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는 마른다
이제니
너는 목소리에 울음이 배어 있다
어째서 어째서냐고 나는 묻지 않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했다
부모는 오래전에 떠났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라는 체념이 너를 키웠다
주저함이 없지 않았지만 다짐하듯 너는 떠났다
그 언덕을 그 바다를 떠난 이후로도
세상은 온통 언덕과 바다였다
너는 너에게 탄생축하 카드를 보냈다
죽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라고
다시 태어난 너는 점점 말라 갔다
슬픔은 액체 같은 것
울고 나면 목이 마른다는 것
성탄일에는 크고 세모난 나무를 샀다
나뭇가지마다 은구슬 금구슬을 매달았다
은구슬 위에는 은 얼굴이
금구슬 위에는 금 얼굴이
밤의 나뭇가지에는 밤의 새들이 앉아 있었다
나뭇가지는 죽으면 천천히 말라 간다고 했다
기억이 너를 이끌지 않아도
너는 점점 더 흙과 가까워졌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이후로도 내내
물관을 가진 가지처럼
검은 개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가 있다 검은 개가 검게 있다 검은 개는 검은 얼굴로 검은 개는 검은 입김을 내뿜는다 검은 개는 검은 구멍 검은 개는 검은 얼룩 검은 개가 달릴 때 검은 개는 흔들리고 검은 개가 건너뛸 때 검은 개는 사라진다 검은 구멍 너머로 얼굴 하나가 보이고 건너뛴 자리에는 지나간 것들이 있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친 것
지나친 것들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가 있다 검은 개가 검게 있다 검은 개는 검은 얼굴로 검은 개는 건너뛰고 검은 개는 드러눕고 검은 개는 주저앉고 검은 개는 다가오고 검은 개는 울고 검은 개는 물고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는 검은 개 검은 개가 있다 검은 개가 검게 있다 검은 개는 검은 얼룩으로 검은 개는 검은 구멍이 된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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