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3차_시]독감 외 3편

 

 

독감

 


김준현

 

 

 

 

저녁은 자주 목이 쉬는 감정이다

 

오토바이가 골목을 긁으면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집집마다 내막이 깊어 나는 오른쪽 귀로부터
왼쪽 귀로 지나가는 숨소리,
노파는 길목처럼 꺾인 채
구멍마다 등을 켠다
환하게 기미가 자란다
주름들로, 갈라지는 길목이다

 

나방들은 해를 보기 전에 가로등을 앓는다

 

붉은 머리띠를 한 원주민처럼
우리는 떼 지어 숨 쉬고
떼 지어 쓸쓸하고,
잠들고
돌아오면 사라지는

 

비 내리는 주소를 외운다
멀어진

 

개들이 된소리로 짖으며, 단단해지는
저녁, 나는 시동을 켜고
떤다
눈시울이 탱탱하게 익어 가고

 

수상한,
달이 곪아 간다

 

 

 

 

 

 

발레

― 일종의 미용

 

 

 

 

    냉동실에는 그녀의 신발이 들어 있고 비가 바닥에 다다르면 발목의 높이를 넘보지 장마는 머리카락보다 길지 가위가 입을 다무는 것처럼, 짧은 말들이 머리칼로 흩날린다 발끝을 들고 걷는 게 습관이라, 마루 밑에 나란히 엎드린 발자국은 며칠째 식을 줄 모르고 김이 난다

 

    장마전선에 걸린 빨래는 마르지 않는다 북상하는 새처럼, 여러 사람의 수건들이 북쪽으로 함께 펄럭인다 다리미로 덜 마른 옷 주름을 펴면, 내일은 누구의 몸을 앓을지 젖은 새들이 제 살을 치는 며칠째

 

    그녀의 손은 사람들의 머리를 감겨 주다 자주 음지에 담긴다 물에 불은 침묵처럼 잠깐의 연애, 그들이 남긴 머리카락을 조금씩 모으는 취미 때문에 조금 더 조용한 사람이었을까, 당신 벌초가 끝나고 생각하는 것들 무덤은 죽은 사람을 품고 살지만, 양수가 터진 저녁노을로 때로 붉다가 지쳐 비를 바란 것인데

 

    신발은 둘이라 다행이다 마주보지 않고 서로를 지나치는 거리를 이력으로 삼고 이력서를 내밀었다 애인은 가족사항에 없어도 되고 나는 그림자가 잘려 나간 사람처럼, 여름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발레 2

― 몽유병

 

 

 

 

    아파트 계단을 다 걸으면 저녁이다 복도는 발소리를 듣고 그림자를 켜고 나는 혼자라는 게 밝혀진다 내 몸에도 4층이 있는데, 아무도 4층이라고 불러 주지 않는 눈빛이 있다 바라보지 않는 곳, 애인이 많아서 집집마다 붙인 전단지에는 떠도는 사람의 기색이 역력하고 겨드랑이 냄새가 난다

 

    방충망에 난 구멍은 버림 받는다 불빛 냄새를 맡은 나방들은 감히 뜨거워지고 나는 두 계단씩 건너뛰어 대문마다 지문을 남긴다 지문은 늘 꿈틀거리는 성질을 지녀서, 때로 죄인처럼 애인의 살, 애인도 모르는 곳에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 고백한 적은 없는데

 

    주변에서 날벌레처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낮, 몇 층이건 오르던 날개들을 빗자루로 쓸면 밤에만 취하는 사람들의 최후라고, 문손잡이에 네가 잃어버린 지문만 몇 개 남기고 가는

 

    여름이면 하이힐 소리가 제철이라 장마로 아픈 귀에 소름이 돋는다 복도는 몇 개의 발소리를 듣고 잠을 깨는지, 순서대로 된 집 호수 사이에도 자주 돌아보게 만드는 주소가 있고, 뒷모습이 있다 애인의 뒷모습을 좇는 눈빛을 4층이라고 부른다 전단지 한 장으로 애인의 치부를 가리고

 

    내려가야 한다 계단은 배반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제 몸을 저 높은 곳에 다다를 때까지 꺾고 꺾은 연인이다 누구든 스치면서 가장 멀어지는 방향으로 걷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이 없을 수 있는 곳으로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집에서 가장 먼 쪽으로 숫자가 떨어진다 사람들이 함께 눈을 감고 있다 열린 문으로 내 오토바이가 고개를 기울인 사슴마냥 눈을 감고 있다

 

 

 

 

 

 

상사(想思)

― 기흉

 

 

 

 

하모니카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인공호흡이다

 

바람은 간 지 며칠은 지난 사람의 억양으로 들려
목욕물에 몸 담그면 가려워지는 부위는
당신이 자주 더듬은 곳, 감정보다 연한 가슴을 긁는다

 

(침묵은 살과 살이 가장 부드럽게 닿는 방식으로
붉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자던 좁은 방에서
방화는 그런 식으로 생겼을 것이다, 입을 다물고
불은 누구보다 조용한 색(色)으로
병처럼 번졌을까
이름을 부르면 돌아본다는 게 사람의 능력인데
대신 너를 불러도
집은 낮에도 구멍 속처럼 캄캄하고
때로 누군가의 들숨이 내 날숨을 당기는데
사람의 몸에 낮은음만 남으면 밤마다 가위에 눌린다고
친구는 반찬을 챙겨다준다

 

친구는
내 머리를 길러주러 오고, 가까운 사람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보면 가려운 데가 많다고

 

혼자 사는 집에도 두 사람의 숨소리가 엇갈린다
대문은 늘 열린 채 닫혀 있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기뻤어요.

 

2.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쓰게 되셨는지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침묵이 더 큰 존재감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렇게 발화할 수 없는 정서가 감각으로 전이되는 지점으로부터 첫 문장이 시작되었어요.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무인도와 같은 상태에서 써요. 글을 쓰는 동안은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같은 처지죠. 음악은 다양하게 듣는 편인데 등단 무렵 습작할 때는 이소라를 들었고, 최근에는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있어요. 저는 글을 쓸 때 BGM을 까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더 있긴 한데…… 나머지는 '영업 비밀'이에요.
.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쓰는 데에 최대한 집중해요. 격주로 합평회를 하고, 지도 교수님께 보여드리면 단정적인 판단이나 평가보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5. 지금 막 발을 뗀 신인이지만,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나요?

  모든 게 미지수에요.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시도 인간처럼 성장해요. 지금 발표되고 있는 시와 지금 쓰고 있는 시 사이에 계속 시간차가 생기는데 이 정도의 시간차를 계속 유지할 정도로 변화해가고 싶어요. 다만 뒤로 남겨지는 시들 역시 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가능성이었으면 좋겠네요. 시는 대부분 시한부의 운명을 타고나니까요.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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