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편지

 

[편집위원 노트]

 

 

사라진 편지

 

 

김미월(소설가, 본지 편집위원)

 

 

 

 

    두 명의 영국 신사가 인도의 외딴곳에 있는 차 재배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클리브와 제프리였다. 클리브는 우체부가 올 때마다 한 아름씩 편지를 받는데 제프리는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제프리는 클리브에게 편지 한 통을, 당시로는 상당한 액수인 5파운드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좋아.”
    클리브는 편지를 제프리 책상 앞에 늘어놓았다.
    “자, 마음대로 골라 봐.”
    제프리는 우편물을 살펴보다가 작은 편지 한 통을 골랐다. 그날 저녁, 클리브는 지나가는 말로 제프리가 고른 편지의 내용을 물었다.
    “상관할 것 없어.”
    제프리는 대답했다.
    “그럼 누구한테서 온 건지나 말해 줘.”
    제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진 클리브는 계속 졸랐으나 제프리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언성을 높여 말싸움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보름 후, 클리브는 두 배의 가격으로 편지를 되사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제프리는 ‘절대로 안 돼’라고 했다.

 

    이상은 서머싯 몸이 쓴 글 「두 영국 신사(Two English Gentlemen)」의 전문입니다. 얼핏 읽으면 쓰다 만 것처럼 느껴지지만 몸은 더 이상 쓰지 말고 그대로 마쳐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위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좀처럼 그 여운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클리브가 끝내 읽지 못한 편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게 만약 정말 중요한 편지였다면, 그래서 클리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하나. 아니, 클리브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해도 편지를 보낸 이에게는 중요했을 수 있지 않은가. 클리브가 그것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신인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또 어떻게 하나.
    남의 일로, 심지어 실존인물도 아니거니와 실존했다손 쳐도 이미 한 세기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이들의 일로 저는 전전긍긍했습니다. 나중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숱한 사라진 편지들을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누군가 제게 보냈으나 어떤 사고로 제가 받지 못한 편지, 제가 누군가에게 보냈으나 어떤 사정으로 그가 받지 못한 편지, 세상에 그렇게 사라진 편지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다못해 제 집 우편함에도 벌써 여러 해 전에 이사 가고 없는 전 세입자 앞으로 편지가 온 적이 여러 차례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의 행방에 대해 고민하는 게 문학 아닐까 하고요. 사라져버린 편지, 어긋난 인연, 운명이라는 저 거대한 손의 장난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인간들. 그들이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을 상상하는 것 말이지요.

 

    《문장》 웹진 3월호에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곳,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아직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 아마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것,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작품마다 곡진하게 배어 있지요.
    연재 3회를 맞는 정지아의 장편소설 『도덕의 구조』, 강태식과 김혜나의 단편소설, 이름 대신 귀 사진을 보내온 소설가 Q의 익명 소설, 그리고 이름 석 자만으로도 존재감이 지면 전체를 압도해버리는 문단의 큰 시인들 백무산, 김정환, 이시영, 천양희, 문정희의 신작이 있습니다. 물론 젊은 시인 김성규의 시도 그 틈에서 당당히 제 빛을 발하고 있고요. 연재 마지막 회라 그 아쉬움이 더 큰 장이지와 황인찬의 에세이 테라스, 전상국과 안광복 두 분의 귀한 얼굴을 보고 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학유랑극장 코너는 또 얼마나 특별한지요.
    이 봄날 위의 작가들이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 꼭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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