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소설]여섯 살

 

 

여섯 살

 

 

황현진

 

여섯살_소설삽화

 

 

 

    많은 사람들이 내게 같은 말을 묻곤 한다.
    몇 살이에요?
    내 대답 역시 늘 한결같다.
    여섯 살.
    개중 어떤 사람들은 종종 다른 질문을 덧붙여 던지기도 한다.
    올해가 몇 년도인 줄 알아요?
    여섯 살인 내게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무척 어렵다. 나는 여태껏 백 이상의 숫자를 헤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물고기 꿈을 꾸고 나를 낳았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
    다시 부르면 엄마는 더욱 질끈 눈을 감았다.
    귀신이 보여요.
    엄마는 눈 뜨지 않은 채로 나를 향해 축 늘어진 팔을 내밀곤 했다.
    응.
    엄마의 대답은 짧았다. 아빠가 그런 엄마를 보며 못된 년이라고 쏘아붙였다.
    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거지?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니, 넌 나쁜 물이 들었어.
    아빠의 한쪽 입술이 일그러졌다. 엄마가 말없이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엄마는 한쪽 귀가 좋지 않다. 몇 년 전 뇌수막염을 앓아서라고 했다. 잘 들리지 않는 귀가 있는 쪽에 나는 주로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엄마가 나를 그냥 거기에 두었다. 나를 다른 방향으로 옮기거나 데려다줄 생각을 못 했다.
    귀신이 보여요, 엄마.
    응.
    자꾸 보여요.
    엄마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 귀신은 언제나 엄마의 등 뒤에 서 있었으니까. 엄마는 귀가 좋지 않아서 거의 눈을 감고 지냈다. 덕분에 아빠는 마음 놓고 자주 집을 나갔다.

 

    나는 정말 집이 싫어. 그 말은 아빠의 입버릇이었다. 아빠의 입버릇은 엄마와 나에게 어떤 경고처럼 들렸다. 우리는 그 경고를 우습게 흘려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잃어버릴 것들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엄마와 나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아빠의 경고는 투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엄마와 내가 정말 속상할 일들은 아빠와 관련된 무엇이 아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가장 놀랄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은 때때로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런 날이면 아빠의 품에 잠자코 안겨 엄마의 등 뒤에 망연자실 서 있는 귀신에게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귀신은 아빠를 몰랐다. 귀신에게 아빠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래전, 엄마는 물고기를 키웠다. 욕조에서. 욕조의 물고기는 이제 죽고 없는 외할아버지가 어느 강에서 잡아다가 풀어 놓은 거라고 했다.
    강이 아니라 저수지일지도 모르고 망해 가는 매운탕집의 더러운 수조에서 잡은 걸지도 몰라.
    엄마는 욕조 속 물고기의 출처를 늘 의심했다.
    향어, 붕어다, 가물치다, 잉어다, 쏘가리다 이름이야 늘 달랐지만 그것들은 너무 검고 피를 많이 흘렸어.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았어.
    욕조 속 물고기는 여러 마리였다가 한 마리만 남아 있을 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욕조에 단 한 번도 검은 물고기가 없진 않았다. 엄마는 그것들을 잡은 즉시 죽여서는 곧장 냉동실에 얼려 두지 않고 좀 더 살게 내버려두는 아버지의 저의에서 늘 불운에 대한 막연한 예고를 느꼈다. 등 뒤에 귀신이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엄마는 예견과 암시에 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예감도 입 밖으로 꺼내기는 어려웠다. 그 모든 예측들이 굉장히 모호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것들이 바로 엄마 자신의 미래에 불과하다는 것이 엄마를 점점 더 침묵하게 만들었다. 예기치 않은 모든 일들이 엄마의 눈에는 당연하고 사소하게 여겨졌다. 사실상 모든 일들은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들이 강에서 온 것들이라는 걸 믿게 된 때는 네 외할아버지가 강에서 죽던 바로 그날이었어. 그건 굉장히 자연스러웠거든.
    엄마가 갑자기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내 이야기가 재밌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웃어?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며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두 뺨이 젖었다. 엄마의 눈이 아주 오래도록 감겨 있었다.
    또 우는구나.
    엄마가 덧붙여 말했다.
    어쩜 이렇게 잘 우니?

 

    엄마, 귀신이 보여요, 자꾸 보여요.
   엄마가 대답했다.
   응, 그러게.
   엄마, 물속에도 귀신이 있대요.
   응, 그렇대. 그럴 거야.
   물속에도 있고 물 밖에도 있어요.
   엄마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말했다.
   한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엄마에게 물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본 적 있다. 엄마는 물고기와 물귀신을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물고기 대신 흰 종이 위에 기다랗게 누운 타원을 그렸다. 죽은 건가요? 내가 엄마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을 때, 엄마는 기다란 타원 아래 흔들리는 물풀을 그려 넣었다. 물풀이 흔들린다는 게 과연 물고기가 살아 있다는 뜻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이 흐르고 있고, 물소리가 나고, 물속의 것들이 흔들리면 모두 살아 있는 건가요? 괜찮은 건가요? 그 그림을 떠올리면 엄마에게 그렇게 묻고 싶어진다. 나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일곱 살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엄마한테 미리 말할 수 있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한번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엄마, 나는 단 한 번도 물고기 꿈을 꾼 적이 없어요. 그건 내 꿈이 아니에요. 내가 웃은 게 아니에요. 귀신이 보인다고요. 귀신이 나를 보고 있다니까요.

 

    종종 아빠가 있었다. 잠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아빠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제일 먼저 찾았다. 그리곤 숨이 찬 듯 거실 한가운데 서서 숨을 골랐다. 괜찮아? 엄마에게 묻고 내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괜찮니? 집을 자주 비우게 된 뒤부터 새로 생겨난 입버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게 지낸다는 뜻을 내비쳤다. 바로 그 다음에 아빠가 하는 일은 나를 목욕시키는 거였다.
    어김없이 아빠는 나를 곧장 욕실에 데려갔다. 나는 홀딱 벗은 채로 욕조 옆에 우두커니 서서 아빠가 샤워기를 한 손에 쥐고 물의 온도를 가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도꼭지를 여러 차례 좌우로 비틀었지만 샤워기에서는 온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물만 샤워기에서 요란하게 쏟아졌다. 욕실의 네 벽이 모조리 젖었다. 아빠는 보일러실을 수차례 들락거렸다. 하지만 욕조를 채우고 있는 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보일러 수리기사가 올 때까지 나는 벌거벗고 변기 위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나는 몰랐어. 먼데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부엌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욕실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넌 정말 글러먹었어.
    엄마를 비난하는 말들이 아빠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니? 솔직히 말해 봐,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지? 내가 미안해할 줄 알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건 사과라기보다 호되게 따지는 투였다.
    아니야. 갑자기 고장 난 걸 거야.
    엄마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다 애부터 잡는다고. 넌 쟤가 정상으로 보이니?
    그냥 헤어지자고 하면 될 일인데 아빠는 툭하면 나를 핑계로 엄마를 괴롭혔다. 내게 아빠의 그 말은 제발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안 되겠느냐는 애원처럼 들렸다. 아빠는 가끔씩 일부러 엄마의 잘 들리지 않는 귀에 대고 말했다.

 

    나는 혼자서 목욕을 마칠 셈으로 무턱대고 욕조 안으로 한쪽 발을 밀어 넣었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서늘하고 시린 기운이 온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대번에 오슬오슬한 소름이 온몸에 돋아났다. 순식간에 말간 콧물이 양쪽 콧구멍에서 죽 흘러내렸다. 나는 도망치듯 다시 변기위에 앉았다. 그러곤 새파래진 몸뚱이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유난히 길고 통통한 엄지발가락과 양말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발목과 작은 흉터가 있는 무릎을 쳐다보다 뽀얗게 빛나는 허벅지에 한참 동안 눈길을 주었다.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여러 차례 쓸다가, 주름이 촘촘하게 잡혀 있는 고추를 만지작거리다가 배꼽을 후볐다. 손가락 끝이 이내 축축해졌다. 코끝으로 가져와 냄새를 맡았더니 구린내가 났다. 내 배꼽에서 나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싱크대의 개수대 안쪽으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 연이어 아빠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왜 여기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거냐고. 왜 저기만 안 나오는 거냐고, 도대체 왜!
    조금 전보다 사뭇 담담해진 엄마의 대답은 내가 늘 듣던 말과 비슷했다.
    응, 그래, 그렇겠지. 그럴 거야.

 

    보일러 고장이 아닌데요.
    보일러 수리기사는 금세 집을 찾아왔지만 곧장 떠날 듯이 굴었다. 아빠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럼 뭐가 고장인 거야?
    아빠가 반말을 하자 보일러 수리기사가 더욱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수도배관 쪽이 고장이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내가 발가벗은 채 욕실 밖으로 비칠거리며 걸어 나왔다. 아빠가 내게 손가락질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넌 왜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거야? 여기, 너 혼자 사냐?
    엄마의 어깨 위로 귀신의 얼굴이 비죽이 솟아올랐다. 엄마가 슬며시 웃다가 말았다. 나는 고추를 두 손으로 가리고 엄마에게 달음질치듯 달려갔다. 엄마는 마른 수건을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러곤 수건을 바짝 여민 뒤 내 손을 잡아끌어 수건의 양끝을 말아 쥐게끔 했다.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 보일러 수리기사가 내게 손 인사를 건넸다. 그는 배관공을 부르는 게 나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는 이미 할 만큼 했다는 듯이, 아주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뜨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는 걸,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후 아빠는 엄마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네 아들은 잘 있니. 엄마는 그 문장이 오타였을 거라고, 아주 고의적인 오타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네 아들은 잘 있어. 엄마의 답장에 아빠는 침묵했다. 나는 누구의 아들도 아닌 듯, 오로지 귀신에게 떠맡겨진 기분이었다.

 

    귀신이 엄마보다 예뻐요.
    그래.
    귀신이 엄마보다 잘살아요.
    그럴 거야.
    다시 말해 줄까요?
    엄마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앞으로 쓸어내리며 들리지 않는 귀를 가렸다. 그런 행동만으로 멀쩡한 귀의 청력이 일시적으로나마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서, 이미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나머지 귀를 더욱 무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잘 들리지 않는 한쪽 귀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던 거였어.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귀신이 제 귀를 두 손으로 막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말할 기력을 잃어버렸다.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빠는 엄마와 나를 영영 떠날 결심을 마친 게 분명했다. 결국 우리는 늦은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엄마는 순순히 짐을 꾸렸다. 아빠의 결심에 엄마 역시 동조한다는 뜻이었다. 엄마가 현관에 여행가방을 내던지듯 부려 놓고 나를 불러서는 내 손을 꼭 잡고 아빠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아빠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바다!
    내 뒷목에 귀신이 손을 얹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리는 아빠의 차 속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핸들을 쥐고 있었고 엄마는 자신의 손을 쥐고 있었고, 아빠는 바다를 찾고 있었다. 바다는 언제부턴가 계속 우리 옆에 있었지만 아빠는 저것은 우리가 찾는 바다가 아니라고 했다. 아빠는 보다 아름다운 바다를 찾고 있었다. 어린 아들에게 처음 보여주는 세상의 시작이자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아빠는 믿었다. 마치 바다의 다른 이름이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데는 너무 깊어.
    엄마의 두 손이 잠시 서로를 놓았다가 더욱 세게 잡았다.
    그래야 맑고 아름다워.
    아빠가 말했다. 차창을 내렸다. 바람이 몰아쳤다. 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크게 났다. 난데없이 뒷좌석의 차창이 열렸다. 내 머리칼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거센 바람이 나를 필사적으로 밀었다. 나는 아무것도 잡고 있지 않아서 앉은 채로 휘청거렸다. 열린 차창 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굉음이 울렸다. 나는 모로 기울어져 한 손을 버둥거렸다. 저절로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일순간 나는 말더듬이가 되어 어, 어 뜻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엄마가 아빠의 오른팔을 거세게 잡아채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해. 그만 하라고.
    엄마가 잠시 숨을 멈추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가 다시 말했다.
    그만 해야 돼.
    아빠가 얼른 차창을 올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아빠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내 울음소리는 너무 크게 들렸다.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빠가 한숨을 내쉬었다. 코웃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엄마는 벌게진 얼굴을 돌려 나를 보았다. 엄마의 두 눈이 번질거렸다. 무서웠다. 나는 얼른 뒷좌석에 엎드려 누워 고개를 파묻었다. 안전벨트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내 쪽으로 몸을 틀어 고개를 길게 내밀고는 좀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넌 왜 우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 도대체 만날 왜 우는 건데.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니? 그래서 이렇게 우는 거냐고?
    때때로 울음은 그 자체만으로 앞일을 예견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니 아이건 어른이건 너무 자주 울면 안 된다. 아니요.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걸요. 나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엄마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기대하면서 구토가 쏟아지기 직전까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를 반복했다.
    얘를 울리는 건 너야, 너라고.
    아빠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며 엄마에게 소리쳤다.
    얘 우는 소리가 듣기 싫으면 너라도 웃던가.
    아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마가 웃었다. 소리 없이. 맞잡은 두 손을 떼고 양 무릎을 잡고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그러고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다가 내게 사탕 두 개를 건넸다. 귀신과 나눠먹으라는 듯, 같은 맛을 가진 사탕 두 개였다. 갑자기 귀신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나돌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탕을 받아 든 아이처럼.

 

    둘은 서로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은 오랫동안 헤어지고 싶어 했다. 그건 내가 태어난 후의 일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귀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귀신은 그저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엄마의 등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우리 중 누구도 찾지 못한 맑고 아름다운 바다를 엄마의 몸 너머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엄마의 몸이 아니라 한때 뇌수막염을 앓았던 엄마의 머릿속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이 고였다가 서서히 증발한 흔적이 엄마의 머릿속에 남아 있고 그것은 엄마의 한쪽 귀를 아프게 했다. 엄마는 아프다, 나는 뒷좌석의 딱딱한 쿠션에 얼굴을 묻고 혼자 속으로 되새기고 되새겼다. 엄마는 아프다. 엄마는 아프고, 엄마는 아프니까.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차라리 웃는 게 어떨까?

 

    엄마는 가발을 쓰고 아빠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결혼 전이었고, 퇴원 직후였다. 엄마는 가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아빠는 커튼을 쳤다. 불을 껐다. 엄마 옆에 벌거벗고 누웠다. 엄마는 베개 밑에 얼굴을 밀어 넣고 엎드려 누웠다. 아빠가 이불을 들췄다. 이불은 얇았지만 눅눅했다. 아빠는 엄마의 등 위에 엎어지듯 누웠다. 엄마는 가발이 벗겨질까 무서웠다. 엎드린 채로 두 팔을 길게 뻗어 베개의 양쪽 귀를 눌렀다. 엄마는 간신히 숨을 내쉬며 한낮의 어둠이 더욱 컴컴해지는 것에 놀라 눈을 감았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엄마는 스스로 불을 켜고 끄는 법을 잊었다. 늘 다른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불을 껐다가 켰다. 불을 끄면 병실 구석구석에서 작은 빛들이 반짝였다. 때때로 그것들은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가까운 곳에서 간호사들이 환한 구석에 모여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느린 걸음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누워 있던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힌 뒤 신발을 끌며 사라졌다. 큰일 날 뻔했어. 간호사들은 저들끼리 속삭였다.
    새벽녘에는 느닷없이 불이 켜지곤 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당직 간호사가 노려보았다. 저러다 큰일 나려고. 간호사의 혼잣말은 누군가를 혼내는 것처럼 들렸다. 엄마는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체했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엄마의 두개골 깊숙이 꽂혀 있던 온갖 튜브들이 흐트러졌다. 간호사는 부리나케 엄마에게 달려와 침대의 사면을 온통 커튼으로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른 침대를 향해 떠났다. 엄마는 그녀들이 커튼을 언제 걷을지 알 수 없어 무서웠다. 간호사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엄마는 너무 잘 알았다.
    엄마는 자주 커튼 속에 갇혀 있었다. 반듯하게 누워 아랫도리에 힘을 주었다. 침대 밑에 매달린 소변주머니가 어제보다 더 무거워지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요의 없는 배설을 흉내 냈다. 밤사이 병실의 모든 소변주머니가 가득 채워졌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병실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천장에는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그림자가 돌아다녔다. 그것은 중환자실에 깃들어 있는 체념과 절망에 오싹한 공포를 덧붙이는 것들 중 비교적 사소한 것들에 불과했다.

 

    아빠의 눈에도 엄마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가 입원과 퇴원을 겪는 사이 얼마나 말랐는지 알고 놀랐다.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이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아빠는 어둠 속에서 엄마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엄마의 몸이 꼬챙이에 찔린 것처럼 움찔거렸다. 엄마는 온몸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빳빳하게 누워 있었다. 엄마의 몸이 단단해지는가 싶더니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덩달아 아빠의 몸도 딱딱하게 커졌다.
    아빠는 엄마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아빠의 몸이 금세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엄마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 팔을 버둥거리며 베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침대 발치께에 누군가가 있어서 엄마의 두 발을 세게 쥐고 거칠게 잡아당겼다가 다시 놓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앞뒤로 쉴 새 없이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아빠 역시 자신의 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아빠는 빠르게 다가오는 파도를 밀어내며 먼 바다로 나아가듯 엄마의 몸에서 느껴지는 척력을 이겨내려 애썼다.
    아파.
    아빠는 매트리스에 입술을 붙이고 중얼거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파.
    그 순간 아빠는 엄마의 젖은 등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문득 아빠는 궁금했다. 십 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이토록 쉽게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아빠는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 순간 엄마의 몸 속에 내가 생겨났다. 엄마는 여전히 베개 아래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파. 아픈 사람이야. 나는 그 말과 함께 생겨났다. 그리고 귀신이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가 멍든 팔로 침대 밑에 떨어진 속옷을 찾으려고 캄캄한 바닥 아래를 뒤질 때, 귀신은 언제 엄마의 몸 밖으로 흘러나올지 모를 나를 기다리기 위해 엄마의 등에 바짝 기대어 누웠다. 아빠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응, 짧게 대답했다. 아빠가 말했다.
    한 번 더 할까?
    엄마는 피식 웃었다. 그러곤 흐트러진 가발을 보란 듯이 매만졌다.

 

    한참 만에 아빠가 차를 세웠다. 아빠가 찾는 아름다운 바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이었다. 엄마는 트렁크에서 밧줄을 꺼냈다. 매우 긴 밧줄이었다. 그때 귀신이 엄마의 등 뒤에서 한 뼘쯤 비켜섰다. 아빠는 튜브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주 느린 속도이긴 했지만 조금씩 튜브에 공기가 채워져 갔다. 튜브 한가운데 뚫려 있는 구멍도 점점 커졌다. 아빠는 튜브에서 나쁜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엄마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는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란 밧줄을 흔들었다.
    다시 집에 데려다줄 거지?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튜브를 여전히 입에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얼굴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다만 커다란 튜브가 앞뒤로 까닥까닥 움직였다.

 

    맑은 바다였다. 텅 빈 바다였다. 나는 아빠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세상의 시작은 맑고 세상의 끝은 텅 비어 있다. 아빠의 말처럼 아름다운 바다였다. 하지만 그것은 버려진 바다였다. 아빠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시작은 아름다운 것이었고 아빠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끝은 버려진 것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밧줄 든 손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길게 늘어져 있던 밧줄이 모래사장에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
    아빠가 내게 튜브를 건넸다. 나는 순순히 튜브의 커다란 구멍 속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튜브는 곧장 내 몸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빠가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튜브를 다시 주웠다. 엄마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튜브의 한쪽 끝을 잡고는 밧줄을 묶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귀신이 엄마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죽 내밀고는 밧줄을 묶고 있는 엄마의 손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엄마.
    엄마를 불렀다.
    귀신이 보여요.
    엄마에게 말했다.
    응.
    엄마가 대답했다. 그때 나는 얼핏 귀신의 입술이 달싹이는 걸 보았다. 그제야 나는 여태까지 내가 엄마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대답들이 어쩌면 전부 귀신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엄마는 갓난아기인 나를 뒤집어 놓았다. 엄마는 벽에 기대어 내가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나를 낳기 위해 물고기 꿈을 꾸었다. 물고기는 죽은 채로 파도에 떠밀려와 모래사장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크지 않았다. 엄마는 죽은 물고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물고기는 뜨거웠다. 축축했다. 엄마는 죽은 물고기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것을 가져다가 욕조 안에 풀어 놓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금세 썩어버릴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강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웃자란 수초에 걸려 발견되었다. 그는 온몸에 암이 퍼져 있었지만 그의 사인은 익사였다. 엄마는 종종 그 사실이 암시하는 바에 대해서 고민했다. 엄마는 욕조 속 물고기를 먹고 자랐다. 엄마는 그 사실이 아주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아빠는 엄마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고, 바로 그것이 아빠의 고민이기도 했다. 아빠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쉬웠고, 아빠는 그 방법을 실천했다. 내겐 어린 시절이 없어. 물고기였던 시절만 있지. 엄마는 자주 물고기 꿈을 꾸었지만 엄마에게 그건 언제나 죽은 아버지를 꿈꾸는 기분이었다.
    물고기를 담을 뭔가를 찾으려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 사이, 엄마의 손 안에 있던 물고기가 사라졌다. 엄마는 손바닥을 여러 차례 뒤집어도 보고 양 손바닥을 맞부딪쳐도 보고 빈주먹을 움켜쥐어 보기도 했지만 사라진 물고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는 주저앉아 손바닥에 코를 대어 보았다. 비릿한 냄새가 콧속으로 번졌다. 그것은 누군가의 젖은 사타구니에서 나던 냄새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방바닥에 코를 처박은 채 두 눈을 끔뻑거리는 나를, 엄마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를 낳은 뒤 엄마는 더 이상 물고기 꿈을 꾸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마지막 자식이었다. 내게 엄마는 첫 번째 엄마였다. 우리 중 누구도 꿈을 꿀 이유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툭하면 잘 들리지 않는 한쪽 귀를 면봉으로 후볐다. 면봉 끝은 항상 노랗게 젖어 있었다. 면봉으로 귀를 파면서 내 얼굴이 파래지는 것을 보았다. 젖은 면봉의 냄새를 맡으면서 발가벗겨져 훤히 드러난 내 푸른 엉덩이 아래, 누렇게 젖어드는 요를 보았다. 엄마는 다리를 길게 폈다. 한쪽 발을 내 배 밑으로 집어넣었다. 한 손으로는 면봉을 부러뜨렸다. 부러진 면봉을 방문께 던져버렸다. 엄마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뒤집혀 있던 나를 다시 뒤집어 놓았다. 어쩌다 한 번씩,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 엄마가 내게서 발을 거두며 혼잣말을 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귀신이 있었다. 나는 여섯 살이었다. 9월이었다. 수온이 낮은 바다였다. 엄마는 나의 작고 마른 몸뚱이에 커다란 튜브를 끼웠다. 재밌을 거야. 엄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없었다. 무언가를 사러 가기 위해 아빠는 나와 엄마와 귀신을 남겨 두고 자리를 떴다.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아빠는 지갑 대신 핸드폰을 먼저 챙겼다. 엄마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녀오세요, 라고 말해.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다녀오세요.
    겨우 엄마의 귀에만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튜브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붙들고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엄마에게서 멀어질수록 밧줄이 조금씩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낚싯대의 릴을 감았다가 다시 푸는 것처럼 엄마가 한 손에 둘둘 말고 있던 밧줄을 슬며시 풀어내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밧줄이 튜브를 붙잡고 있었다. 밧줄의 한쪽 끝은 내 머리통만 한 돌에 둘둘 감겨 있었다. 엄마는 팽팽해진 밧줄을 내려다보며 매우 안심한 표정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나를 잠깐 쳐다보고는 등을 돌렸다.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바닥을 샅샅이 훑어보며 내게서 멀리 사라져 갔다. 그 순간 높은 파도가 나를 향해 밀어닥쳤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일격이었고, 예정된 바여서 피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파도는 갈고리처럼 내 정수리를 덮치며 나를 움켜쥐었다. 뭐라 비명 지를 틈도 없이 나는 튜브의 깊은 구멍 아래로 쑥 빠져 들어갔다. 기다란 밧줄이 수면 위에서 춤을 추었다. 엄마의 등이 좌우로 삐딱하게 흔들리며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내 눈앞을 가득 채웠다가 이내 컴컴해졌다. 순식간이었지만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등 뒤에 서 있던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어느새 내 등 뒤로 옮겨와 있었다.

 

    물속에서의 귀신은 조금 지쳐 보였다. 그가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귀신의 손은 여느 때보다 훨씬 커보였다.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 몸과 마음이 단번에 기울었다. 어쩐지 그 흐느적거리는 듯한 검은 손짓은 아름다웠다. 그는 빠른 물살에 휘감겨 수면 아래 거꾸로 맴을 돌고 있는 내 옆에서 유유히 헤엄을 쳤다. 나는 바다를 처음 보았고, 엄마는 나를 흘려보냈다. 우리는 예정된 모든 일들을 실천했다. 물소리가 들렸다. 물속의 것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물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또렷한 감각으로 내게 전해졌다. 숨이 빠르게 멎어 갔다. 나는 귀신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여섯 살, 쉽게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나는 영원히 일곱 살이 되지 못할 아이였다.

 

    귓속에 바닷물이 가득 들어찼다. 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고함을 내지르듯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귀신은 빠르게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곤 내 등 뒤에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밧줄과도 같은 귀신의 팔이 내 몸을 칭칭 감더니 마치 내가 무거운 돌인 양 바다의 맨 밑바닥까지 나를 잡아 내렸다.
    엄마가 보여요.
    응, 그러게.
    귀신의 대답이 이어졌다. 엄마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여기, 엄마가 있어요.
    응. 그래. 그럴 거야.
    내가 영원히 일곱 살이 되지 않으리라는 예언이 사실은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귀신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귀신과 나는 춤을 추듯 서로를 꼭 끌어안고 물살에 휘감겨 흔들렸다. 그의 품에 안긴 채로 두 눈을 부릅뜨려 애썼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엄마를 부르고 싶었다. 엄마. 벌어진 입 밖으로 기포들이 끓어오르는가 싶더니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짠물이 그득 밀려 들어왔다. 엄마. 엄마의 대답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는 엄마를 부를 작정이었다.
    엄마.

 

    응.
    대답은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들려왔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구나. 다음 차례가 마지막이겠구나. 순간 가파른 모래언덕을 오르던 엄마가 불현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보는 기척을 나는 물속에서도 분명 감지했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렸다는 것을 막 깨달은 사람처럼 짧은 탄식을 내지르는 소리까지 내 귀에 또렷하게 전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귀신을 믿고 따라도 될 것 같았다. 이번이야말로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커다랗고 축축하게 젖은 손이 내 입을 거세게 틀어막았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직까지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엄마를 볼 수 있고, 아주 먼데서도 엄마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 있는 두 귀를 가졌다는 것.

 

    나는 여섯 살, 튜브 대신 허리에 귀신의 팔을 두르고 있다. 언제라도 엄마, 하고 부르면 늘 누군가 달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가 “얘는 잘 웃네요”라며 기이하고 신기한 것을 바라보듯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갔다. “그건 뇌손상으로 인한 자동반사일 뿐이에요”라는 대답이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강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했다. 그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한때 암을 앓았다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가끔 중환자실을 지키는 젊은 간호사들이 내 다리 사이를 물수건으로 닦으며 킥킥거렸다. 다른 간호사를 손짓으로 불러내 함께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 가면서 내게 물었다.
    몇 살이야?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다.
    여섯 살.
    간호사들이 서로의 어깨를 치며 폭소를 터뜨리다가 내 허벅지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곤 제 자리로 돌아갔다. 여섯 살이래. 그들은 대놓고 웃었다. 그들 중 몇몇은 내게 더러 다른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지금이 몇 년도인 줄 알아? 여태껏 백 이상 숫자를 헤아려 본 적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고작 이것이다. 나는 여섯 살, 지금은 9월. 나는 바다 아래에 있고, 푹 잠겨 있고, 지금은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막 뒤돌아선 엄마가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참. 그 순간 내게 와락 달려들던 귀신의 몸뚱이가 소용돌이를 만난 물풀처럼 사방팔방 흔들리는 참. 오래전 내가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커튼 안에서 혼자 되뇌는 참. 괜찮은 건가요? 모두 살아 있는 건가요? 엄마?

 

 

 

 

[개별 작품 선정평]

(선정평) 황현진의 「여섯 살」
 
    아버지의 죽음, 질병과 후유증, 아들의 장애로 이어지는 사건은 얼핏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건 시간과 서술 시간을 뒤흔들어 놓고, 아이의 시점을 선택하여 환각과 환청을 동원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완수된 것 같다. 소설은 불운한 사건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삶의 불안과 결핍을 점점 인상적으로 강조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서 일렁이는 불안, 그래서 분열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인물의 내면이 환각처럼 강하게 부조되고 있다. 일상적인 행복과 불행이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감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 더욱 삶의 이면에 깊숙이 천착하는 소설은 매혹적이다. 물의 이미지나 아이의 목소리를 빌린 단문의 문장은 소설의 이러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건의 작위는 흔적을 남긴다. 인물의 내면과 환상의 출몰이 다소간 인공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불안이 점유할 수 있는 감각의 영역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공적 감각의 한계를 뚫고 나가는 곳에서 삶의 비의는 좀 더 근원적으로 탐구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선정 소식을 밤 열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받았다.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가 활짝 웃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누가 언니 좋아한대?’라고 물어왔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나를 좋아해주고 있다는 기분. 그런 기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날의 술값은 내가 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오래 전 쓰던 노트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엄마는 물고기 꿈을 꾸고 나를 낳았다.’ 9월 내내 그 문장을 붙들고 지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쓴 날은 9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의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꽃게찜을 먹겠다’ 나는 꽃게 알레르기가 있지만, 좋아하는 음식들 중 꽃게를 으뜸으로 꼽는다. 9월 30일, 나는 나를 가장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내게 가장 해로운 방식을 택했고, 소설을 완성했다. 나는 9월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대해 충분히 만족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나는 공공의 장소에서 글을 쓴다. 사람들 속에서 문장을 쓴다. 내가 쓰는 이 문장이 그들 모두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함께 소설을 쓰고, 읽는 친구들이 있다. ‘파를’이라고 부른다. 이 소설은 내가 ‘파를’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퇴고한 첫 번째 소설이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나는 사람을 쓰고 싶다. 그 이상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두 번째 장편을 몇 년째 붙들고 있다. 그 작품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물음이 있다. 그들은 어찌하여, 무슨 연유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인가? 나는 그들이 어쩌다 만났는지, 그 내력에 대해 늘 생하고 고민한다. 물론 이 물음은 내가 내 삶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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