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외 9편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심호섭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세상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아가는
바람의 날개를 보았나니.
그것의 격렬한 움직임에 놀랐나니.

 

잔잔하던 해면이 들끓어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고
번쩍이는 불빛,
귀를 찢는 굉음,
허공을 날던 바닷새는 사라지고 없고
물속의 물고기는 숨을 죽인 채
유영을 멈추었나니.

 

잔잔하던 해면이 들끓어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고
번쩍이는 불빛,
귀를 찢는 굉음,
허공을 날던 바닷새는 사라지고 없고
물속의 물고기는 숨을 죽인 채
유영을 멈추었나니.

 

 

 

 

 

쇠에게

 

 

 

쇠여,
너는 뜨거운 불에 녹여지고
찬 대기에 식혀지고
육중한 해머에 두들겨지고
철판이 된 후, 조선소에서
마침내 화물선의 모습이 되어
바다를 건너는구나.

 

쇠여, 쇠여,
네가 배의 모습으로 바다를 건널 적
바람에 깎이우며
파도에 씻기우며
하늘의 천둥

 

번갯불을 온몸으로 받으며
묵묵히 길을 가는구나.
연단의 길을 가는구나.

 

 

 

 

 

선수루 갑판

 

 

 

 

먼 바닷길 항해를 마치고
입항하는 날, 우리는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하고
선수루 갑판에 모여
선교의 지시를 기다리다 무료함에 못 이겨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하품하고, 그랬다.

 

묘박지錨泊地를 향하여 배는 천천히 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
물새가 날고
파도가 철썩였으며,

 

바람이 우우웅 우우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탓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허공 속에 사라져 가기도 했다.
아마도 그때 우리들의 이름은
김성필, 최강두, 리치앙, 마이 랏, 다바오,
이런 것들이었다.

 

선수루 갑판에 서면 언제나 우리는
사랑하는 모국어 대신 영어로 말했다.
아니, 아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말을 했지만
차츰차츰 영어가 아닌 그렇다고 모국어도 아닌
좀 이상한 말로 말을 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음성은 파도소리를 닮아 갔으며
우리들의 얼굴은 파도를 닮아 갔으며
늘 걱정은 오래된 배의 나이와
적재한 화물에 관한 것이었다.

 

항구에 도착하여 닻을 내리고
닻줄, 양묘기, 통신기를 정리하고 나면
다들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과
얼굴에 묻은 항해의 얼룩을 닦아내었고

 

옷깃에 스며든 파도와 소금기를 털어내었고
선미의 선실로 돌아가기 전,
꼭 무엇을 두고 온 양 한 번씩은
항구의 바깥을 향하여 눈을 주었다.

 

그럴 제, 외항으로 뻗은 수평선의 바다는
끄덕이며 끄덕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배에게

 

 

 

흔들리고 있구나.
바람 부는데
파도 높은데
곧 폭풍이 통과할 텐데
무엇인가를 끌고 가는 저 작은 배여.

 

놓아버릴 수는 없는 거니?
누구의 짐인가?
어서 가야지.
바다가 일어서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눈이 멀었는가?

 

귀가 먹었는가?
작은 배여, 어찌하여 홀로
바다로 바다로만 가는가!

 

안개가 내린다.
바다가 닫히고 있다.
오, 작은 배여
희미해져 가는구나.
힘을 내자 작은 배여,
힘을 내자 작은 배여,
너를,
너를,
사랑하는 너를.

 

 

 

 

기도

 

 

 

파도를 마신다.
푸른 물의 향기에 젖는다.
아, 아련한 향기, 향기의 혼돈
나는 모유로부터 생겨났으니
모유로 돌아가리라.
그러므로, 용서하소서
나의 검어진 손, 발, 그리고 마음
파도처럼 차디차게 다가와서
말갛게 씻기우소서.
그리하여 바다가 되게 하소서.

 

 

 

 

 

남태평양

 

 

 

남태평양 바다에는 아직도 자랑할 만한 별이 살고 있다
거기에는 세상의 실종된 별들이 해면 위에 웅성웅성 부산하다.

 

나는 해도실海圖室의 스탠드 불을 밝히고 색종이 몇 장과 가위를 찾는다.
나는 별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나는 색종이 몇 장을 정성껏 오려
별을 만들어 마스트 위에 걸린 은하수의 지류에 붙인다. 나는 다시
컴퍼스와 연필로 전갈자리의 꼬리와 그것의 따끔한 독침을 그린다.
나는 안드로메다 성운과 그보다 더 먼 우주의 블랙홀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다.
드디어, 나는, 바닷물에 젖은, 그래서 푸르죽죽 녹슨
나침반 하나를 그리고 싶다. 그것은 오랫동안 세상의 밖을 걸어가면서
오직 한 곳만 가리켜 왔다. 나는 그것의 유구한 정신이 지탱하는
극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지만 나는
어느새 바람이거나 그림자다.
나는 아직 남은 밤의 여백을 맴돌다가 연돌 에 들어가
환기구를 타고 어두운 기관실 구석으로 잠입한다.

 

나는 그곳의 공구실에서 드라이버와 펜치를 챙기고
노동에 지쳐 졸고 있는 제어실의 당직자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고열의 연기처럼 환기구를 빠져나와 휙, 휙,
하늘 높이 올라간다

 

헤라클레스처럼 하늘 천장을 성큼성큼 걷는다.
손으로 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이제 막 도착한 게으른 젊은 별들은 드라이버로 힘껏 죄어 준다.
달의 그은 얼굴은 기름걸레로 정성껏 닦아야 한다. 그것은 언제라도
어두운 지상을 겸손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법이다.
나는 노동을 멈추고 성좌에서 성좌로 가는 길목에 앉아
땀을 식힌다.
거기에는 시원한 옹달샘이 솟고 있다.

 

늙은 고래의 기침소리 같다.
파도의 자잘한 명상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어린 별들의 눈빛이 초롱하다.
나는 무거워진다.
나는 바다로 떨어질 것이다.

 

    1) 마스트 : 돛대.
    2) 연돌 : 선박의 굴뚝.

 

 

 

 

 

 

유성우

 

 

 

폴리네시아 바다에 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군도群島 가운데서도 크리스마스 섬은 영혼의 힘이 가장
미개하다고 알려져 있었지요.
거기에서 닷새 동안의 정박 중에 나는 그곳 원주민들이 즐겨 먹는
어떤 열매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출항을 하자마자 나는 무작정 망루를 올라가고 있었답니다.

 

적도무풍의 부드러운 공기가 콧속에서 망울망울 터지자
흥분에 못 이겨 옷을 죄다 벗어버렸어요.
나는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손으로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각진 표피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까슬까슬한 흉터가 만져졌지요.
그때 저 아래 해면에서는 낡고 오래된 그림자 하나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사과를 먹고 있었습니다.
씨방을 으깨어 씨를 바다로 뱉어내자 하늘이 한 칸 흔들거리더니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박인가, 나는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때 빨간 불덩어리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들은 쉬, 쉬, 소리를 내면서 해면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떨어지는 불덩어리 하나를 손으로
낚아채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숯불이었습니다.
나는 숯불을 내 얼굴의 최대 약점인 코 밑 인중에 있는 흉터에
갖다대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뭐랄까요. 자기학대라고나 할까요.
나는 이번에는 불덩어리를 갈비뼈 아래 깊게 팬 상처 자국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리고 부시시 부시시 지졌답니다. 나는 너무나 아파서
정신이 혼절해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나는 벗은 몸을 가리기 위하여 옷을 입었고,
그날 밤 내내 해면은 영롱한 자수정 한 점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지요.

 

 

 

 

 

노동가

 

 

 

그동안 산들바람이 불고 하늘 천장에서는 별빛 몇 개 똑딱
수다스럽더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무의 그늘에 앉아
깊은 강의 소리를 헤아리는 오늘, 내 타국 바다의 꿈은 가난하다.
그렇다. 해시계는 메말랐고 그림자는 무겁다. 가벼운 통회 속에
흙의 모습을 움켜쥔다.

 

전사여 노동이여
오늘도 피곤을 별빛에게 들켰느뇨?

 

자오선이 하나 지는 것을 보았다. 자오선이 둘 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은 어둠 속을 사라져 갔고 또 그렇게 나타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유성이 슬쩍 해역에 떨어져서는 뽀얀 황토 먼지가
일어났다. 지도를 들고 벌을 서는 사람들은 오늘도 바다의 구석에서
세계의 무게를 견디며 인생을 적재하고 양화하는 것이었다.

 

전사여 노동이여
내일은 희망이 어느 항구에서 서성거리느뇨?

 

 

 

 

 

해류와 노동

 

 

 

남위 7도로 흐르면
바람은 눈동자이고 물고기는 무풍에 떠다닌다.
어디, 역사에 휴식이 있었을까.
786알피엠의 전동굴착기는 수층을 뚫고
태양은 고열의 갑판 위에서 밧줄을 사리면서
노동의 노래와 함께 늙어 가는데
먼지가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허공에는
별이 하얗게 박혀 있다.

 

한때, 지난 세기 저녁 통신에 의하면
닳은 면(綿)장갑이
주인을 찾아 외롭게 해류에 흘러 다닌다고 알려 왔다.

 

거기서는 물새 울음이 구슬픈 날이면
굴뚝의 연기가
알라딘 램프의 거인처럼 떠오르고,
무거운 적란운이 비와 천둥을 내려놓을 때
바다는
한 움큼의 가슴과
팔뚝의 수많은 실핏줄을 위로한다.

 

남위 7도로 흐르면
푸른 해류에 스치는
한 무리의 닳은 면장갑을 만난다.
그들은 한 손으로는 무딘 날의 금속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밧줄을 잡으려 발돋움한다.

 

 

 

 

 

베링 해

 

 

 

겨울바다
994헥토파스칼
기울기가 북으로 북으로 내몰았습니다.
아침이면 해시계는 젖은 그림자를 갑판에 잘 펴 널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쫓기는 자들의 급박한 결의가 거룩했습니다.

수로를 넘으면서
동東 섬은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고 서西 섬은
왼손을 흔들어 주기만 했습니다.
내해內海 쪽에서 도요새 수 마리가 날아와 선수루에 앉았습니다.
갑각류가 떼를 지어 수면 한 칸씩 한 칸씩 움직입니다.
집단체면처럼, 수억 마리의 플랑크톤이 부걱입니다.
지금 베링 해에서는 투쟁이 평화롭습니다.

남서쪽 500마일에서 캄차카 반도가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칼바람을 피해 도요새 가족은 서로 부리를 비벼 댑니다.
저 너머 북쪽 나라 빙산에서 살다가 이주를 떠난
나그네새일 겁니다.

베링 해를 빠져나오자 파도가 뱃전을 추궁합니다.
변변한 풍향계도 없이
도요새는 몇 점 비행으로 하늘을 좁혀 가고 있습니다.
나는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영영 바다에 떠서
세상의 길을 두루 찾아갈 겁니다.

 

    1) 헥토파스칼 : 기압을 나타내는 단위.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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