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어 그물코를 만져보다. / 정세랑

     [민들레 문학특강 참가 후기]     손 내밀어 그물코를 만져보다 ― 열린여성센터에 다녀와서   정세랑              어릴 때의 기억이 자주 그렇듯이, 직접 본 것인지 TV를 통해 본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아마 서커스의 마지막 순서였던 것 같다. 발레리나처럼 예쁜 공중그네 연기자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에 가 닿았을 때, 비장한 효과음이 울리더니 그때까지 잘 펼쳐져 있던 안전그물이 걷혔다.    “이제 진짜입니다!”    사회자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대여섯 살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대체 왜 그물을 걷는 거지? 하필 그물이 없을 때 실수를 할[…]

손 내밀어 그물코를 만져보다.
정세랑 / 2012-11-01
소행성 랭보 / 김태형

     [연재 에세이]     소행성 랭보 ― 사막의 미 6   김태형(글/사진)              자이릉, 언덕 위의 샤먼      산간고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쉬었다 가려고 어느 게르 앞에 멈췄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티다른 데 없는 평범한 가족이 살고 있는 게르였다. 바로 옆의 작은 언덕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게르 옆에 화덕을 만들어 솥을 하나 걸어 놓았을 뿐 풀포기 하나 찾을 수 없는 황량한 지대만 펼쳐졌다. 둘러봐야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 괜스레 남의 집 살림살이나 들여다보려고 게르 안에 들어섰다.    서너 살쯤 된 두 아이들과 아내가[…]

소행성 랭보
김태형 / 2012-11-01
야구란 무엇인가 (제8회) / 김경욱

     장편연재_제8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여관 근처 기사식당에서 돈까스와 된장찌개로 아이와 자신의 배를 채운 사내는 염소의 흔적이 끊긴 곳으로, 목사가 일러준 동네로 차를 몰고 돌아간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차를 세운다.    불펜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싫어.    아이가 간밤에 무슨 꿈을 꿨는지, 꿈결에 무슨 낌새라도 챘는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아빠는 선발투수고 진구는 구원투수잖아. 구원투수는 불펜에서 기다려야지.    선발투수가 계속 던질 수는 없어.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내는 말문이 막힌다. 혹을 떼려다 혹에게 보기 좋게 한방[…]

야구란 무엇인가 (제8회)
김경욱 / 2012-10-31
일본식 정원과 글쓰기의 미 / 강수미

     사유의 드로잉_제3회     일본식 정원과 글쓰기의 미   강수미 (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내가 교토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혹은 도시 전체가 일본 전통문화의 정수로 정교하게 꾸려진 그 유서 깊고 아름다운 곳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길가 하수도를 덮고 있는 대나무 덮개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참 아름다웠다고. 직사각형 하수도 구멍에 딱 맞는 길이로 잘린 중간 두께의 대나무들이 군더더기 없이 일렬로 반듯하게 묶여 있는 그 덮개에서 나는 일본인들이 사물을 대하는[…]

일본식 정원과 글쓰기의 미
강수미 / 2012-10-31
나는 광대다 / 장정희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나는 광대다
장정희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 이성아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 2012-10-16
바람의 묘지 / 김태형

     [연재 에세이]   바람의 묘지 ― 사막의 미학 5   글/사진  김태형(시인)              이방인      점심이 되자 아무 게르나 찾아가 불쑥 차를 세웠다. 처음 찾아 들어간 게르는 할머니가 대낮부터 마유주에 취해 있어서 손님을 맞이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더 가다가 다른 게르에 들르자 주인이 염소젖으로 만든 아롤과 마유주를 내왔다. 아롤은 딱딱하고 매우 짜서 조금 맛만 보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가 점심을 해먹고 가겠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이 머무는 게르까지 다 내어주고서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게르를 비울 때도 따뜻한 차와 먹을거리를 장만해 놓고[…]

바람의 묘지
김태형 / 2012-10-14
단 한 번의 기회 / 이명랑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 2012-10-02
커피의 맛 / 표명희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_제3회     커피의 맛   표명희            버스가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섰다. 웅은 백팩을 열고 모자를 꺼냈다. 책과 잡동사니에 짓눌려 모자는 쭈글쭈글했다. 비틀어진 챙을 바로잡고 주름을 폈다. 그걸 쓰려다 웅은 멈칫 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웅은 모자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쿨하게 마무리하는 거다. 마침 자연스럽게 ‘컴백 홈’할 수 있는 핑곗거리도 생겼다. SAT 학원이 다음 달 이전을 하게 된 것이다. 학생에게 입시 관련 일만 한 무기가 어디 있나.    ‘학원 끝나고 이따 새로 생긴 커피 전문점으로 와.[…]

커피의 맛
표명희 / 2012-09-22
우린 이제 겨우 열여섯 / 구경미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_제2회     우린 이제 겨우 열여섯   구경미           1         이른 아침부터 집 안이 시끌벅적했다. 말소리 웃음소리 발소리, 그리고 싱크대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 오늘도야? 잠에서 깨자마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꼭꼭 닫아건 방문을 넘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안에는 군침이 돌고 배 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깨자마자 느껴야 하는 식욕이라니,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엄마의 계모임 회원들이었다. 아줌마들은 벌써 몇 주째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몰려와 김밥을 쌌다. 이게[…]

우린 이제 겨우 열여섯
구경미 / 201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