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현상
비단 보약 외 9편 / 변현상

[ARKO 선정작가]     비단 보약   변현상       청해루서 제공하는 짜장데이 점심이다   “통비단도 배곯으면 한 끼라고 안 카더나!”   끼니가 업業이 돼버린 틀니들의 아포리즘   장마에 볕이 나듯 한 달에 한 번 오는   미소 넣고 곱게 비빈 짭짤한 짜장 보약   괴정동 양지경로당 “짜~장” 하고 해가 뜬다               용대리       물이란 관념 속을 과감하게 뛰쳐나온 할복한 몸통들이 빗금 바람 먹고 있다 온전한 자유를 향한 겨울 덕장의 저 불길   고래들도 생각 못 한 황홀한 몸의 거사 누가[…]

비단 보약 외 9편
변현상 / 2014-11-09
권기덕
구술지도 외 6편 / 권기덕

      구술지도     권기덕           미시시피 강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멤피스 신전이 보이고 그 언덕에서 바람을 타고 벼랑 끝으로 가면 지도에 없는 길이 있다 북미 인디언에 의하면 그 길은 말하는 대로 길이 되는데 되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한다 말할 때마다 피는 꽃과 나무는 밴쿠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변화무쌍하게 변형 된다 갈색펠리컨이 말했다 소리에 축척이 정해지면 풍문이 생긴다고 풍문의 높낮이는 산지와 평야를 만들고 때론 해안선을 달리며 국경 부근에선 적막한 총소리마저 들린다 말에 뼈가 있는 것, 수런대는 말은 지형의 한 형태다 낭가파르바트의 눈 속에 박힌[…]

구술지도 외 6편
권기덕 / 2014-11-01
장순익
비밀의 화원 외 6편 / 장순익

      비밀의 화원     장순익           건너실 산 밑에 아줌니는 생전 마실도 안 다녀 자기가 안 다니니까 남들도 그 집에 안 가 어쩌다 비탈밭에 수건 쓰고 앉아서 밭 매는 거나 볼까 뭘 먹고 사는지 장에도 안 다녀 남정네가 있나 품앗이를 하나 가을이면 온 동네 지붕 새 이불 덮은 것 같은디 그 집 하나만 시커멓고 움푹 꺼져도 이엉 엮어 줄 사람이 있나       겨우내 눈 쌓이고 녹아 내려 더 납작해진 그 집     봄 되면 아주 사라졌다     크나큰 팔이 포옥 감싸듯이     늙은[…]

비밀의 화원 외 6편
장순익 / 2014-11-01
한영수
백사白蛇 외 6편 / 한영수

[ARKO 선정작가]     백사白蛇   한영수           마주친 후 산죽 밭으로 들어간 백사가 나오지 않는다 바위틈에 산조팝 희고 두 해째 봄이다       사라지면서 멀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지난겨울은 나에게도 겨울이었다       하얗게 마른 중산간中山間을 지나며 돌아본다 산죽 잎의 이슬만 먹고 산다는 백사와 그런 이야기 끝에     산죽 밭에 바람이 희면 난리가 난다는 말을       고독의 독을 물고 죽는 대낮이 있다 독백이 긴 동굴은 희지도 어둡지도 않다               툇마루           즈이아베와 즈이어매가 겸상을 했다 좌우[…]

백사白蛇 외 6편
한영수 / 2014-10-14
김유섭
행려의 잔치 외 6편 / 김유섭

      행려의 잔치   김유섭       화라락, 머리카락이 녹아내린 뒤 가장 먼저 끓어 증발하는 것은 말라버렸다고 믿었던 눈물 몇 방울이었다 유빙으로 떠돌던 피와 골수와 뇌수 같은 것들 눈알이 지글거렸다 움츠려 펴질 줄 몰랐던 근육이 부풀어 올라 장작처럼 터지며 활활 타올랐다 어눌하기만 했던 혓바닥이 오그라들어 돌돌 말렸다가 풀렸다가 외마디 방언 중이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세상이었다 끝내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었던 길 희미한 지문마저 뭉개진 손가락, 발가락으로 쓰러진 여기 어머니 뱃속일까 투둑투둑, 펑, 펑, 겨울 눈보라 내리치는 화장장 불타고 끓고 터지는 소리 음악으로 연주하면서 오랜 그늘에서 수거된 행려(行旅)[…]

행려의 잔치 외 6편
김유섭 / 2014-07-01
구병모
[단편소설]이물異物 / 구병모

치밀한 불법 개조로 여섯 가구를 쟁여 놓은 다세대 주택 대문으로 들어가 여느 밤처럼 반지하방 왼쪽 현관을 열었을 때, 양선은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 평소 없던 것이 거실 겸 부엌에 웅크린 모습을 보고, 동세가 없었으나 곁눈질로 포착한 질감과 양감만으로 그것이 가구나 이국의 장식품이 아닌 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편소설]이물異物
구병모 / 2014-06-22
김철순
나비 외 9편 / 김철순

[아르코 창작기금-시]       나비     김철순           봄볕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비 날아간다 나비 겨드랑이에 들어갔던 봄볕이 납작 접혀서 나온다 나비는 재미있어서 자꾸만 봄볕 접기 놀이를 한다 나비가 접었던 봄볕이 팔랑 팔랑 땅에 떨어진다               냄비         쉿! 조용히 해 저, 두 귀 달린 냄비가 다 듣고 있어   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 냄비 속에 집어넣고 펄펄펄 끓일지도 몰라   그럼, 끓인 말이 어떻게 저 창문을 넘어 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 저 산을 넘어 꽃을[…]

나비 외 9편
김철순 / 2014-06-01
추필숙
[동시]핀다 외 6편 / 추필숙

      핀다     추필숙       학교 담장에 장미 핀다. 밖으로만 핀다. 아이들이 어디로 가나 궁금해서, 몽글몽글 자꾸만 핀다. 가시바람도 향기도 덩달아 핀다. 벌 나비 날개도 핀다. 큰 사거리까지 따라 나와 핀다.   학원 가던 아이들도 장미가 어디까지 따라오나 궁금해서, 눈웃음이 핀다. 저절로 핀다.               봄 낚시       낙 싯 대 끝 에   사과나무는 사과꽃을 배나무는 배꽃을 대추나무는 대추꽃을   매 달 아 놓 고   기다린다, 나비와 벌이 낚싯밥을 물 때까지.          […]

[동시]핀다 외 6편
추필숙 / 2014-05-22
김미혜
[동시]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외 6편 / 김미혜

      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김미혜       사람을 태우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공을 굴리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앉아! 돌아! 가만히 있어! 훈련을 받는다. “말 안 들으면 때려야 돼.” 쇠꼬챙이가 달린 막대기로 머리를 찍힌다. 쇠고랑에 발을 묶인다. 주름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코끼리를 적신다.   코끼리를 차마 보지 못하고 뚝뚝 눈물 떨어뜨렸던 아이가 자라서 앉아! 돌아! 가만히 있어! 쇠꼬챙이가 달린 막대기를 든다.   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매 맞고 온순해진 코끼리 등에 올라 기념사진 찍는 우리. 코끼리 쇼를 보고 박수치는 우리.      […]

[동시]누가 코끼리를 울게 했을까 외 6편
김미혜 /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