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 팸 -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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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팸-삽화

 

    *

 

    소금방으로 간 놈들은 엉덩이를 바닥에 대자마자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 옆으로 갈 걸 그랬나? 내가 뭐랬냐, 아예 장안동으로 가자고 그랬지? 이런 동네는 순전히 여관바리 하러 오는 데라니까. 여관바리는 얼만데? 한 10만 원 할걸? 지금이라도 쏠까? 됐다, 인마. 나 내일 일곱 시 회의야. 조 부장 새끼, 정력도 좋아요. 다섯 평 남짓한 소금방 안이 두 놈 목소리로 울렸다. 귀가 따갑지만 참아야 했다. 취한 놈들은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까. 한 명이 떠들면 다른 한 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한 명이 떠들면 이번에는 먼저 이야기하던 쪽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한 명은 아이폰, 한 명은 갤럭시. 모두 신형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일은 던전에 들어선 주인공과 다를 게 없다. 문제는 몹(Mob)들이 끝까지 내가 주인공인 걸 알면 안 된다는 거다. 눈치가 빠르거나 손이 잽싸거나 배짱이 두둑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끈질기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보인다.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들이 흘리는 핸드폰을 주워 담으면 그만이다. 탕에서부터 타깃으로 삼은 놈들이었다. 술도 적당히 마신 거 같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과장, 부장 운운하는 걸로 보아 회사에서 구르는 놈들 같았다. 그런 놈들은 백이면 백,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할 확률이 높았다. 그들에게 최신 스마트폰은 필수 아이템 같은 거였다. 탕에서 탈의실로, 탈의실에서 찜질방 로비로, 그리고 소금방까지. 짧지 않은 던전을 거쳐 오는 동안 놈들의 관심사는 모이지 않는 돈과 아쉬운 섹스, 그리고 별별 잡놈들이 모여 있는 회사뿐이었다.

 

    놈들은 소금방을 나와 수면방으로 향했다. 나는 탕에서 가지고 온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뒤따라갔다. 수면방에서는 이미 대여섯 명이 코를 골거나 이를 갈고 있었다. 놈들은 각각 자리를 잡고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놈들이 잠든 모습을 지켜봤다. 후달릴 건 없었다. 졸음만 참으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필요한 건, 인내심뿐이었다. 새벽 세 시는 작업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누구도 깨지 않고 어떤 알람도 울리지 않았다. 잠결에 뒤척이는 놈들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찜질방 입구에 붙어 있는 경고 문구처럼 자기 분실물을 책임지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낫살이나 처먹은 놈들이 그걸 모른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다. 죄 없는 카운터 알바에게 찾아내라, 변상해라, 하며 지랄할 게 눈에 선했다. 그런 꼰대들은 덩치만 크고 주름만 깊었지, 완전 애들이나 다름없다. 우리도 그렇게는 안 한다. 꼰대들은 서로 책임을 가리고 묻는 데 일생을 보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까운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욕심은 죄악이다. 나는 아이폰과 갤럭시만 노린다. 타깃은 각각 바지 주머니와 머리맡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에 전리품을 담아 수면방을 빠져나왔다. 수면방 안에서 최초의 알람이 울리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지나야 할 거였다. 새벽 세 시 반, 나는 찜질방 앞 공터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건, 1996년 겨울이었다. 잡스를 부른 건 그를 내쫓았던 경영진 놈들이었다. 지들끼리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보려다가 망하고, 또 망하고, 다 망하니까 결국 헬프를 날린 거다. 그게 중요하다. GG를 치기 전에 헬프를 날릴 결심. 쪽팔림을 무릅쓰고 필요한 걸 얻어낼 수 있는 용기. 그게 정의고 윤리고 책임이 아닌가. 산다는 건 어차피 쪽팔린 일이다. 뒤집어 말하면 쪽팔린 것만 참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거다. 잡스와는 달리 나는 직접 나를 내쫓은 팸으로 찾아갔다. 오토바이를 탄다. 달린다. 도착한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쪽팔렸지만 비굴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사과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았다. 지난 일은 어차피 지금 여기에 없다는 걸 제아무리 개코 형이라도 알고 있을 거다.
    “야, 싸가지! 왜 왔냐.”
    사과라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개코 형은 날 싸가지라고 불렀다. 내 말본새가 건방지다는 이유였다. 개코 형은 남자 넷, 여자 셋이 사는 팸의 팸장이었다. 개코 형의 팸은 팸 치고는 별 사건사고 없이 오래갔다. 개코 형은 그 비결이 졸업제도라고 했다. 개코 형의 팸에서는 열여섯까지만 있을 수 있었다. 열일곱이 되면 졸업을 하고, 나처럼 독립해야 했다. 여기가 학교야? 아니면 우리가 뭐, 애프터스쿨이야? 내쫓을 거면 솔로로 데뷔를 시켜주든가. 아니면 원룸을 하나 구해주든가. 지랄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별수 없이 제 발로 걸어 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순순히 룰을 따랐다. 대신 개코 형한테 죽빵을 한 대 갈겼을 뿐이다.
    “일 하나 같이해.”
    “뭔데?”
    개코 형은 내가 물고 온 사업 아이템을 듣고 코를 벌름거렸다. 냄새를 맡은 거다. 나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렸다. 개코 형은 뭣도 모르면서 하나씩 만져보며 외관을 살폈다. 킁킁, 냄새도 맡았다. 오랜 습관이었다.
    “왜 수건 냄새가 나냐?”
    “찜질방에서 작업한 거니까.”
    “이 새끼 대범해졌네. 안전한 거야?”
    “유심은 빼놨어.”
    “요새 단속 센데…….”
    “그래서 할 수 있겠어, 없겠어?”
    개코 형이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너, 저 앞에 김천 주방아줌마 알지?”
    “알지.”
    “그 아줌마 조카가 보따리라던데.”
    “이것도 취급하려나?”
    “한번 찔러나 볼게.”
    줄 세워놓은 스마트폰을 한데 모으며 개코 형이 말했다.
    “혜나는?”
    나는 인기척이 없는 여자애들 방을 보며 물었다.
    “일 나갔다.”
    “요즘은 이상한 새끼들 없지?”
    “그걸 왜 나한테 묻냐? 혜나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후지게 뭘 그런 걸 물어봐.”
    지난주에 혜나가 찾아왔을 때, 목소리가 좀 가라앉아 있던 게 내내 걸렸다. 모텔에서 슬픈 영화를 봤다나. 나는 섹스 뒤에 영화를 보고 질질 짜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혜나는 고개를 들고 픽, 웃었는데 그 웃음이 썩 불길했다. 예전 같으면 새로운 소설을 썼다며 줄줄 얘기를 늘어놓았을 텐데 요즘은 글을 쓰지 않는 모양인지, 소설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혜나는 만날 핸드폰으로 뭔가를 썼다. 조건남을 기다릴 때도 손을 바쁘게 놀렸다. 처음에는 카톡질을 하는 줄 알았는데, 소설을 쓰는 거라고 했다. 나는 어떤 내용이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다만, 얼른 천만 원을 모으고 나면 남은 돈으로 혜나한테 아이패드를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지 두 개보다 열 손가락을 다 쓰는 게 아무래도 편할 테니까. 혜나는 홀 구석에 앉아 양념치킨 반 마리를 알뜰하게 발라먹었다. 그날은 주인아줌마한테 말해서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오빠, 좀 걷자.”
    혜나와 나는 가게 주변을 돌았다.
    “너 요즘 소설은 안 쓰나 보다?”
    “조금씩 써.”
    “어떤 얘긴데?”
    “웬일이야. 내 소설에 관심을 다 갖고.”
    “그냥 궁금해졌어.”
    “별일이네. 마침 주인공 이름이 사과야.”
    “뭐야, 내 허락도 없이?”
    “사과한테는 특별한 능력 같은 게 있어.”
    “그게 뭔데?”
    “다 쓰고 나면 보여줄게.”
    혜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서클 렌즈를 낀 것도 아닌데 혜나는 눈동자가 졸라 컸다.
    “이렇게 해봐.”
    혜나는 왼쪽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날 봤다.
    “이게 뭔데?”
    “이렇게 하면 한쪽 눈으로는 나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는 오빠를 보는 거래.”
    나는 혜나를 따라서 한쪽 눈을 가리고 앞을 봤다. 시야가 조금 흐려졌고 혜나가 반걸음 왼쪽으로 움직인 거 같았다. 한동안 그 상태로 혜나를 바라봤다.
    “오빠.”
    “왜?”
    “조심해.”
    “뜬금없이 왜?”
    “요즘엔 스마트폰에 벼래 별 기능이 다 있더라고.”
    “그래. 네이버처럼 말 걸면 대답도 다 하지.”
    “아! 그건 좋다. 물어보고 싶은 거 졸라 많은데.”
    “오빠한테 물어봐.”
    “알았어. 나중에.”
    오토바이 뒷자리에 치킨 대신 혜나를 태우고 팸이 있는 명일동까지 곧장 달렸다. 혜나는 엉덩이에서 닭 냄새가 날 거 같다며 투덜거렸다. 혜나가 뒷자리에 앉아 내 허리를 꽉 잡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천호대교를 건널 때쯤 혜나가 볼을 내 등에 바짝 붙였다. 혜나의 볼에 물기가 있었다. 내 셔츠까지 축축하게 젖었지만 모른 척했다. 혜나도 그걸 바랐을 것이다. 혜나가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혜나 앞에서 입이 근질근질한 걸 참느라고 혼났다. 천만 원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걸. 그 돈이 우리 팸의 보증금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젖은 셔츠를 바람이 꾹꾹 누르고 지나갔다.

 

 

    *

 

    하루에 두세 개는 기본이었다. 운이 따르는 날에는 여섯 개를 찍었다. 수중에 들어오는 물건 모두가 최신 폰은 아니었다.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겨우 고철 값만 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했다. 새로 나온 기종의 특장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외형 재질은 뭔지, CPU는 뭘 썼는지, 메모리는 몇 기가인지 파악하면 일이 훨씬 수월했다. 브랜드도 따졌다. 엘지보다는 삼성이, 삼성보다는 애플이 갑이었다.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왜 애플, 애플 하는지 알 거 같았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하한가를 유지했다. 명품은 그런 거다. 잡스가 돌아와 십 년 동안 한 일이 아이폰을 만드는 거였으니, 말 다 했다.
    가격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까지 빠지겠구나, 대충 계산이 나오면 작업할 때 도움이 됐다. 가죽 커버도 돈이 되는 모델이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유심을 빼고 전원을 끄기 바빴는데 그리 급할 것도 없었다. 패턴이나 비번으로 잠겨 있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쉽게 풀렸다. 초기화를 하기 전에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사진과 영상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별별 쓰레기를 다 집어넣고 다녔다. 스마트폰은 음식물 쓰레기통이나 변기 같은 거였다. 그 사람이 평소에 뭘 먹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별 그지 같은 놈들이 다 있었다. 어떤 건 냄새도 났다. 섹스를 담은 영상,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에서 여자들 치마 속을 집요하게 따라붙는 영상,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찍은 사진, 일본이나 미국 쪽의 포르노를 장르별로 분류해서 담고 다니는 놈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물건이 열 개 정도 모이면 팸으로 갔다. 팸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서로 품평하기에 바빴다.
    “이거 봤냐? 쩐다.”
    한 놈이 여자애 셀카를 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남자애들이 몰려들었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대딩이었는데, 남자애들은 서로 보겠다며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용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용대는 스마트폰을 공장 초기화로 돌리고, 커버와 보호필름을 벗겨 내고, 소독용 알코올을 쿠킹 타월에 묻혀 꼼꼼하게 기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새 보호필름을 씌우면 완성이었다. 용대는 일사천리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녀석의 손을 거치고 나면 제아무리 꼬질꼬질한 스마트폰도 새것으로 탈바꿈했다. 용대는 완성품을 내게 건네면서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나는 용대에게 건네받은 물건을 비닐 파우치에 담았다. 용대에게 뒤처리를 맡긴 건 나였다. 용대는 맡은 일이라면 말없이 해치웠고, 특히 내가 맡긴 일은 완벽히 해냈다.

 

    용대가 팸에 합류한 건 2년 전이었다. 용대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나를 따랐다. 먼저 말도 붙이고, 날 앞에 세우고 이유 없이 질질 짜기도 했다. 자기 불행을 자랑하는 놈들은 질색이었지만, 그런 용대에게는 마음이 쓰였다. 나한테 동생이 있다면 딱 이런 녀석일 거 같았다. 주는 거 없이 미운 게 아니라, 주는 게 있건 없건 챙겨주고 싶은 녀석이었다. 그런 느낌은 혜나도 마찬가지였는지 용대를 대할 때만큼은 태도가 달랐다. 작년 겨울에 피자를 배달하던 용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나는 개코 형 몰래 저금해두었던 돈을 용대의 치료비로 댔다. 혜나도 돈을 보탰다. 그렇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병원에서는 2차, 3차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받으면 멀쩡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괜찮아요. 다리야, 뭐. 낫겠죠.”
    용대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병실에서 나왔다. 왼쪽 다리를 아주 못 쓰는 건 아니어서, 절뚝거리며 걸을 수는 있었다. 그 뒤로 용대는 팸의 살림을 도맡아 했지만 돈을 벌어오지 못하니 개코 형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거였다. 용대는 가끔 화를 참지 못하고 벽에 주먹질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혜나는 시뻘겋게 멍이 든 용대의 손등에 후시딘을 발라주었다. 혜나는 용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아프냐?” 하고 물었다. 그러면 용대는 웃었다.
    “용대는 꼭 동생 같아.”
    혜나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혜나와 용대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한 명을 데리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둘이 함께 있었기에 천만 원을 만들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팸을 나오기 며칠 전에 용대에게 통장을 맡겼다. 용대가 마음을 못 잡는 거 같아서였다. 천만 원을 채우면 너와 나 그리고 혜나, 셋이서 새로운 팸을 만들자고 했다. 용대는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용대가 긍정하는 방식이었다.

 

 

    *

 

    황토방에 들어온 남자의 폰은 갤럭시 신형이었다. 남자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황토방에서는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뒤이어 초딩이 들어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초딩은 남자의 손에서 갤럭시를 빼앗았다. 둘은 옥신각신하더니 명탐정 코난을 같이 봤다. 소리가 커서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여튼 예의라고는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남자는 간간이 수건으로 초딩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초딩이 남자를 깨웠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면방으로 이동했다. 새벽 한 시였다.

 

    무엇이든 완벽한 건 없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별 그지 같은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수면방에서 갤럭시를 손에 넣는 순간, 남자에게 손목이 잡혔다. 조금 전까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귓가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옆에는 초딩이 바짝 붙어 자고 있었다.
    “경찰서 갈래? 아니면 빨래?”
    그는 내 뒤통수를 자신의 가랑이 아래로 밀어붙였다. 헐렁한 찜질복 바지 안으로 머리가 밀려 들어갔다. 눈앞에 축 늘어진 자지가 보였다. 남자가 내 쪽으로 자세를 틀었다. 지린내가 났다. 구역질이 났지만 꾹 참았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 초딩이 깨어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눈을 꽉 감고 흐물거리는 자지를 물었다. 자지는 금방 부풀었다. 그는 슬금슬금 허리를 돌렸다. 입안에 뜨뜻미지근한 물기가 차올랐다. 남자가 천 원짜리 하나를 내 윗도리에 찔러 넣었다. 나는 수면방을 뛰쳐나왔다. 탕으로 내려가는 계단 귀퉁이에서 입안에 고인 걸 뱉어냈다. 몇 번이고 가래침을 뱉었다. 더 그지 같은 건, 그 상황에서 혜나가 떠올랐단 사실이다. 새벽 네 시, 나는 찜질방 앞 공터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세븐일레븐에서 콜라를 샀다. 콜라로 입안을 여러 번 헹궜지만, 목구멍에 박힌 비린내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똥 중에서도 악취가 나는 똥을 밟은 거였다. 똥을 밟는 건 운이지만, 언제나 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바닥을 똑똑히 보고, 검다 싶은 물체면 재빨리 피해야 하는 거다. 씨발, 냄새가 났는데 피하지를 못한 거다. 나는 남은 콜라로 다시 한 번 입안을 헹구고 편의점을 나왔다. 거리는 배부른 돼지처럼 조용했다.

 

 

    *

 

    용대에게 카톡이 왔다. 당장 와 달라고 했다. 분위기상 혜나한테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용대가 커버하지 못할 정도면 꽤 큰일이라는 건데. 나는 곧장 팸으로 달렸다. 혜나는 나를 보자마자 누가 연락했느냐며 괜히 애들한테 지랄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는 이불을 들치고 엉망이 된 혜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가관이었다. 오른쪽 눈언저리가 퍼렇게 부어 있었다. 입술도 피가 터져 나와, 덕지덕지 검은 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티셔츠 윗부분은 찢겨서 너덜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각목을 치다가…….”
    뒤에 서 있던 남자애가 빌빌거리며 말했다.
    “야, 이 씨발. 지금이 어느 땐데 각목을 쳐?”
    “내가 하자고 그런 거야.”
    혜나가 말했다.
    “그 새끼가 지난번에 지 핸드폰으로 침대 위를 찍은 거야. 오백 해오래. 안 그러면 인터넷에 푼다고. 애들 시켜서 핸드폰만 뺏으려고 그랬지. 근데 그 새끼가 그렇게 세게 나올지는 몰랐어. 개새끼.”
    혜나가 울먹였다.
    “그 새끼 전번 있지?”
    “전번은 왜? 없어. 지웠을 거야.”
    혜나가 시치미를 뗐다.
    “지우긴 뭘 지워. 너 핸드폰 어딨어?”
    “됐어. 오빠는 가만있어.”
    “그 새끼 수배할 수 있어?”
    가만 보니 남자애들도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새끼 명함 챙겨놨어요.”
    한 새끼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명함을 꺼냈다. 어디선가 들어본 회사였다. 아파트도 짓고, 보험도 팔고, 스마트폰도 만드는 회사였다. 위치는 역삼동 경복아파트 사거리 근처였다. 대충 어딘지 감이 잡혔다. 나는 명함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방을 나왔다.
    “야! 김사과! 뭐 하려고! 가지 마! 가지 말라구!”
    혜나가 빽 소리를 질러댔다.
    “그 새끼 얼굴 아는 놈 하나 따라와.”
    아까 명함을 준 새끼가 따라 나왔다. 현관문을 열자 검은색 패딩을 걸친 용대가 서 있었다.
    “저도 같이 가요. 그 새끼 박살 내버리게.”
    졸라 밟으면 퇴근 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도로는 여섯 시가 되기도 전에 앞뒤 할 거 없이 꽉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 명이나 올라타니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여섯 시 정각, 명함에 적힌 주소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복쟁이들이 쉴 새 없이 빌딩을 드나들었다. 나는 회전문을 밀고 나오는 놈들을 관찰했다. 그놈이 그놈 같았다. 급하게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가려는데 보안카드인지 뭔지가 없으면 화장실도 맘대로 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맞은편에 있는 맥도날드로 가서 급한 대로 오줌만 갈기고 나왔다. 길을 건너려는데 맞은편에서 용대가 핸드폰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전화를 받으라는 신호였다.
    “형! 떴어요.”
    “어디?”
    용대가 지하철역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거 같았다. 하지만 쉽게 넘어질 녀석이 아니었다.
    “지금 제 앞에 통화하는 놈 보이죠? 갈색 서류가방에 흰색 아이폰.”
    “씨발, 차 때문에 안 보여. 잠깐.”
    나는 맞은편 인도를 바라보며 걸었다. 아이폰. 흰색 아이폰.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핸드폰을 바꿔 드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지금 덮칠까요?”
    “일단 붙자. 지하철역으로 가는 모양이니까, 밑으로 들어가서 합류할게.”
    역사 안으로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확실하지?”
    “그럼요. 이제 전 가도 되죠?”
    우리를 따라온 녀석이 잽싸게 사라졌다. 용대와 나는 놈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객차 안에서 놈은 손잡이를 잡지도 않고 능숙하게 서 있었다. 놈이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이어폰을 낀 채로 히죽히죽 웃었다. 뭘 보고 있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인파에 밀려 놈과의 간격을 좁힐 수 없었다. 용대와 나는 조금씩 안쪽으로 밀려났다. 그 와중에도 용대는 놈을 놓치지 않았다. 잠실역에서 그놈이 내리는 걸 먼저 확인하고 내 손목을 잡아끈 것도 용대였다.
    놈은 지하상가를 지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우선 놈의 집을 확인하기로 했다. 지상 주차장과 경비초소, 놀이터를 지나 놈이 들어간 곳은 312동이었다. 뒤따라 들어가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층수를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놈뿐이었다. 21층, 1호 아니면 2호였다. 벨을 누르고 이름만 확인하면 됐다. 나는 용대에게 아파트 앞 상가에서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오라고 시켰다.
    “치킨은 왜요?”
    “문밖으로 불러내려면, 그게 제일이야.”
    나는 용대를 기다리며 출입문이 마주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놈을 어떤 방식으로 박살 낼지 생각했다. 해가 완전히 엎어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처음 본 얼굴이긴 했지만, 그놈이 확실했다. 직감적으로 냄새가 났다. 찜질방에서 만났던 그 변태새끼한테도 분명히 냄새가 났다. 흔한 오줌비린내 같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요?”
    용대가 치킨을 건네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박살을 내야지. 넌 여기 있어.”
    “여기까지 왔는데 가만있으라구요?”
    “그럼 배달을 둘이 하냐?”
    “…….”
    “용대야.”
    “네.”
    “통장은 잘 가지고 있지?”
    “네.”
    “금방이다. 조금만 더 가지고 있어라. 형이 얼른 갔다 올 테니까.”
    나는 치킨을 들고 21층으로 올라갔다. 2101호 앞에 섰다. 치킨 냄새가 복도를 채웠다. 벨을 눌렀다.
    “치킨이요.”
    “어? 우리 치킨 안 시켰는데요.”
    “이벤트에 당첨되셔서요.”
    놈의 이름을 대자, 반응이 왔다. 2101호였다. 여자가 애새끼를 안고 문을 열었다.
    “여보, 좀 나와 봐.”
    여자가 나를 한번 꼬나보고는 돌아서서 놈을 불렀다. 놈이 반바지에 메리야스 차림으로 문 앞에 나와 섰다. 그래, 이 새끼다.
    “저희 이벤트 응모한 적 없는데요.”
    “좀 전에 문자로 인증번호가 하나 갔을 텐데, 확인해보셨나요?”
    “잠시만요. 여보, 내 핸드폰 좀.”
    여자가 방에서 나와 놈에게 아이폰을 건넸다. 놈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나왔다. 놈은 아이폰의 홈 버튼을 누르고 몇 번 더 엄지를 놀렸다. 눈치 까고 동영상을 지우는 건 아니겠지. 재빨리 놈이 들고 있던 아이폰을 빼앗았다. 놈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과 아이폰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바닥에 아이폰을 내려놓고 발꿈치로 힘껏 내리찍었다. 액정조차 깨지지 않았다. 다시 아이폰을 집어 계단 아래로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과 유리 조각이 여러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당황한 놈의 멱살을 잡고 문밖으로 끌어냈다. 문은 자동으로 닫히며 신호음과 함께 잠겼다.
    “저 폰에 뭐가 있는지, 니 마누라한테 보여주지 않은 걸 감사해라. 이 개새끼야. 다음부터 조건 하다 눈에 띄면 그때는 니 대가리가 저렇게 된다.”
    놈의 아구창을 세게 한 방 날렸다. 문 뒤에서 애 울음소리가 들렸다. 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놈의 멱살에서 손을 놓고 치킨이 든 봉지를 가슴팍에 집어 던졌다. 튀김 쪼가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계단참에 떨어진 아이폰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형, 어떻게 됐어요?”
    나는 용대에게 손에 들고 있던 아이폰을 건넸다.
    “완전 박살 났네. 대박.”
    용대가 부서진 아이폰을 들고 웃었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혜나한테 그놈이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 거라고 카톡을 날렸다. 바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하여튼 좆같은 놈들은 아이폰만큼이나 널려 있다. 팸으로 돌아가는 용대에게 후시딘과 양념치킨을 들려 보냈다.

 

 

    *

 

    개코 형이 가게로 찾아온 건 석 달 뒤였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니 개코 형은 테라스에서 맥주를 빨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야, 싸가지! 잘 있었냐?”
    “어떻게 된 거야?”
    “뺑이 좀 치고 왔다.”
    “언제 나왔는데?”
    “이틀 전에.”
    “팸 애들은?”
    “뭐, 씨발 나 없이도 잘 살던데?”
    혜나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팔았다. 이제 그런 데서도 알바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했다. 혜나는 전보다 잘 웃었다. 그게 문제였다. 신경 쓰이는 게 생겼다. 이전보다 얼쩡거리는 놈팽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나는 치킨이 물리면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혜나도 햄버거가 물리면 치킨을 먹으러 왔다. ‘새로운 팸. D-33’ 혜나의 카톡 대화명 속 디데이가 점점 줄고 있었다.
    “근데, 누구?”
    “아, 인사해. 민수야. 나랑 갑이니까, 형이라고 불러라.”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놈은 손을 슬쩍 들었다 놓았다. 얼굴은 큰데 이목구비는 작아서 그런지 표정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넌 인마, 형이 뺑이 치는데 한 번을 안 찾아 오냐.”
    “난 그냥 잠수 탄 줄 알았지. 그리고 잘나가던 사업 접은 게 누구 때문인데?”
    “이 새끼, 쪼잔하기는. 그래서 새끼야, 형이 새로운 사업을 하나 물어 왔다. 이번에는 큰 거야, 한 방짜리.”
    “뭔데?”
    “대리점을 한 군데 쑤실 거야.”
    개코 형이 목소리를 깔았다.
    “빵에서 수업 좀 들었나 본데? 근데, 그게 어디 쉽겠어?”
    “그래서 내가 민수를 데리고 온 거야. 얘가 누구냐면 말이야.”
    개코 형이 신이 나서 썰을 풀었다. 가만히 있던 민수라는 놈이 중간에 날짜나 개수를 정정하는 방식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민수는 스마트폰 사십 대 명의를 뚫고, 그 명의로 백만 원씩 대출을 받아 챙긴 이력이 있었다. 그 방법이 특이했다. 벼룩시장에 영화 엑스트라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고 젊은 애들로 딱 사십 명을 받았다. 촬영보조로 알바 한 명을 두고 인원을 통솔하게 했다. 촬영 날,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부산으로 쏘다가, 일당 입금이랑 촬영을 핑계로 신분증이랑 스마트폰을 수거한 다음 대전에 내려서 새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그걸로 소액대출을 받은 거다. 그날 저녁에 바로 들통이 났다는 게 흠이었다.
    “어때? 죽이지? 오죽하면 신문에도 기사가 났어. 내가 봤다니까?”
    “기발하긴 하네.”
    쌈박했다. 찜질방에서 좆뺑이 친 이야기보다는 나았다.
    “졸라 영화 같지 않냐?”
    “근데 끝이 안 좋았잖아.”
    “걱정 마요. 이번 건 해피엔딩이니까.”
    민수라는 놈이 똥폼을 잡았다. 존댓말을 찍찍 내뱉는 게 마냥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너, 다음 주에 아이폰 새로 나오는 거 알지?”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대리점마다 전단을 붙여 놓고 잡스의 숨겨진 유작이라고 떠들어대는 물건이었다. 한번 몸담았던 업계라고 대리점을 지나칠 때마다 전단에 눈이 갔다.
    “서울에 애플 직영 대리점이 네 군데야. 삼백 대씩, 천이백 대가 돌아오는 일요일 새벽에 일제히 입고되는데, 우리는 딱 한 군데만 털 거야.”
    “삼백 대면 얼만데?”
    “백씩, 3억.”
    “사겠다는 사람은 있어?”
    “그건 형들이 알아서 할 거고. 할 거야, 말 거야?”
    “생각 좀 해볼게.”
    “생각은 무슨. 븅신아. 1억이야, 1억. 내일 일 끝나고 팸으로 와라.”
    하루는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개코 형은 방문을 잠갔다. 먼저 와 있던 민수가 가방에서 준비해온 물건을 꺼냈다. 소형 무전기, 그리고 대성설비라고 적혀 있는 조끼와 감색 모자였다. 대리점 문을 단번에 열 수 있는 마스터키는 전문가한테 의뢰해서 제작 중이라고 했다. 그 마스터키만 있으면 매장 구석구석 어디든지 활보할 수 있다는 게 민수의 설명이었다. 민수는 바닥에 흰 종이를 펼쳐두고 빨간색 플러스펜으로 매장의 평면도를 빠르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옆에 ‘7분’이라고 적었다.
    “왜 7분인데?”
    “마스터키는 보안업체에서 이중으로 관리하는 거라 바로 신고가 들어가. 본사에서 일련번호를 대조하고 확인하는 데까지 7분. 7분이 지나면 순찰하던 애들이 출동하는 거지.”
    “7분으로 될까?”
    “매장 가운데 얌전히 쌓여 있는 거, 가방에 백 개씩 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아무리 늦어도 5분 안에 끊습니다.”
    “차는?”
    “그렇지 않아도 중고차 한 대 뽑아 놨다.”
    개코 형이 자동차 키를 흔들며 말했다.
    “망볼 새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7분이든, 5분이든 그 이전에 짭새가 뜰 수도 있는 거고.”
    민수가 플러스펜으로 매장에 긴 선을 긋고 그 옆에 원을 그렸다.
    “매장 앞 도로가 4차선이고 인도 폭이 좁은 편이니까 맞은편에 서서 바깥을 살피는 것도 괜찮겠네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무전 날리는 거죠.”
    그가 무전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믿을 만한 애 누구?”
    “용대.”
    “야, 용대 새끼는 다리가.”
    “용대만큼 확실한 애 있어?”
    개코 형은 몇 마디 더 시부렁대더니 입을 다물었다. 용대와는 이미 얘기가 된 상태였다. 어쨌건 개코 형이나 저 민수 새끼보다는 용대가 믿을 만했다. 우린 팸이니까.

 

    일요일 저녁. 개코 형과 나, 용대는 오후부터 대성설비 조끼를 입고 감색 모자를 눌러쓴 채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 폐점 무렵인 열한 시에 대리점 맞은편 도로에 차를 세웠다.
    “민수는?”
    “시간 맞춰 온대.”
    대리점 문은 열한 시 이십 분에 닫혔다. 이튿날 행사 준비로 폐점 때까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유리창에는 잡스의 얼굴과 신형 아이폰의 실루엣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개코 형이 제일 먼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혜나한테 카톡이 와 있었다.
    – 오빠, 자?
    – 아니.
    뒤늦은 대답에도 바로 답이 왔다.
    – 오빠는 꿈이 뭐야?
    – 갑자기 왜?
    – 그때 오빠가 궁금한 거 다 물어보라며. 내 소설, 오빠가 주인공이잖아. 마지막 장면에 필요해.
    이 상황에 꿈이라니. 나는 짱구를 굴렸지만 퍼뜩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루가 더 줄어든 혜나의 카톡 대화명이 눈에 들어왔다.
    – 뭐긴, 씨발. 새 팸, 우리 팸이지.

 

    “열두 시 넘었는데?”
    “기다려 봐. 올 거야.”
    새벽 한 시가 되자, 개코 형의 얼굴이 굳었다. 민수에게 카톡을 날리고 전화도 했지만 메시지도 읽지 않았고 전화도 꺼져 있었다. 개코 형은 괜히 무전기를 만지작거렸다. 수신이 끊긴 텔레비전처럼 지직지직, 잡음만 새어나왔다.
    “우리끼리 할까?”
    내가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 돼.”
    “왜? 시간 안 되면 그냥 백 대만 하자고.”
    “못 해.”
    “왜, 씨발.”
    “마스터키가 없어.”
    “뭐?”
    “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좆도 없다고! 오늘 민수 새끼가 마스터키를 가져오기로 했단 말이야. 그게 칠백짜린데, 씨발.”
    “뭐? 칠백?”
    개코 형은 마스터키 제작 명목으로 민수에게 칠백만 원을 줬다고 했다. 그제야 감이 왔다.
    “씨발 새끼. 졸라 해피엔딩이네.”
    내가 모자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처음부터 마스터키는 없었다. 그 새끼 점잔 뺄 때부터 수상하다 싶었다. 개코 형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았다. 차 키를 쥔 손이 달달 떨렸다.
    “그 새끼 찾아올게.”
    “어디로 가게?”
    “있을 만한 데는 다 쑤셔봐야지. 갈 거야?”
    “씨발, 그 새끼 잡으면 전화나 때려. 아주 족칠 테니까.”
    용대와 나는 차에서 내렸다. 개코 형의 차는 금방 사라졌다. 개코 형을 믿은 내가 등신이었다. 나는 용대의 어깨를 툭툭 치고 한 발짝 앞서 걸었다. 우리는 대리점 옆 골목에 주차한 오토바이를 향해 갔다.
    퍽.
    대리점 앞을 지날 때였다. 등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리점 유리창에 금이 가 있었다. 용대가 손을 치켜든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씨발, 어차피 다음 달이면 길바닥에 나앉는데.”
    금이 쩍쩍 간 유리창을 향해 용대가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유리는 아이폰마냥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좆까, 용대가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렸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유리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귀가 째질 듯한 경보음이 울려댔다.
    “7분이야.”
    “뭐가요?”
    “짭새 뜨는 데 걸리는 시간.”
    나는 가방으로 유리가 벌어진 틈을 더 밀어냈다. 조각난 유리가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내가 먼저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용대도 뒤를 따랐다. 계속해서 경보가 울렸다.
    “열 대만 담자.”
    매장 가운데에는 검은색 장막이 처져 있었다. 장막을 걷어내자 수백 대의 아이폰이 박스째 사과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용대와 나는 손에 집히는 대로 아이폰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경보음 사이사이로 사이렌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먼저 매장을 빠져나왔다. 빽차의 경광등이 도로 끝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고막을 두드렸다. 나는 용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진열대 위의 아이패드가 눈에 띄었다. 벌어진 유리창 틈으로 손을 넣어 아이패드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패드를 가방에 욱여넣었다. 불룩한 가방을 앞으로 멨다. 매장을 빠져나온 용대의 손을 잡아끌고 달렸다.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 때, 뒤에서 강한 불빛이 우리 쪽으로 쏟아졌다. 빽차의 하이빔이었다. 무전 소리가 들렸다. 용대에게 꽉 잡으라고 외쳤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골목은 굽고 길었다. 빽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도, 사이렌 소리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골목이 끝나고 도로가 나왔다. 도로 끝에서 빽차의 경광등이 흔들렸다. 서행하는 차를 피해 차선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잠시 멈춰 뒤를 살폈다. 한줄기 불빛이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고 가로등 불빛만 남았다. 나는 속도를 줄였다. 숨을 돌렸다. 우리는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중요한 건 가방 안에 있었다.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검은 박스가 가득했다. 그중 하나를 꺼냈다. 박스 안에는 신형 아이폰과 충전기, USB 케이블, 그리고 설명서까지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용대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달아오른 얼굴로 씩 웃었다.
    나는 박스에서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신형 아이폰은 기존과는 다르게 전원 버튼이 옆구리에 달려 있었다. 잡스의 유작다운 발상이었다. 혁신은 전원 버튼의 위치에서부터 시작인 거다. 전원 버튼을 힘껏 눌렀다. 아이폰은 켜지지 않았다. 다시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래도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방전된 제품이 분명했다. 가방에서 새 박스를 꺼내 뜯었다. 용대도 박스를 뜯고 있었다. 용대는 아이폰을 꺼내 들고 가만히 외관을 살펴보기만 했다.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 용대가 아이폰을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놓더니 박스의 모서리 부분으로 짓눌렀다. 순식간이었다.
    “씨발, 이거 모형이에요.”
    용대가 구겨진 아이폰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가방 안에 담아온 박스를 전부 열어 확인했다. 모두 견고한 모형이었다. 정말 좆같은 상황에서는 웃음이 나온다. 우리는 박스를 열 때마다 그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아이폰 모형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잡스의 유작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난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용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용대는 가방에 손을 넣고 휘저었다. 녀석이 아이패드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이건 켜지네요.”
    용대가 아이패드를 들고 말했다. 흰색 애플 로고가 선명하게 빛났다.
    “혜나가 졸라 좋아하겠지?”
    용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혜나에게서 열세 개의 카톡이 와 있었다.
    – 오빠, 내 소설, 궁금하다고 그랬지? 사과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그 능력은 말이야, 사실, 없어, 사과는, 그냥 사과야, 그런데, 그게 특별한 능력인 거지, 그냥 그런 거야.
    용대는 아이패드를 공장 초기화 상태로 돌렸다. 나는 혜나의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 그래, 혜나는 혜나.
    우리가 쥘 수 있는 마스터키는 그것뿐이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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