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문학 특강 참여 후기]상처가 상처를 만났을 뿐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상처가 상처를 만났을 뿐

 

 

김명철(시인)

 

 

 

 

    5개월 전쯤, 노숙인들을 상대로 하는 글쓰기 재능기부를 신청했다. 그저 ‘기부’를 생각한 신청이었으나 곧바로 걱정이 밀려왔다. 목적지를 잃어 방향도 없고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써보라 하면 그들이 쓰기는 쓸 것인가.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인데 그들이 호락호락 따라와 줄 것인가.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사람들인데, 나에게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일 것인데.
그러나 기왕 시작한 것,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강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인 선생님이 자기의 가장 충격적인 아프고 슬픈 얘기를 써오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제 마음속의 가장 아픈 상처를 헤집고 다시 들추어낸다는 게 가장 괴로웠습니다.” – 김ㅇㅇ(수강생의 수강소감문 중에서)

 

    그랬다. 첫 수업에서 나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다섯 명의 수강생들. 그들에게 먼저 내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들려주었고 그 내용으로 이루어진 내 시를 읽어 주었다. 너나 나나 어차피 사람이 아닌가, 불행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종류야 다를 수 있겠지만 상처 없이 사람일 수 있는가.
    내 시에 대하여 각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짧은 감상문을 써보라 했다. 글쓰기에서 허위는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자기를 기만하는 짓거리, 쓰기 싫으면 안 써도 좋다, ‘나’를 위해 정직하고 진솔한 글을 써보자, 이 자리까지 왔는데 까짓것 무서울 게 뭐 있는가, 라고는 했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과연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올 것인가.

 

    “형은 연탄가스로 죽고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곧 이어 어머니는 식도암으로 죽었다. 그렇게 다들 떠나고 나 혼자 남았다. 한참 동안 괴로워하면서 방황했고, 남은 가족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난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경험 부족, 욕심, 자기 성찰 부족 등 과욕이 나를 빚더미에 무일푼으로 만들었다. 채권자들에게 시달렸고 자신감을 잃게 되어 난 결국 서울역 노숙자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김ㅇㅇ(수강생의 수필 중에서)

 

    그들은 세 번째 수업부터 글을 써오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의 소중한 글들이었다. 과장도 없었고 가식도 없었고 날조나 허위도 없었다.
    내가 부끄러웠다. 그동안의 나와 그동안의 내 글들과 시들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글을 같이 읽으면서 흘렸던 내 눈물이 오히려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하나같이 기구한 삶들이었다. 끊임없이 지기만 하는 사람들. 못나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혹은 너무 선해서 혹은 너무 욕심이 없어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글들이 지금의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쓰게 하면 ‘전락’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게 하겠는가.

 

    “그래 나도 한땐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내 열정을 다해 생활하던 때가 있었는데……. 옛날 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제는 시를 잘 쓰고 못 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내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 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고 싶다.” – 한ㅇㅇ(수강생의 수필 중에서)

 

    그런데, 그들에게 ‘전락에서 빠져나올 힘’을 주어야 한다는 내 걱정은 기우였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글을 쓰면서 그 힘을 스스로 얻고 있었다. 소망을 한 번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종류야 다를 수 있겠지만 꿈이 없었던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가.
    그랬다. 그들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그것을 글로 써보고 시로 바꿔 보면서 자신들의 유년을 기억해 냈고, 유년의 아름다운 소망과 꿈들을 환기했고, 지금은 사라진 바람들을 아쉬워했고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 꿈들을 되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한 일이 없다. 그저 내내 아물 것 같지 않은 내 상처를 먼저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도 보여 달라고 했을 뿐이다. 상처가 상처를 만나면 서로 아무는 것인가.

 

    때로는 공원 의자에서, 때로는 무릎 위 박스접이 위에서 시를 쓸 때는 뜨거운 햇빛 때문에 땀을 흘렸고 계단식 휴식처에서 계단을 책상 삼아 돗자릴 펴고 뒤돌아 앉아 글을 쓸 때는 비가 오락가락해서 돗자리를 접었다 펼쳤다를 수십 번씩 하기도 했다. – 김ㅇㅇ(수강생의 수강소감문 중에서)

    글 쓴 만큼의 오랜 시간, 추억이 되어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습니다. – 이ㅇㅇ(수강생의 수강소감문 중에서)

    짧은 시간 속에서 다른 시공간 여행을 다녀왔으니 이젠 스스로 여행의 날개를 펴야지. 우리들의 날아오름에 세상 작은 구석에 다시 사람됨으로 자라나는 일들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서ㅇㅇ(수강생의 수강소감문 중에서)

 

    특강 일정이 끝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특강 반장에게 연락이 왔다. 수강생 다섯 명 모두 일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다고, 아무 일이든 할 결심을 했다고, 응원을 해달라고, 일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하겠다고, 취업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응원을 해달라고, 틈틈이 시 쓰는 연습도 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달라고.
    고마운 마음에 다음 주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 동안 우리 집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난 그들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문장웹진 10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