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는 기차여행을

 

 

11월에는 기차여행을

 

 

이영주(시인)

 

 

 

 

    혹한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이 계절의 마지막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떠나 봐야지, 하는 결심은 마음속에 잔잔한 설렘을 일으킵니다.
    길의 끝에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걷고 달리는 것,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요.
    그럴 때면 기차가 생각이 납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만져 보고 싶을 때 달리는 차창에 손바닥을 대보면 그 아슬아슬한 질감이 내 것처럼 만져지는 기분입니다. 창밖의 풍경은 내 마음이 지닌 쓸쓸함의 강도에 따라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히기도 하고요.
    기차가 달리고 서고, 누군가가 정차 구간에서 내리고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결국 돌아올 나는 훌쩍 자라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 차창은 많은 이들의 시선이 머물다 간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며 익명의 시선들이 어떤 감정들을 떨어뜨렸을 겁니다. 뜨겁거나 차가운 눈빛들. 누군가는 연애의 설렘을, 누군가는 절망의 회오리를, 누군가는 평안을 위한 고요함을. 모두의 창.
    그러나 기차에 오른 순간부터 길의 끝에 가닿고 싶은 이 여행만큼은 온전히 내 것입니다. 창은 이 순간, 내 창이 됩니다. 나의 마음이 됩니다.
    이상하게도 겨울을 앞둔 이 계절은 ‘나’라는 존재가 부풀어 오릅니다. 왜 그럴까요? 차가운 공기가 늘어져 있던 내 몸의 비밀스러운 감각까지 일깨우는 것일까요. 그럴 때는 창에 묻은, 온도차가 만들어낸 물기를 닦고 내 눈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버려진 자신을 한 번 봐주는 것입니다. 낯설지만 익숙한, 웅크리고 있던 이가 나의 호명에 천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문학도 달리고 서는 기차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버려지고 소외되던 마음들이 차창 안에 하나씩 박혀서 길의 끝으로 가고 있는 것. 그 마음들을 물기 어린 창문을 닦듯이 세심하게 닦고 그 안을 들여다봐 주는 것. 그렇게 수많은 창문을 달고 현실의 고단함까지 싣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리는 것. 이 기관사들은 바람을 뚫고 달리는 외롭고 멋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작가들은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지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은 마을까지 이 기차가 들어간다면 문학이라는 마음을 떨어뜨리고 올 수 있을 텐데요. 그곳에도 자라나고 세상을 견디는 같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소외지역이라는 특성상 조금 더 멀어진 창문들이지요. 그들에게도 이 여행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소외지역에도 문학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만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명입니다.

 

    문장 웹진은 그런 창들이 모여 있는 곳이네요. 창문을 하나씩 열고, 언어로 새겨진 마음들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윈도우를 켜고, 이 창을 띄우고, 거기에 비친 낯설지만 익숙한 이를 호명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창들을 자주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같이 만나는 것, 그런 매혹적인 기차를 타게 되어서 즐겁습니다. 우리가 새겨 둔 감정과 눈빛들.
    이번 겨울에는 어떤 여행을 할지, 며칠 전부터 저는 수첩을 꺼내어 깨알같이 정보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달려볼까 하고요. 이미 마음은 달리고 있습니다.

 

    민들레문학 특강에 관련된 노경실 작가의 산문은 이 행사가 가진 의미를 증폭시켜 줍니다. ‘약자일수록 자신에 대한 표현을 하기 힘들어 한다’는 작가의 통찰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신의 표현이 시작되어 커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재된 손홍규 소설가의 작품이 이번 호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날선 세계를 보여준 손홍규 소설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한석호, 성동혁, 손미, 정영효, 김언, 김근, 정한아 시인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귀한 원고를 주셨습니다. 좋은 시를 살아내는 분들입니다. 명지현, 권정현, 박상 소설가분들의 세계는 독자들을 강한 힘으로 끌어당깁니다. 서사의 매혹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색다른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장이지, 황인찬 시인의 에세이 테라스도 정독을 권합니다. 독특한 시선의 문화읽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익명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작가와 작품은 따로 떼어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작가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즐겁고 신나는 상상입니다.
    앞으로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윈도우를 켜고 문장 웹진의 창을 열어 주세요. 좀 더 알찬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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