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당신을 더 이상 꿈꿀 수 없을 때 외 1편

 

 

그때 내가 당신을 더 이상 꿈꿀 수 없을 때

 


김윤이

 

 

 

 

    그때 내가 더 이상 당신을 꿈꿀 수 없을 땐 국물 묻은 제 일기를 들려주겠어요 나만이 소장한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책 실은 채워 넣었으나 무얼 적어도 공란 같던 매일을, 그때 내가 더 이상 당신을 꿈꿀 수 없을 때 나를 작파하여 사랑했던 책을 몸 팔듯 잊고 끼니를 떠먹을 때마다 밥알이 식도를 타고 위장을 타내려가는 당연한 주중의 요일들일 때 게다 내 특별한 당신까지 좀 또 잊은 듯해 용기(容器)에 얼굴 박고 울고 싶을 때 당연시되는 남남으로 그리 사랑의 명줄이 끊겼을 때 저의 나날을 좀 알려주겠어요 실은 무얼 넣어도 창자가 달라붙던 공복의 그날을,

 

    저지난밤 꿈에 실은 저지난해 허물어진 백반집에 갔어요 이별의 근린에서 멸치육수를 마셨어요 시원하게 뽑아낸 육수가 나도 당신에게 해먹이고 싶은 맛이어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황량한 풍경 속 폐허를 따라 걷는 행인을 봤나요 애인에게 매달려 줍쇼, 하는 걸인처럼 동냥을 해 사랑하는 여잘 봤나요 그 여자가 나예요 이 세상의 멸시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걸까요 몇 차례 울궈먹는 얘기여도 그리 말할래요 당신은 공히 한 세월을 이어 가던 내 일기 같았어요 먼저 사랑한 건 그였나요 혹은 나였나요 혹은 꿈에도 몰랐던 내 꿈이었나요 근심의 실꾸리가 풀리고 당신의 온기가 채워진 무렵이었나요 무엇인가요 무엇인가요 무엇인가요 남겨 두고 떠난 적산가옥 몸 한 채로 살아지게 하는 건 누구인가요 차마 주저앉을세라 갈 수도 올 수도 없이 살아지게 하는 건 누구인가요

 

    내 오랜 서적에서 내처 잤던가, 속알 창시 적는 노릇도 그만 했음 좋겠네 아아, 당신 야박스레 예삿일로 넘긴 일 그러나 난 한때 식음을 전폐한 일 그러고서도 결별 못 한 나와 내 이별 일

 

 

 

 

 

사랑을 둘러보다

―세잎 클로버

 

 

 

이빨을 몽땅 빼뜨린, 내 늙은 사랑은 또 싸움꾼으로 돌변해 어딜 가네
너무도 외롭기 때문에 불과 어제 일을 잊고 열렬히 사랑해야 한다는 듯이
(실은 한 차례 거름 없이 초침에 찔린 세월도)
날 좇아 쓰라린 내상에 더디 피 흘리고 있었음이여,

 

 

 

 

 

걸음은 신발을 끌고 나가 홀연히 그와의 지난 꽃길에 내닫고
생각은 그가 따서 차려 준다던, 흰 꽃밥에서 지칫지칫 발 디뎌 밟다
찾아낸 네잎 클로버 두 개와 오잎 클로버 한 개
두 개 행운과 낭패스런 불행 하나였네

 

세월 가도 꽃말은 게 서서 한 발자국 도망도 못 하였음을,
셈법으로 곱게 엄지 검지 두어 번 휘어감아 줄기 꿰어 돌렸던가
세잎인데 이파리 돋을 때 상처가 껴 한 두어 장 더 난다고
몰라 뭐 행운이야 꽃 같은 거 그런 거, 툭 내쏘는 한 마디로
설핏 저물어 가던 나는 어느덧 덧난 잎
내게 들여 놓았네
찌르르 심장 뛸 때, 안 들키려던 낌새 같은 거 그런 거
반복된 손가락짓이 채근인 듯 그가 성가셔했고
우리 사이 낀 떨칠 수 없는 감정이
말라버린 흙덩이로 떨어졌네

 

행복에서 나아가던 행운이여 너는 이내 저만치 돌아서던
오오, 행운에서 더한 상황으로 나아갔던, 딱한 불행이여
나는 이파리를 하나 떼어내어, 이젠 행운 세 개 ……그러니, 내 몸 부위마다 연한 꽃으로 펴날래
나는 이파리를 두 개 떼어내어, 욕심 하나뿐야 ……참도 행복해 그러니, 몰래 돌아올래
나는 이파리를 모두 건너뛰어, 나뿐이야 ……그러니, 제발 그냥 돌아와

 

흙덩이 묻은 발 보이잖는 농이 들었나 쬐그만 티눈 덧났나
아, 나는 여태도 못 떠나고
째서 빼낼 수 없던 상처로 클로버가 되어 가면서

 

별달리 살아내는 돌연변이여서 거듭 덧나는 게 아니잖아
필요한 건 크낙한 행운이 아닌 거, 쬐그만 꽃 같은 거 그런 거
내게 필요한 건 많은 게 아니잖아
생살을 부위부위 저며 성한 몸 뜯던 날에는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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