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문학특강 참여 후기]민들레 학당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민들레 학당

 

 

표명희 (시인)

 

 

 

 

    그곳은 불교 종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시설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졌다는 아담한 이층짜리 건물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50대는 젊은 축에 속했고 6, 70대가 대부분인 고령층의 남자 전용 시설. 그래서인지 담당인 삼십대 중반의 사회복지사는 앳돼 보일 정도였다.
    “여성작가님이 배정돼서 다행이에요.”
    복지사가 나를 반겼다. 나 역시 ‘금녀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신선함과 긴장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기대에 부푼 출발이었다.

 

    공부할 장소는 주방이었다. 저녁을 먹고 말끔히 치우고 난 자리에 다들 모여 앉았다. 프로젝트 빔과 칠판과 교탁 대신 도마와 칼, 행주, 커다란 솥과 냉장고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은빛 철제 주방 조리대가 내 자리였고 수강생인 어르신들은 식탁 겸 책상에 앉았다. 2, 30대 모이는 자리에 가면 나도 이제 눈치를 봐야 할 나이건만 그들 앞에 서니 갑자기 푸릇푸릇 젊어진 기분이었다. 강사랍시고 앞에 서긴 했지만 엎드려 배워야 할 인생 대선배들 눈에야 얼마나 어설프고 가소롭게 비쳤을까. 고령임에도 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 시설로 돌아와 쉬는, 자활에 중점을 둔 시설이었다. 온종일 일하고 난 지친 몸에 저녁식사의 포만감, 거기다 초저녁잠에 약한 연배들이었으니 여느 글쓰기 강좌처럼 그들에게 면학 분위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었다. 그렇다고 강좌의 원래 취지를 등한히 할 수도 없었다.

 

    첫 시간은 대충 이랬다. 가장 기억에 남는 누군가에 대한 추억을 글로 써보라며 펜과 흰 용지를 나눠주자 수강생들은 예기치 않은 일에 황당해했다. 그들은 받은 종잇장을 책상에 놓고는 남의 일인 양 곁눈질하듯 내려다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흘려냈다. 종이에 또박또박 글을 적어 나가는 학생은 두엇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와 나이만 적어 놓고 멀뚱멀뚱 앉아 버텼다. 나는 이 만만찮은 수강생들과 앞으로 글쓰기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 고민이었다. 묘안도 못 떠올린 채 내 눈은 발치에 놓인 애먼 된장 고추장 통만 오갔다. 수업보다는 식당 여주인처럼 파전이나 부쳐 막걸리 한잔씩 나누면서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게 제격일 것 같았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마련해 갔던 시 한 편을 감상하고 나니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시 한 수가 수업 분위기를 바꾸어 주었다. 데면데면했던 우리를 시인의 젊은 시절, 고향으로 훌쩍 데려다 놓은 것이다. 집성촌 일가붙이라도 된 기분으로 다들 어릴 적 시골 얘기로 수다스러워졌다. 제출된 학생 작문 두 편을 하고 남은 수업시간은 그렇게 채워졌다.

 

    다음 수업에서도 작문 용지는 거의가 백지 제출이었다.
    “갑작스러워 생각이 잘 안 떠오르네.”
    누군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시면 각자 써서 다음 시간에 숙제로 해오세요.”
    내가 대안으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그게 낫겠어. 혼자 차분히 생각도 정리할 겸.”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빈 용지를 챙겼다.
    “작가 선생, 거, 김수현이라는 드라마 작가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가끔 돌발 질문도 나왔다.
    “나도 그 사람 연속극은 꼭 챙겨 보는데, 정말 대단한 여자더만.”
    김수현 연속극 팬이 너도 나도 나서며 한동안 드라마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갔다. 수업용 대화로 그 정도면 양호했다. 대부분은 질문보다 요구사항이었다.
    “오늘 수업은 40분에 끝냅시다. 축구 봐야 하거든.”
    벽걸이용 시계에 연신 눈길을 보내던 한 학생이 말했다.
    “최고다 이순신, 할 때 됐는데…….”
    그들 역시 세상의 모든 학생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수업보다 텔레비전을 백 배 좋아한다는 것까지…….
    다음 시간에도 숙제를 해온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저 이제 짤립니다. 이렇게 숙제도 안 해오시면, 강사가 수업 진행 제대로 못 한다고 수업 맡기겠습니까.”
    은근슬쩍 읍소형 협박을 했더니 몇몇은 긴장하는 눈치였다.
    “다음에 해오면 되지 뭐.”
    “그래, 각자 한 편씩 써옵시다.”
    나를 위로하면서 서로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시간이면 그들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듯 빈손으로 와서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맨날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데 글 쓸 시간이 있어야지.”
    “드라마나 축구는 꼭꼭 챙겨 보시잖아요.”
    내가 따지고 들면 그들은 씨익 웃거나 말을 딴 데로 돌렸다.
    “우리 반장님은 서편인지 동편인지 하는 고장 출신이라, 육자배기를 멋들어지게 하셔.”
    그러면 내 관심은 반장님과 육자배기에 쏠릴 수밖에 없다.
    “분위기 전환 겸, 반장님께서 소리 한 대목 해보시면 어떨까요.”
    나의 권유에 반장님은 손사래부터 쳤다.
    “막걸리도 한잔 없이 육자배기는 무슨, 맨숭맨숭해서 소리가 나오겠어?”
    “제가 나가서 막걸리 몇 병 사올까요?”
    “그럼, 나 반장 짤리라고?”
    시설에는 술 반입이 금지였다. 배움의 장에는 금기가 늘 많다는 게 문제다.
    “강사 짤리고 반장 짤리고, 그럼 진짜 글 쓸 맛 나겠다.”
    누군가의 너스레에 다들 공감의 웃음을 쏟아냈다.

 

    이렇듯 얼렁뚱땅 불성실한 학생들과 얼치기 선생의 글쓰기 수업은 두 달간 이루어졌다. 반장님 육자배기는 결국 듣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그 수업에서의 나는, 강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수업료 한 푼 안내고 배운 학생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빚이라도 진 느낌이다. 어떻게 그 빚을 청산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의 질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정부를 상대로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나……?

 

    “원활한 수업을 위해 정부는 시설에, 막걸리 반입을 허용하라! 허용하라!”

 

 

 

    《문장웹진 9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