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트] 의자와 기다림

 

[편집위원 노트 ]

 

 

의자와 기다림

 

 

이영주(시인)

 

 

 

 

    봄이 오면 황사가 함께 온다는 속설도 이제는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불청객이 우리의 하늘을 휩쓸고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안개가 뒤섞여 알 수 없는 디스토피아의 분위기가 한동안 형성되었죠. 하늘은 뿌옇고,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한 기분 좋은 구름의 얼굴을 보기 힘든 날이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그들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겪는 분들도 늘어났죠.
    봄은 올 준비를 마친 것 같은데, 우리 마음까지 뒤흔들던 설렘의 표정이 어쩐지 우울해 보기기도 했습니다. 기후란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저는 미세먼지, 라는 기후적 현상이 미묘하게 일상을 흔드는 이상한 경험 속에 있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따뜻한 공기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네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설렘이란 것이 이렇게 다른 질감으로 오기도 한다니.
    겨울을 통과하고 나면 전혀 만나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봄이 옵니다. 비슷비슷한 일상이 이어져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순간은 알 수 없는 또 다른 순간으로 우리를 끌고 가죠. 매일 매일 집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지나가던 사람들을 일일이 간섭하던 노인 한 분이 봄이 오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파가 몰아닥치는 겨울 동안, 그 의자는 눈을 맞으며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제 녹아버린 물방울들이 찬 기운을 가늠케 할 뿐 의자는 원래의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껴진 것은 아마도 그분이 보이지 않아서일까요.
    의자 앞을 지나다니면서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그분이 저는 불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 앞에서 먼저 걸어가던 연인들. 다정하게 지나가는 커플들을 보면 킬킬거리며 놀리시는 말투도 그들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했을 거예요. 한동안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눈처럼 고독하게 바래 가는 의자를 보면서, 저 고독해 보이는 의자의 모습이 오히려 참 편안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기후가 변하고 있는데, 계절은 다른 계절로 넘어가고 있는데, 완고하고 집요하던 노인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뜻해지는 바람을 느끼면서 기분 좋게 골목을 걸어가지만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뒷목을 휘감습니다. 웬일인지 불편하고 힘들었던 존재가 기다려지고 기다려집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개하는 꽃들이 우리를 들뜨게 해줄 화사한 봄의 기운일까요? 아니면 민망하고 불편한, 묵묵히 한 공간을 채우고 있던 질긴 세월 같은 그분일까요. 골목을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끈끈한 일상을 증명해 줄 그분이 기다려진다니. 이상하게 불편한 설렘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도 해보면서…….
    봄이 왔는데도, 의자는 홀로 고독하게 깊어집니다. 봄이 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알 수 없는 기다림이 깊어집니다.

 

    이번 《문장 웹진》은 풍성한 기운을 가득 담고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우리 시단의 레전드,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밀도 높은 시의 에너지를 보여주고 계신 청년 같은 선생님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시가 삶이 되신 분들, 그분들의 깊고 넓은 시 세계 안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서사의 흡인력과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는 정지아 소설가의 『도덕의 구조』가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폭발하는 서사의 힘을 담고 있는 단편소설로는 김종옥 「유령의 집」, 박선희 「이것이 진짜 ‘레알’이다」, 서진 「지구를 지키는 소년」, 김혜나 「이야기의 이야기」, 익명소설 「비틀」이 펼쳐집니다. 세계의 내부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소설의 축제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에세이 테라스를 독특한 문화 감성으로 채워 준 장이지, 황인찬 시인의 개성 만점 에세이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립니다. 세대적 감성과 문화 코드를 예민한 시인들이 읽어내는 이 작업이 새로운 영역에서 더 넓게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많은 지지를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새롭게 시작되는 에세이 테라스의 필자들에게도 응원을 보내 주세요.

 

    계절이 또 다른 계절을 불러오듯이, 《문장 웹진》은 색다른 감성을 끌고 가기 위해 더욱 재미있는 시도들을 계속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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