로소 텅 빈다 할아비들 치맛자락 펼쳐 할미들 꿈틀거리는 강아지풀 다 받아내는데 너무 많이 도착하는 할아비들 첨벙첨벙 군홧발소리 흩어진다 옷자락 잘라버리고 온밤 내내 할아비들 또 너무 많이 사라진다 할미들 몸에선 강아지풀 번데기로 굳고 어느새 시커멓게 파리 떼 날아다니고 성가시고 허구한 밤, 비 내린다[…]

죽은 군대가 도착한다 外
김근 / 200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