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들은 이제 거의 대부분 고치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눈을 가까이 가져가 들여다봐야 고치 안에서 어른거리는 누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고치를 짓다가 병에 걸려 죽어버린 누에들도 더러 있었다. 죽어버린 누에들은 그때그때마다 화단에 묻어버린 터라 그 자리엔 토해 내다 만 명주실만 바늘 같은 소나무 이파리에 이리저리 걸려 있었다.
연재소설
뽕 도마에 뽕잎을 올려놓고 칼로 뽕잎을 썰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옛날 옛날에, 궁궐에서는 누에를 둘러싸고 큰 다툼이 벌어졌단다. 누에가 다툼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건 아니지만 매개가 되었던 거지.
오후 세 시 사십 분, 나는 7층의 4인 병실로 옮겨졌다. 오전에 지하 3층의 검사실로 나를 데려간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와 이동을 도왔다. 좌우로 두 개씩 침대가 배치된 4인 병실은 이전의 6인 병실보다 훨씬 차분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출입문 맞은편에 넓은 창이 있어 앞이 확 트인 느낌이 들었다. 이전 병실에 창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비로소 되새겨졌다.
1년에 한 번꼴로 이루어지던 대학병원 방문이 재작년부터는 6개월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노인이 한때 습관을 들이기도 했던 가벼운 산책은 이미 진행 중인 신체의 노화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았고, 그나마 무릎이 시리거나 날이 궂으면 취소하기를 거듭하다 결국 시들해졌는데, 그로선 최초의 목적이었던 로봇의 코에 신선한 바람을 쐬어주는 일도 이미 충족된 까닭에 더욱 그랬다.
오전 아홉 시 경, 새벽에 왔던 간호사가 주사액 두 개를 카트에 싣고 나타났다. 하나는 큼직한 사각 비닐봉지에 담긴 우윳빛, 다른 하나는 작은 직사각형 비닐봉지에 담긴 투명한 주사제였다. 내가 침대에 반듯하게 눕자 간호사가 왼팔에 토니캣을 묶고 혈관을
아이들은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한 양 거의 동시에 밀고 들어와 각자의 교복을 찾기 위해 손을 내민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외면하지만 예전처럼 입으로 개 소 말 닭 잡아대지는 않는다. 이들은 다음주 3월이면 열여섯 살의 졸업반 신학기를 맞이한다.
그 방에 달려가 보니 과연 아버지의 말대로 나무기둥 하나가 잠박들과 누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간 채 잔뜩 뒤틀어져 있었다. 건식은 서둘러 톱과 낫을 챙겨들고 새 기둥을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저녁 시간이 지난 후라 옥상 레스토랑에는 L과 M 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L이 음식을 다 먹고 일어날 즈음 M이 나타났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바간을 떠나는 L은 지금이 아니면 인사할 시간이 없었다. M은 주문한 볶음밥을 반도 먹지 않은 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L이 물었다.
옥상에서 내려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 L은 옆방에서 C와 Y가 뒤엉키는 소리를 들었다. 열대지역 게스트 하우스는 방음시설이 형편없었다. 벽 하나를 건너서 그들이 속삭이는 음성과 움직이는 기척과 삐걱대는 침대 소음이 고스란히 들렸다. 여자는 톤이 맑고 높으며 남자는 굵고 낮았다.
평균 연령 20세가량의 빌라 골목이다. 엊그제 막 신축이 끝나 건축 자재와 도배장판 냄새가 나며 카드키를 댈 때마다 LED 센서가 발광하는 빌라 옆으로, 마당에는 감나무가 열리고 장마철에 때때로 물이 차는 반지하방에 서로 모르는 이들이 세 들어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