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소설]마지막 서커스

 

 

마지막 서커스

 

 

박송아

 

마지막서커스-소섭삽화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너가 기억하는 최초의 거짓말은 뭐니? 열여섯 A가 기억하는 최초의 거짓말은 그녀가 열한 살 때 참가한 교내 백일장 시상식에서였다. A의 반에는 A의 비틀린 왼쪽 발목을 유난히 놀렸던 여자애가 있었다고 했다. “그 계집애 꿈이 작가였어.” 그래서 그 여자애는 열리는 백일장마다 나가서 상을 타왔다. 매년 사월이면 다가오는 장애인의 날엔, A의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리곤 했다. 그 백일장 전날 밤, 아버지가 A 곁에 누웠다. “내일 너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명심하렴.” 백일장 당일 A는 말 그대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글을 썼다. 그리고 금상을 탔다. 대표로 시상대에 선 A의 뒤에선 동상을 탄 그 여자애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A는 마이크에 대고 그녀가 썼던 글짓기의 제목을 큰 소리로 외쳤다. “괜찮아요. 나는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들며 울었다. “사실은 거짓말이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A의 상장을 액자에 끼워 안방의 벽면 위쪽에 걸었다. “이제부터 이건 우리 집 가보다.” 그리고 특별히 A의 접시돌리기 훈련을 빼주었다. A와는 달리 열여섯 S는 최초의 거짓말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날마다 하는 게 거짓말인데, 뭘.” 이제까지 했던 많은 거짓말들 중 어떤 게 최초의 거짓말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마침 그녀 뒤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었다. “거짓말이에요. 날마다 하지는 않는다고요.” 아버지는 S의 말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 마라.” 그러면서 그날 S의 외발자전거 타기 훈련을 배로 늘려버렸다.
    말을 하지 못하는 나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A가 훈련할 때 쓰는 접시를 실수로 몽땅 깨뜨려 버린 적이 있었다. 깨지는 소리에 놀란 아버지가 다가오자, 나는 있는 힘껏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건 내가 하지 않았어요, 맹세해요. 나는 스스로 아주 침착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양 볼이 터질 듯 달아올라 있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괜스레 실망한 나는 아버지의 오른쪽 손목을 끌어당겨 그의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에다 내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다. 나도 거짓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내 머리에 꿀밤을 꽁 하고 먹이며 “거짓말이 뭐가 좋다고.”라고 했다. 그에 내가 아버지 손바닥 위에 다시 썼다. 왠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삶은 많이 아플 것만 같아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너에게 거짓말보다 더 좋은 걸 가르쳐주마.” 그러면서 내게 손동작으로 할 수 있는 스물한 가지의 욕을 가르쳐줬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가운데 손가락을 최대한 곧고 길게 세워 보이는 첫 번째 동작뿐이다.
    한 동작 한 동작 가르쳐주면서 아버지는 몇 번이고 당부했었다. “대신에 이건 반드시 슬플 때 써라. 화날 때가 아니라 슬플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 번째 동작을 따라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 적었다. 맨 처음으로 했던 거짓말을 기억하세요? “처음으로 했던 거짓말?” 골몰히 생각하던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너희는 사실 내 자식들이 아니다.” 거짓말! 아버지 손바닥 위에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서 있던 S가 나와 아버지 곁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그럴 줄 알았어!” S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발목 때문에 늦게 다가온 A도 소리쳤다. “그럴 줄 몰랐어!” 우리는 모두 동시에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해.” 아버지가 두 손을 모아 보이며 말했다.

 

    지금 데리러 갈게, 곧 도착해. 근 삼 년 만에 연락을 해온 S는 그 한마디만 마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식탁 위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제멋대로 구는 S가 얄미웠다. 여전히 이기적인 계집애로구만. 오 분 정도 지나자 S에게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집 밖으로 나갔더니 대문 앞에 S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보조석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보조석 쪽 창문이 열리면서, S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타!” 입을 삐죽이면서 뒷좌석에 탔다. 정말이지 나쁜 계집애.
    차를 타고 보니 보조석에는 쇼핑백들이 쌓여 있었다. “쇼핑백 열어 봐도 돼.” 내가 보고 있는 걸 눈치 챈 S가 말했다. S가 발음하는 쇼핑백이라는 단어를 듣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게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었다. 소리를 내 말하면 더욱 근사할 것 같은 단어들. 희한하게 그런 단어를 발견할 때면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럴 때엔 손동작으로 할 수 있는 스물한 가지 욕 중 한 가지를 했다. 그러면 기분 탓인지 몰라도 나아지곤 했다. 나는 쇼핑백을 나만의 단어사전에 추가했다. 그리고 시큰거리는 코를 왼손으로 문지르면서, S 몰래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쇼핑백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S의 두 번째 자서전들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책 표지엔 S의 사진과 함께 이런 책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줘. 표지 속 S는 그녀의 두 손을 모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손가락이 없는 S의 뭉뚝한 손등은 꼭 벙어리장갑을 끼워 넣은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이런 종류의 책들은 괜찮아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괜찮다는 듯이 웃는 사진을 표지에 담을까. “한 권 가져. 사인도 해놨어.” 선심을 쓰듯이 S가 말했다. 문득 며칠 전 A와 함께 마트에 갔던 것이 떠올랐다. 그 마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나쁜 계집애란 단어가 튀어나오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묵묵히 노래를 들으며 카트를 끌던 A가 마트의 서적 판매코너에 들렀다. 그리고 S가 이번에 낸 책 두 권을 계산한 뒤, 그중 한 권을 내게 안겨 줬다. “저 노래를 들으니까 갑자기 이 계집애가 생각이 났어.” 그리고 자기 몫의 책을 카트 안으로 던져버렸다. 너무 세게 던져버렸는지 책 표지가 조금 찢어져 버렸지만, A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안 읽을 거니까 상관없어. 냄비받침으로나 쓰지 뭐.”     나는 A의 집에서 냄비받침으로 쓰일 S의 책이 떠올라 괜히 미안해졌다.
그러는 사이 차가 출발했다. 자동차 핸들에 특수 장치를 달아 손가락 없는 손으로 운전을 하는 S의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S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녀가 뒤돌아보자 운전은 언제 배웠느냐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양 주먹을 쥐고서 운전하는 동작도 흉내 내 보였다. “운전? 배운 지 꽤 되었지. 이제는 익숙해.” 간단하게 대답한 S는 그 뒤론 조용히 운전만 했다.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도 없네.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꼈던지 S가 백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입 모양으로 어디 가? 라고 물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원하는 대답 대신 S가 “너 아직도 수화 안 배웠니?”라고 되물었다. 내가 수화하면 너가 알아먹기나 하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대신에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괜찮아, 이게 편하니까. “너는 답답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들은 답답할 거 같아서 그런다고.” 나는 S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손동작과 입 모양으로 전달하기에는 복잡했다. 그래서 S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S의 차가 급하게 섰다. 뒤를 돌아본 S가 “너 아직도 그런 거 하니?”라며 기겁을 했다. 나는 웃으면서 왼손가락 두 개 오른손가락 한 개를 펴보였다. 무려 스물한 가지의 욕을 알고 있지, 물론 지금은 한 가지만 기억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짓던 S가 혀를 찼다. “그게 자랑이니?” 나는 자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그냥 가만히 있었다.
    A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차가 멈춰 서자 A가 왼쪽 발목을 질질 끌며 보조석 쪽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S가 보조석 쪽 창문을 열고 외쳤다. “뒤에 타라고!” 나는 A가 탈 수 있도록 몸을 움직여 옆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A가 차에 타면서 대뜸 물었다. “무슨 쇼핑백이 그렇게 많아?” “이번에 나온 자서전이야. 한 권 가져가도 괜찮아.” S의 대답에 A가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웃느라 초승달처럼 휘어진 A의 오른쪽 눈가에는 보랏빛 멍이 들어 있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A가 얼른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S에게 또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딜 가는 거라고?” “내 재킷 주머니를 뒤져 봐.” S의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있던 내가 그녀의 재킷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다 S의 별명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S는 주머니가 달린 상의만 입으면 놀림을 받곤 했었다. 그녀의 손 때문에 붙여진 도라에몽이란 별명 때문이었다. S의 같은 반 아이들은 도라에몽 주머니에서 신기한 물건을 꺼내듯이 시도 때도 없이 S의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덕분에 S의 상의 주머니는 언제나 엉망이었다. 잘 참아내던 S가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자 아버지는 S의 상의 주머니에 눈깔사탕을 채워 주면서 말했다. “진짜 도라에몽처럼 해보면 어떨까.” 그날부터 아이들은 S의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사탕을 발견하고선 즐거워했다. S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사탕은 매일매일 종류가 달랐다. 장난으로 여기던 아이들은 기대에 차서 보물 상자를 열어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S의 주머니를 다루게 되었다.
    S의 주머니에서 꾸겨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종이엔 짧은 기사가 적혀 있었다. 서커스 유괴사건 범인, 수감 중 숨져.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글을 읽던 A가 눈이 동그래졌다. “누가 죽었다고?” 답답하다는 듯이 S가 짜증을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뭐야, 그런데 그걸 아직도 이렇게 불러?” S가 유턴 구역에서 유턴하기 위해 핸들을 돌리며 대꾸했다. “내가 붙인 이름이잖아. 너 내 첫 에세이집 안 읽어 봤어? 거기에 나온다고.” “그딴 걸 내가 왜 읽어.” “내가 읽어 보라고 사인까지 해서 보내줬잖아.” “몰라. 그 책 우리 애가 위에다 오줌 싸 놔서 버렸어.” S와 A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반으로 찢어 나눴다. 그것을 동글동글하게 구겨 양 귀에다 각각 넣어버렸다. 귀 안의 종이 뭉치에서 자꾸만 서커스 유괴사건이란 단어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자식이에요? 아버지가 우리를 그의 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때부터, 우리는 쉴 새 없이 출생에 대해 자주 질문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해 준 적이 없었다. 매번 이야기가 바뀌었다. 언제는 우리가 아버지의 자식은 맞지만 각각 다른 어머니한테서 나온 배다른 자매라고 했다. “틀림없이 내 어머니가 제일 예뻤겠지.” 그렇게 S가 우길 때면 나와 A는 달려들어 서로 자신의 어머니가 더 예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자주 싸우는 모습을 보이자 아버지는 얼른 말을 바꿨다.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하는 광대였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배운 재주는 그거 하나였다. 그러다 하루는 어떤 마을의 쓰레기통 주변에서 S를 찾았다고 했다. 손가락이 없는 S의 두 손을 본 아버지는 S를 집에 데리고 갔다. “아마 누구도 찾지 않을 거야.” 또 다른 날엔 트럭을 몰고 가다가 다리 밑에 버려진 상자를 발견했다. A였다. A의 유난히 가는 왼쪽 발목을 본 아버지는 “아마 이 애도 찾지 않을 거야.”라고 하며 A 역시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나의 경우엔 터미널에서 마주친 한 남자 때문이었다. 어린애인 나를 아버지 손에 맡기고 화장실을 다녀온다던 남자는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너도 찾지 않겠지.” 이것이 내가 아버지 집에 오게 된 이유라고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A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거 저번에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잖아요!” 우리는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에 허허 웃음을 지으면서도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너희는 내 자식들이 아니야. 그건 확실해.”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와 S와 A는 자매처럼 지냈다. 아버지도 평소의 아버지 모습 그대로 우리를 대해 줬다. 변한 것은 없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서커스단 광대였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연을 하러 어디를 가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서커스는 아무 때나 열리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걱정 마. 곧 열리게 될 거야.” 훈련만 하는 것을 지겨워하는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그렇게만 말해 줬다. 서커스단이라고 해봤자 아버지와 나와 S와 A가 단원의 전부였다. “이래봬도 예전엔 꽤 큰 서커스단이었다. 원숭이도 있었고, 코끼리도 있었지.”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가 그녀의 묘기용 접시들을 만지면서 물었다. “그 원숭이랑 코끼리는 어디로 갔는데요?” 고민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도망가 버렸다고 대답했다. 그에 S가 조소하며 물었다. “왜 도망가 버렸는데요?” 아버지는 쩔쩔매면서도 절대 원숭이와 코끼리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도망가고 싶으니깐 도망갔겠지.” 그리고 화가 난 표정의 광대로 분장한 뒤, A와 S를 배로 훈련시켜 버렸다.
    우리는 한 군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군에서 하나뿐인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자라났다. 나와 S와 A는 어딜 가나 시선을 끌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어디서 놀거나 하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면 훈련이 바로 시작되었다. S는 외발자전거를 탔고, A는 접시를 돌렸다. 나는 우리 셋 중에 가장 몸이 멀쩡했지만, 불행히도 가장 재주가 없었다. 놀리는 S와 A를 뒤로 하고 아버지는 내게 광대 분장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웃는 표정, 우는 표정, 화난 표정. 웃는 것에도 표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S는 고향의 집에 가보자고 했다. “집도 치우고 이제 정리할 건 해야지.” S의 말에 우리는 동의했다. 한참 길을 가던 중, 잠시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빨리 다녀와야 한단 말이야. 내일 강연도 있는데.” S는 휴게소를 그냥 지나치고 싶어 했지만 나와 A는 배가 고팠다. “애기들 뒤치다꺼리하고 살아 봐. 만날 배고프다, 너.” 주차장에서 휴게소로 가는 길에 평소보다 더 발목을 질질 끌며 A가 말했다. A는 세 명의 아이들을 두고 있었다. 한 명의 남자 아이와 쌍둥이 자매였다. 휴게소 안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S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애가 세 명이나 되냐? 삼 년 전엔 한 명뿐이었잖아.” 메뉴판을 보던 A가 돈가스와 우동을 시키며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한 번에 두 명을 뱄었거든. 아, 그리고 지금 여기에 한 명 더 있어. 기념으로 돈 많은 이모가 사는 거지?” 입을 떡 벌리는 S를 뒤로 하고 A가 휴게소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재빨리 메뉴판에서 라면 사진을 가리켰다. 혀를 차던 S가 지갑을 꺼내 메뉴를 주문했다. 주문 받는 직원은 S의 손에 끼워진 갈고리 같은 특수 장치를 뚫어지래 바라봤다. S는 능숙하게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하다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직원은 더듬거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아요. 처음도 아닌데요, 뭘.” S는 여유롭게 웃으며 계산을 마쳤다.
    평일이라 휴게소 안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주문한 음식들은 내가 날랐다. S는 커피 한 잔만 마셨다. 손에 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장치에 끼워 커피를 마시는 S를,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봤다. 입안 가득 돈가스를 우물거리던 A가 음식물을 약간 튀기면서 말했다. “마네킹 손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걸 쓰지.” A의 시비조에 도리어 S는 차분했다. “의수? 그건 물건을 집을 수 없어. 이게 편리해.” “보기 무섭잖아.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자랑할 일 있냐?” “숨길 건 뭐 있어. 게다가 이걸로 밥 먹고 산다고.” “벌면 얼마나 번다고 유세야.” S의 눈이 매서워지더니 이내 A가 먹고 있는 돈가스 접시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A가 필사적으로 접시를 붙잡았다. “미안해. 나 배고파. 사람 하나 만드는 데엔 정말 많은 힘이 든다고.” S가 접시를 놓았다. 그러나 A는 혹시 몰라 허겁지겁 돈가스를 입에 밀어 넣어 버렸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너 눈은 왜 그 모양이야?” 커피를 마시던 S가 이번엔 우동을 먹고 있는 A에게 물었다. “내 눈이 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의 A는 우동을 먹는 데만 열중했다. 하지만 S가 계속 쳐다보자 별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이가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아직도 맞고 사냐?” “그만 좀 할래? 이런 이야기 나도 한심하고 지루해서 별로 말하기 싫단 말이야.” 그 말을 한 뒤 A는 우동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셨다. S는 얼마간 A를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A의 남편은 중국집 주방장이었다. 한때 중국집에서 설거지 일을 돕던 A는 남들이 보지 않을 땐 싱크대에 담긴 젓가락과 접시를 이용하여 접시돌리기를 했다. “나도 녹슬진 않았는걸!” 자유자재로 접시를 돌리는 A를 지켜보던 남편은, 그녀가 퇴근할 때쯤 살짝 불렀다. 그리고 따뜻한 탕수육을 포장해 줬다. “아까 멋졌어요. 이건 선물이에요.” 남편은 A와 결혼한 뒤에도 종종 탕수육을 포장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술에 취해선 A를 때렸다. 남편의 발길질을 맞으면서도 A는 한구석에서 탕수육을 씹는 아이들에게 웃어 보였다. “아빠가 짜장면 만드는 거 연습하는 거야.” 짜장면 반죽을 내리치듯 남편에게 맞고 나면, A는 아이들이 먹다 남긴 탕수육을 씹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꿀맛이야.” A가 내게 말하는, 남편을 떠날 수 없는 이유였다.
    어느새 돈가스와 우동을 말끔히 비운 A가 툴툴거렸다. “그나저나 너가 웬일이냐? 그런 생각을 다하고.” 그녀의 입가엔 돈가스 소스가 묻어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닦는 시늉을 하며 A에게 화장지를 건넸다. 커피를 마시던 S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아버지였잖아. 당연한 거 아니니?” “아버지 팔아먹은 게 어디의 누군데 그래.” 끝도 없이 비꼬는 A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S가 커피 잔을 세게 테이블 위에 놓았다. “돈가스랑 우동 다 뱉어내, 이 계집애야!” 그러다 갑자기 S의 손에 채워져 있던 장치가 벗겨져 버렸다. 커피 잔과 함께 장치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데굴데굴 굴러 마침 우리 테이블 곁을 지나던 아이의 발끝에서 멈췄다. 컵이 끼워진 갈고리 장치에 아이는 울먹거리다가 S를 봤다. S는 장치가 벗겨진 자신의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아이가 뭉뚝한 S의 손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고, 우리는 황급히 휴게소를 떠나야만 했다.

 

    우리의 본격적인 서커스 공연은 우리가 중학생들에게 놀림을 받은 뒤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뒀던 즈음의 어느 날, 한 중학생 무리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내내 따라왔다. 어떤 학생은 S를 흉내 냈다. 양손 모두 주먹을 쥔 채 낑낑거리며 물건을 집어 들다가 우스꽝스럽게 놓치거나, “똥은 어떻게 닦냐?”라고 하며 자신의 엉덩이 부분을 주먹으로 긁어댔다. 또 다른 학생은 A를 흉내 냈다. 발목을 질질 바닥에 끌면서 땅바닥에 ‘병신’이라고 쓰거나, 킬킬대면서 그 나이 대가 흔히 그리는 남자 성기 모양을 그렸다. 나를 흉내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그런 건 흉내 내는 게 재미없거나 하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S가 옷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손등으로 주머니 안에 있던 사탕들을 밀어내 떨어뜨리며 소리 질렀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 중학생 무리는 땅에 떨어진 사탕들을 주웠다. 그리고 그 사탕들을 우리에게 던졌다. “너네나 처먹어!” 사탕은 의외로 단단하고 아팠다. 부딪칠 때마다 딱딱 소리도 났다. 우리는 빨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A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A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걸으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사탕을 맞았다. 우리는 그제야 알았다. 이제 사탕만으로도 충분했던 나이가 지나갔다는 것을. 나는 슬퍼서 그들에게 욕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슬픈 건지 화가 나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알고 보니 슬픈 것과 화나는 것은 꽤 비슷했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동시에 소리쳤다. “아버지, 우린 중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물론 말을 못 하는 나는 양손을 교차시켜 커다란 X자 모양을 만든 다음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정말 가기 싫어요, 아버지. 우리를 본 아버지는 딱 한 마디만 했다. “때가 왔구나.” 다음날부터 우리를 데리고 서커스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우리는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트럭은 공터 비슷한 곳만 발견하면 멈춰 섰다. 그리고 그곳에 서커스용 천막을 쳤다. 그 옆에는 방방이라고 불리는 대형 트램펄린 두 개도 놓았다. “우리는 대박을 칠 거다!” 아버지는 서커스가 열릴 때마다 외치며 화려한 광대 옷을 입었다. 그 뒤에서 외발자전거에 기름을 먹이던 S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쪽박을 쳐도 놀랍지 않을걸요.”
    사실 S의 말이 맞았다. 서커스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하기야 두 명의 광대가 어설프고 우스운 춤을 추고, 몸이 불편한 여자애들이 외발자전거를 타거나 접시를 돌리는 공연이 마냥 즐거울 리만은 없었다. 가끔씩 장난삼아 입장료를 내고 초등학생들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징그럽다며 금방 나가버렸다. “방방이나 타고 가라!” 아버지는 서커스 입장료를 낸 아이들에겐 방방을 원하는 만큼 마음껏 탈 수 있게 해줬다.
    가끔은 어른들이 서커스 공연을 찾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근처 노인정에서 단체로 관람을 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박수를 쳤다. 마치 가수의 콘서트를 보는 와중인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박수를 쳐댔다. 그러나 정작 잘 웃지는 않았다. 어떤 할머니는 코까지 골며 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뭐시여? 끝이여?”라고 말하면서 깼다. 간혹 방방을 타고 싶어 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위험해서 안 된다며 아버지가 말리면 역성을 냈다. “늙은이는 놀지도 못한단 말여?” 돈을 더 얹어주겠다는 노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경하게 막아섰다. 때로는 방방을 태워 주지 않아 앙심을 품고 경찰에 신고하는 노인도 있었다. “여기 불법영업을 하는 곳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급하게 짐을 싸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그깟 방방 때문에 저러다니.” 치사한 노인네들. A가 그렇게 말할 때면 아버지는 A에게 꿀밤을 먹이면서도 이렇게 대꾸했다. “나이는 먹을수록 치사해지는 거란다.”
    서커스단 실적은 항상 초라했다. 그나마 방방이 있어 다행이었다. 방방을 타고 싶어 찾는 손님들은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수단이 좋은 S는 이런 어른들을 잘 상대했다. 그녀는 어른들이 방방을 찾을 때마다 말했다. “성인은 애들 요금의 다섯 배를 받아요.” 가끔 너무 비싸다며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S는 꿈쩍하지 않았다. “성인은 다섯 배라고요. 다시 말씀드려요?” 거기까지 가면 대부분 사람들은 조용히 지갑을 꺼내들어 방방 값을 지불했다. 나는 S가 ‘성인’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두근거렸다. 방방을 타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몰릴 때면 S는 평소보다 자주 성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때마다 내 코끝은 시큰거렸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 보다가 정 안 되겠으면 천막 뒤편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힘껏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멈췄다.

 

    차창 밖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밖을 살폈다. 집과 고향을 떠나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조금쯤 변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것이 예전과 비슷하게 보였다. 왠지 집과 고향은 아버지가 수감된 이후부터 잊고 싶은 곳이 되었다. 특별히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겪었던 것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잊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아마 S도, A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변한 게 없네?” 나처럼 창밖을 보고 있던 A가 말하자 S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골이 그렇지, 뭐.”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나가느라 힘겨운지 S가 욕을 했다. “씨발, 길이 뭐 이따위야.” 그러자 A가 자신의 배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애가 듣잖아. 씨발이 뭐니, 씨발이. 조심 좀 해!” “너나 조심 좀 해라.” S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A의 입을 막아버렸다.
    덜컹거리는 차의 흔들림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눈을 감고 싶어질 즈음에, 집에 도착했다. 군의 구석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깊은 구석에 있는 작은 주택. 주택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아쉬운 빨간색 지붕의 집. 서커스 공연 도구와 천막을 옮기는 낡은 트럭.
    그런데 집 앞에 차를 세워 두고 나와 보니, 지붕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빨간색 지붕이 거의 다 벗겨져서 마당 군데군데에 파편으로 남아 있었다. A가 지붕이 있어야 할 부분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우리 집 지붕 어디로 갔어?” 지붕이 없어진 것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버려 놓은 쓰레기들이 쌓인 마당이었다. 빈집이라고 여겨서 쓰레기장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하긴 십 년 이상 비워진 집이었을 테니까.
    집 주변을 둘러보던 S가 늘 트럭을 놔둔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아쉬워했다. “역시 트럭은 누가 가져가 버렸어. 나쁜 놈들.” 집을 둘러싼 담장은 온통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낙서 군데군데엔 분필이나 매직으로 그려진 남자 성기 모양 그림들이 있었다. “이런 걸 그리는 걸 왜 재미있어 할까.” 민망해하는 S와는 달리 A는 그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핸드폰 번호 비슷한 숫자가 써져 있기도 했다. 지금 이 번호로 전화하면 누군가는 받을까. 벽 같은 곳에 새겨진 핸드폰 번호와 같은 숫자들을 보면 매번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일단은 집을 좀 치워야만 했다. S가 다시 차를 몰고 나가 쓰레기봉투며 청소 도구들을 사러 간 사이, 나와 A는 마당에 널린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 같으니!” A는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서커스 공연을 할 때 사용했던 천막 천과 S의 외발자전거, A의 공연용 접시들이 담긴 상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항상 트럭에 실어 놓았던 것인데, 누가 이것들만 버려 놓고 트럭만 가지고 간 것 같았다. “이거 좀 봐! 아직도 이게 남아 있었다니.” A는 상자 안에서 접시를 꺼냈다. “오랜만에 돌려 보고 싶어.” 접시를 돌려 보고 싶어서 막대기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A는 그냥 손가락으로 돌렸다. 제법 잘 돌아가는 접시에 A와 내가 감탄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접시를 보면서 A는 “그래도 이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라고 말한 뒤 빙긋 웃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다. 유독 많은 모텔들로 둘러싸여 있는 공터에서 공연을 벌인 날이었다. 그 공터는 새로운 모텔이 세워질 건설 부지였다. A가 공터 주변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모텔들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모텔이 많은데 뭐 하러 또 짓는담?” 장난기가 발동한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듯이 대답했다. “모텔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데. 아마 너희들도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그에 S가 혀를 쑥 내밀었다. “그만 하세요. 징그러워요.”
    그날 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젊은 남녀 네 명이 서커스를 찾아왔었다. 늦은 시각이라 공연을 접으려던 참이었다. “뭐든지 두 배로 낼게요!” 그들 중 한 남자가 소리치자, S가 쪼르르 달려갔다. “성인은 다섯 배예요!” 그들은 다섯 배든 열 배든 얼마든지 내겠다고 했다. “서커스라도 보고 가고 싶어요.” S는 신이 나서 공연을 준비하자고 했다. 그때 아버지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S가 하자는 대로 공연 준비를 했다.
    다시 천막을 세우고 공연에 들어갔다. 그들은 우리 서커스 역사상 가장 반응이 좋은 관람객들이었다. 아버지가 바보 같은 춤을 추면 깔깔 웃기도 하고 S가 아슬아슬한 외발자전거로 콩콩콩 뛰는 묘기를 보이면 와아 소리를 질렀다. A가 손가락 사이사이에 길거나 짧은 막대기들을 끼운 채, 각 막대기마다 하나씩 접시를 올려서 돌려 보일 때는 기립박수도 쳐줬다. “브라보!” 그러다가 우는 표정의 내가 발을 동동 구르는 앙증맞은 동작을 선보였을 때는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그들은 방방도 탔다. “야호! 야아호오!” 치마가 훌렁훌렁 올라가 속옷이 보이고 보기 흉한 자세로 넘어져도 그들은 야호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탔다. 그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또 두근거렸다. 야호란 말도 정말 근사한걸. 또 코끝이 시큰거려서 아무도 모르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보였다.
    얼마쯤 지나 별안간 바람이 불었다. 제법 셌던 바람 때문인지 방방을 타고 있던 네 명 중 한 남자의 머리에서 그만 가발이 떨어졌다. 남자의 머리에서 분리된 가발은 또르르 굴러 지켜보고 서 있던 아버지의 발밑에 떨어졌다. “오. 이게 뭐야?” A가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가발로 손을 뻗자 곁에 있던 S가 옆구리를 팔꿈치로 꾹 찔렀다. 가발이 벗겨진 남자는 얼마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에이, 씨발!”이라고 외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울자 나머지 세 명도 차례로 울기 시작했다. 씨발, 씨발 같은 인생. 자꾸만 그 말을 반복하면서 울었다. 방방을 타다 말고 주저앉아 우는 네 명에 우리는 당황했다. 한참을 울다가 그들이 방방에서 내려왔다. 가발이 벗겨진 남자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자신의 가발을 거칠게 채갔다. “뭘 봐, 씨발!” 그리고 “씨발!”을 계속 외치면서 일행과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S가 그들이 사라진 쪽을 노려봤다. “고작 가발 하나 가지고 저 지랄들이냐.”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다. 곤히 잠든 S와 A를 제외하고, 나와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났다. 숙소로 사용하던 천막 밖으로 나와 보니, 공터 주변부로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가 나면서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푸른 새벽에 울리는 소리는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했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버지는 잠시 다녀온다고 하면서 나갔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제 가발이 벗겨진 남자가 했던 ‘씨발’이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떠올렸다. 두근거리지 않는 걸 보니 그다지 멋진 단어는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금방 돌아왔다. “모텔에서 남녀 네 명이 죽었다는구나. 아마도 자살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대.” 혹시 어제 그 사람들일까요? 내가 미간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 모양으로 물었더니, 아버지가 “글쎄다.”라고 했다. 문득 나는 궁금해져서 아버지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고작 가발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고작요? 그러자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아 줬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단다. 고작, 가발 때문이라도 말이야.” 어느 때보다 세게 맞잡은 아버지의 손은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대체 뉘가 이 집을 뒤지는겨?” 집 밖에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주인공은 무작정 집 안 마당으로 발을 들였다. 이윽고 우리는 그 사람이 이 동네에서 가장 목소리가 컸던 할머니임을 알아챘다. “우와, 저 할머니 아직도 살아 있어!” A가 소름끼친다며 팔을 북북 긁었다. 할머니는 이 집에 사는 아버지와 나와 S와 A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쩌다가 마주치는 날엔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일도 많았다. 그때도 꽤 나이가 많았던 할머니였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제발 우리를 알아보지 말아 주세요. A와 나의 바람과는 달리 할머니는 단번에 우리를 알아봤다. “너그들이 여기 웬일이여?” 할머니의 눈동자가 우리 두 사람을 살펴보느라 바쁘게 굴러다녔다. 할머니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는 A가 접시를 상자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아버지요, 돌아가셔서. 집을 좀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래, 그놈이 죽어버렸나? 잘 죽었구나. 잘 죽었어. 무서운 사람이었제.” 할머니는 박수를 한 번 치더니 혀를 내둘렀다. “잘 죽었지. 무서운 놈이었어.” 자꾸만 반복하는 할머니 말에 A가 툴툴거렸다. “별로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어요.” A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너그들은 아직도 그 사람을 아버지라고 허냐?” “그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지 뭐라고 불러요.” A의 말에 할머니는 S의 방송을 보았다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들 막 때리고 훈련시키고 그랬다면서. 아버지도 아니면서 막 데려다가 납치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사람들은 우리의 일을 서커스 유괴사건이라고 불렀다. S가 자신의 첫 번째 에세이집에 그렇게 쓴 이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S는 우리의 일을 다룬 방송 인터뷰에 참여했고, 그 계기로 우리의 일을 기록한 책을 냈다. S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자 A가 펄쩍펄쩍 뛰었다. “그런 걸 가지고 왜 책까지 내냐?” “아버지도 괜찮다고 하셨어.” “웃기지 마. 그럴 리가 없어.” 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얼마 뒤 S의 책이 나왔다. S는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나와 A에게 보내줬다. 그러자 A는 S에게 전화를 걸어 또다시 화를 냈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이 계집애야!”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S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이제부터 너랑 절교다, 이 나쁜 계집애. 나와 A가 지난 삼 년간 S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실 S가 방송에서 한 말은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탠 사실들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도 아니었고, 때리기도 했고, 서커스 공연 훈련도 시켰으니까. 그렇게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탠 사실들로 S가 책을 냈고, 생각보다 책이 잘 팔려서 유명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조금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살피는 분주한 눈길을 멈추지 않으면서 계속 덧붙였다. “무서운 일이었다며. 무서운 일.” 그때 마침 S의 차가 돌아왔다. 차에서 물건들을 내리는 S를 향해 A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나쁜 계집애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S가 우두커니 서 있자, 그녀를 알아본 할머니가 다가갔다. “티브이에서 보던 거랑 똑같구먼. 잘 들었어. 무서운 이야기 잘 들었어.” 자연스럽게 S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려던 할머니는 평범한 손 대신 갈고리 같은 장치가 끼워져 있는 것에 기겁했다. “허이고, 이게 뭐야!” 기겁한 바람에 S의 손을 세게 놓아버려 그만 장치가 또 빠져버렸다.
    하루에 두 번 장치가 빠져버리자 S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마당에 쌓인 쓰레기들 사이로 장치가 쏙 들어가 버리자,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갔다. “허이고 무서워라!” 할머니 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S가 성큼성큼 A 쪽으로 다가갔다. 겁날 것 없다는 표정의 A도 가슴을 있는 힘껏 내밀고 서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발을 신은 채로 평상에 올라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문을 닫아버렸다.

 

    안방은 어두웠다. 벽 한쪽에는 우리가 덮었던 이불이 먼지가 쌓인 채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마당에서 S와 A가 본격적으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손을 들어 귀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에서 아버지와 함께 잤던 나날들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이다지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쥐의 오줌과 오물들로 폭삭 내려앉은 곳도 있었다. 지붕과 함께 천장도 뜯겨졌는지 아니면 무너졌는지 몰라도, 커다란 구멍도 뚫려 있었다. 구멍을 통해 늦은 오후의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런 곳이 내가 살았던 곳이라니. 계속 방의 윗부분을 둘러보다가 멈칫했다. 내가 발견한 것은 벽에 걸린 상장 액자였다. 액자에 끼워진 A의 장애인의 날 기념 백일장 금상 상장. 가보로 삼겠다면서 액자를 걸어 뒀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액자 쪽으로 다가갔다. 발꿈치를 들어 상장 액자를 떼어냈다. 그것을 들고 안방 문을 열었다. “부러우면 너도 방송에 나가지 그랬어! 책도 쓰고!” “누가 그딴 게 부럽대? 너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잖아!” 방 밖으로 나와 보니 S와 A는 바짝 붙어서 아이들처럼 싸우고 있었다. 나는 평상으로 내려가 그 둘 사이를 지나갔다. 그리고 아까 발견한 공연 천막의 천을 집어 끌어당겼다. 낡은 천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자 비로소 S와 A가 나를 돌아봤다. 내가 한쪽 겨드랑이엔 상장 액자를 끼고 천을 질질 끌며 움직이자, A가 물었다. “너 지금 뭐 하려고?” 천을 끌자 먼지가 포록포록 솟아올랐다. 그 덕분에 먼지를 마신 S가 콜록거렸다. “뭐 하는 거야, 정말! 콜록콜록.”
    나는 잠시 천을 내려놓고 상장 액자를 두 사람에게 보였다. 액자를 본 두 사람이 반색했다. “저거 내 상장이다!” “그게 어디에 있었어?” 대답 대신 나는 춤을 췄다. 서커스 공연 때 췄던 춤이다. S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너 어디 아프니? 갑자기 왜 그래?” 그러나 아버지 다음으로 내 동작을 잘 이해했던 A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서커스?” 그 단어를 듣자 가슴이 아주 묵직하게 두근거렸다. 쿵, 쿵, 쿵, 쿵, 쿵.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S와 A는 서로를 보다가, 나를 보다가, 내가 들고 있는 상장 액자를 보다가 다시 서로를 봤다.

 

    전국 공연을 다녀올 때마다 빚은 차곡차곡 늘어났다. 그래도 아버지는 서커스 공연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S와 A는 지쳐 갔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서커스 공연을 부끄러워했다. “이런 거 안 해도 충분히 부끄럽거든.”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S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중 그 누구도 S만큼 많은 시선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S는 누군가 자신을 뚫어지래 바라보면 불공평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침해받는 거야, 그런 건.” 그래서 서커스를 더욱더 그만두고 싶은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덧붙인 뒤 울다가 잠이 들곤 했다.
    우리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의 겨울. 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기어코 S가 외발자전거를 던졌다. “이따위 것은 이제 그만둬요!” 던져진 외발자전거는 A로 향했다. 그 바람에 접시돌리기 때 쓰는 접시들을 옮기고 있던 A가 넘어졌다. 더불어 접시도 깨졌다. A는 화를 내며 접시를 S 쪽으로 던졌다. “너만 힘드냐? 이게 웬 지랄이야?” A가 던지는 접시는 전부 S에게 정통으로 향해 갔다. 겁을 먹은 S가 쓰러져 있는 외발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자전거에 오른 S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마당을 도는 S와 그녀를 향해 접시를 던지는 A는 한 편의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껏 했던 공연 중 가장 잘하는구나.” 아버지는 내 옆에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저 둘은 매번 저렇게 싸우는 걸까요. 내가 아버지를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저 둘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라고 했다. 저런 걸 보면 말하는 게 썩 좋지만은 않지? 덧붙여 말하는 아버지의 오른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썼다. 왜 자꾸만 우리에게 서커스를 시켜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엔 아버지가 내 오른 손목을 잡아 내 손바닥 위에 썼다. 혹시 도움이 될까 봐. 그는 그 문장을 쓴 뒤 잠시 망설이더니 곧이어 물음표를 달았다. 혹시 도움이 될까 봐? 입 모양으로 되물으면서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그 밖에는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두 명의 남자는 그 말을 하면서 벌써 발을 우리 집 마당으로 들이고 있었다. 이 기억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아버지가 슬며시 웃고 있었던 것을 본 것 같다.
    집에 찾아온 두 명의 남자는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뒤이어 중년의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우리를 데리고 보호시설로 데리고 갔다. 그곳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A는 식판 한 가득 밥을 퍼서 먹으면서도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하며 불안해했다. 반면 S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얼굴로 보호시설에 잘 적응해 나갔다. 나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며칠이 그렇게 흘러가자 견딜 수가 없어진 나와 A가 S를 이끌고 보호시설의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어른들에게 물어댔다. “저희 아버지는요?” 그러자 한 아줌마가 우리의 손을 번갈아 잡아주며 말했다. “놀라지 마렴. 그 사람은 너희들 아버지가 아니란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어요.”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다니. “너희들에게 억지로 서커스도 시켰다며?” 솔직히 서커스 훈련이 싫어서 도망 다니거나 반항하기도 했었다. “네, 맞아요.” 아줌마는 더욱 심각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말 안 듣는다고 때리기도 했다며?” 아버지는 가끔 회초리로 우리를 때리곤 했다. “그것도 그래요.” 캐묻기만 하는 아줌마가 답답해진 A가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디에 있냐고요?” “안심해. 그 사람은 감옥에 갈 거란다.” 우리는 펄쩍 뛰었다. “왜요?” 그러자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아줌마가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대답했다. “이제까지 말했던 것들이 바로 그 사람이 감옥에 가는 이유란다.”
    아버지가 잡혀 들어갔을 때, 하필이면 당시 군수의 재선기간이었다. 군수는 지방방송과 유세에서 매번 아버지와 우리를 거론했다. “우리의 아이들을 보호합시다!” 군수에 의해 아버지는 강력하게 처벌을 받게 되었고, 우리는 보호시설에서 사람들의 후원을 받으며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는 것에 지겨워진 A는 가끔 보호시설의 접시와 젓가락을 몰래 가져다가, 시설에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야!”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A는 즐거워했지만, 선생들에 의해 자주 혼이 났다. 하지만 S는 열심히 검정고시를 통과해 나갔다. “앞으로는 다르게 살 거야.” 그런 말을 하는 S를 A는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는데 그러냐. 유난은.” 나는 그저 조용히, 아버지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듣고 싶은 말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제는 잊고 사렴.” 모두가 잊으라고만 했다. 그래서 그때의 일이 점점 잊어야만 되는 일로 여겨졌다. 사실은 내가 겪은 일들이 모두 무서운 일이었을까. 가끔은 의심스럽기도 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아버지를 찾지 않게 되었다. A도, S도. 우리는 더 이상 서커스 공연을 하지 않는,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으니까.

 

    새벽이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마당의 쓰레기들을 대충 정리하고, 지붕 위에 서커스 공연용 천막을 씌울 수 있었다. 임신 중이라 지붕 위 작업을 돕지 못한 A는 안방을 닦고 쓸었다. “임산부를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니?” 지붕 위에서 천막을 씌우고 있는 나와 S에게 A가 소리칠 때면, S는 기가 막혀 했다. “애기가 엄마를 닮지 않아야 할 텐데.”
    작업을 마친 뒤, 나와 S와 A는 나란히 안방에 누웠다. 내가 가운데, S는 내 오른쪽, A는 내 왼쪽이었다. 뚫려 있는 구멍으로 지붕에 씌워 놓은 천막이 보였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섞인 천막.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없이 어설펐던 공연의 순간들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키득키득키득. A가 내 웃음소리를 듣고 혀를 찼다. “얘가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천막만 멀뚱하게 바라보던 S가 말했다. “사실 나, 아버지 찾아갔었어.” 나와 A가 동시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뭐? 언제?” S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나는 S의 손바닥에 글씨를 적으려다가 아차 싶었다. 이런, 너는 손이 없잖아. 대신 그녀의 배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다. 언제 만났어? 내가 물음표를 그릴 때 S는 간지러웠는지 크게 웃었다. 깔깔깔. 한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서 A가 내게 “그러게 배에다 글씨를 왜 써, 배에다!”라고 하며 신경질을 냈다.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S는 진정할 수 있었다.
    S는 아무래도 아버지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이 미안했다고 했다.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그래서 아버지가 있는 교도소로 찾아갔다. “아니, 너가 왔구나!” 아버지는 예상보다 매우 잘 지내고 있었다고 했다. 여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기쁜 목소리로 덧붙였다고 했다. S는 주저주저하다가 “아버지, 저 책을 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닐 거예요, 아버지한테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S가 말하자 아버지는 “네가 작가가 되는 거냐? 가만, 그건 A가 될 줄 알았는데.”라며 갸우뚱거렸다. 그 말을 듣자 S의 이야기를 잠깐 끊은 A가 코를 훌쩍였다. “역시 아버지야.” S는 아버지한테 그가 생각하는 부류의 작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책을 내면 다 작가라며 책이 나오면 보내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S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면회객 사이에 말을 주고받는 수화기에 바짝 입을 대고 속삭였다. “사실 내가 경찰에 신고했단다.” “네? 아버지가요?” “그래. 그러니 걱정 마.” 그러면서 아버지는 씨익 웃었다.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S의 말에 아버지는 아까보다 더 속삭이며 말했다. “앞으로도 오지 마, 너희들 모두.” 정말 나는 괜찮단다. 그 말을 끝으로 면회를 마쳤다고, 그렇게 S는 전했다.
    나는 S의 배 위에 다시 글씨를 썼다. 왠지 아버지가 그랬을 것 같았어. 그러자 S가 깔깔대며 몸을 꼬았다. “무슨 말 했어?” A가 묻자 이번에는 A의 배 위에 글씨를 썼다. 아버지가 그랬을 것 같다고 했어. A도 깔깔 웃었다. 나는 들썩이는 A의 배를 보면서, A의 뱃속에 있는 아기도 웃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천장을 봤다. S와 A는 여전히 간지러운지 키득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어요, 나는 서커스 천막을 향해 그렇게 소리 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신이 누구든, 우리가 누구든,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목이 간질간질 거렸다. 갑자기 차가운 금속이 내 손에 닿았다. S의 특수 장치였다. 반대쪽 손에는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A의 손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어쩐지 코끝이 또다시 시큰거렸다.
    어쩔 수 없이 서커스 공연 천막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개별 작품 선정평]

< (선정평) 박송아의 「마지막 서커스」 >
 
    여기 농담으로 가득 찬 세계가 있다. 거짓말로 둘러싸인 세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간신히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농담 덕분인지 모르겠다. 웃으면 웃을수록 이상하게 눈물이 나는 그런 농담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낄낄거린다. 그것이 아픔을 감추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손가락이 없어 ‘똥은 어떻게 닦’느냐고 놀림을 받던 S도, 다리를 절면서도 접시돌리기를 연습하던 A도, 21가지 욕을 수화로 배우던 나도, 시간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다. 이제 이 세 명의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상처를, 그 마지막 서커스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들은 아마도 그렇게 서커스의 천막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최초의 거짓말을 생각해내야 할 것이다. 그 질문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은 농담으로 가득 찬 세계가 나오고 그 끝을 보고 나면 비로소 주인공들은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어요”라고.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개인적으로 길고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잠시 휴학하면서, 종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날짜와 작품 마감 날짜가 비슷해서 조금 정신없었네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듣는 음악은 그때그때 달라져요. 주로 구상했던 소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듣지요. 글을 쓸 때엔 보기 좋지 않거나 나쁜 습관들이 많이 튀어나오는데, 최근에는 이를 세게 악물고 작업을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십년지기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언니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제 소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가장 정확한 조언을 들려주거든요. 요즘에는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동기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구요.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 같은 게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가족에서 시작해서 사회 집단, 세계까지 이어지는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아마 그게 소설 자체이기도 하겠지요. 설명이 되는 혹은 설명이 되지 않는 관계들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요즘의 청소년 또는 노인에 대한 단편들을 쓰고 있어요. 자꾸 제 또래에 국한되는 내용을 쓰는 것만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근래에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들이 그 연령대와 깊은 관련을 맺기도 해서요. 열심히 써보고 있습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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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코랑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즐거운 유머 속에서도 번뜩이는 삶의 어둠을 잘 포착했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파괴한다

우연히 클릭해서 읽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인 듯. 사실은 우울한 이야기인데도 블랙유머를 버무려서 그린 점이 맘에 드네요. 작가님 실제로 어떤 분일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