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소설]J의 크리스마스

 

 

J의 크리스마스

 

 

김소윤

 

 

 

 

    1.

    현관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고린내가 풍겨왔다. J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그것은 오랫동안 씻지 못한 찝찔한 살내음이기도 했고 환기 한 번 없이 어둑신한 방안에 장시간 머문 노인 특유의 향내이기도 했다. 그는 쿨럭거리며 의미 없는 기침을 내뱉고는 생선 봉지를 신발장 위에 내려놓았다.
    “다녀왔어요.”
    아버지는 대꾸도 없다. 동그마니 웅크린 채 현란한 빛으로 할딱거리는 홈쇼핑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뿐이다. J는 쪼그리고 앉아 발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부츠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겨울 밤거리에서 바짝 얼어붙은 부츠는 쉽사리 아가리를 벌리지 않는다. 바닥에 들러붙은 얼음조각들만 신발장에 던져둔 봉지와 어우러져 격렬한 비린내를 풍겨왔다.
    “얘야 좀 봐라. 저것만 있으면 금방이라는구나.”
    J가 간신히 부츠를 벗어던지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에야, 아버지는 막차라도 놓칠 듯이 다급히 외쳤다. 신경질적으로 파드득거리는 백열등 아래에서 맹렬하게 손가락질하는 아버지의 손에는 푸른색 플라스틱과 돌기가 솟은 스텐으로 이루어진 싸구려 각질제거기가 함께 들려 있었다.
    “저걸 그러니까, 촥 하고 뿌리면 각질들이 지렁이 떼처럼 밀려나오는 거다.”
    “식사는 하셨어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곧 매진될 거야.”
    서로의 말이 입구는 있되 출구는 없는 낯선 터널로 휘말려 사라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답을 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눈을 마주보는 대신에 그는 홈쇼핑에 열광했다. 뚜뚜, 뚜뚜, 아버지가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J는 냉장고에 생선 봉지를 밀어 넣으며, 쇼 호스트의 요란한 외침과 거짓말처럼 벗겨져 흐르는 묵은 각질의 껍질을 못 본 척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 마음에 새겨진 깊은 주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역시 늪에 빠진 코끼리처럼 무거운 걸음을 간신히 떼고 있을 뿐이므로.

 

    오늘도 J는 수백 마리 생선의 배를 따 내장을 후벼내고 소금을 뿌려 봉지에 담았다. 시간대에 따라 호객을 하기도 했고 반짝 세일하는 오징어를 몇 마리씩 양 손에 쥐고 흔들기도 했다. 선배의 지시에 따라 냉동 창고를 오가느라 발끝이 꽁꽁 얼어붙고 귀 끝이 간지러웠지만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는 없었다. 연말연시 특수로 명절의 70%에 육박하는 매출고를 올렸기 때문이다. 매출을 위한 장소, 매출을 위한 인력. 그 답을 얻은 이상 나머지는 군더더기였다.
    대형마트 생선코너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반년쯤 되었다. 그 전에는 돛을 잃은 나룻배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손에 티 하나 안 묻힐 법한 백수라 불렀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직장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직업군이었다. 물론 그러한 직업군에 속하게 되기 전, 그 역시 스물일곱의 건장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찾았다. 하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일은 매번 그의 욕망과 상충된 것이었다. 결국 J는 ‘천천히’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경제가 좀 더 나아지기를, 욕망이 서로 맞부딪히지 않는 곳이 나타나기를. 물론 그 이면에는 링거 방울처럼 적지만 규칙적인 소액의 수입이 발생하는 아버지의 구멍가게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결국 굶어죽지는 않으리라는 알량한 보험 의식이 있었던 셈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낡은 정류소처럼 꼿꼿하게 가게를 지키던 아버지는 그런 그를 타박하며 아무 곳에라도 취업하기를 종용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동네 구멍가게 따위는 파도에 휩쓸린 미역줄기처럼 희망이 없다는 설교와 함께였다.
    그럼에도 J가 삼 년이나 그 생활을 할 수 있던 건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녀는 평생 까탈 없이 살아온 순종의 습관처럼 아들의 선택에 고개를 숙였다. 때론 남편의 잔소리를 막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무시하며 한결같이 삼시 세끼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된장찌개나 콩나물국 같은 소박한 찬과 함께 올렸다. 틈나는 대로 가꾼 밭에서 나는 감자나 고구마 등속은 아들의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책을 읽든 게임을 하든 소주라도 한 잔 하러 가든 늘 그렇게 올 풀린 스웨터에 꿰맨 솜바지를 입은 채 아들의 뒤에 서 있었다. 아들의 기다림이 대단히 고귀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새 모종을 심겠다며 밭을 일구던 어머니가 쓰러진 것은 한여름 삼복더위 속에서였다. 병원에서나마 버틴 것이 겨우 열흘,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J가 정작 어리둥절한 것은 어머니의 빈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발작이었다.

 

    “각질…… 이놈의 각질…… 이것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는 어머니가 쓰셨던 각질제거기를 어디든 들고 다니며 발바닥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만 좀 하시라 성화를 내고 버려도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떨 땐 누런 밥을 퍼 담다가 아버지의 발끝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밥을 담을 때조차 그 짓을 하는 것이다.
    마침내 J는 아버지를 대신해 억지로 꾸려가던 구멍가게에 폐업 선언을 써 붙이고 대형마트의 모집공고를 좇아 나섰다. 온 몸에 비린내가 배고 월급도 적었지만, 유리알처럼 투명한 생선들의 눈을 내려다보며 배를 따는 것이 아버지를 마주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쉬웠다.

 

 

    2.

 

    따뜻한 물로 몇 번이고 반복해 샤워를 마친 J가 싸구려 매트를 깐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억눌러왔던 하루의 피로가 순차 없이 몰려와 온 몸으로 퍼진다. 그는 어깨를 두드리다 다리를 주무르다 종내는 큰 대자를 그리며 드러누웠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홈쇼핑의 왁자한 소음도 시나브로 멀어지고, 속살거리듯 창문을 들치는 겨울바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다. 일주일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생각이 지나갔으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도 역시 생선의 배를 따다 지나갈 일이었다. 배꼽 인근에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퍼져나가며 그는 그대로 잠의 나락에 빠질 찰나였다.
    오도도독, 하고 낯선 기척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J는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십 년은 족히 넘은 이 오래된 한옥에 쥐나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나 언젠가 겨울 추위를 피해 집으로 숨어든 산토끼만한 쥐에게 물렸던 경험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남아 있었다. 그는 발딱 일어나 전깃불을 켰다. 부모님이 쓰시다 물려준 자개가 다 떨어져나간 낡은 장롱 네 짝과 군데군데 녹이 슨 철제 책상 위로 말라죽은 고무나무가 가뜩이나 누추한 방안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청소한 지 오래 된 바닥의 마른 분진과 쓸데없이 크기만 한 방안의 헛헛함이 음울함을 더했다.
    쥐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지, J는 중얼거리며 침대와 장롱, 책상 따위를 되는대로 두들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도도독, 비슷하면서도 보다 분명한 기척이 느껴진다. J는 그대로 우뚝 서서 소리가 나는 쪽과 그 정체를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보이지 않아도 이것은 분명 굉장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생쥐가 맞는다면, 국내 최대치의 기록이 되리라. 그리고 확신컨대 그 위치는 바로 장롱 위였다. 의자를 대 놓고 장롱 위가 보이도록 발꿈치를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도, 그는 엄청난 크기의 생쥐나 산짐승이 그곳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한옥의 특성상 굵은 대들보가 빗장뼈처럼 가로지르는 천장은 높았고 장롱은 낡았어도 꽤 견고하며 너비의 폭이 컸다. 한 떼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경우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도록 J는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책까지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묵직한 먼지가 자욱하고 언제 올라갔는지 알 수 없는 잡동사니가 그득한 장롱 위에 배암처럼 몸을 도사리고 있는 것은, 한 ‘마리’의 낯선 여자였다.

 

    여자가 어째서 자신의 방에, 그것도 장롱 위에 올라앉아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그대로 선 채 자신의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창문이 커다랗기는 하지만 보안망이 되어 있어 파리나 모기 따위가 아닌 다음에야 제 맘대로 들락거릴 수는 없다. 방문 밖에는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하루 종일 버티고 앉아 홈쇼핑을 보고 있으므로 그의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디로 들어온 것일까? J는 다시 여자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상대가 남자도 아니고 덩치까지 유난히 작은 여자인 바에야 들고 있던 두꺼운 책도 우스워진다. 그녀는 옷이라 하기도 뭐한 초라한 천을 둘러쓰고 덤불 같은 머리를 한 데로 묶어 털모자 밑에 쑤셔 넣었다. 마흔 중후반의 거무스레한 얼굴은 제법 깨끗했으나, 처분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마주잡은 양손의 손톱은 더러운 더께가 더덕더덕 붙어 자신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J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인다. 당장에 여자를 끄집어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칠 수도 있고 경찰을 불러 주거침입죄로 콩밥을 먹일 수도 있다. 지독한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욕정을 발산하는 치사한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J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의미 없는 짓이다. 집으로 숨어든 산짐승이나 벌레 떼와 마찬가지로 그저 내쫓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의자에서 내려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며 물었다.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다.
    J는 담배 연기를 날리기 위해 창문을 여는 동시에, 미니 전기스토브를 켜 발밑에 두었다. 마트에서 일을 시작한 후 그는 늘 발이 시렸다. 쉬는 날 사우나에 가서 몇 시간이고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어도 발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면 기겁을 할 만큼 각질이 두툼하게 갈라졌고 곳곳에 티눈도 박혔다. 생선코너의 선배는 그가 유난한 편이라고 했지만 J는 그것이 망할 냉동 창고 때문이라고 믿었다.
    “일단 내려오세요.”
    여전히 장롱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여자가 힐끗 고개를 내밀었다.
    “해치지 않을 건가요?”
    불투명한 속지처럼 얇고 가는 목소리였다. J는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턱 밑으로 세월만큼 흐무러진 먼지 덩어리가 달랑거렸다.
    “내려올 때, 먼지가 쓸리지 않게 조심해줘요. 먼지를 이불 삼고 싶지는 않으니까.”
    장롱 바로 밑은 J의 침대였다. 여자는 다람쥐처럼 종종거리며 장롱 끝까지 기어오더니 놀랄 만큼 가볍게 뛰어내렸다. 자락 끝마다 빤들빤들한 얼룩이 들러붙은 그녀의 옷에서 묵은 빨래 냄새가 역하게 밀려왔다. J는 그동안 그 냄새를 맡지 못했던 것이 자신에게서 나는 비린내 때문이었을까 생각하며 코끝을 창 쪽으로 돌렸다.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맞은 편 의자에 걸터앉은 여자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생쥐였다. 그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햄스터예요. 이렇게 추운 날, 누가 우리째 버려두었지 뭐예요.”
    여자는 다른 주머니에서 호두나 땅콩, 당근 같은 게 섞인 비닐봉지를 꺼내 손바닥에 쏟았다. 햄스터가 그것들을 오도독 오도독 맛있게 갉아 먹는다. 여자는 흡족한 얼굴로 그 등을 쓰다듬었다.
    “안 들킬 수 있었다니. 대체 얼마나 있었던 거예요?”
    “보름쯤?”
    너무도 기가 막히니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리어 그는 아리송했다. 만약 저 햄스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았더라면 몇 달이고 장롱 위에 여자를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밖에서는 아버지가 홈쇼핑 채널을 돌리며 각질에 관련된 제품들을 사들이고 자신의 발끝엔 날마다 딱딱한 각질과 티눈이 생겨나는데, 어머니의 골분은 밀가루처럼 풀풀 날아 야산을 그림자처럼 너울거리고 장롱 위에는 낯선 여자와 버려진 햄스터가 살고 있다.
    J는 하릴없이 웃고 말았다. 여자도 무슨 생각에선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따라 웃었다. 햄스터가 당근 조각을 입에 문 채 눈을 크게 떴다. 여자는 웃음 사이사이 안주처럼 그의 집이 일곱 번째 집이라고 말을 섞었다. 어떤 집에서는 일 년도 넘게 살았다고. 장롱 위에 숨어 있다 주인이 외출하면 내려와 화장실도 가고 주방도 가고, 무릉도원이란다.
    “뭣 때문에 그런 곳에 사는 거죠?”
    여자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목 쪽으로 쑤셔 넣어 벅벅 긁었다.
    “처음엔 거리에서 지냈는데, 누가 알려주더라고요. 이곳이야말로 최적이라고.”
    최적이라니. J는 이런 때에 과연 최적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것일까 고개를 흔들었다.
    “퍽들 무책임하군요. 무전취식을 서로 추천까지 하다니.”
    “그래도 피해는 주지 않아요. 먹는 것은 밖에서 해결하니까.”
    여자의 당당한 태도에 J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존재 자체가 피해라고요.”
    “발각될 때까지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 상관없잖아요.”
    어긋난 부부처럼 말싸움을 하던 둘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뻔뻔하군요.”
    “너그럽지 못하군요.”
    기가 찬 J는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어 여자를 내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여자의 발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쭈뼛쭈뼛 움직여 미니 스토브 쪽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보았던 때문이다. 낡은 양말 사이로 삐져나와 있는 여자의 발꿈치는 오래된 바게트처럼 딱딱하게 갈라져 있었다. 키높이 구두도 필요 없을 만큼 두툼한 각질이었다. J는 그런 발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도 보았다.

 

    어머니가 쓰러져 있던 열흘 동안 J는 병실을 지켰다. 아버지는 한껏 목청을 높여 어머니를 불러대고 흐느끼며 친인척과 통화를 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지는 않았다. J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병실로 향했고 종일토록 질리지도 않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간호사가 몸을 닦아줄 때는 거들어 몸을 부축했고 기저귀를 갈 때는 위치를 맞춰준다든지 하며 기꺼이 일을 도왔다. 그렇다고 해서 J가 특출 난 효자는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가 쓰러졌고 병원에 입원을 했으며 자신은 시간이 있다는 단순한 공식이었다. 그러나 열흘 뒤 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삐거덕거리는 이동 침대에 실려 영안실로 향할 때에, J는 보았다. 천사의 날개처럼 새하얀 덮개 아래 삐죽 솟아나온 어머니의 두 발을. 그 발바닥에 피어난 산호 같은 각질 덩어리를.

 

    J는 여자의 부탁대로 얼마간의 말미를 주기로 했다. 이게 무슨 셋방도 아니고 말미를 주어야 하냐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여자가 다른 집의 장롱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 여자는 햄스터도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절대 그에게 거슬릴만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곤 구름처럼 표표히 장롱 위로 기어 올라가 배부른 햄스터와 함께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장롱 위에 무언가 있다는 이물감이었다. J는 곧 냉정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3.

 

    다음 날 J는 일찌감치 출근하기 위해 일어났다. 장롱 위 여자는 이미 없었다.
    샤워를 마친 그는 커다란 프라이팬에 고등어를 구웠다. 아버지의 세 끼니를 위한 세 마리의 고등어 구이였다. 늦게까지 홈쇼핑을 시청한 아버지는 아직 기상하지 않았다. 곧 일어나 홈쇼핑 채널을 보며 고등어를 반찬으로 식사를 할 것이다. 매일 고등어, 꽁치, 삼치, 조기 같은 생선만 반찬으로 올려도 불만은 없었다. 아버지의 입 속에서 씹히고 찢겨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저 습관인지도 몰랐다. 같은 시간, 같은 양의 식사를 하고 같은 칫솔질과 같은 속옷을 갈아입는 행위처럼.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어머니가 없는 대신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J는 신발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츠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장롱 위에 여자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뿐.

 

    비닐로 된 앞치마를 하고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정육코너의 김이었다.
    “먹을래요?”
    J는 김이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식품코너 쪽에서 남은 식빵에 베이컨을 끼워 만든 토스트였다. 가끔 여직원들이 나눠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J는 주린 배가 아릿한 것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닦고 있던 걸레를 양동이에 넣어 철퍽철퍽 헹구었다.
    “오빠는 이럴 때보면 참 답답해요. 그냥 먹으면 될걸.”
    스스럼없이 멋쩍은 칭호를 붙이는 김에게 놀라 J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미소를 띠우고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꼬리를 잡은 김의 붉어진 양 볼에 수줍은 교태가 흘렀다. 스물세 살…… 네 살쯤 되었을까. 가끔 담배 피우는 직원들이 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주로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대해서였다.
    “그냥 선배라고 불러요. 그거 불편해서.”
    김이 복숭아처럼 뽀얀 뺨을 폭신하게 숙이며 웃었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선배님으로 잘 알아 모실게요. 아무튼 이건 드세요. 제가 일부러 만든 거예요.”
    김은 토스트를 선반 위에 올려두고 나간다. J는 나머지 청소를 끝내고 나서 잠시 망설이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접시를 돌려주어야 하니 먹을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밥 알 위에 떨어진 아버지의 각질과 침대 위에 조가비처럼 올려 있던 어머니의 발을 떠올리고 만다.
    그래서 J는 늘 식사 시간이 고역스러웠다. 입 속에 토스트를 집어넣으며 그는 최대한 김의 복숭아 같은 두 뺨과 말꼬리처럼 매끄러운 머리칼을 떠올리기로 한다. 김의 작지만 또렷한 눈매와 귀엽게 들려진 콧날과 펭귄처럼 부푼 작은 입술…… 유니폼 위로 솟은 봉긋한 가슴…… 어쩐 일인지 몇 달 만에 빵과 베이컨이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번엔 촘촘한 먼지를 스팽글처럼 매달고 있던 장롱 위의 여자가 떠오른다. 그 쭈뼛거리던 발끝이 떠오른다. 결국 그는 반쯤 먹다 만 토스트를 접시위에 남겨두고 돌아섰다. 하룻밤을 꼬박 달려 도착했을 맥빠진 생선들의 배를 따는 일이, 식욕을 채우는 쪽보다는 덜 거북스러웠다.

 

    퇴근길에 J는 뒤를 따라오는 인기척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생선 일을 시작한 후로 그는 샤워를 하기 전까지 누군가와 가까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뒤따르는 사람이 김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껏 거리를 둔 채 J가 말했다.
    “무슨 일이죠?”
    김이, J가 토스트를 먹을 때 떠올렸던 앙증맞은 입술로 싱긋 웃어보였다.
    “할 말이 있어요.”
    한 발을 가까이 떼려는 김을, 그는 손짓으로 막아 세웠다.
    “거기서 해요. 그 자리에서.”
    “여기에서요?”
    두 사람 사이에는 열 걸음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그 사이로 눈도 섞이지 않은 매서운 바람이 사이렌처럼 왱왱 맴돌았다.
    “너무 멀어요.”
    김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지만, J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만 더 다가와도 자신의 지독한 생선 내가 그 귀여운 콧날을 찡그리게 할 것 같았다.
    “고약한 성미네요. 그냥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려는 건데.”
    그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희멀건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 둘이, 말이에요?”
    “우리 둘이요.”
    J는 본능적으로 김의 봉긋 솟은 따뜻한 가슴을 떠올린다. 술잔을 기울이며 수줍게 웃는 평범한 남녀의 모습과 탁자 위에 굴러다닐 강냉이 같은 것도 떠올린다. 얼큰하게 취하고 나면, 촉촉이 젖은 입술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고 잠시나마 부모의 허연 각질뿐인 가난한 유물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지쳐있었고, 시든 배추나 말린 노가리처럼 철저히 무욕적이었다.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따라오지 말아요.”
    김은 화가 났는지 말도 없이 뒤돌아서 가버린다. J는 잠시 서서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다.

 

 

    4.

 

    집에 돌아오자, 아내 잃은 홀아비의 시척지근하고 노릿한 냄새와 지긋지긋한 각질제거기가 기다리고 있다.
    “다녀왔습니다.”
    “얘, 저것만 있으면 발의 모든 피로가 풀린다는데…….”
    아버지는 이제 새로 나온 족욕기에 흥분하고 있었다.
    J는 다른 날보다 더 박박 문질러 씻은 후 침대에 철퍽 드러누웠다. 거리에서 아득한 캐롤송이 흘러들고 지나는 행인의 와하하 시원한 웃음소리도 퍼져왔다. 곧 그것도 아스라이 사라지고 자신에게는 지루하고 노곤한 잠만 들러붙을 것이다.
    그는 또 하루가 지났음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골분을 뿌린 날로부터 늘 똑같은 날이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화석처럼, 자신도 이 오래된 한옥 속 한 장의 기와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김을 따라 술이라도 마시러 갔어야 했을까. J는 자신이 조금 더 생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각뿐이었다. 몸은 한없이 더 고된 일을 찾았고, 그만큼의 휴식을 원했다. 그리고 그 끝은 이러했다. 홈쇼핑의 소요와 아버지의 발작 속에 끔찍하게 찾아오는 고독. 그는 메마른 기침을 했다.
    “어디 아파?”
    불쑥 들려온 말에 J는 깜짝 놀라 머리 뒤에 끼고 있던 양팔을 번쩍 들었다.
    “미안. 방해하지 않기로 했는데…….”
    멋대로 말을 놓은 여자가, 장롱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자고 저 여자를 잊고 있었을까, J는 기가 찬 마음으로 벽에 기대어 앉았다.
    “또 언제 들어온 거예요?”
    “그건 사업상 비밀이고, 혹시 감기인가 해서 이것 좀 주려고…….”
    여자가 무언가를 던졌다. 작은 비닐에 든 말린 유자였다.
    “약보다 그게 좋아. 그걸 오징어처럼 씹어 먹으면 되는 거야.”
    J는 그 위생 상태를 믿을 수 없어 께름칙한 얼굴을 했다.
    “그건 깨끗해. 다른 건 몰라도 말린 과일과 야채는 철저히 관리하거든.”
    “이런 걸 가지고 다니는 노숙자가 있다니, 해외토픽 감이네요.”
    새콤한 맛도 느껴지지 않는 유자를 씹으며 J가 건조하게 말했다.
    “그렇지만도 않아. 꽤 유용한 방법이라 선배에게 배운 거거든.”
    “선배라니…… 그 세계에도 선배가 있군요.”
    “무시하지 마. 우리도 족보 있는 사람들이야. 나로 말하자면, IMF 족보고.”
    “IMF?”
    “어떤 일을 계기로 거리로 나왔느냐에 따라 족보가 달라지는데, 나는 그때 나왔거든.”
    “왜요?”
    “며칠간 여기에 머물려면 그런 것도 얘기해야 하나?”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여긴 정말 추워. 자기 침대는 따뜻해?”
    J는 대답 없이 유자를 몇 개 더 집어먹고 봉지를 장롱 위로 던졌다. 여자가 그것을 소중히 받아 안쪽 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참, 햄스터는 적당한 사람에게 맡겼으니 걱정하지 마.”
    그 녀석에게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딜 가든 먼지투성이 장롱 위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럼 전 자야겠어요.”
    “그래, 잘 자.”
    불을 끄자 모든 것은 고요 속에 감춰지고 오스스 돋아오는 추위만 남았다. 외풍이 심한 집이었다. J는 잠시 망설이다 스토브를 의자에 올려 천장 쪽으로 향하게 했다. 어슴푸레한 붉은 빛이 바위처럼 웅크린 여자의 등을 비췄다. 얼핏 여자가 웃는 것 같기도 했다.

 

 

    5.

 

    며칠 후, 한동안 생선 유통 문제로 투덜거리던 팀장이 J를 불렀다. 마트 트럭으로 주문진항에 다녀오란다.
    “주문진이요?”
    “그래, 그곳에 가면 선업유통 사장이 있는데, 그 양반과 담판을 지어야겠어. 전화로만 하니 소득이 없네.”
    J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많은 생선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혹시 누구 동행할 사람 있으면 같이 가고.”
    뒤돌아서는 J에게 팀장이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화물 트럭에 애인을 태우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고 한 말이리라. J는 트럭을 몰아 집에 들렀다. 매일 집에만 있는 아버지가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으리란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역정을 내었다.
    “네 놈이 우리 집을 말아먹은 곳에서 일하더니, 이젠 나까지 끌어들이려는 게냐? 아서라. 너나 가거라. 난 이 놈의 근질근질한 각질이나 벗길란다.”
    그 정도의 정성이면 아기 엉덩이처럼 매끄러워야 할 아버지의 뒤꿈치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거칠었다. J는 진저리를 내며 돌아섰다. 벌레 먹은 알밤처럼 혀끝이 썼다. 표독스럽게 내뱉은 ‘우리 가게를 말아먹은 곳’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노망난 노인네 같으니! 그럼 가게 망한 것도, 엄마가 죽은 것도 마트 때문이란 거야?”
    “자기도 꽤 거친 면이 있었네.”
    말참견을 하며 기어 위로 쑥 나온 여자의 얼굴에, J는 놀라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대체 거기서 뭐하는 거야?”
    “어쩐지, 예의바르다 싶었더니 금세 반말이잖아?”
    “반말은 당신부터 했다고.”
    씩씩거리는 J의 신경질에도 여자는 흥흥거리며 기어 나와 옆자리에 척하고 양반다리를 했다.
    “내려, 당장.”
    “보아하니 같이 갈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가줄게. 주문진이라면 잘 아니까.”
    “내리라구.”
    “출발해, 벌써 10시야. 늦어도 네 시까지는 도착해야 제대로 구경 좀 하지.”

 

    결국 J는 여자와 고속도로를 달렸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두 번, 톨게이트는 세 번 정도를 지났으나 여자는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만 빼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잠을 잤다. 그런 여자를 어이없이 보던 J는, 어쩌면 그녀가 장롱 위에서 잠을 자는 게 아니라 그저 밤을 견뎌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나운 밤을 피해 그저 잠시 쉬어가는 것이라고. 그런 여자의 고단한 삶이, 어떤 면에선 자신과 닮기도 했다.
    “밤에 잠 안자고 뭐해?”
    저린 한쪽 다리를 주무르던 여자가 주름진 양 볼을 접으며 답했다.
    “야한 생각.”
    J는 피식 웃었다. 여자도 웃다가 슬쩍 그의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이래도 무전취식이 아니라지.”
    “담배는 재산이 아니라 정인 걸 모르나? 우리 세계에서도 이건 안 아껴.”
    차가 주문진에 인접해 들어가자, 길이 제법 밀렸다. 여자는 담배를 한 개비 더 피웠다.
    “나 실은 여기에 살았어.”
    밀리는 도로를 쀼루퉁하게 바라보던 J가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문진이 고향이라구. 여기서 결혼하고 애도 낳았지. 사업도 잘 되고, 꽤나 살만했는데.”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 차선에서 고급 외제차가 그의 차 쪽으로 위협적인 엉덩이를 흔들며 끼어들었다.
    “아, 저 시벌 새끼…….”
    “뭐? 시벌? 하하하…….”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여자가 들고 있던 담뱃재를 털털 흘리며 웃어젖혔다.
    “왜 웃어?”
    “그거 아니? 너 꼭 타조알 같아.”
    “타조알?”
    “그 안에 네가 있어. 공예품이라도 만들 수 있을 만큼 딱딱한 껍질 속에.”
    “미친 소리.”
    J는 카랑하게 내뱉으면서도 잔가시에 찔린 새처럼 몸을 떨었다. 그는 스스로 서는 법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조차.
    “자, 가보자. 오랜만에 놈들 좀 만나볼까. 내가 안내할게.”
    주문진항이란 커다란 표식 위로 갈매기들이 끼룩대며 날고 있었다.

 

 

    6.

 

    부두를 둘러싸고 형성된 생선 좌판과 각종 노점은, 원색의 생명력과 처연한 죽음이 서럽게 뒤엉킨 천국이자 지옥의 원판 그대로였다. J는 여자를 따라 밀복이니 도루묵이니 하는 제철 생선들과 대왕문어나 산 오징어 같은 것들을 구경했다. 수백 마리씩 아무렇게나 바닥에 펼쳐진 생선들이 제각기의 사연을 가지고 파닥거렸지만, 그 중에 살아남을 수 있는 놈들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J는 놈들의 눈동자가, 생선코너까지 오느라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의지를 생몰시킨 것들과는 달라 보인다. 마트의 것들이 한 마리 두 마리라고 생물로 호명만 될 뿐 물건이나 마찬가지라면, 요놈들은 아직은 스스로의 존엄과 두고 온 무리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으로 가득한 생명 그 자체였다.
    “순리니까 너무 슬퍼 마. 먹고 먹히는 거지, 서로들.”
    그들에게 조문이라도 하듯 바라보고 있는 J에게 여자가 가볍게 말했다. 그리곤 그를 내버려둔 채 여기저기 쏘다니며 아는 사람을 만나고, 친인척들의 근황을 묻고 있었다. J는 여자가 손에 쥐어 준 새우튀김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근처 돌부리 위에 앉아 그런 그녀의 그림자를 뒤쫓았다. 장롱 위에 앉아 짐승같이 웅크리던 여자가 과연 저 여자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바다로부터 충전된 에너지가 그녀의 머리끝까지 차올라 분수처럼 뿜어지는 듯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도마 위에 오른 사물(死物)로서의 존재는 생선만이 아니었다.
    J는 한 노파에게 다가가 살아 있는 밀복을 삼만 원어치 샀다. “회 뜰 거지?” 묻는 말에 고개를 흔들고, 놈들의 펄떡거리는 움직임을 손끝에 느끼며 습습하고 찝찔한 바람이 불어오는 부두 끝으로 걸어갔다. 정박해 놓은 선박들이 줄지어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놈들에게 저 배는 또 얼마나 경악스러운 공포일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은,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사물(死物)이 되어 도마에 오르는 일일 것이다.
    J는 풋내가 묻어날 것처럼 파란 하늘위로 비닐봉지를 치켜들었다. 푸드득 봉지를 벗어난 놈들이 새장을 벗어난 비둘기처럼 재빠르게 바닷물 속으로 입수한다. 그리곤 얼마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같은 자리를 뱅뱅거리다 곧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다.

 

 

    7.

 

    유통업체 사장을 만나 일을 처리한 후, J는 다시 여자를 태우고 돌아왔다. 주문진에 남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여자는 그의 장롱 위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생몰시키는 인간에겐, 그만큼의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마른 오징어라도 사올걸 그랬다. 아버지 드리게.”
    여자가 장롱으로 기어 올라가며 중얼거렸지만, J는 그런 죽어 있는 것 따윈 싫다고 말했다. 광포한 바람에 말라비틀어진 몰골은 더군다나.
    “내일이 벌써 또 크리스마스네.”
    여자는 앳된 소녀처럼 그리운 목소리로 뜻 없는 말을 던지고는 역시 잠든 것처럼 고요해졌다. 크리스마스, J는 그 말을 파닥파닥 뛰는 건강한 한 마리 생선처럼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일도 생선의 배를 갈라야 한다는 것이 새삼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침, J는 빈 장롱을 한 번 바라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 문을 열자 텔레비전 끄는 것을 잊은 아버지가 소파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다가가 발끝을 보니 실은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듯, 지독하게 거친 각질이 나이테처럼 들러붙어 있다. 아버지가 쥐고 있던 것은, 수단으로서의 각질제거기가 아니라 그저 어머니의 흔적이었을까.
    곤히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햄스터를 생각했다. 잠시 쉬어간 여자의 품 따위 벌써 다 잊었겠지만, 그 품이 없었다면 햄스터는 와들와들 떨며 거리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 사체도 거리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증발되었겠지.
    J는 일어나 아버지의 방에 들어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대로 둘러본 적도 없는 곳이다. 그토록 반질반질하게 빛나던 가구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pvc재질이지만 나뭇결 모양이라며 즐거워했던 어머니의 바닥 장판은 흑백사진처럼 무채색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들인 포장도 뜯지 않은 수많은 홈쇼핑 상품들이 한쪽 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구멍가게를 매주 한 번씩 채우던 배달 물건들과 그것들을 재빠르게 정리하던 하얀 면장갑, 김장철이면 가게 문 앞에서 고추를 갈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빨간 고무 다라이, 노란 머리가 삐죽삐죽 올라오던 콩나물시루나 눈 오는 날 가게 앞길을 치우던 두터운 싸리비……. 그 모든 것을 대신한 규격화된 물건들은 성큼성큼 자라나 그렇게도 큰 산을 이루고 있었다. 쓰임이라는 구체적 용도가 아니라 그저 무덤처럼 잠들어 있는 물건. 주변 어디에나 사물(死物)이 있다. J는 처참한 기분으로 주저앉았다. 사실상 아버지의 몰락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J는 출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족욕기를 가져와 뜨거운 물을 채우고, 두 발을 담갔다. 보글거리는 촉감이 따끔거리면서도 기분 좋았다. 팀장의 전화가 몇 번이고 울렸지만, 핸드폰을 그대로 두었다. 그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를 헤아렸다. 오랜 세월 같으면서도 실상은 고작 반년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렸다. 처음부터 무엇도 사실이 아니었던 것처럼.
    한참 후 물에서 꺼낸 두 발은 하얗게 퉁퉁 부어올라 금방이라도 벗겨질 속곳 같다. J는 각질제거제를 쓱쓱 뿌린다. 물방울이 총총히 맺힌 그 위에 각질제거기를 대니, 돌돌 말아 벗겨낸 스타킹처럼 길쭉한 때가 스윽스윽 벗겨져 내리기 시작한다. 처음 몽정을 맛볼 때처럼 짜릿한 쾌감이 온몸에 흘렀다. 벗겨지고 벗겨져 발뒤꿈치가 상처 입은 껍질 없이 아기처럼 뽀오얀 살을 드러냈을 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황홀경에 이른 것 같았다.
    J는 이번엔 잠든 아버지의 발 위에 뜨거운 물수건을 얹었다. 그리고 비슷한 절차를 걸쳐 아버지 발에 쌓인 각질을 정성스럽게 벗겨내었다. 그것은 가슴 한 편을 긁는 것처럼 바드득 바드득거리기도 하고 손으로 만져선 안 될 것을 어르는 것처럼 믿을 수 없이 부드럽기도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나 싶게 꼼짝도 하지 않고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깊은 잠이었다. J는 아버지의 양 발에 모지락스럽게도 붙어 있던 삶의 더께들을 긁어내며, 떠나는 어머니의 발끝에 남아 있던 산호 같은 허연 삶의 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차마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후회 때문이었다. J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너무 오래 고여 이제는 역한 내가 날 정도로 썩어버린 그 눈물을. 아버지가 눈을 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자신의 매끄러운 발을 내려다보며 간신히 한 마디 꺼냈다.
    “네 엄마, 평생 각질 때문에 고생했는데…… 진즉 살 것을…….”
    안타까운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것은, 아들의 볼도 자신의 발도 아닌 각질 제거제였다.

 

    크리스마스의 정오에는 구멍가게를 다시 열기로 작정하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귀물스러운 먼지와 곰팡내가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오물의 끈기조차 처음 보는 것처럼 존경스러웠다. 한참 만에 청소를 마치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장롱 위 여자가 저편 길에 앉아 있다. 그녀는 세월만큼 제 몸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개별 작품 선정평]

(선정평) 김소윤의 「J의 크리스마스」
 
    가족이라는 화두가, 그토록 오랫동안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유의 중요한 기반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간 무관심하게 버려졌던 일상을 예민하게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인물들은 어머니의 부재를 홈쇼핑으로, 혹은 자기학대와 같은 노동으로 견딘다. 갑작스럽게 육박해 들어오는 일상의 무게를 감지하고 그것을 수용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낯선 여자의 틈입은 가족이라는 공간을 확장하여 타인들을 읽는 통로로 개방한다. 가족을 위안의 장치로 삼기보다는 세계를 읽는 출발점으로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멍가게/대형 마트, 냉동생선/활어의 대비는 다소 안일한 상투성에 기댄 듯하여 아쉽다. 요컨대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화두의 상투성과 잠재성을 모두 품고 있다. 좋은 소설들은 언제나 상투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상력들을 발견해 왔다. 치밀하게 상투성을 사유하고 거기에서 과감하게 다른 가능성들을 확인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부끄러운 작품이 거듭 선정되어 감사드립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그즈음 제 주변에는 소매업을 접고 대형 마트의 파트타임 직원이 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겨울, 주문진에 갔었고요. 시간과 기억이 중첩되어 이 소설이 된 것 같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차와 커피를 무척 많이 마시게 되네요.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예전에는 친구들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남편이 최초의 독자이고 열렬한 응원군입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숨겨진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역사 소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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