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외 1편 / 신준영

[창작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신준영           옆구리를 스쳐간 두 개의 칼자국이 좋아       우리 중에 나만 아는 폐허       나만 만질 수 있는 어둠이 좋아       두 자루의 손목이 지나간 피의 길을 따라가       밤의 허리를 관통한 침묵의 총성이 좋아       우리 중에 나만 아는 골짜기       나만 통과할 수 있는 응달의 미래가 좋아       두 그루의 연필이 자라는 벼랑의 잠을 좇아가       우리들의 뾰족함이 밤의 귓불을 찢고       진주처럼 박히면 어쩌나      […]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외 1편
신준영 / 2021-04-01
우리가 지나온 길 외 1편 / 김유림

[창작시]     우리가 지나온 길     김유림           우리가 지나온 길에 대해 묘사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있다. 물소리가 들렸다고. 그것은 내게만 들렸다고. 물소리는 아니야 아니야 말할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다면. 흰 저수조를 내가 이미 안다면.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대로였고     나무도 그대로였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대리석 난간과 면하고 있었고 대리석 난간은 나무들을 가두고 있었다.     나무들은 나무들이 만드는 빈 공간을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 연인이라면 그곳에서 키스를 한다.       내[…]

우리가 지나온 길 외 1편
김유림 / 2021-04-01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외 1편 / 권창섭

[창작시]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권창섭           까스뽈, 가스불, 아무래도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온 것 같아, 가스불, 그런 것만 같아, 뽈쓰까, 우째야쓰까,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계속 불붙어 있을 것만 같아, 가스불, 크루프니크★가 졸아붙고 있을 것만 같아, 크라이시스, 냄비가 달아오르고 있을 것만 같아,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회기로, 회기를 회귀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달려가야만 하는데, 설마 끄고 나온 것이면 어떡하지, 가스불, 억울할 것만 같은데, 울컥할 텐데, 후회할 텐데, 끝도 없이 뒤바뀌는 생각, 한결도 같이 달라붙어 있는 두 발, 앞뒤를 자꾸 거스르는 시간, 돌아갈 수도, 돌아가지 않을[…]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외 1편
권창섭 / 2021-04-01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외 1편 / 성미정

[창작시]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성미정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를     기다리며 꽃을 꽂았다     어떻게 꽂아야     질서가 있는지     어디를 잘라야     꽃들의 리듬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꽂았다     물컹하거나 풋내가 나거나     비린내가     나는 꽃들을     이름은 모르지만     꽃인 것들을 꽂았다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죽어버린 날들보다 슬펐다       얼마나 자주 목도했던가     나의 죽음을     그렇다고[…]

꽃병이라는 곳에 꽃을 한 무덤 꽂고 외 1편
성미정 / 2021-04-01
Ω, 징글 올더웨이 외 1편 / 허은실

[창작시]     Ω, 징글 올더웨이     허은실           깔끔하죠, 육십 촉 전구가 갑자기 퍽, 죽어버린 거예요. 존재하는 일은 피곤해요. 열이 빛을 내는 온도까지 징글 징글 올더웨이. 일반 백열전구는 필라멘트의 저항에 의해 빛을 냅니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금속 필라멘트의 저항은 증가합니다. 징글벨 징글벨 징글 선생님 핫식스 좀 드실래요, 몬스터 에너지 천하장사 소시지. 저항이 증가하면 전류가 감소되고, 전류가 감소하면 필라멘트의 온도가 내려가므로 저항은 다시 감소합니다. 이러한 피드백 작용의 반복으로 안정된 저항값에 도달합니다. 멀쩡하게 멀쩡한 사람들은 어떻게 안정된 저항값을 찾아냅니까. 전구의 죽음은 잘못 산출된 불안정한 저항값인지 몰라. 어떤 퍽,은[…]

Ω, 징글 올더웨이 외 1편
허은실 / 2021-04-01
386번지 / 이광재

[단편소설]     386번지     이광재           엄마 생일에 맞춰 고향에 내려간 날 서울에서 딸이 온다고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엄마표 동태찌개 같은 것. 아마도 엄마는 나를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엄마의 지인들은 자신의 딸에게 관심을 갖듯 걸핏하면 나에 관해 물었다고 한다. 늬 딸은 사학년이 되었겠구나, 벌써 대기업에 취직한 건 아닌지 몰라, 외국유학을 보낼 생각인가……. 그때마다 엄마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고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고 했다. 군 단위 소읍도 아닌 도청소재지에서 그해에 내가 간 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은 세 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적을 둔 동사무소와[…]

386번지
이광재 / 2021-04-01
동쪽 외 1편 / 송찬호

[창작시]     동쪽     송찬호           우산이 날아간 곳     최초의 점모시나비협동조합 설립 흔적이 남아 있는 곳     하얗게 피부병을 앓는 자작나무들이 치유를 위해 군락을 이뤄 사는 곳     길가에 슴슴한 보리빵집이 있고 그 너머     종달새 고공 활강장이 있는 곳     옛날에서 더 먼 옛날로 가는 기차역이 있는 곳     의자의 발톱을 깎아 죄다 모아 버리는 곳     아코디언 주자가 안경을 잃어버린 곳     무지개가 연애하다 자러 가는 곳     노을이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던 곳                […]

동쪽 외 1편
송찬호 / 2021-04-01
군산 한길문고 (제1회) / 한길문고

[책방곡곡]       군산 한길문고(제1회) 선데이북     사회자 : 김우섭 참여 : 박세영, 이수진, 이지혜, 이진우, 최다은           사회자 : 모임 전에 각자 책을 추천하고 투표에 부쳐 수진 님이 추천하신 『나와 아로와나』라는 소설이 선정되었는데요. 먼저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이수진 : 제일 밝은 느낌을 주는 제목의 책으로 골랐습니다.     사회자 : 그러면 각자 책에 대한 한 줄 평을 나눠 볼까요?   박세영 : 무난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읽었던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 이렇게 쓰는[…]

군산 한길문고 (제1회)
한길문고 / 2021-04-01
삶은 달걀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 최수철

[단편소설]     삶은 달걀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최수철           1. 삶은, 삶은 달걀이다     유럽의 한 지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 날, 호젓한 강변에 자리 잡은 작은 호텔에 묵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내가 창가의 탁자에 앉자, 여종업원이 다가와서 물었다.     “달걀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오래전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제는 프라이드 에그와 스크램블드 에그, 오믈렛 중에서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프라이드 에그에는 서니사이드 업과 오버[…]

삶은 달걀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최수철 / 2021-04-01
화요일 외 1편 / 장수양

[창작시]     화요일     장수양           등에 들판을 문신했다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쉬다 갔다       케이크처럼 얌전하게 침대에 엎드렸다 문신사가 내 위로 흰 파라솔을 드리웠다     사람들은 그늘에서 남몰래 잠들고     문신사는 고요한 목소리로 녹색 등을 읽어 주었다 어떤 이는 미소 지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다 깨어났다     문신사가 자리를 비우면 잠꼬대가 들려왔다 재미있어서 나는 대답도 했다     어느 날엔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혼자 여기 온다     그는 꿈에 나온다 하루는 살아 기쁘다고 울고 하루는[…]

화요일 외 1편
장수양 /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