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문학특강 참여 후기]문래동 옹달샘

[민들레 문학특강 참여후기]

 

 

문래동 옹달샘

 

 

최종천 (시인)

 

 

 

 

    인간은 관념을 먹는 존재다. 성경에는 인간의 배설행위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있다. 너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하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더럽다, 라는 말이 그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배설’ 외에 다른 표현은 없다. 신은 언어를 통하여 이 세계를 창조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이 세계를 포식하고 배설하는 언어인 것이다. 인간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언어를 즐기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접근을 뒤로 하고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보아도 우리는 같은 곳에 도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다. 최상위 포식자인 만큼 배설은 절실한 것이 된다. 식물에서 최초로 먹기 가능한 형태의 에너지가 생산되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으로 에너지가 이동되어 최종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먹이사슬은 식물에서 최초로 생산된 에너지가 이동하는 경로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에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에너지를 먹기만 하지 낭비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은 병들어 생물학적 멸망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에너지는 낭비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축적되는 에너지를 가장 급속도로 낭비하는 방법이 곧 전쟁이다. 따라서 전쟁은 인간의 가장 적극적인 배설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문화라는 소비거리가 있어야 한다.

 

    내가 공부를 같이 한 문래동 옹달샘 드롭센타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공부를 하는 장소가 다른 곳이 아닌 교회다. 내가 앞에서 신학적인 말을 한 이유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 중 젊은 분 하나가 시에 인간의 배설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가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데, 그런 물건을 주워다 팔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얻는 수입이 하루 4만 원은 족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물건을 버리는 것이 곧 배설하는 행위라고 시에서 말하고 있었다. 지금 말하는 이분만은 상당히 재능이 있어 보인다. 어떻게 이런 말을 시로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으니 그는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인간의 소비행위를 배설로 본 것은 정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부에 들어가는 첫날 나는 노트를 8권 사서 사람들에게 한 권씩 주었다. 그리고 꼭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시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전혀 없었고 공부시간이 되어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교회의 긴 탁상 네 개를 네모로 맞추어 놓고 의자를 배치해 놓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홉 명은 빙 둘러앉아서 커피를 마셔 가며 온갖 농담과 일하는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그런 구체적인 것을 시로 쓰라고 권했다.
    나는 열 권의 책을 가져다주었는데 시집이 4권이고 나머지는 산문집이었다. 송경동의 산문, 김해자 누이의 산문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등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책을 읽지 않았다. 시집은 다소 읽는 듯했다.

 

    나는 시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정신을 최대한으로 활성화하라고 권한다. 내가 누누이 하는 말은 이런 것들이다. 시에서 사실이나 사물은 그 자체로 고정되지 않는다. 어린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라. 그러면 그 장난감은 비행기도 되었다가 자동차도 되었다가 새가 되기도 한다. 철학은 정확해야 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시는 해방이다. 그러니 배짱을 가지고 시를 쓰라고 말한다. 그 외 다른 것은 작품 그 자체를 놓고 콩이다 팥이다 하는 것이 전부다. 노숙자라고 하여 별다른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날그날의 경험과 한 일을 진솔하게 써보도록 했다. 우선 언어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노숙자 문학 강의에서 가슴 아팠던 것은 ‘십 년 후의 나’라는 글제로 써지는 시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십 년 후를 교훈적으로 그려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좋은 상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중 칠순이 넘은 분은 형님, 또 형님도 칠순 넘으셨는데, 여기 세 분 형들은 전부 육십이 되신다는데, 십 년 후에는 살아 계실지 아니면 저 세상에 가 계실지도 모르는데 하나같이 이런 좋은 상상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심경이라 해도 이해가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라.”
    그랬더니 나이 드신 한 분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시에 써넣는다.
    “내일이면 벌써 나는 이곳에 없을지 모르지만” 이 한 문장은 앞 시 전체를 전복시키는 구절이 되고 있었다. 이 시는 두어 번 고친 끝에 생태공원을 청소하는 이야기와 오리 가족 이야기. 열 마리이던 오리 가족이 여섯 마리밖에 안 보인다는 이야기, 내일은 그 안 보이는 오리 가족을 보고 싶다고 하고는 내일이면 자기는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리가 가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다른 한 분은 십 년 후에 멋진 집을 지어 놓고 옥상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하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지금 형의 상태로 보아 가능하지 않은, 그래서 피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그보다 좀 더 가능한 것을 쓰도록 했다. 우선 시에 나오는 이 집이 너무 멋지고 큰 집이라고 지적하니 사람들이 다 웃느라고 혼을 빼고 있었다. 다들 입을 모아 나는 그런 집은 아니더라도 단칸방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젊은 사람 앞에서 성경 이야기를 한 사람은 나는 그 돈이면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나 같은 사람에게 싸게 세를 놓겠다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는, 그러니까 형님은 웃자고 쓴 거지 정말로 쓴 것이 아닐 것이라고 내가 말하니 또 한바탕 웃고 떠들고들 있었다.

 

    또 다른 한 분은 시를 쓰시는 걸 지켜보면서 내가 말하기를 시는 아니고 시 같은 것이 써지기는 하느냐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써지기는 한다고 하더니, 종이를 걷어내더니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써버렸다. 무엇인가가 써지기는 하는데, 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읽어 보니 나름 재미있는 시가 되어 있었다.
    젊은 사람은 단둘인데, 자신들 말로는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했다. 둘 중 한 분은 썼다 하면 결혼과 애인 이야기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상처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이분의 문장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제일 정확했고 다른 분들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분은 상상력이 구체적이고 생각 자체가 시적이었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진행하는 동안 시보다는 사는 이야기와 농담을 더 많이 나눈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배설 이야기를 한 분은 계속 시를 가르치고 싶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실은 배설임을 자각하는 예는 우리 시인들 전체에서도 아주 드물다.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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