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소설]카니발의 연인

 

 

카니발의 연인

 

 

김보현

 

 

 

 

    시야가 흐릴 정도의 햇살이다. 모든 감각이 나른하게 마비되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또렷하게 떠오른다. 바닷물이 말라붙고 난 뒤 피부에 맺히는 소금처럼. 나는 손바닥으로 팔뚝을 쓸어내린다. 죽음의 결정(結晶)을 가볍게 털어내 버린 뒤 온통 살고 싶은 의지만으로 충만한 여자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다.

 

    이혼 후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쉼 없이 개막하고 폐막하면서 이어 붙는 지역 축제와 페스티벌, 각종 박람회를 따라 도시와 도시 사이로 굴러다닌다. 짧게는 3~4일, 길게는 이주 정도, 낯선 도시에 머물며 축제의 열기에 휩쓸려 모르는 사람들과 정신이 빠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숙취와 피로,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감각의 마비. 충동과 광기. 지금 내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이틀 전, 기차를 타고 올해 처음 시작된 T 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도착했다. 지난주에는 보디페인팅 페스티벌에 있었고, 그 전에는 검은 모래 해변 축제에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도망치고 싶어서 힘껏 집어던졌던 일들이 긴 포물선을 긋고 돌아와 내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내 삶에는 언제나 그런 식의 공정함이 적용되어 왔다. 내가 외면하고 도망쳐 온 일들 때문에 결국 파멸하게 되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 또한 흥분되는 일이다. 될 대로 되어버리라는 맹목적 감정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용인하고 나자 음울한 만족감이 밀려왔다.

 

    나는 앞으로 유명해질지도 모를 영화감독이나 배우, 시나리오 작가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와, 와, 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추임새를 넣어 가며 그들이 중얼거리는 말들을 듣는다. 마치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처럼. 오랜 시간 경청만 훈련한 사람처럼. 나는 그들이 만든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설사 봤다고 해도 그 수준이나 가능성 따위를 논할 안목도 자격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떠들 수 있다. 최고의 찬사. 열렬한 뒷담화. 적절한 채찍질. 언제나 감탄.

 

    사실 나는 이런 쪽에 소질이 있다.

 

 

 

    내 앞에는 남자가 하나 앉아 있다. ‘저 같은 게’로 시작되는, 겸손을 가장한 잘난 척인지 단순한 자기비하인지 알 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스물여덟의 마로.

 

    스물여덟. 달콤한 나이다. 온라인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문득 생각보다 인생이 길다는 것을 깨닫곤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영화제 사무국에서 모집한 ‘마스터 클래스’에서 일주일 동안 먹고 자며 영화와 관련된 세미나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잠이 안 와요.”

 

    우연히 합석한 술자리에서 그는 소주잔을 휙 돌려 엄지손톱만 한 회오리를 만들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뭔가에 몰려 마지못해 짓는 듯한, 어딘가 침울해 보이는 웃음이다.

 

    “왜? 설레서?”

 

    “그래요, 설레서.”

 

    마로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제 막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 그는, 그러나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표정이다. 이봐, 젊은 친구, 좀 더 포커페이스를 훈련할 필요가 있어. 마음속에서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마로는 양쪽 테에 호피 무늬가 들어간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봤다. 소리 내어 울고 난 것처럼 눈동자와 눈가가 온통 붉어진 얼굴로. 나는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해 병째 잡고 돌렸다. 병목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회오리가 생겼다. 삼켜요. 다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해! 하지만 왠지 집을, 가족을, 소중한 것들을 잃고 망연자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모습만 그려질 뿐이다.

 

 

    스물여덟에 나는, 광희를 만났고 아이를 가졌다. 둘 중 어떤 것도 계획하거나 기대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능청스럽게 두 남자가 포함된 세트 구성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우리는 대학로의 허름한 소극장 조명실에서 처음 만났다. 광희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극장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무대도 만들고 조명도 달고 청소도 하고요.”

 

    하지만 자신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충 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는데 눈빛에 이상한 결기 같은 것이 일렁였다. 그러니까, 그때 그는 스물셋.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툰 어린아이였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온통 눈에 드러나는 스물셋의 광희는 새까매진 손으로 조명기의 나사를 손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뭉툭해서 음악이든 뭐든 예술 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잠깐, 역시 대충 놀고 있는 주제에 괜한 허세를 떠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또 어때. 그는 겨우 스물셋, 자세히 보면 얼굴에 솜털까지 보일 만큼 귀여운데. 반지를 끼지 않은 손,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무심함, 구겨지고 꼬질꼬질한 티셔츠. 애인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상대를 무조건 애인 가능자로 가늠해 보는 나 자신에게 잠시 피로를 느꼈지만 그것은 곧바로 가벼운 흥분으로 변했다.

 

    “재주가 많은 손이네요.”

 

 

    언젠가 그는 말했다.

 

    “그때가 시작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 기억을 여러 번 매만져 봤다. 상상 속에서 나는 그에게 다른 말을 건네 본다. 조금 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말. 설레고 떨리는 마음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말. 하지만 뭐라고 말을 건네 보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도망쳐 보아도 그는 끈질기게 나를 쫓아와 말한다.

 

    “그때가, 시작이지 않았을까.”

 

    스물여덟을 앞둔 겨울, 국문학 박사 수료를 앞두고, 나는 내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가늠해 보곤 했다. 평생 학자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외면하고 싶었던 깨달음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차가운 샌드위치나 김밥 같은 것만 먹으면서 논문을 읽고 글을 쓰고, 계절이 지나는 줄도 모르는 채 어둡고 습한 연구실 책상에만 앉아 있는 삶이 내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시험이나 발표 때마다 잠깐씩 느끼던 우울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쉬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한동안 죽은 사람처럼 멍하니 누워 있던 나는 대학 때 잠깐 연극 동아리를 쫓아다닌 기억을 더듬어 연극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것은 몰아(沒我)에 대한 갈망이었다. 계속 무대를 옮겨가며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는 삶. 완벽하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삶. 그런 것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념적 선망. 나는 한 가지만 움켜쥐고 그러안기에 급급했던 삶에 대한 염증과 반작용에 떠밀려 다녔다. 낯선 사람들과 몰려다니며 연극을 봤고, 가끔씩 연극 잡지나 인터넷 매체에 연극에 관한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그러다 ‘진짜로’ 연극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한 발짝 더 내딛었을 때,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오디션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고 대신 제안을 받은 조명 스태프 일에서 광희를 만난 것이다.

 

    이따금 생각한다.

 

    그때, 광희를 풍경처럼 관망하면서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갔다면, 딱 한 발짝만이라도 더 들어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때는 운명처럼 느껴졌던 만남이 손쉬운 타협이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존재적 스침이라고 생각되었던 일이 방심한 순간 당한 태클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그렇게 허술하게 넘어졌나.

 

 

    조명을 통제하는 기계는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무대의 빛을 통제하는 일은 나같이 소심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조명감독인 광희가 졸거나 잠들지 않도록 잠을 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귤이나 사탕 같은 것을 까먹으면서. 대체로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한번 해볼래요?”

 

    마지막 공연 때, 광희는 처음으로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이니까, 한번 해봐요.”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공연이 하루에 두 번씩, 월요일 하루를 빼고 일주일간. 그러니까, 엿새 동안, 열두 번째 공연이었다. 죽은 남편이 까맣게 불탄 새가 되어 자꾸만 날아온다는 지루한 내용의 창작극이었다. 하루 평균 50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육백 명의 사람들. 초반에 여러 번, 뒤로 오면서는 표시나지 않는 한두 번의 실수가 있었다. 우리 둘만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작고 미미한 사고들.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 둘만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일들.

 

    마지막 조명을 함께 내린 뒤, 커튼콜이 시작되었다. 연출이 우리 쪽을 향해 손을 뻗었고 우리는 손을 맞잡고 on/off 버튼을 누르며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조명들이 일제히 깜빡깜빡 무대를 비췄다. 무대 쪽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무대 위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뒤쪽, 우리가 앉아 있는 조명실을 향해 박수를 보내줬다.

 

    깜, 빡, 깜,

 

 

    빡.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박수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낯선 모텔방의 작은 창문 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 곁에는 달콤한 스물여덟의 마로가 잠들어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을 통째 도려낸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 있는 야광별을 바라보면서 그가 어서 눈을 뜨고 나가 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것처럼 입을 반쯤 벌린 채 잠들어 있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그가 정말 죽어버린 것이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다 도망치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옷을 꿰어 입고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치 선불을 내고 빌려 놓은 레지던스로 돌아와 캐리어를 안고 모로 누워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신혼여행을 위해 광희와 똑같은 것으로 구입한 패브릭 캐리어는 여기저기 찢기고 뜯겼지만 그래도 아직 튼튼하다. 뚜껑에 달린 지퍼를 열면 본래 크기의 두 배까지 팽창하는 오지랖 넓은 캐리어엔 찌그러진 과자와 사탕이 가득하다.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마다 훔치거나 구입해 쑤셔 넣은 것들이다.

 

    아이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28개월, 만으로는 두 살, 우리나라 나이로는 네 살이다. 떠나기 전 날, 나는 아이와 함께 커피숍에 앉아 우리가 함께한 38개월을 역순으로 꼽아 보았다. 카운트다운을 하듯 숫자를 깎아내리면서 아이가 점점 작아져 정말로 내 자궁 안에 씨앗처럼 박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준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기억나?”

 

    갑자기 그런 질문이, 내면의 어딘가에서 솟아올랐다.

 

    “응.”

 

    아이는 침으로 다 젖은 크래커를 손에 쥔 채 무심히 대답했다.

 

    “정말?”

 

    “응.”

 

    “어땠어? 뭐가 보였어?”

 

    그저 의미 없는 응, 응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의자를 붙이며 다가갔다.

 

    “까맸어.”

 

 

    아이는 아직 흰색과 검정색 이외에는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을 말할 수 있다면, 어쩌면 다르게 말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소리도 들렸어?”

 

    의미 없는 말이야, 그저 떠드는 것뿐이야, 생각하면서도 나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쿵쿵, 쿵쿵, 그랬어.”

 

    아이는 수영을 하듯 허공에 발을 휘저으며 말했다. 커피숍은 시끄러웠다. 아이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떠들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이의 말랑말랑하고 작은 손을 쥐어 보았다. 긴 속눈썹과 두툼한 눈두덩은 놀라우리만큼 어렸을 때의 나와 닮았다. 아이가 내 자궁에서 경험한 것은 아무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나와 아이만의 경험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있어. 나는 아이의 따뜻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아이는 다 잊어버릴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내가 내 어머니의 자궁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아빠는 언제 와?”

 

    아이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아빠라고 말했다. 광희와 지낸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한 결과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억울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분하고 원통했다. 인생에 하나쯤은, 나에게만 편파적이고 맹목적인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모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 아니야? 남자 아이니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빠와 함께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려고 노력했다. 광희는 아이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거나 캐치볼 같은 것을 할 수 있다. 사춘기에 남자 아이들만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는 다정하게 조언해 줄 것이다.

 

 

    레지던스 앞에서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 젊은 아이들 몇이 팬터마임을 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과장된 제스처로 뒤뚱뒤뚱 걸으면서. 아이가 곁에 있었다면 겁에 질려 내 몸을 꽉 붙들었겠지. 괜찮아, 하고 아이를 품에 안는 상상을 하며 한동안 멍청하게 서 있다 모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곤 아무 쪽으로나 북적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아앗!”

 

    아는 얼굴이 휙, 지나가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팔꿈치를 잡으며 소리쳤다. 대학 선배였다. 이름이 유성인가, 그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가웠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서로를 애매하게 부르면서 더듬더듬 대화를 이어 붙이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어, 하고 내 쪽을 바라보는 그에게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커다란 체크무늬 남방과 청바지, 500미리 생수병이 거꾸로 꽂혀 있는 까만색 백 팩까지, 그는 마치 타임 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십여 년 전 캠퍼스에서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가에 자글자글 잡힌 주름과 미묘하게 무너진 얼굴선 때문인지 옆머리를 짧게 쳐 두상을 드러낸 헤어스타일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고, 아마도 대학 시절부터 입었을 물 빠진 청바지는 후줄근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어색하고 무안해지려는 찰나, 그가 뒤편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저 영화에 나와.”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문구가 크게 인쇄된 장편영화였다.

 

    “와! 나 마침 이 영화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듯 오윤오! 하고 이름 하나가 떠오르면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좋다고들 하더라구. 멋있다, 오빠!”

 

    윤오는 애매하게 웃었다. 원래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말해 본다.

 

    “꿈을 이뤘구나?”

 

    “그런가.”

 

    그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상영시간이 조금 남았으므로, 윤오와 나는 상영관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는 홍보회사 다니다 그만두고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연봉도 괜찮았고, 야근이 잦긴 했지만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지.”

 

    슈트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구두와 시계, 서류가방, 야근이나 회식 때문에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남자. 나에게 그건 상상 속에만 있는 사람이다.

 

    “아, 그때 너, 왜, 광화문까지 찾아왔었잖아.”

 

    “내가?”

 

    “그래. 나 막 취직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걔랑 같이 왔잖아. 얼마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간 애. 누구지? 경민인가?”

 

    정민 언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을 꼽아야 한다면 그 언니가 상위 3명 안에는 들 것이다.

 

    “와서 막창 먹으러 갔었잖아.”

 

    혹시, 했던 마음이 훅 풀어지면서 짧게 웃음이 터졌다. 막창은 내가 유일하게 못 먹는 음식이었다. 딱 한 번, 입안에 넣었다가 구취 같은 역한 냄새에 구역질을 하며 토한 이후로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다른 누군가와 나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잘못된 기억이라도 늘어놓으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해 보려는 노력이 고맙게 느껴졌다. 뭣보다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 속의 내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취업한 선배를 뜯어먹겠다는 일념으로, 절대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선배의 손을 잡고 광화문까지 찾아가 막창을 씹어 먹는 어린 여자애.

 

    “너 하이힐 신고 걷다가 발목 다쳐서 내가 슬리퍼도 사줬잖아.”

 

    멀리서 희미한 기억이 다가온다. 커다란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건물 지하에서 뛰어 올라왔다. 장사 개시와 함께 사탕과 티슈를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치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하는 모습이 애처로워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이, 가까운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붙인 뒤 절뚝거리며 거리를 헤맨 기억이 마치 방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오빠가 같이 있었다고?”

 

    밤새 발목은 퉁퉁 부어올랐고, 다음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 깁스를 했고, 광희가 자전거보다 조금 빠른 50cc 스쿠터로 극장에서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세상은 두 가지뿐이었다.

 

    광희와 그 밖의 것들.

 

 

 

    윤오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뻐근한 통증이 번개처럼 빠르게 가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갔다. 짧은 순간, 깊은 상흔을 남기면서. 나는 잠깐 숨을 멈추고 멀리 허공을 바라본다. 무너질 듯 휘청거리는 마음을 일으켜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비가 오던 날, 우비를 입고 함께 달리던 밤거리. 헬멧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뭉개지던 야경. 언제나 뜨거웠던 광희의 야윈 허리. 나는 벨트처럼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꽉 감싸 안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 그는 좀 더 하얗고 미끈한 새 벨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취향에 따라 또 다른 벨트를, 그리고 또 다른…….

 

    “참, 성철 오빠는 뭐 해?”

 

    자꾸만 이어 붙는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나는 그에게 물었다. 윤오의 얼굴에 잠시 누구?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단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

 

    “왜, 성우 시험 준비하던 오빠 있잖아요.”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 오빠’가 늘 입고 다니던 다갈색 트레이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하는데 그가 마침내 기억을 해낸다.

 

    “아, 유성이? 걔는…….”

 

    그가 피식 웃자 입술이 갈라지면서 피가 맺혔다.

 

    “걔는 그냥 있어.”

 

    윤오는 입술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말한다.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그냥 있다는 건 꼭 죽거나 죽을 만큼 병들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술자리에서 김빠진 맥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성우들을 성대모사 하던, 무릎이 쑥 튀어 나온 트레이닝 차림의 유성 오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정말, 똑같았는데. 그런데 왜, 왜 그냥 있는 거야.

 

    “너는?”

 

    윤오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나를 바라봤다.

 

    “응?”

 

    “너는 어떻게 지냈느냐고. 여긴 어쩐 일이야?”

 

    대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목이 뻣뻣해진다. 나쁜 게임에 말려들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낭패감.

 

    “글쎄…….”

 

    억울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뭐, 어쩌다 보니.”

 

    불시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청한 기분을 느끼면서 대답했는데 의외로 그는 성가시게 캐묻지 않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나도 그래. 그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도 드러내지 않고 입술만 벌쭉거리며 웃는 모습이 대단히 비겁한 인상을 남긴다. 나는 그가 조금 더 집요하게 상처를 파헤쳐 줬으면, 끈질기게 의심하고 신랄하게 말해 줬으면, 하는 이상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건,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감정이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요.

 

 

    얼마 전 광희는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그 여자애에 대해 언급했다. 피곤한지 인중에 뾰루지가 올라와 있었다. 웃을 때 눈 꼬리가 살짝 눌린 얼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차가운 손이 심장을 꽉 쥐었다 놓은 것처럼 저릿하고 서늘한 통증이 가슴 한복판에서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당연하지. 나는 그 애가 아니니까. 나는 나니까. 내가 아닌 그 여자애와 함께 있을 때 완전히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나는 사진 속 광희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비슷비슷하게 희석되는 것보다야 그 편이 낫지. 그날 이후,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인터뷰 내용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거나 무마시키고 싶다.

 

    광희와는 햇수로 오 년을 함께 살았다. 그와 나의 나이 차이만큼. 그는 이제 스물여덟, 상당 기간 몰두해 있던 것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다. 광희를 만나면서 나는 떠나려고 했던 대학으로, 연구실로 돌아갔다. 다시 신입생들을 위한 기초 글쓰기나 문학 강독 수업을 했고,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강의를 하기 위해 애썼다. 후배나 동기를, 때에 따라서는 선배들마저 깎아내리면서 학과장의 눈치를 살피고 아주 작은 일에도 스스로 공치사를 하면서. 아, 이러다 정말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닌가, 때로 자조하면서. 광희가 이따금 공연을 하거나 연주를 도와주고 벌어 오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불규칙적이었다. 나는 광희를 원망했다. 때때로 미친 여자처럼 가학적인 말들을 쏟아냈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는 그를 연민하다 자괴감에 빠졌다. 그리고 나를 그렇듯 억척스러운 여자로 변모시킨 그에 대한 증오심에 눈물을 흘리는 지옥 같은 날들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더 막막한 시간들이, 끝없이, 끝도 없이, 이어 붙었다.

 

 

    “무척 추운 날이었어요.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어떤 여자 분이 다가와 내 두 손을 꽉 잡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넣어 주었어요. 함께 가자고 했죠. 춥지 않은 곳으로, 따뜻한 곳으로.”

 

    상영이 시작되고, 나는 당혹감을 느낀다. 영화는 신흥 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인생을 도둑맞은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윤오가, 변조된 음성으로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이미 다 지나가 버린 것처럼. 아쉬움과 후회밖에 남은 것이 없어 모든 것을 다 체념해 버린 노인처럼.

 

    상영이 끝나고 일어서자 우리는 무척 어색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나는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내가 먼저 당황한다. 윤오는 아니야,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짓궂었지.”

 

    그는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짓궂어? 그건 좀 이상한 표현이다. 뭐라고 받아치고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을지 골몰하며 땅바닥을 노려보고 있는데 어젯밤, 내 옆에서 죽은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자던 남자가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어?!”

 

    남자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하고 있는 스물여덟의 청년. 마루? 마로? 메롱이나 멜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름이 뭐든, 지금 이 순간, 그는 구세주처럼 보인다. 나를 이 곤란한 상황에서 꺼내 줄 수 있는 사람.

 

    “저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뜻밖에도 도움을 청하는 것은 구세주 쪽이다.

 

 

    “조별 과제로 단편영화를 찍고 있는데요, 이게 좀비물인데, 아니 멜로인가, 아, 저 그러니까…….”

 

    그는 우리에게 엑스트라로 출연하면 협찬 받은 고급 위스키를 한 병, 아니 두 병 주겠다고 다급하게 덧붙인다.

 

    “하자.”

 

    꺼슬꺼슬 말라붙은 칼처럼 서 있던 윤오가 갑자기 생기 있는 표정으로 말한다. 하자, 민정아, 우리 이거 하자.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뭔가를 하자고 말하자 꼭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나는 순진한 신입생처럼 약간 주저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생각보다 리얼하게 분장한 좀비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윤오와 나처럼 새로 섭외된 사람들이 왠지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우르르 촬영장에 들어섰다. ?“셋이 가족이에요.”

 

    조연출의 지시 하에 윤오와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어린아이의 손을 하나씩 나누어 잡았다.

 

    볼터치라도 한 것처럼 뺨이 붉은 신인 감독의 활기찬 “액션!”과 함께 좀비들이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관절이 하나쯤 빠진 것 같은 걸음걸이로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총을 맞아도,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다. 머리를 맞는 경우가 아니면 계속 걸으라고, 감독은 소리친다. 윤오가 먼저 좀비에 물려 감염이 되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도망친다. 말도 안 돼. 달리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윤오보다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잘 가.”

 

    집에서 떠나던 날, 짐을 꾸리고 있을 때 광희는 나보다 먼저 집에서 나갔다. 녹음 때문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거짓말 하지 마.”

 

    그는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다.

 

    “한 시간 안에 들어올 거야. 경준이 깨기 전에 가.”

 

    광희는 막 잠든 아이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캐리어를 끌고 일어서자마자 아이는 깨어났고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티셔츠를 뒤집어 입가를 닦아 줬다. 거칠게 안고 억지로 다시 재우려 하자 아이는 손톱으로 내 팔뚝을 할퀴며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아는 척하지 마.

 

    칭얼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토사물과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힌 뒤 나는 장롱에서 광희의 트렁크를 꺼냈다. 내 것과 똑같이 생긴 가방. 결혼식 이틀 전에, 폐업 세일을 하는 매장에서 급하게 구입한 패브릭 캐리어. 잠든 아이를 광희의 캐리어 안에 눕힌 뒤 경련하듯 떨리는 손으로 지퍼를 반쯤 잠갔다. 아이가 든 캐리어를 거실 한복판에 놓고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심장이 꼭 덫에 물린 짐승처럼 뛰었다. 비상계단에 숨어 광희가 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뒤, 아이가 큰 소리로 울었고, 핸드폰이 울렸다.

 

    “죽여 버릴 거야.”

 

    극도의 분노와 혐오로 꽉 잠긴 목소리.

 

    “진짜로, 죽여 버릴 거야.”

 

 

    광희는 아이보다 더 큰 소리로 악을 쓰더니 목 놓아 울었다. 나는 팔뚝에 생긴 아이의 손톱자국을 내려다보며 간신히 응, 하고 대답했다.

 

 

    “컷!”

 

    분장 팀이 윤오와 함께 감염된 사람들의 얼굴에 좀비의 분장을 입힌다. 왼쪽 뺨이 썩은 것처럼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윤오는 계속 키득거렸다.

 

    “괜찮아.”

 

    나는 좀비가 된 윤오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고는 씩 웃더니 내 손을 꽉 움켜잡았다.

 

    “다시 갈게요!”

 

    감독의 사인과 함께 으어어, 으어어어,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좀비들 속에 섞여 포효하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윤오는 활기차 보인다. 그는 가슴에 총을 맞고도, 허벅지에 칼을 맞고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나는 아이의 손을 낚아채 품에 안고 좀비들을 피해 정신없이 달린다. 돌부리에 걸려 다리가 휘청, 하는 순간 아이가 내 목을 꽉 끌어안는다. 살가운 감촉. 달콤한 냄새.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처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두 팔로 아이의 작은 몸을 단단하게 압박한다.

 

 

    촬영은 계속 이어진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불평을 하다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윤오와 나는 끝까지 남는다. 어떤 재난이 와서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혼자일 거다. 애써 지켜야 할 것도, 반드시 나를 살려야만 한다고 누군가를 납득시킬 만한 명분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악착같이 남아 아이를 데리고 뛰지만 결국 아이와 나 역시 좀비가 되고 만다. 한 가족이었던 윤오와 나와 아이는 우으어어어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삼십여 명의 좀비들이 모두 두 명의 좀비 사냥꾼의 총에 머리를 맞고 ‘제거’되는 장면을 끝으로 촬영이 끝나고, 남자는 윤오와 나에게 약속했던 위스키를 한 병씩 준다.

 

    “핸드폰 번호랑 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그는 편집이 끝나면 우리에게도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오!”

 

    윤오와 나는 몹시 기뻐하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윤오는 왼쪽 뺨과 귀가 너덜너덜하고, 나는 눈꺼풀에 보형물을 붙여 놓아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남자와 헤어진 뒤, 윤오와 나는 고된 일을 마친 노동자들처럼 길에 앉아 위스키를 병째 들고 목에 콸콸 쏟아 부었다. 좀비 분장을 한 채 술을 마시고 있는 우리들을 사람들은 힐끗 힐끗 쳐다보다가 눈치껏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실은 너무 무서워.”

 

    윤오는 이상하리만치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쪽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다시 시시콜콜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기질적으로 그런 게 불가능한 사람이 아닐까.”

 

    지나치게 내밀한 고백을 하는 주정뱅이의 얼굴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꾸만 윤오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곳에서 얼쩡거리지 마. 네 삶을 지켜.”

 

 

    그는 지금 자기가 너무 진지해서 우스꽝스럽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윤오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 놓았다. 작은 무덤처럼 보인다. 흙 위에 다른 토질의 흙이 얹어진 것 같은 모양. 우리는 작고 연약한 것, 아직 몸이 채 식지 않은 뭔가를 덮어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가버려. 다시는 오지 마.

 

    술에 취해 얼굴이 상기된 윤오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보라색 무당벌레 귀걸이를 만지작거린다. 아이가 좋아하던 귀걸이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내 등을 다 가릴 만큼 커다란 백 팩을 토닥인다. 백 팩 안에는 아이의 토사물과 땀이 묻은 티셔츠가 들어 있다. 축축하고 미지근했던 티셔츠는 이제 빳빳해졌다.

 

    윤오는 내 가방 안에 들어가겠다고 주정을 하다 몸을 둥글게 말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는 어떤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중요한 것은 머리. 그 안에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는 것처럼.

 

 

    다음 앨범도 잘 되면

 

    광희는 그 여자애와 아이의 손을 하나씩 나눠 잡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광희와 내가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빈번히 해본 가정이었다. 열심히 상상에 몰두하다 보면 아주 낯선 모습의 우리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당신들은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결혼 후, 처음 내놓은 앨범이 기대 이상으로 팔려 나가기 시작하자, 광희는 이혼에 대해 말했다. 그는 마치 처음으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여태 그 어두운 조명실에 갇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존댓말을 사용했다.

 

    “오래 생각해 온 일이에요.”

 

    나와 헤어지기 위해서 열심히 곡을 쓰고, 연주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노래를 불렀을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야, 바닥에 뭐 떨어졌어?”

 

    윤오가 내 뒷덜미를 잡아챈다.

 

    응. 뭔가 주우러 돌아다니고 있어. 아무거나 주워서 그것을 따라갈 거야.

 

    “야 인마, 똑바로 걸으라고.”

 

    나는 붉게 부풀어 오른 윤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이야기라도 해도 좋으냐고 묻고 싶고, 어떤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 하고 어리광을 부리고도 싶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눈물이 쏟아질 때마다 화장실에서, 부엌 싱크대 앞에서, 무릎을 끌어 안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마치 오래전에 봤던 영화나 책 속의 장면처럼 떠오른다. 광희는 한 번도, 그것을 자신의 무능에 대한 원망,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것 이상으로 해석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단 한 번도. 내 쪽에서 끝냈을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을 쓰다듬는다. 잘했어. 생각이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집어넣고 온순하게 복종한다. 멍청하고 게으른 짐승처럼.

 

 

 

    건너편 야외 테라스에 어린 커플이 앉아 있다. 남자가 길쭉한 잔에 밀 맥주를 반쯤 붓더니 컵 위에 숟가락을 뒤집어 대고 흑맥주를 부어 맥주 칵테일을 만든다. 노란 맥주 위에 까만 층이 생긴 칵테일을 보며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마술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한다. 두 사람이 행복한 표정으로 잔을 비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몫의 위스키를 전부 다 해치워버린다.

 

    “저 컵 너무 가지고 싶어.”

 

    취기가 오르면서 자꾸만 희미해지는 윤오에게 속삭이는 내 목소리가 머릿속을 둥, 둥, 울린다.

 

    “저런 거, 흔하지 않냐?”

 

    무심히 대답하던 그는 문득, 핵심을 공격당한 사람처럼 상처받은 얼굴이 되더니 벌떡 일어나서 야외 테라스로 뛰어간다. 괴상한 분장이, 그나마도 땀 때문에 흉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윤오의 얼굴을 보고 마법에 빠져 있던 커플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감싸 쥐며 막아서는 사이, 윤오가 맥주잔을 낚아채더니 달린다.

 

    “뛰어!”

 

    윤오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말한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달린다. 다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이 멀리 도망치고 난 뒤에야 윤오는 컵 안에 티슈를 쑤셔 넣은 뒤, 영화제 팸플릿으로 겉면을 여러 번 포장해 내 백 팩에 넣어 준다. 투명하고, 가볍고, 야무진 곡선을 가진 컵이다. 흔하지만 내겐 없는 것.

 

    우리는 이상한 성취감에 도취되어 깔깔거리며 웃다가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바삭바삭, 비스킷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등에서 부서졌다.

 

    “내 가방에 죽은 아이가 들어 있어.”

 

    “뭐?”

 

    윤오와 나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다 끝났어, 나는 생각한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화산 하나가 폭발한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다른 맥락으로 넘어와 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빠르게 뒤덮어버린다.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어. 빨리 그 사실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 본다.

 

    “와아아아아아!”

 

    요란한 함성과 함께 우리만큼이나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행사장 주변에 불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지워졌다. 표정이 지워진 사람들은 꼭 유령이나 괴물처럼 보였다. 죽여 버릴 거야. 광희의 목소리를 떠올린 순간, 소름이 돋는다. 나는 팔을 쓸어내린 뒤 더듬더듬 손을 뻗어 윤오의 팔을 잡았다. 어떤 혼란 속에서도 서로를 찾아내는 연인들처럼. 마치 그만이 유일한 구원인 것처럼.

 

    “민정아, 내일 뭐 할래?”

 

    윤오는 고개를 비틀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묻는다. 뭐야, 그 겁에 질린 표정은.

 

    “글쎄.”

 

    나는 웃으며 대답하지만 결국 울어버리고 만다. 영화제의 네 번째 밤이다. 폐막은 다음 주. 그러니까 축제는, 이제 한창이다.

 

 

 

 

[개별 작품 선정평]

(선정평) 김보현의 「카니발의 연인」
 
    어떤 소설 속 주인공은 읽는 순간 독자의 마음에 파문을 만든다. 그 파문은 주인공의 상처가 독자에게 이해되었다는 의미와는 별개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혼 후 캐리어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나’라는 사람이 내겐 그랬다. 이 여자의 고통, 이 여자의 방황이 쉽사리 손에 잡히는 것 같지 않았는데도 이 여자가 ‘내 가방에 죽은 아이가 들어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여자의 백팩에 들어 있는 훔친 컵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소설의 좋은 점은 바로 이런 장면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아니. 섬세하다라는 말보다는 아슬아슬하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매일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마음과 일치하는 문장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흔들바위 같은 문장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내겐 문장들이 그렇게 읽혔다. 마음을 흔들었다 무심한 척 돌아오고, 흔들었다 다시 돌아오고. 그 결 사이에 이 소설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같이 소설을 읽고 쓰고 있는 〈폭포동 조기축구회〉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여름부터 시작한 모임인데, 이 모임을 통해서 소설을 대하는 자세랄지 태도 같은 게 많이 바뀌었어요. 제게 소설은 언제나 너무 좋아서 어려운 대상이었고, 그래서 왠지 소설을 생각하면 막 가슴도 아프고 그런 신파 쩌는 감성이 되곤 했는데,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는 어렵기만 했던 소설에게 살살 농담도 걸고, 장난도 치면서 편안하게 걷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오래오래 만나면서 같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썼으면 좋겠어요.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불안’을 주제로 글을 써보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처음에는 아주 불안한 여자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 다음에는 몇 년 전에 전주 영화제에 갔을 때 뒹굴러다니던 기억이 떠올랐고, 몇 가지 파편적인 기억과 상상, 메모들에 살을 붙여 나가기 시작했어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굉장히 산만하고 집중력도 얕은 편인데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쓰려고 노력합니다.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10년 넘게 소설을 읽어주고 있는 친구와 대학에서 만나 같이 소설 쓰고 있는 언니. 두 사람한테는 꼭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는데, 이 소설은 〈폭포동 조기축구회〉멤버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습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직 평생을 볼 안목까지는 없는 것 같고,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단순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강인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장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쓰다가 다시 마음을 먹고 잡았는데, 이번에는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내용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펜싱 선수라는 것정도까지만 공개할게요. 펜싱도 배우기 시작했는데 잘 마무리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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