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소설]파란 책

 

 

파란 책

 

 

최정화

 

 

 

 

    그녀는 새집으로 이사한 뒤 인테리어에 한창 열을 올렸다. 그녀는 『월간 인테르니』, 『메종 드 다이애너』, 『인테리어 앤 데코』, 『레모닉 하우스』 같은 인테리어 잡지들을 정기 구독했고 잡지가 도착한 그날 저녁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녀는 편집인의 말부터 광고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았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 테이프를 붙여가며 기억해야 할 페이지에 표시를 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고시를 앞두고 법전이라도 읽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종종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흰자위가 빨개질 때까지 모던한 가구들이 배치된 거실 사진을 들여다봤다.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의 왕도 역시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녀가 감각을 키워나간 방법은 연습, 또 연습이었다. 그녀는 잡지에 실린 많은 사진을 보았고 이를 자신의 거실에, 안방에, 주방에 적용했다. 뭐든 쉽게 물리는 성격이었기에 공간 배치는 한 달을 못 가 바뀌었지만 새로 소품을 사들이는 대신 이 공간에 있는 것을 저 공간으로 옮기고 세워 놓던 것을 눕혀 놓는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하며 지나친 낭비를 줄였다. 집안 인테리어에 대해 남편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는 융통성이 있었다. 그는 웃음소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큰, 유쾌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단 한 번 당혹스러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자신이 아끼던 넥타이가 세 동강 난 채로 테이블 유리 밑에 오려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때도 그는 고개를 젖히고 껄껄대었지만 얼굴이 시뻘게져 있다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올 봄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할아버지에게서 책상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딸이 기존에 사용했던, ㄷ자를 세워 놓은 모양의 좌식 책상을 뒤집어 간이 책장을 만들었다. 책상은 누드 베이지 색이고 단단한 소나무 재질이었다. 그녀는 거실의 티브이 왼쪽에 책장을 설치하고 책을 몇 권 꽂았다. 마치 데이트를 앞두고 옷장 속의 옷이 마음에 안 들어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는 여인처럼 책을 꽂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보기에 문제는 책의 두께였다. 그녀는 책들이 너무 얇다고 느꼈다. 집에는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의 책밖에 없었다. 새 책장 안에는 적어도 5센티미터 정도는 되는 묵직한 책이 놓여야 마땅했다. 그녀는 집 안에 새로운 소품을 들일 때가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점에 갔을 때 그녀가 좀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다. 책의 제목이나 저자, 출판사의 이름 대신 그녀는 책의 두께를 알고 있었다. 오십대의 깡마른 서점 주인이 안경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무슨 책을 찾으시죠?”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계산대 위에 올린 손가락을 두들기며 잠시 머뭇거려야 했다.
    “책 제목을 잃어버렸어요.”
    “잊어버렸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주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래요, 제목을 잊었어요.”
    “그럼 지은이는 알고 계십니까?”
    “아뇨. 제가 기억하는 건,”
    그녀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사이를 5센티미터 정도 벌려 서점 주인의 앞에 가까이 가져갔다.
    “책의 두께가 이 정도 된다는 거예요.”
    “흠.”
    주인은 수수께끼라도 들었다는 듯, 그러나 정답을 맞힐 생각도 없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 정도 두께가 되는 책은 저희 서점에 차고 넘치는데…… 혹시 그 책에 대한 다른 정보를 더 생각해내실 수 있을까요? 어떤 분야의 책이라든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색깔이라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색깔이라?”
    “네. 전 그 책이 파란색이었으면 해요.”
    “파란색인 겁니까, 파란색이었으면 한다는 겁니까?”
    “아. 그래요. 그 책은 파란색이에요.”
    “이런. 표지 색깔은 도서 정보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부인을 도울 수 없을 거 같군요. 5센티미터 이상 되는 파란색이라…… 그런 책들은 철학 코너에서 두셋에 한 권 꼴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녀는 서점 주인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고 곧장 철학 코너로 향했다. 주인장의 말마따나 거기에는 그녀가 원하던 5센티미터 두께의 책들이 색색깔로 꽂혀 있었다. 그녀는 서가의 제일 꼭대기에 꽂혀 있는 파란색을 원했고 거기까지 손이 닿지 않아 점원에게 부탁해야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점원이 파란 책을 뽑아들자 부옇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점원에게서 책을 건네받자마자 계산대로 가 책값을 지불했다. 영수증을 건네며 서점 주인이 물었다.
    “아까 말씀하셨던 책이 이거 맞나요?”
    “네, 파란색에 5센티. 맞잖아요.”
    “진작에 하이데거라고 했으면 대번에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하, 뭐라고요?”
    “하이데거. 이 책을 쓴 철학자 말이오. 포장을 해 드릴까?”
    “아니요. 그냥 종이봉투에 넣어주세요.”
    그녀는 뒤집어진 책상에 그 파란 책을 꽂는 상상을 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아이템의 구매는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책장이 사실은 뒤집혀진 유아용 책상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원목 위에 페인트를 입힌 그녀의 정교한 솜씨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옅은 베이지 색과 어우러지는 파란 책의 깔끔한 조화에 대해 칭찬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파란 책을 사람들이 한 번씩 꺼내 책장을 넘겨보는 순간 발생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그 책을 당연히 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녀의 지성과 교양에 감탄하면서 책장을 한두 장 넘기다가 뾰로통한 얼굴이 되어 책을 덮곤 했다. 사실 그녀는 책을 펼쳐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의아했다. 그저 몇 장만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그녀는 ‘시간을 모든 개개 존재이해 일반의 가능한 지평으로 해석한다’라는 문장을 제외하면 서문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장부터 시작되는 서론-‘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이란 제목부터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꼼꼼히 읽어 내려갔지만 마지막 단어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에 남는 것은 ‘존재’라는 두 글자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게 어찌된 일일까 생각하며 그 다음 장에 도전했지만 일이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책을 덮고는 자신이 고안한 새 책장에 얌전히 꽂아두었다.
    “존재는 뭐고 존재자는 또 뭐야.”
    그녀는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그렇게 중얼거린 뒤, 달걀을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렌지 위에 올렸다. 그녀가 파란 책을 집어들 일은 다시는 없어 보였다.
    그 다음 주에 남편은 회사 동료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공교롭게도 그들 중 한 명이 철학 전공자여서, 이번에도 역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신기하네요.”
    그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존경스런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존재와 시간을 밑줄 하나 없이 읽어 냈다는 게요.”
    그녀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과에도 그런 녀석이 하나 있었거든요. 다른 애들은 쩔쩔매는 책을 무슨 패션 잡지 읽듯 술술 넘겨버리는 거예요. 집게손가락에 침까지 묻혀 가면서 말이에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같은 애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었죠. 전 색연필로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밑줄을 치면서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책은 밑줄을 치지 않은 문장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혹시 전공이 서양철학이신가요?”
    그녀는 여상을 졸업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가 읽은 수많은 인테리어 잡지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고 곧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실내건축 쪽으로요.”
    전공이 아닌데도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그녀를 더욱 존경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녀는 얘기가 더 진행될수록 심기가 불편해져 갔다.
    “샹그리아를 만들어 놨는데, 다른 분들이 소주가 좋다고 하셔서 내놓지 않았어요. 맛 좀 보시겠어요?”
    “좋죠.”
    그는 비틀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왔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샹그리아가 담긴 쥬스병을 꺼내 와인 잔에 붉은 액체를 그득 따랐다. 그녀는 대화의 소재를 바꿀 타이밍을 노렸지만 그는 모처럼 되살린 옛 추억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현존재란 말 처음 들었을 때, 전 참 낯설었거든요.”
    ‘현준재?’
    현준재가 뭐지, 하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 현준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낯설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그에게 현준재라고 불렀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건 그의 이름일까? 현, 준재?
    “희귀성이시네요.”
    “네?”
    “이름이 현준재 씨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낄낄댔다.
    “다자인(Dasein) 말이에요.”
    현준재는 누구이고 다자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들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첫눈에 알아봤어요. 당신이 주말 드라마에나 목을 매는 다른 여자들하곤 다르다는 걸.”
    “이제 술을 그만 드시는 게 좋겠네요.”
    그녀는 어깨를 흔들어 그의 손을 뿌리친 뒤 황급히 주방에서 나가 버렸다. 하지만 남편 옆에 앉은 그녀는 방금 전에 남자가 잡았던 팔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무슨 생각인가에 조용히 빠져 들었다.
    “당신 얼굴이 빨간데.”
    “샹그리아를 너무 많이 마셨나봐.”
    사실 그녀는 와인 잔을 손에 쥐고만 있었을 뿐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남편은 웃으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남편이 그러는 게 이상하게 거슬렸다.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식탁 위에 엎드려 있는 왕년의 철학도를 생각하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밤이 늦고 남편의 동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거실의 파란 책 앞에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 남자가 한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당신은 다른 여자들하곤 달라.’
    파란 책을 집으려고 내민 손끝이 아주 살짝 떨렸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고 그녀는 식구들을 위해 저녁 메뉴로 야채 카레를 요리했다.
    “준비 다 됐어. 다들 식탁으로 올래?”
    남편이 딸의 손을 끌고 주방에 나타났다.
    “웬일이야?”
    “웬일이냐니, 지난주에도 카레였잖아. 재료를 너무 많이 사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다 먹어치울 때까지는 계속 카레야.”
    “아니, 카레 얘기가 아니고, 지금 여덟시야. 당신 좋아하는 드라마 할 시간이잖아. 우리 저녁은 늘 거실에서 먹지 않았나?”
    “난 이제 드라마 안 봐.”
    “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는 팔짱으로 끼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들 자리에 앉아.”
    “난 보고 싶어.”
    딸애였다.
    “나도.”
    남편도.
    “안 돼, 우리 집에선 이제 주말 저녁에 드라마 같은 거 안 봐.”
    그녀는 그렇게 선언하고 자리에 앉아 국자로 카레를 떠서 밥 위에 얹었다. 남편과 딸은 서로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한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저를 들었다.
    “카레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
    남편의 긍정적인 성격을 그녀는 사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왜 한 번도 자기 주장을 끝까지 내세우지 않고 모든 걸 수용하려고만 드는지 불만스러웠다. 그가 카레에 밥을 비벼 두 그릇 째 비웠을 때, 그녀는 마치 식충이를 보듯 그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만 먹어.”
    “아, 일 년 내내 카레만 먹으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뉴스를 보려고 소파에 누웠다.
    “너도 다 먹었으면 이제 방에 가서 숙제해.”
    “난 다 안 먹었어. 그리고 숙제는 아까 했잖아.”
    딸은 불룩 튀어나온 입을 오물거리며 대꾸했다.
    “그럼 천천히 마저 먹고 예습해.”
    “엄마 요새 이상해.”
    딸이 고개를 숙이더니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입 속으로 넣어 당근을 끄집어냈다.
    “그거 도로 넣지 못해?”
    “독재자!”
    당근을 다시 입에 넣은 딸은 남은 밥을 긁어모아 한꺼번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딸이 제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는 딸을 불러 세우고는 싱크대를 가리켰다.
    “네가 당번이잖아.”
    딸은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천천히 식사를 마친 뒤 거실 책장에서 파란 책을 뽑아들고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읽었던 내용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똑같이 ‘시간을 모든 개개 존재이해 일반의 가능한 지평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뭔지 몰랐으며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인내심을 발휘하여 꾹 참고 몇 장을 더 읽어 내려갔고, 22페이지에서 마침내 ‘현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단어를 발견한 순간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에 열이 확 끼쳤다. 올이 나간 스타킹을 신고 서울 시내를 활보한 뒤 집에 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형광펜을 들었다.
    현-존재 : 존재 자체의 무(無) 안에 들어서 머물러 있으면서 관계로서 머물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현존재가 사람 이름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도리질해 보았지만 자꾸만 자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희귀성이시네요.’
    그녀는 고개를 젓고 또 저었다.
    “엄마, 뭐해?”
    언제 들어왔는지 딸애가 방문을 열고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뭐 먹어?”
    “먹긴 뭘 또 먹어? 엄마 공부해. 설거지 다 했으면 너도 얼른 가서 공부해.”
    그녀는 딸에게 괜히 신경질을 부리고 다시 책장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책장만 들여다보면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철학책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난관이었다. 그녀는 이해를 포기하고 무작정 읽어 내려가기로 했다. 예닐곱 장쯤 넘겼을 때 그녀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책을 모로 세운 뒤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녀의 손이 책장을 놓치고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주 월요일, 그녀는 홍대 앞에 있는 어느 까페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그들은 공통점이라곤 없어보였고 격식을 갖추며 서로를 대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종교 모임 정도로 비춰졌다. 그러나 테이블을 유심히 살핀다면 그들이 모두 똑같은 ‘파란 책’을 자기 앞에 펼쳐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집에서 두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매주 하이데거 세미나가 열린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모임이 시작한 지 두 달여 정도가 지났고 그동안 하이데거에 관한 개론서를 한 권 읽었으며 『존재와 시간』에 관한 세미나는 오늘이 세 번째 시간이라고 했다. 게시판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을 때 그녀는 앳된 청년의 목소리에 잠깐 멈칫 했다. 청년은 아주 싹싹하고 명랑한 말투로 이번 주부터 당장 세미나에 참여하라고 권했다. 자기는 국문학과 전공인데 대학원을 휴학한 상태이고 세미나의 반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이 지금 그녀의 옆 자리에 앉아 있었고, 청년의 옆자리에는 그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가 안경알을 닦고 있었다.
    “오늘 새로운 분이 함께 시작하게 되었으니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하죠. 먼저 저는 제제, 아, 새로 오신 분께 말씀을 아직 안 드렸는데 이 모임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합니다. 신분에 관한 질문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 점 신경 써주시고요. 일단 저는 이 모임의 반장을 맡고 있는 제제입니다. 석사논문에서 하이데거를 인용하게 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손바닥을 천천히 부딪쳐 소리가 나지 않게 박수를 쳤다.
    “그럼 새 멤버부터 시작해서 왼쪽으로 돌아가며 소개를 하죠.”
    그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도 자기소개는 일어서서 하는 것이라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목소리가 떨려서 중간에 기침이 나는 척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무난히 자기소개를 마칠 수 있었다.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옛날에 사두고 읽지 않은 이 책을 발견했어요. 학창시절에는 사색을 즐겼고 감수성이 남달랐어요. 시를 좀 썼죠.”
    그녀는 실제로 고등학교 때 문예반이었다. 시는 축제가 열릴 때마다 한 편씩 겨우 써내는 정도였지만 전시회에 출품한 시화를 보고 남학생이 대화를 요청해온 적도 있었다. 소개를 마친 여자가 자리에 앉으려 하자 제제가 질문했다.
    “이름을 어떻게 불러드리면 될까요?”
    여자는 다시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닉네임이요?”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
    “현존재라고 불러주세요.”
    안경을 낀 여자가 피식 웃었다. 여자는 자기가 소개한 내용 중 어디가 우스운 부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반장은 해맑은 얼굴로 박수를 치며 여자의 옆자리에 앉은 사내에게 소개를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사내는 나직한 목소리로 종교 쪽에 몸담고 있다고 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가 더욱 선량해 보였다. 오십이 훌쩍 넘었는데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온 여자는 자기를 운몽이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닉네임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쭐했다. 마지막으로 반장의 옆자리에 앉은 안경 낀 여자 차례였다. 그녀는 하이데거에 관한 강의라면 쫒아 다니면서 죄다 들었고 하이데거를 공부하는 다른 세미나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요즘 이런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에 조금씩 회의가 들어요. 놀이터에 쪼그리고 앉아 옆집 아줌마랑 텔레비전 얘기나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어떨까 싶네요. 어쨌거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3장을 폈고,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그 부분을 미리 읽어보려고 했지만 첫 장을 반 정도 읽고 나서는 더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머리가 긴 노인이 그녀의 책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손바닥을 내려놓는 척하며 책을 가렸다.
    반장은 죽음에 대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이 존재할 때는 죽음이 현존하지 않고 죽음이 현존할 때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인간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죽음은 살아 있는 동안 현존하지 않을까요? 하이데거 말은 그 가능성으로 현존한다는 거죠.”
    그녀는 머릿속으로 인간이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발생하기 전이고 죽음이 닥쳤을 때는 이미 인간에게 생명이 없다는 것을 되뇌어 봤다. 그녀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고 이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들떴다. 그녀는 책장 귀퉁이에 ‘존재 ○ 죽음 ×, 죽음 ○ 존재 ×’ 라고 적었다. 그러나 ‘가능성으로 현존한다’는 것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지난달에 읽었던 개론서에서 마크 래톨이 아주 적절한 예를 들었던 게 기억나네요.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 경우를 보더라도 말이에요. 다른 차가 내 차를 들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건 운전자에게 현존하죠. 내가 운전하는데 어떤 작용을 하고 또 어떤 결정을 내리게 하면서. 그게 바로 가능성으로의 현존이고요. 죽음도 마찬가지잖아요.”
    세미나를 관두고 싶다던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랑 조건이 거의 비슷한 이 여자가 너무 박식한 데에 놀랐다. 그녀가 이제까지 만나온 다른 동갑내기들이랑은 달라보였다.
    “요새 우리 웰빙족들은 죽음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할 뿐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이번엔 종교인 사내가 모나미 볼펜을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걸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 재빨리 도표를 만들고 첫째 칸에는 죽음의 원인을, 둘째 칸에는 진짜 죽음의 의미라고 채워 넣었다.
    “가사성이 현존재를 개인인 현존재로 요구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의 경우는 죽음을 어떻게 하면 뒤로 미룰까, 아니 죽음을 망각할까, 온통 이 생각뿐인 것 같아요. 삶 속에서 죽음을 몰아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고 할까?”
    ‘삶 속에서 죽음을 몰아내는 데 혈안이 되다’라는 말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다시 문예반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건 시에 적합한 문장이지 이렇게 테이블 위를 떠돌다가 사라져 버릴 얘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에 대한 설명 아래에다 그 문장을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그녀와 동갑내기인 주부가 머리를 싸쥐었다.
    “나 사실, 죽음의 몰교섭성에 관한 부분 읽으면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내가 요새 느끼는 게 딱 이런 거야. 우린 쉽게 우리라고 말하지만 내가 결국 내 주변의 타인들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거. 타인들에 대한 나의 관계가 끊겨 있다는 거. 그러니까 내가 공부하는 게 이제 자꾸 회의가 드는 거거든요.”
    그녀는 남편과 아이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최근 달라지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어쩌면 그것은 죽음의 몰교섭성이 작용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해한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기가 저 여자, 많은 책을 읽고 지식과 깨달음을 삶의 기쁨과 맞바꾼 여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반장이 끼어들었다.
    “죽음이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에요. 삼백오십팔 페이지 보시면, 죽음에 직면할 때의 불안이 삶과 충돌하는 게 아니라 확고한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했거든요. 타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 없이 고유한 삶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으니까요.”
    저녁식사를 차려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뒤풀이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커피숍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버스를 탔을 때 그녀는 운전기사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차선을 바꾸고 급브레이크를 밟아 정차했다. 운전이 완전히 몸에 익어 다른 차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잊은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딸은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식사를 걸렀다. 남편과 마주 앉은 그녀는 묵묵히 밥을 떠 입 안에 넣었다. 그날 역시 식단은 카레였다. 남편은 카레는 역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당신은 밥 먹을 때 맛있다는 얘기밖에는 할 얘기가 없어?”
    그녀가 젓가락으로 밥알을 휘휘 저으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은 숟가락을 입 안에 넣다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밥 먹을 때 밥 얘기 말고 무슨 얘길 해야 되는데?”
    그녀의 양어깨에 힘이 빠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편의 두 눈을 도전적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지?”
    그녀가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렇게 잘 살아 있는데 왜 굳이 죽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뭐 암이라도 걸렸어? 기분 좋게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왜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그래?”
    그는 숟가락을 내려놨다.
    “진짜 이젠 별걸 다 갖고 시비야.”
    늘 좋게 좋게 넘어가던 남편이 기분 상한 티를 냈다. 그는 컵에 물을 따르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숟가락을 집는 대신 손가락 끝으로 식탁을 툭툭 쳤다.
    “내가 언제 당신이 암에 걸렸대? 죽음의 원인이랑 본질을 혼동하지 마.”
    그녀 역시 젓가락을 놓고 팔짱을 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게 왜 부정적인 거라고 생각을 해? 죽음을 생각할 때야말로 진짜 삶이 뭔지 깨닫게 되고,”
    그녀는 아까 반장이 한 말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때 비로소 온전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그녀는 ‘확연한 기쁨’ 대신 ‘온전한 쾌락’이라고 했고, ‘고유한 삶’은 도통 기억나지가 않아 ‘진짜 삶’이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다.
    남편은 더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식탁에서 일어나 거실의 티브이를 켰다. 그릇에는 카레에 비빈 쌀밥이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밥그릇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 식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설거지 당번은 당신이야.”
    “알고 있어.”
    “얼른 치우라니까.”
    “이것 좀 보고 나서.”
    남편이 주방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만큼 나도 티브이를 보면서 쾌락을 느낀다는 걸 알아둬.”
    그녀는 동갑내기 여자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이미 하나의 강을 건너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땅을 딛고 서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 봤자 그에게는 입을 벙긋거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식탁 의자에 걸어둔 핸드백에서 파란 책을 꺼냈다. 그리고 남편의 서재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개별 작품 선정평]

(선정평) 최정화의 「파란 책」
 
    「파란 책」은 심사를 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얼핏 단선적인 전개로 보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과녁을 향해 나아가는 전개와, 전체를 장악하는 솜씨는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인테리어용으로 우연히 구입한 한 권의 철학책이, 한 인간의 내면과 삶의 스타일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계의 관계를 미묘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었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등단을 한 지 이제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갑니다. 즐거운 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어 많이 기쁩니다. 큰 응원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파란 책」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제 방 책장에 꽂혀 있는 파란 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벌써 몇 년 전에 사놓고 너무 내용이 어려워서 앞부분의 몇 페이지만 겨우 넘기다 포기한 철학책이었어요. 앞으로도 영원히 읽지 못할 것 같았고, 그렇다면 이 책을 소재로 소설을 한 편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습관이 없어요.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쓸 때도 있고, 카페에서 적당한 소음을 즐기며 쓸 때도 있고,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에 파묻혀 쓸 때도 있습니다. 단번에 우르르 쏟아내 하루 만에 단편을 완성할 때도 있고, 하루 분량을 적당히 조절해 가며 꾸준히 써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파란 책」은 매일 아침 도서관에서 A4 한 쪽씩 썼어요.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대학 시절 은사님이신 소설가 조해일 선생님께 보여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십오 년간 써온 모든 습작들을 다 읽어 주셨어요. 늘 너그러운 시선으로 따뜻하게 응원해 주셨고 그게 큰 힘이 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을 때, 내 주제, 내가 한평생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몫은 ‘벌레’인 것 같다고 수상소감에 적었습니다. 일상을 갉아먹고 균열을 가져오는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주제가 어떻게 확장되어 갈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더 큰 벌레, 벌레들을 보게 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산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오십대의 독신남인 ‘나’는 재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둘의 결혼을 반대했던, 여자의 사촌언니에게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게 되고 그 자리에서 서서히 그녀의 경계심이 누그러지는데, 하필이면 그때……. (여기까지만!^^)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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