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의 추억

[10월호 편집위원 노트]

 

 

헌책방의 추억

 

 

오창은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용산역에 가면 ‘뿌리서점’, 노량진역에 가면 ‘책방진호’, 신촌역에 가면 ‘숨어 있는 책’에 들릅니다. 제가 사랑하는 헌책방들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청계천 헌책방 골목을 일부러 방문한 적은 세 차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줄줄이 서 있는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이 흐뭇한 기분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뿌리서점, 책방진호, 숨어 있는 책이 편안합니다. 그곳에서는 제가 필요로 하는 책들은 없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인연으로 낯선 책들을 대면할 뿐입니다. 그 우연을 기꺼운 마음으로 즐깁니다. 책은 정신적 교감의 인연을 만들기에, 헌책방에서 만나는 인연도 설렘을 자극하는 것이겠지요.
    동네 고물상이 헌책들의 무덤이라면, 헌책방은 책들이 새 생명을 얻는 ‘재생의 처소(處所)’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묵은 책들을 쓰다듬고, 책장을 어루만지며, 문장을 음미합니다. 이상하게도 헌책방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으면, 경건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미 누군가의 손길을 거쳤을 책들, 이미 한 차례 자신의 소명을 다해버린 책들, 운명을 이미 견뎌낸 책들인 셈이지요. 사람의 운명이라고 별반 다르겠습니까. 책들의 운명에서 인간의 삶을 보고, 낡은 표지들에서 절박한 새 출발을 향한 마음을 읽어냅니다.
    그런데 최근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헌책방의 풍속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시내 요소요소에 들어서면서, 동네 헌책방들이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종로점·신촌점·대학로점·강남점뿐만 아니라 부산·대구·대전·광주점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하네요. 동네 헌책방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중고서점이 거대 기업화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쓰립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저렴하게 헌책을 구할 수 있어 환영할 만하다는 시각도 많은 줄은 압니다. 하지만 헌책을 매개로 거대자본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합니다.
    우리는 동네 서점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아버린 후에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한 지역 문화공간이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모든 일원화된 체계는 지역 커뮤니티의 정감(情感)을 제거합니다. 마치 동네 슈퍼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인해 사라지자, 서민경제가 붕괴되는 것과 같지요. 헌책방도 책을 매개로 한 상(商)행위지만 그 의미는 남다릅니다.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면, 책들이 ‘재생의 처소’를 잃고 맙니다. 우연한 인연보다는 검색을 통한 거래만 당연시되겠지요. 가치 없다고 생각하던 책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재평가되는 기적 같은 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겠지요. 조그만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가치를 환기시키기 때문이지요. 헌책도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그 가치가 돋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원화된 체계 속에서 일괄적으로 관리되는 헌책은 두렵습니다. 그것은 우연의 세계를 제거합니다.
    저는 그나마 남아 있던 헌책방들이 인터넷 중고서점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는 꼭 뿌리서점, 책방진호, 숨어 있는 책에 들러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헌책방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더 열심히 나눠 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문장 웹진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저와 함께 김미월 소설가와 이영주 시인도 어깨를 겯고 문장 웹진을 책임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서툴면서도 낯설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로 흥분되기도 합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우선 문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소중한 시들을 보내주신 강정·최지인·강회진·강지혜·조영석·이수명 시인께 고개 숙입니다. 명지현 소설가의 「실꾸리」, 원종국 소설가의 「무릉길34, B102호」, 박화영 소설가의 「골목의 이면」도 문장 웹진을 빛나게 하는 뜨거운 서사들입니다. 황인찬 시인과 장이지 시인의 연재 에세이가 시작됩니다.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사유를 펼칠 시인들의 산문적 감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손홍규 소설가의 『서울』 장편 연재도 어느덧 9회째에 접어들었습니다. 긴 호흡의 힘에 더 큰 격려 부탁드립니다. 익명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습니다. 익명소설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문의하는 주변 문인과 독자들도 있습니다. ‘소설가 H’의 「달밤의 고백」이 그 궁금증을 이어 갑니다.
    문장 웹진이 가진 힘의 근원은 항상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입니다. 신임 편집위원으로서 깊이 고개를 숙여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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