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을 맞이하며 / 고봉준

  2011년, 봄을 맞이하며   고봉준           지난 주말에 먼 도시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기차의 창밖엔 시속 300킬로미터로 봄이 오고 있더군요, 게으르게 졸면서 창 너머로 완연한 봄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불현듯 제가 입고 있는 옷이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도 잠시, 그 풍경 속 어딘가에 바다를 건너온 세슘 입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화창한 봄 풍경이 섬뜩하기까지 하더군요. 이 심각한 환경재앙이 하루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이 못내 서글펐습니다. 다음날 집에 돌아와 겨울옷을 정리하는 것으로 봄맞이를 시작했습니다. 《문장웹진》[…]

2011년, 봄을 맞이하며
고봉준 / 2011-04-01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 편혜영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편혜영(편집위원) 새해가 되면 365일마다 새로운 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단 하룻밤 만에 인생이 바뀌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단 하룻밤에 해가 바뀌는 일은 365일이 지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신비입니다. 뭔가를 계획하고 각오하고 무산된 결심 앞에서 속상해하고, 시행착오를 수정한 후 다시 계획하고 각오하고, 다시 결심을 수정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싶어질 무렵이면 대략 330일 정도가 지났다는 걸, 그러니까 어느 새 12월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든 12월은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새로운 해를 다짐하고 계획하는 일로 보내게 되니까, 지나간 해의 에필로그와 다가올[…]

《문장웹진》 신묘년 1월호를 열며
편혜영 / 2011-01-02
마지막 남은 달력을 넘기면서 / 고봉준

마지막 남은 달력을 넘기면서 고봉준 시간의 흐름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한 달은 무척 더디게 지나가지만, 정작 일 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마지막 한 장 남은 앙상한 달력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문득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밤입니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을 수는 없겠지요. 당장에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의 첫날을 지겨워하며 보낼 테고, 월급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지루한 한 달을 견딜 것이며, 새로운 한 해의 첫날에는 작년과 다른 새로운 시간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원할 테니까요. 그리고 또 우리는 정확히 일 년 뒤에[…]

마지막 남은 달력을 넘기면서
고봉준 / 2010-12-06
회전관람차의 인사 / 편혜영

회전관람차의 인사   편혜영 지난 여름 한 유원지에서는 약 27년 10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돌던 회전관람차의 은퇴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내구연한이 다 되어 공식적으로 운행 중지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저는 유독 회전관람차를 좋아합니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자이로드롭같이 빠르게 회전하고 낙하와 상승을 반복하는 놀이기구들 틈에서 회전관람차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심심하고 단조롭게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도 이 관람차에 앉아 있으면 이 만한 속도로 천천히 살아도 좋겠다는 낙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올 뿐이지만 한 바퀴 둘러본 세상만큼 마음이 넓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밤의 관람차에 앉아 불빛이 번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회전관람차의 인사
편혜영 / 2010-11-16
공허의 시간을 견디기 위하여 / 고봉준

공허의 시간을 견디기 위하여 고봉준 아침에 눈을 뜨면 제법 찬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달력에 빨간 날이 하루도 없는 당혹스러운 10월, 아침에 느끼는 쌀쌀함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은 요즈음입니다. 추석 연휴 끝에 얻은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이번 가을에는 꽤 오랫동안 아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더위와 폭우로 고생했던 여름을 생각하면 쨍하게 맑은 가을 하늘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동네의 천변에는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분주한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뒷모습과 머리 꼭대기까지 내뻗는 씩씩한 팔동작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늦었지만 이번 주말에는 가을 겨울옷들을 꺼내 정리하고, 가까운[…]

공허의 시간을 견디기 위하여
고봉준 / 2010-10-08
웹북으로 듣는 심장 소리 / 김종욱

며칠 전에 남쪽 바다가 보고 싶어 혼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떠도는 동안 제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노트북을 팔고 새로 장만한 전자책 한 권(?) 뿐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지루한 여행을 견디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챙겼어야 했을 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전자책에 ‘문장 웹진’ 파일만 담고도 짧지 않은 시간을 심심하지도, 번잡스럽지도 않게 떠돌 수 있었습니다. 문고판 크기로 파일을 변환하기만 했을 뿐인데, 진짜 책을 손에 쥔 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이 다시 책을 닮아가듯이 글이 생산되는 과정도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겠지요? ‘문장 웹진’이 그러한 변화하는 미디어 세계의 한복판에 있다는[…]

웹북으로 듣는 심장 소리
김종욱 / 2010-03-03
허공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 김수이

허공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김수이   10월입니다. 허공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듯합니다. 바람이 묵직해지고 진해진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넓이와 깊이, 두께와 밀도가 같은 것의 다른 측량법들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으로 측량하든,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계속됩니다. 삶과 더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학도 계속됩니다. 그 사이 시차나 오차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 시차나 오차가 삶의 넓이와 깊이, 두께와 밀도를 어떤 형태로든 더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금 가져보는 10월입니다. 〈문장〉의 새 식구가 되면서 〈문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변화(정확히는 퇴보)에 대해서는 반쯤만 관심을 갖기로 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여전히 ‘문학’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즉 문학의 변화와 문학을 둘러싼 생태환경의[…]

허공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김수이 / 2009-10-05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 김종욱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김종욱  두 번째 구술성의 시대가 오고 있는 월터 J. 옹의 말을 기억합니다. 백년 남짓 동안 찬란하던 문자성이 새로운 구술성 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구성했던 터무니없던 믿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문자를 통해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문자만이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가로질러 영원하리라 믿었던, 그 모든 어리석은 환상들. 새로운 시대의 소통 방식은 문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들을 저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듯합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시원에 자리잡은 ‘말’을 본뜸으로써 당신과 나, 우리들 사이의 새로운 소통을 준비해야겠지요. 지금은 겨우 한[…]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
김종욱 / 2009-10-05
그의 이름에 건다 / 신용목

 그의 이름에 건다  신용목  이 참담이 아스피린처럼 스며들어 콘크리트 차가운 두께를 허무는 날이 오겠지요. 그 틈에서 외계의 빛깔처럼 돋아나는 새싹을 우리는 다시 신앙 삼을 작정입니다. 그 미학의 신통함 앞에서 하루하루 거행되는 개종의 세례는 진정 달가울 것입니다. 문학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영원히 흔들리고 부유하는 물컹한 육신으로 저 딱딱하고 각진 세계에 실금 하나를 만드는 것.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경운기 한 대 선 추레한 마당에 촌로인 그의 친지가 브라운관에 들어왔을 때, 딱히 환호하지 않았던 내 얼굴도 뜨거운 고랑이 되었던 적. 오랫동안 통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일은 애당초 다른 마을에 살며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생각을[…]

그의 이름에 건다
신용목 / 2009-05-29
꽃과 잎의 연대 / 이선우

 꽃과 잎의 연대      이선우      각종 기념일이 유독 많이 몰려 있는 5월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5일과 8일에 떡 하니 버티고 있어 흔히들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지만, 5월에는 노동절도 있고 석가탄신일도 있고 성년의 날과 스승의 날도 있습니다. 찾아보니 부부의 날, 바다의 날, 발명의 날도 5월에 다 있군요.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인 단오도 5월 28일이랍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본 적도, 수리취떡을 먹어본 적도 없지만 단오라니 괜히 마음이 들뜨는군요.국가나 민족, 종교나 각종 단체의 기념일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잊을 수 없는 어느 하루가 이 싱그러운 5월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계신 분들도 있을[…]

꽃과 잎의 연대
이선우 / 2009-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