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호
나비잠 외 9편 / 하청호

  나비잠   하청호       아기가 나비잠을 자고 있다   아기 곁을 지날 때 엄마, 아빠도 까치발로 조심조심   아기가 잠을 깨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까 봐   할아버지, 할머니 말소리도 조용조용.      * 나비잠/ 갓난아기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햇빛의 마음       여름날이다 햇빛이 신나게 달려가다가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딱 멈췄다   빛이 멈춘 자리 넓은 그늘에는 아기가 곤히 자고 있었다.             솜이불 속 햇살         솜이불을 엄마와[…]

나비잠 외 9편
하청호 / 2013-12-04
권순자
[시]붉은 꽃에 대한 명상1 외 4편 / 권순자

    붉은 꽃에 대한 명상 1     권순자       너는 뜨거운 꽃이다 숙연한 나는 너를 향해서 묵도한다   한때 두려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지 쏟아지는 바람이 투명한 피부를 간지럽혔지 낡은 우리에 스며들던 달빛!   안락한 꿈은 매캐한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달빛은 무엇을 훔칠 수 있나   갇혀 돌던 선율이 목뼈에 걸려 슬픔이 어둠을 물고 경련을 일으킨다   봄은 우왕좌왕하고 꽃물은 닳고 닳아 너는 헐거워지고 나는 숨 죽여 흐느낀다   꽃살 때문이야 네 붉은빛이 아름다운 맛을 내기 때문이야   붉은 불길에 뜨거운 꽃, 너는 빛깔을 잃고 잠이[…]

[시]붉은 꽃에 대한 명상1 외 4편
권순자 / 2013-11-18
이준관
[시]뒤꼍의 추억 외 9편 / 이준관

    뒤꼍의 추억   이준관       뒤꼍에는 감나무 한 주 서 있고 밤마다 어머니가 물을 떠놓고 빌던 사발엔 푸른 별들이 감꽃처럼 피었다 졌다   햇빛으로 반질반질 윤나게 장독대 닦던 어머니 몸에서는 코끝이 찡해지는 간장 냄새가 났다   야단맞고 무릎에 턱을 괴고 코를 훌쩍이고 울고 있으면 아직 떫고 비릿한 감또개가 내 발등에 뚝 떨어졌다, 눈물방울처럼   가끔 장독대에는 어린 뱀이 똬리를 틀다 가곤 하였지만 뱀은 너무 순해서 혀를 날름거릴 줄도 몰랐고 봄날 자부름에 겨워 자올자올 조는 고양이 콧등에 나비가 앉을락 말락 팔랑거렸다   뒤꼍 굴뚝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러[…]

[시]뒤꼍의 추억 외 9편
이준관 / 2013-11-18
김성범
[동시]까닭 외 9편 / 김성범

    까닭   김성범       까만 꽃씨를 심으면 빨강 노랑 하양 다홍 자줏빛 꽃이 핍니다   까만 꽃씨에서 까만 꽃이 피면 기다리는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네 집은 몇 평인데?       까치는 나뭇가지 주워다 집을 짓고 밭쥐는 풀잎 끌어다 지었다. 멧돼지는 덤불을 뭉개어 지었고 두더지는 땅을 파서 지었다 어떻게 지었든 무엇으로 지었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만큼이지 제각기 고만고만 지었으니 부럽지 않아 좋겠다. 서로 깔볼 필요 없어 좋겠다.           노크         바람 살랑이고 희뿌연[…]

[동시]까닭 외 9편
김성범 / 2013-11-18
문정영
수곽(水廓) 외 9편 / 문정영

    수곽(水廓)   문정영       나는 한때 물처럼 맑다고 생각했다. 물로 집 한 채 지었거나, 물의 집이라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그런 나를 비추자 물빛이 흐려졌다. 내가 지은 집은 지는 해로 지은 것이었다. 고인 물을 막은 것에 불과했다. 내가 흐르는 물자리였으면 새 몇 마리 새 자리를 놓았을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 눈물로 지은 집 한 채가 생각났고, 눈물도 거짓으로 흘릴 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집이 모래집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깊다는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물은 엎드려 흐르는 것인데 내가 지은 집은 굽이 높았다.      […]

수곽(水廓) 외 9편
문정영 / 2013-09-02
곽흥렬
[수필]길 위의 사람들 / 곽흥렬

    길 위의 사람들     곽흥렬             고샅을 벗어났다. 조붓한 오솔길이 기다랗게 누워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참을 걷다 보니, 소잔등 같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빼곡히 들어찬 아름드리 갈참나무들이 외로운 나그네를 맞는다.     수풀 사이를 비집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귀를 모으고서 찬찬히 주위를 살핀다.     길이 휘움하게 굽어 도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키가 고만고만한 중년 아낙 세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란히 늘어서서 산길을 또박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자매간처럼 다정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몇 분 후, 우리는 얼굴이 마주쳤다. 순간 서로 약속이나 한[…]

[수필]길 위의 사람들
곽흥렬 / 2013-09-02
한영미
[동화]혹 이야기 / 한영미

벌써 밤 열 시. 오늘밤도 편히 자기는 다 틀렸어요. 일주일치 일기를 오늘 밤 안에 다 써야 한다나 봐요. 오른손은 열심히 글자를 썼어요. 오른손과 나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에요. 쌍둥이지만 사이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에요. 녀석은 툭하면 나를 무시하거든요. 지금도 자기 혼자 일한다고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몰라요.

[동화]혹 이야기
한영미 / 2013-09-02
심호섭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외 9편 /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심호섭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세상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아가는 바람의 날개를 보았나니. 그것의 격렬한 움직임에 놀랐나니.   잔잔하던 해면이 들끓어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고 번쩍이는 불빛, 귀를 찢는 굉음, 허공을 날던 바닷새는 사라지고 없고 물속의 물고기는 숨을 죽인 채 유영을 멈추었나니.   잔잔하던 해면이 들끓어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고 번쩍이는 불빛, 귀를 찢는 굉음, 허공을 날던 바닷새는 사라지고 없고 물속의 물고기는 숨을 죽인 채 유영을 멈추었나니.           쇠에게       쇠여, 너는 뜨거운[…]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외 9편
/ 2013-08-30
최서림
가시나무 외 9편 / 최서림

    가시나무   최서림       사랑이란 말이 외계어처럼 들리던 때였다 시뻘건 적개심이 우울증을 몰아내 주기도 하던 때였다 들을 귀가 없어 공허하게 혼자 떠들기만 하던 내 안에 빽빽이 도사린 가시는 보지 못하던 때였다 내 가시에 내가 찔리는 줄도 모르던 때였다   잿빛 꿈이라도 꾸어야 시인이지만 모든 이데올로기는 비극적이란 말도 있다 반들반들한 말의 벽돌로 빈틈없이 쌓아올린 집 속에 손님으로 들어가 쉴 만한 방들이 없다 말이 너무 많아 말과 말이 섞일 공간이 없다   말에 허기진 나더러 아내는 씨 뿌리는 사람의 심정으로 시를 써보라 한다 정신없이 말을 뱉어내기 바쁜 시인보다[…]

가시나무 외 9편
최서림 / 201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