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업 外 / 이중기

  이중기 경제수업 저건 미친 짓이다 사내 하나 마구마구 식은땀 흘리며 봉두난발의 눈발 속으로 투망을 던진다 뭘 하느냐고 물으니 물고기를 잡는 중이란다 백결 선생 호주머니로 투망질하는 허허, 저 봉이 같은 놈! 허생 같은 놈! 그러나 봐라 저 사내 투망에서 퍼덕이는 물고기 백결 선생 꾀죄죄한 구리동전을 저 사내 염화미소 아래 사바세계 대자로 눕는다 그믐에 기대어 나를 멀리했던 사람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마침내 은자가 된 사람의 사치가 따뜻하다 갈치 등 같은 벼랑 일구었으나 거두지는 않았던 그 사람 세상을 갋아 어처구니로 탑을 쌓은 곳 오래 묵은 산의 고요가 마을을 지키는 먼 기억 우레[…]

경제수업 外
이중기 / 2005-12-29
메타세쿼이아 外 / 윤은경

 윤은경 메타세쿼이아  화살촉 닮은 몸체를 가까스로 당기고 있는 지상이라는 활줄, 밭은오금에서 고잣잎까지 허공 한껏 팽팽하다 우듬지 상사 끝 살촉에서는 푸른 연기가 이글거린다 한사코 더 깊게 당기려는 지상과 마악 튕겨나가려는 나무의 길항, 백악기의 수종들이 다 그렇듯 이 나무도 수억 년의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쭈욱 쭉 뻗쳐오를 일은 무엇인가 모멸과 굴욕의 날들은 한낱 입속에서나 곱씹을 일, 햇빛과 물과 바람만으로 거대한 몸 이루었으나 때로 신음하는 짐승의 내면이 온순한 이 나무를 광포하게 바꾼다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이랑고랑 거칠기 짝이 없는 저 힘줄들, 얇은 수피 한 장 두른 채 울뚝불뚝 긴장으로 타오르고[…]

메타세쿼이아 外
윤은경 / 2005-12-29
휴먼퓨처 – 멋진 신세계? (2) / 김경연

  홀로 서는 ‘블루프린트’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 다만 시간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체외수정 아이의 정체성을 다룬 「1999년생」의 작가 케르너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블루프린트」(다른우리 2002, 獨1999. 사진왼쪽)에서 복제인간을 다룬다. ‘블루프린트’는 사진의 원본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고, 하얀 바탕에 파란 선이 그려지는 복사본이라는 뜻에서 복제인간 시리가 자신의 책에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알고 복제 딸을 통해 다시 한 번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복제 딸이 태어나자 자신의 이름 이리스(Iris)의 철자를 거꾸로 하여 시리(Siri)라고 붙이고, 시리의 삶을 철저히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으로 프로그래밍해 나간다. 두 사람의[…]

휴먼퓨처 - 멋진 신세계? (2)
김경연 / 2005-12-28
무서운 씨앗 外 / 이진수

 이진수 무서운 씨앗                    어머니에겐 마늘도 고구마도 모든 것이 씨앗이다 마늘 심을 때는 마늘씨 심는다 하고 고구마쪽 묻을 때는 고구마씨 묻는다 한다 그걸 씨앗이라고 나는 생각한 적 없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평생을 씨와 함께 살았다 그런 어머니도 무서워 벌벌 떠는 씨앗이 하나 있다 저 얼어죽을놈의 겨울 날씨 기름값도 못 대는 팔푼이 자식놈이 저 혼자 이불 속에서 혼나는 때가 있다 밥상 -김씨 낡고 군내 나는 김치보시기가 삐쳤다 찬물에 밥 말아먹으면서 쳐다도 안 본다고 시어터진 것들이 나도 참 아니꼽다 이빨 안 좋아서 그런 걸 날 더러 어쩌라고 마누라나 김치나 멀었다 아직 멀었다

무서운 씨앗 外
이진수 / 2005-12-27
고모의 사진 / 이재웅

 이재웅 현화는 지금 주방에 있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거나 요리책을 뒤적이며 잡채를 만들고 있다. 연지평 고모가 잡채를 좋아할 것이라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연지평 고모를 기다리고 있다. 연지평 고모는 오늘 아침 나의 어머니가 있는 시골집을 떠났다. 그녀는 우리 집에 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아침 일곱시쯤이었다. 그때 나는 현화와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신혼부부였고, 전날 직장 동료들의 집들이로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모처럼의 휴일이기도 했다.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현화와 나는 신경전을 벌였다. 내가 졌다. 나는 팬티 차림으로 거실로 갔다. 전화를[…]

고모의 사진
이재웅 / 2005-12-27
2005년 한국 소설의 표정과 편향성 / 황국명

 황국명(문학평론가) 1. 주변부의 삶과 리얼리즘 한때 아직도 문학이냐는 비아냥거림이 없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낙원의 도래가 임박하였으니 문학 따위가 왜 필요하겠느냐는 희극적 전망의 산물이 아니었다. 문학위기설을 유포하는 데 일조한 그 조소는 문화산업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분배의 규모, 문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다른 한편 형식 문제를 고민한 한 리얼리스트의 경우처럼, 소설의 객관성은 회의적인 범주가 되고 리얼리즘의 반성은 당면한 과제로 여겨졌다. 2005년의 소설문학을 일견하면, 이런 조소와 회의가 사실로 확인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을 고민하기보다 삶을 고민한 작품도 적지 않다. 이들 소설의 사실적인 풍경 속에서 생의 낭떠러지에 선 주변부 인간과 그들의 쓸쓸하고[…]

2005년 한국 소설의 표정과 편향성
황국명 / 2005-12-23
2005년 한국 소설의 표정과 편향성 / 황국명

 4. 가사(假死)의 젊음과 이미지라는 운명 소멸이 도처에 편재하는 생의 평범한 사실일 뿐이라면, 죽음에 서열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2005년의 소설에서는 자유의지로 죽음의 신(神)에 맞섬으로써 남다른 족적을 남기거나 타자와의 연대 속에서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는 인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이런 어려움에 당대의 젊음이 겪는 불행이 있지 않겠는가. 시간의 선조성에 저당 잡힌 중년의 허무나 생에 대한 초연함과 달리, 우리 시대의 청춘은 지상에서 방 한 칸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하다. 그들에게 생은 황무지일 뿐이다. 생의 황량함은 기억의 공동화(空洞化)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젊은 작중인물들은 공동(共同)의 역사를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와의 길항을 전제한[…]

2005년 한국 소설의 표정과 편향성
황국명 / 2005-12-23
문학과 의학, 그리고 모국과 이국의 경계에서 시쓰기 / 마종기 & 김종태

   대담 마종기(시인) 진행?정리 김종태(시인) 동영상 보기 은퇴 후 근황살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시를 썼다진실성을 향해 가는 길아버지 마해송우리에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근황, 문학과 의학 사이에서 김종태 : 오늘은 시인 마종기 선생님을 모시고 웹진 《문장》에서 마련한 ‘작가와 작가’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 쓰는 김종태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와서 그런지 선생님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여러 활동들을 펼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오랜 세월 동안 근무하신 병원에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더욱 활기찬 시인 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으신데 선생님의[…]

문학과 의학, 그리고 모국과 이국의 경계에서 시쓰기
마종기 & 김종태 / 2005-12-23
애상적인 정조와 회화적 이미지의 혼재 / 문혜원

 문혜원(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김광균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193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추일서정(秋日抒情)」),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外人村)」) 같은 대목은 시의 이미지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다. 그러나 이처럼 선명하게 살아나는 이미지의 한편에 애상적인 정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한 경우는 많지 않다. 김광균은 모두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우리가 기억하는 몇 편의 이미지 시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인 『와사등』(1939)과 『기항지』(1947)에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 시집 『황혼가』(1957)와 네 번째 시집 『임진화』(1989)에 이르면, 선명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애상적인 정조만이 주조를 이루게 된다. 그의 시가 이 같은[…]

애상적인 정조와 회화적 이미지의 혼재
문혜원 / 2005-12-21
디트로이트 육자매 클럽 外 / 황병승

황병승  디트로이트 육자매 클럽    이곳은 문신중독자들의 천국 스트레이트 버거에선 유리조각이 씹힌다 왜 안돼 괜찮아 나쁘지 않아 부서진 이빨을 재떨이에 뱉고 피가 번지는 보드카 큰 컵을 단숨에 털어 넣는 트럭운전수들, 벌리고 있는 육자매 아가씨들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하드코어 랩이 테이블을 흔들고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흑인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약을 사야한다 굼벵이, 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거친 인생을 배우고 싶니? 해피 뉴 이어, 해피 빅 팻 슬럿! 내일의 새벽은 누가 칠하나 우리는 갈색에 대해 말했지 갈색에 대해 한마디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면 적색과 흑색은 어땠느냐고   묻기도 했지 적색과 흑색에 대해서까지 말해야[…]

디트로이트 육자매 클럽 外
황병승 / 200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