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을 투입하라 외 6편 / 이종문

[2015 아르코창작기금]     계엄군을 투입하라     이종문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총파업을 선언하여     이른 바 물류대란이 코앞에 다가오자,     급해진 중앙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했다       고료도 없는 시를 매일 써온 시인들도     드디어 도분이 나 총파업을 선언하고,     당분간 시 짓는 일을 일체 작파키로 했다       뭐라고? 그래봤자 눈도 깜짝 않는다고?     천만에, 그럴 리가? 다급해진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한다며 으름장을 놓겠지, 흥!       이 놀라운 사태 앞에 경악한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라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말로 계엄군들을 투입하게 될지 몰라      […]

계엄군을 투입하라 외 6편
이종문 / 2017-04-17
캔디의 계절 외 6편 / 유지소

[2015 아르코창작기금 시]     캔디의 계절     유지소     나날이 팽창하는 잔디를 위해서 더 많은 공원과 더 많은 무덤이 필요하다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당신의 세계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 당신을 위해서 잔디 위에 누울 것인가 잔디 아래에 누울 것인가 양자택일의 질문이 필요하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외치는 작은 팻말의 권리와 의무를 위해서 동아줄로 테두리를 휘감은 잔디밭이 필요하다 그곳의 잔디는 우리의 손발이 닿기도 전에 삐릭삐리릭 신음 소리가 나는 피부가 필요하다 햇빛 짱짱한 날에도 공치는 늙고 병든 일용직 근로자의 일당을 위해서 잔디밭에는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라나는 개망초나[…]

캔디의 계절 외 6편
유지소 / 2017-04-17
가랑비 외 7편 / 유금옥

[2015 아르코창작기금]     가랑비     유금옥     가랑가랑 가랑비가 가랑잎을 적시네   가랑가랑 가랑잎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가랑가랑 가랑비 속을 갈까 말까 망설이네                     구구단     강아지풀이 뛰어오는 3월입니다 종종걸음 종달새는 지각이네요 선생님께서 칠판에 구구단을 쓰는 동안 친구들이, 3, 1은 3. 3, 2, 6. 3, 3, 9. 목청을 높이는 동안   노란 산수유꽃이 곱하기 곱하기 피어나네요 파란 시냇물이 나누기 나누기 흘러가네요                     귀뚜라미     귀뚜라미 이름은[…]

가랑비 외 7편
유금옥 / 2017-04-17
시계 안의 생, 불구자… 시계에게 외 6편 / 여정

[2015 아르코창작기금 시부문 작품]     시계안의생·불구자…시계에게 ―부메랑효과     여정         태어날때부터다리길이가달랐어·왼쪽다리가조금더길어언제나절룩거렸지·흰지팡이를두드리며걸었어·길도앞도늘캄캄했지·어둠뿐인동네를돌고돌며틱틱거렸어·수백년수천년넘게거듭됐지·뚜렛장애라고도하더군…내안에서다른목소리가새어나오곤했었어·나도모르는욕설들이나도모르게재깍재깍튀어나오더군·불만가득찬세상목소리였지·했던말을또하고했던욕을또하고…가래뱉는소리·침뱉는소리·비둘기우는소리도재깍재깍솟아나더군…그소리들은불특정다수를가리키고있었어·부조리를향해불협화음을향해…내배를뚫고나온그의혀가점점날카로워 지고있어·한순간도멈추지않고찔러대고…검은선글라스속에서나는오른쪽눈을쉴새없이깜빡거리고·코도킁킁거리고…나는왜그의말까지자꾸따라하고있는걸까…빌어먹을…(빌어먹을)시계안에는왜·늘깜깜한시취가진동해야하는거지…시발…(제발)우리이제·그만돌아가면안돼?…돼?·(젠장)…덴장                     주검생활계획표 ―시인         피자에칼집을내듯시간을자른다·조각마다토핑이다르다…집·카페·노트북·TV·침대…집은아침겸점심을먹고·백팩은치즈처럼늘어지는길을간다은행나무가로수길로휘어질지곱창골목으로휘어질지모르는길은오늘따라더노랗다·다빈치는아메리카노톨사이즈를마시고노트북은글자들을씹었다삼켰다뱉었다를반복한다·말보르골드는흡연실을들락날락하고안개같은연기는어제와같은오늘로오늘과같은내일로끊어지지않는지독한중독의냄새를퍼뜨리며너는어느시인屍人의시체時體라고신그래픽체로희뿌연몸을바꾼다·아래한글은시체時體를시체詩體로망설이며시커멓게변해버린시간들을몇번이나더죽여가며시체詩體들을교정하고또교정한다·시체들을가득담은백팩이은행나무가로수길을걸어간다노랗게물든길은이내휘어져고기냄새자욱한골목이다속이텅빈가죽운동화가새카맣게타버린내장들의발자국을밟으며옛울음들을되씹어본다·아무맛이나지않는옛길들을돌아오는길은혀처럼휘어져오늘따라더검붉다·TV는저녁을먹고채널들을뒤척인다향기없는향기지독한꽃을보며비명소리들이커져가는볼륨을낮춘다·TV는거실을방으로옮기고소파를침대로바꾼다예술영화DVD는무음의침대에서늘자막으로잠이들고침대는언제부턴가늘똑같은꿈들을꾼다…집·카페·노트북·TV·침대·송장·백골…아침겸점심을먹은똑같은집이백팩을토해낸다·백골을둘러멘백팩이썩은살처럼늘어지는길들을간다                     화향·부케…화환 ―무음행진곡         캐주얼정장차림의그여자를처음만났다·악수의형식을빌어오른손을잡았다…캐주얼정장이수직으로잘리고왼쪽이벌거벗었다·놀란가슴이나도모르게악수의형식을놓쳐버리고젖무덤을만졌다…그녀의왼쪽이무조건반사적으로출렁거리고오른쪽이조건반사적으로웃었다·그웃음이놀라워나도모르게젖가슴도놓쳤다…그녀의벌거벗은왼쪽이빠른속도로주름·주름…주름졌다·반만남은오른쪽캐주얼정장이빠른속도로따라변했다…검정치마에소복저고리를오른쪽만걸친그녀가악수의형식을놓치고버둥대는내손을잡고흔들어주었다…앞을돌아보면·천길낭떠러지…모래성이무너지듯내살이주르르흘러내렸다·그녀는내뼈를잡고흔드는방식으로안도의한숨을내쉬었다…허공을타고웨딩마치가울려울려…울려퍼졌다…캐주얼정장차림의그여자가웃고있었다                     적·적…피로물든·사생대회 ―유산포기각서         너는나를그리고나는너를그리고·시계는너와나를멈추기위해풍경을달린다…너는나를죽이고나는너를죽이고·풍경은하나의무덤에두개의십자가를꽂으려한다…생사를바꾸는갈림길·사생을결단해야하는주먹다짐…나는너라도살리려고너는나라도살리려고…너와나의땀방울은오늘따라유난히붉고안쓰럽다…두개의십자가·사이…원근에시달리는나비한마리가…맞춤법이어긋나버린하나의비명으로내려앉는다       …시계는…곧·정오다…정말이대로하나로끝이나야하는거니·우린…왜·남은물감은붉은색뿐일까…       너는해를멈추고나는어둠을칠하고·시계소리는너와나를하나로멈추기위해흰지팡이를두드리며바탕속을걷는다…내가칠한어둠은오늘따라유난히붉고·너는결국시간을놓쳤다…표기와발음이조금은다른이국의경계를넘어가는이풍경속·어둠이그려놓은검붉은달빛이생리혈처럼번져온다…너는나를모르고나는너를모르고…그래·난·처음부터·생겨먹지·말았어야·했다…시계는·늘…자정이다                     눈물방주 ―도말         40주야내리는비처럼울고또울었습니다·눈물속에잠겨가는이세상은너무세기말이었습니다·회개하고회개해도지저분한내거울은변하지않았습니다…아버지여·어둠을거름삼아배복판에선악과를심었습니다·이제눈물이그칠수있을까요?·버림받은이몸이다시에덴이될수있을까요?       40주야내리고40주야더내리는비처럼울고또울었습니다·선악과나무는탯줄줄기를내고탯줄가지를내며무럭무럭자랐습니다·변하지않던내거울도시커멓게괴상하게변했습니다…아버지여·탯줄가지에청개구리들이주렁주렁열렸습니다·밤낮상관없이해골해골울었습니다·이청개구리들의울음들을어떻게견뎌야하나요?·다시올챙이로돌아가야에덴으로되돌릴수있을까요?  […]

시계 안의 생, 불구자... 시계에게 외 6편
여정 / 2017-04-17
11호 구두병원 외 6편 / 김주경

[2015 아르코창작기금]     11호 구두병원 외 6편     김주경     휠체어와 한 몸인 키 낮은 콘테이너 구두병원이라 불러도 틀림없는 댄스홀 온종일 질펀한 트로트가 넌출넌출 호객한다   허름해진 구두를 찍찍 끄는 남자도 뒤꿈치가 뭉개져 삐딱대는 여자도 나올 땐 한결같이 쿵짝, 스텝이 정확하다   이젠 뒷굽만 봐도 지난 삶이 읽힌다고 중심 잃은 구두의 살과 뼈를 다듬어 세상에 기죽지 마라 콧대도 세워준다   늦은 밤 어둠속에 몸을 펴는 휠체어 환지통 무릎으로 골목을 밀고 간다 놀랍다 저 천의무봉 온 생이 한 걸음이다                  […]

11호 구두병원 외 6편
김주경 / 2017-04-17
좋은 이웃 / 김수미

[2015 아르코창작기금]     좋은 이웃     김수미     등장인물 정기 38세 경이 25세 서진 40세 차련 35세     무대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문을 쓰진 않겠다. 누가 누구와 식사를 하느냐가 이 작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으로 밝혀두고 싶은 건 그들의 집이 위치한 곳은 도심이 아닌 한적한 시골이라는 거다. 앉아서 먹는 둔탁한 원목 식탁은 정기와 경이의 집으로, 모던한 서양식 식탁은 서진과 차련의 집으로 상징되면 되겠다. 방문, 욕실, 주방, 출입구 등은 인물의 등퇴장에 따라 유기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1. 그들이 떠나기 하루 전   빈 식탁.[…]

좋은 이웃
김수미 / 2017-04-17
숲 없는 숲 / 김성민

[2015 아르코창작기금 수상작]     숲 없는 숲     김성민     등장인물 사내 처녀 농부 마누라 의원 대신1 (삶) 대신2 (죽음) 대신3 (원로) 복면들 마을사람들     시간적 · 공간적 배경 이 극의 시간은 비사회적이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위치, 생각과 결과의 차이, 이쪽과 저쪽의 이미지를 말하는데 좋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시간은 없다.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이미지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극에는 마을, 명부(冥府), 숲의 세 공간이 있다. 이 극의 공간 역시 비사회적이다. 이 극은 역사 속에 드러난 (그렇게 기술된) 특정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역사 속에 드러났을 법한 (그래서 기술되지[…]

숲 없는 숲
김성민 / 2017-04-17
베란다 B 외 6편 / 황혜경

[2014 아르코창작기금]     베란다 B     황혜경         너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기다리고 있나보다     나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는 너를 향해 가느라 있다       ~답게 ~답지 못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수월해지고 실체는 실재적으로 몸을 회복해야 쾌청하다며 너는 말했지 다행이다 너의 쾌청    거울 앞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처음에 나는 나를 생각하다가 너를 생각해 너는?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깃든 너를 바라봐       너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잠시 앉았다가 또 기다리나보다     나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는[…]

베란다 B 외 6편
황혜경 / 2017-04-14
비 갠 아침 외 6편 / 차영미

[2014 아르코창작기금]     비 갠 아침     차영미     풀여치 한 마리   파르르 젖은 날개를 턴다.   비 갠 아침,   들판도 덩달아   푸드득 초록 날개를 편다.                     가 시     “너 하고 안 놀아.”   혜진이에게 민정이에게 진옥이에게   내가 했던 말 오늘 낮 단짝 현주에게 듣기 전엔   정말 몰랐다.   그 말에 그렇게 크고 뾰족한 가시가 있다는 걸                     할아버지 집 가는 길[…]

비 갠 아침 외 6편
차영미 / 2017-04-14
금욕적인 사창가 외 6편 / 조동범

[2014 아르코창작기금]     금욕적인 사창가*     조동범         당신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버려진 콘돔과, 무감각한 당신의 마지막 자세가,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덧 오전 6시는 밝아오는가.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고개를 돌려, 남자가 빠져나간 자리의 텅 빈 허공을 감각한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곳에서, 휘파람은 오래전의 유적처럼 흐느끼고 있구나. 어느덧 오전 6시는 다가오고, 거룩하고 성스럽게 아침은, 여전한 어둠을 웅성거린다. 당신의 절정은 언제나 절제되어 있으며, 당신의 어제는 금욕적인 휴일 오전을 예비하며 무감각한 절망에 침묵할 뿐이다. 버려진 콘돔으로부터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비릿한 절정의, 마지막 순간을 반추한다. 느리게 발기되는 성기처럼, 휴일 오전은[…]

금욕적인 사창가 외 6편
조동범 / 2017-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