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간공간 외 1편

 

 

성간 공간

 


김중일

 

 

 

 

*

      성긴 별과 별 사이의 가리어진 별에는
      부재자의 외투가 걸려 있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푸른곰팡이 핀
      부재자의 외투가 걸려 있다.

 

      단식을 하는 그와 과식하는 나 사이. 옥상과 옥상 사이. 철탑과 철탑 사이. 무덤과 무덤 사이. 지구 반대편 폭격과 폭격 사이에 내걸린 부재자의 잿빛 외투 속에서, 오늘은 우주선이 솟구쳐 오르는 마술이 상연되었다.
      농성장에 불시착한 우주선. 채집한 바람의 체중을 손바닥에 기록하며 코스모스 꽃잎 위로 내려앉은 외계인에게, 반파된 우주선으로 인해 상심하는 외계인에게 나는 지구상의 모든 문명의 집약체인 백지 한 장을 건넸다.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하루와 하루 사이를 잇는 길고 광막한 자정의 플라스마를 통과할 수 있는, 종이비행기 접는 법도 알려줄 것이다.

 

*

 

      나는 누가 내다버린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내 무릎과 무릎 사이로 꽃과 나비와 여치들이 타닥타닥 푸른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돌무덤 같은 내 무릎 속에는 귀뚜리가 밤새 울고 멸종된 별이 묻혀 있다.
      그를 등에 업고, 그의 무릎 사이를 숨 가쁘게 걷고 있다. 그의 무릎과 무릎 사이는 별과 별 사이처럼 멀고, 그는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정적만큼 무겁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미농지처럼 떨리는 밤하늘에 손가락 끝으로 뚫어 놓았던 별. 별과 별 사이에 이별 이후 내내 걸려 있던 부재자의 외투 한 벌을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그의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만남과 이별 사이. 시선과 시선 사이. 어제의 죽음과 내일의 죽음 사이. 세상 모든 사이로
      오늘 그는 내 왼쪽에서 걷고 있다.

 

      내 왼쪽 어깨와 그의 오른쪽 어깨 사이
      단차 큰 계단이 있고
      계단을 밟고 다락으로 오르는 별이 있고
      그의 왼쪽 어깨와 내 오른쪽 어깨 사이
      비 오는 하루가 통째로 들어차 있고
      그의 왼쪽 어깨에서 시작되어 지구를 한 바퀴 휘감고
      내 오른쪽 어깨로 이어진 무지개가 있다.
      성간풍에 휘날리는 부재자의 외투 안주머니에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가 훔쳐간 내 심장이 아직 뛰고 있다.
      그가 백지로 접어 날린 종이비행기에 올라타고
      지금 난 성간 공간을 건너고 있다.

 

 

 

 

 

관절이라는 매듭

 

 

 

 

      그는 혁명가. 그는 망명 작가. 그러므로 그는 방랑자.
      나는 방랑자의 빵을 싼 보자기였다. 빵 냄새 나는 빈 보자기였다. 바람으로 자은 보자기였다. 나는 떠도는 바람이었다. 밥 짓는 연기처럼 날리는 바람이었다. 장난스런 방랑자가 모닥불을 훔쳐 쬐며 잠든 나의 끝단을 그저 한번 묶었다 풀었다. 하릴없이 매듭을 지었다 풀었다. 미처 다 풀리지 않은 매듭의 모습으로 나는 처음 밤을 맞았다. 나는 지상과 공중 사이를 묶은 매듭이었다. 나는 내 바람의 체중을 잃어버렸다. 나는 내 귀퉁이에 묶인 매듭들을 구부려, 쪽잠을 자는 방랑자의 얼굴을 매만졌다. 내 손을 잡고 일어나요. 그게 싫다면, 일어나 내 손을 잡아요. 다음날 그로 인해 묶인 매듭은 발목이 되었다. 한순간 나는 우주의 외진 기슭에 불시착했다. 나는 지구라는 거대한 쇠구슬을 발목에 매단 죄수처럼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매듭이 조금씩 늘어 갔다. 나는 창살 속의 개가 되었다가 새가 되었다가 결국에 사람이 되었다. 이미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 내가 기어이 어느 날 섧게 우는 갓난 매듭 덩어리로 땅 위에 내던져졌다. 인생은 얽힌 매듭을 푸는 시간이었다. 지나치게 명민했던 내 친구는 단 이십 년 만에 제 몸의 매듭을 모두 풀고 바람의 태생으로 돌아갔다. 내 친구의 친구는 회사 난간에서 투신하여, 지구라는 거대한 망치로 자신을 내려쳐 호두처럼 단단한 매듭을 단번에 으스러뜨리기도 했다. 부러진 계절과 계절, 하루와 하루라는 관절 사이에 밤이 검고 차가운 쇠심처럼 박혀 있다. 하루는 수만 개로 조각난 관절을 가진 짐승이다. 수십억 년간 지구는 초 단위의 관절을 모조리 구부려 거대한 원형으로 웅크린 짐승이다. 언젠가 순식간에 날개를 펴고 바람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늘 시큰거리는 무릎은 나를 이루는 가장 굵은 매듭.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무덤.
      그는 천진한 학살자, 날 이곳에 묶어 둔 방랑자. 나는 그가 나를 혁명적으로 다시 써주기를 희망한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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