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의 편집위원 노트 / 김인숙

  하!    김인숙      지난주부터 원주 토지문화관에 와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 살아계실 때는 와본 적이 없어서, 짐 싸들고 문 들어서는데, 그 마음이 좀 송구하고 또 부끄럽고 그랬습니다. 짐을 풀면서 내가 여기에 무엇을 풀려고 왔는가, 쌓으려고 왔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영락없는 여행자의 마음인 듯 했습니다. 들어올 때는 벌써 초여름인가 할 정도로 날이 쨍쨍했는데 이튿날부터 추위가 닥쳐와서 무엇을 풀기에도 쌓기에도 참 어정쩡한 날들이었습니다. 날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제 계절을 찾아서 잎을 피운 매화는 날마다 꽃송이가 벌어지네요. 꽃샘추위를 뚫고 쑥쑥 흙 밖으로 나온 풀잎들이 어찌나 있는 힘껏 씩씩해 보이든지, 또[…]

김인숙의 편집위원 노트
김인숙 / 2009-03-27
이파리들의 악수 / 신용목

 이파리들의 악수      신용목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힘은 강철로도 막지 못합니다. 그것은 햇살의 힘이고 순환의 힘이며,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생명의 힘입니다. 가장 위대한 지구의 자력 발전소인 나뭇잎을 보면서 나는 저것들이 하나하나 '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파란 손바닥들이 드넓은 우주를 받치고 있는 것. 실로 그들의 협동이란 두 개의 손을 지닌 우리가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늘이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는가 하면, 광합성을 통해 지구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합니다. 분명 손은 내 몸의 가장 먼 말단이었으며 그리하여 상대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닿는 소통의 최첨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파리들의 악수
신용목 / 2009-02-24
나이를 먹는다는 것 / 이선우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선우      달을 보았습니다. 신정도 구정도 다 지났고, 살아남았으니 또 한 살 나이를 먹었습니다. 응당 그런 것이려니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새삼 그 의미를 새기게 되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일까요. 삶이란 죽음의 연속이고 죽음 역시 삶의 하나라는 말이 잔망스레 느껴질 정도로 잔혹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난무했던 세밑이었습니다. 한 오라기 얼굴 내민 달을 보니 지구도 참 서정적인 곳임에 분명한데,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낭만적인 상상력을 한순간에 박살냅니다. 비현실적인 것이 잘 벼린 뼈처럼 아름다운 저 달이냐, 공권력의 불길에 휩싸인 우리의 오늘이냐 자꾸만 물어보게 되는 음력 초사흘입니다. 하여[…]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선우 / 2009-01-30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 신용목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어제는 겨울 산을 오르다 뜬금없이, 도토리의 키를 재보고 싶었습니다. 높은 구름의 시름을 바지랑대로 받쳐주고도 싶었고, 겨울 해의 기울기를 낚시대로 건져올리고도 싶었지만, 정말 도토리라고 다 고만고만하기야 할까! 기어이 도토리를 찾았습니다. 도토리들이 참나무 발치에 송글송글 흩어져 있더군요. 우리가 다 똑같다고 치부한 것들이 사실은 논리와 논증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무기력과 자포자기를 심어놓은 원인은 아닐까. 사안의 경중과 대안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그것이 그것일 뿐’이라는 식의, 가치판단을 무력화한 것은 아닐까. 도토리를 한 움큼 쥐고 정말 도토리 키를 쟀습니다. 참 흡족하게도, 모양도 빛깔도 키도[…]

태양의 눈이 담긴 복주머니
신용목 / 2008-12-30
나무들의 뼈대 / 한강

 나무들의 뼈대 한강 잎이 다 떨어지고 나니, 나무들의 뼈대는 검고 고요합니다. 오래 그 뼈대를 바라봅니다. 이제 더 추워지겠지요. 나무들은 더 검고 고요해지겠지요. 우리는 따뜻한 살을 가졌으니,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더 따뜻한 것을 향해 몸을 기울이겠지요. 털로 짠 스웨터, 방금 구운 풀빵, 절절 끓는 아랫목, 세차게 비빈 손바닥의 열기, 젖은 눈으로 묻는 안부. 그러는 동안 해가 가겠지요. 더 추워지겠지요. 온 세상이 꽝꽝 얼어붙을 차비를 하는 12월, 웹진에서는 박설희, 박주택, 신은영, 이홍섭, 정복여, 정수자, 조동범, 천수호의 뜨겁고 차가운 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차현, 이상섭, 김유진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소설들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2008년 한국문학의 흐름을[…]

나무들의 뼈대
한강 / 2008-11-28
불안을 이기는 힘 / 이선우

  불안을 이기는 힘 이선우 동생이 결혼을 했습니다. 제부가 이란사람이니, 이른바 국제결혼이지요. 살게 될 곳은 터키라 11월에는 터키에서도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동생의 터키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될 것 같군요. 가족 대표로 가려고 했던 어머니마저 일정을 취소하게 된 데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또 한몫을 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의 거침없는 상승은 노모의 작은 바람마저 주저앉힙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정도 좌절쯤은 아주 낭만적인 것이라고, 비행기표 한 장 끊어드리지 못한 주제에 감히 생각합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현재 경영 여건이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고 느끼는 기업이 10곳 중 8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

불안을 이기는 힘
이선우 / 2008-10-31
숨을 고르게 내쉬는 법 / 조경란

 숨을 고르게 내쉬는 법 조경란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소설에는 노부부가 먼 길을 떠나려는 한 소녀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새들이 손바닥 위에 앉으면 손의 힘을 빼어 그들이 놀라 달아나지 않게 하는 법,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부분을 통해서 용의 전체의 모습을 알아내는 법, 숨을 고르게 내쉬는 법, 그리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방법…… 숨을 고르게 내쉬지 않으면 균형을 잃게 되는 법이지요. 그리고 노부부는 길을 떠나기 전에 소녀의 등에 그녀 이름과 주소를 새겨줍니다. 먼 길을 돌아,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저는 종종 문학과 인생이 나에게 어떤[…]

숨을 고르게 내쉬는 법
조경란 / 2008-09-30
타임머신 캡슐을 살다 / 신용목

  타임머신 캡슐을 살다 신용목 우리가 역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경험이 ‘언제라도 동원 가능한 지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로 역사는 현재의 노둣돌이 되어 우리를 미래의 대청으로 올려줍니다. 그러나 과거를 추앙하는 자들은 경험을 즉자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진일보라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현재의 지점이 잘못된 방향으로 패착되었다고 선전합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시간의 분실신고 기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애드벌룬 아래에서 ‘과거행’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타임머신 캡슐 안에 앉은 기분입니다. 이 기이하고 낯선 역사기행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그 뜨거운 캡슐 안이 삶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머잖아 벽돌신문 벽돌잡지가 발행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르나 봅니다. 오래전,[…]

타임머신 캡슐을 살다
신용목 / 2008-09-01
새로운 말을 고르는 시간 / 김미정

  새로운 말을 고르는 시간 김미정 과거에는 상식적이고도 흔하게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어딘지 낯설고 서걱거리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동체’도 그런 말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것은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역사의 오류에 따라 몰락해버린 어떤 말입니다. 외부로부터 규정된 나의 정체성이 얼마나 부당한 것이며, 그 공동의 정체성을 통해 무엇인가에 소속되어야한다는 관념 역시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기억한다면, 분명 ‘공동체’라는 말은 확실히 사어(死語)임이 분명합니다. 시절이 달라지고 ‘공동체’의 가치 대신 ‘개인’의 가치가 발견되고 중요해진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해온 것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얻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스스로의 책임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공동체, 연대, 우리’ 이런 말을 하지[…]

새로운 말을 고르는 시간
김미정 / 2008-08-01
인식認識과 억견臆見 / 조경란

  인식認識과 억견臆見 조경란 연일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하는 질문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진보적이다’ 혹은 ‘진보주의’라는 말은 사회 모순을 변혁하려는 전진적인 사상이나 또는 그렇게 점차 발달하고 있는 모양을 가리키지요. 반면 ‘보수적이다’ 혹은 ‘보수주의’라는 말은 있던 그대로의 습관이나 전통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지키려는 경향을 뜻합니다. 얼핏 들으면 둘 다 그럴 듯하여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 이 질문을 진보와 보수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 바꾸어봅니다. 어떤 사람은 진보를, 어떤 사람은 보수의 성향을 선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느 쪽을[…]

인식認識과 억견臆見
조경란 / 2008-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