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과 작별할 시간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_마지막 회]

‘작별들’과 작별할 시간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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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들끼리 말을 섞을 때, 이를테면 호스텔 주방에서 처음 보는 이와 서먹하게 접시를 나눠 써야 한다거나 옥상에서 빨래를 하려다가 먼저 빨래를 널고 담배를 피우는 친구와 마주쳤을 때, 대화는 대략 비슷하게 진행된다. 안녕? 어디서 왔니? 어디어디 여행해 봤어? 어디가 가장 좋았어?
    어디가 가장 좋았는가, 흔하지만 답하기 벅찬 질문이다. 이 글은 마추픽추와 티티카카와 우유니 소금사막과 모레노 빙하와 세계 3대 봉우리인 피츠로이와 우수아이아의 등대와 이구아수 폭포와 눈을 맞추고 난 다음에 썼다. 도저히 하나나 두 군데를 뽑을 수가 없다. 그냥 ‘아주 특별한 곳들’의 목록이 있을 뿐이다.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의 나날들은 이 목록들 위주로 짤막하게 써야겠다. 그간 내 지도를 함께 들여다봐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티티카카 호수

 

    지금까지 내가 눈을 본 바다와 호수 중에 가장 빛나는 곳은 에게 해였다. 그런데 티티카카 호수는 그보다 몇 배로 반짝거린다. 빛 입자가 훨씬 가늘고 곱다고 할까. 남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역에 있어 태양과의 거리가 그만큼 짧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티티카카의 반짝거리는 물은 형언하기가 참 어렵다. 생기 넘치는 살아 있는 생물 같기도 하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는 미녀 같기도 하다. 이 빛에 반사되는 볼리비아의 집들은 소박하기 짝이 없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겸손하게 몸을 낮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가장 큰 ‘태양의 섬’에서 하루 캠핑을 했다. 다들 투어로 다녀오는 곳을 캠핑으로 가자 지도나 숙소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 자유에 자유가 더해진 느낌이다. 콩밭 옆에 텐트를 쳤는데 덕분에 저녁 수프에 콩을 넣어 끓여먹고, 콩깍지로 대충 설거지를 했다. 또 번개와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질 때도 콩밭 옆이라 강풍을 피할 수 있었다. 폭우 때문에 일출을 감상할 수 없었지만 한밤중의 번개 구경도 나름 흥취가 있어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못했다.

 

 

   우유니 사막

 

    우유니에 오면 모두들 미친 듯이 사진을 찍는다. 한데 리마에서 새로 산 내 디지털카메라는 이곳의 높은 일교차를 견디지 못하고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렸다. 증기기관차들이 사막 한복판에 그대로 버려져 ‘기차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평야에서도, 거대한 선인장으로 뒤덮인 ‘물고기들의 섬’에서도, 건물 외벽과 내부 모두 소금으로 된 ‘소금 호텔’에서도,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부르는 우유니 사막에 도착해서도 나는 단 한 컷도 찍을 수 없었다.
    남들이 분주하게 사진을 찍는 동안 할 일이 없어 글로 찍는 셈치고 눈앞의 이미지를 수첩에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풍경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묘사로 시작한 글에 등장인물도 나타나고 이야기도 붙더니 긴 이야기가 될 만한 어떤 한 줄이 나타났다. 작가에게 자기 사진 박히지 않은 우유니가 대수겠는가? 그간 놀고먹으며 철저히 비문학적인(?) 여행을 해온 내게는 횡재와 같은 순간이었다. 더 이상 메모가 밀려 나오지 않을 만큼 실컷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아져 소금 사막을 마구 뛰어다니다가,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벌렁 드러누웠다. 땅에는 일정하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나 있었는데 나는 이걸 ‘소금비늘’이라고 불렀다. 우유니의 소금비늘 위에 누워 고개를 젖히자 하얀 땅이 하늘로, 파란 하늘이 땅이 되었다. 손꼽히게 비일상적인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달콤하면서도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발파라이소

 

    책에서만 보던 지명을 실제로 밟으니 감격스럽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폴베다의 소설에는 산티아고·발파라이소·파타고니아라는 지명이 자주 나온다. 예전부터 화가들이 많이 살던 발파라이소에는 두 가지 명물이 있다. 하나는 집집마다 그려진 그래피티이고 다른 하나는 언덕이 많아 대중교통 수단의 하나가 된 짤막한 케이블카다.
    나는 오각형 방을 얻어 일주일 이상 머물렀는데 물가 압박만 아니라면 반년쯤 더 있고 싶었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맛이 일품이랄까. 산동네를 올라가다 돌아보면 이런 모습이다. 우선 눈부신 태양 아래 색색으로 칠한 집들이 지붕을 맞대며 내리막길을 이룬다. 원근법의 소실점에 해당하는 곳에는 부두가 있어 거기부터 다시 칵테일 잔처럼 벌어지며 바다가 찰랑거린다.
    항상 느끼지만 최고로 좋은 곳은 지도와 상관없는 곳에 있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그림 구경,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감옥을 개조해 만든 미술학교도 나오고, 싱싱한 해산물 뚝배기를 파는 시장도 나온다. 색색의 지붕이 퀼트 조각처럼 잇대어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에 대한 막연한 경이로움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것은 ‘동경’이라 불러도 좋을 감정이었다.
    숙소에서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 ‘이슬라 네그로’가 나온다. 정원에 앉아 내 오각형 방 책상에 앉아 천천히 노트에 옮겨 적은 네루다의 시를 읽었다.
    발파라이소를 보고 있으면 금방 그리워질 풍경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의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 순간의 설레는 감정과 미래의 내가 이때를 떠올릴 때의 감정이 동시에 교차하는 것이다…….

 

 

   모레노 빙하

 

    남위 39도, 인간이 사는 가장 먼 땅이자 남극에서 가까운 땅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눈과 얼음에 매료되었다. 남미는 가을에서 겨울로 진입하고 있어 갈수록 여행자들은 줄어들었다.
    엘 칼라파테의 ‘후지 민박’에 머물면서 모레노 빙하를 봤다. 수천 개의 얼음기둥이 치솟아 있는 빙하는 빙질이 단단할수록 푸른색을 띤다. 모레노 빙하 정도의 규모가 되려면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른 것인데, 그래서 낙빙(落氷)이 될 때마다 그렇게 큰 비명소리가 나는 모양이다. 총이나 대포소리와 흡사하지만 훨씬 큰 이 소리를 들으며 유빙이 만든 동심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 투어를 신청했다. 배를 타고 빙하 근처의 땅에 상륙한 후 가이드를 따라 빙하 위를 올라가는 것이다. ‘크램폰’이라는 미끄럼 방지 쇠붙이를 신발에 장착한 후 빙하로 올라갔다. 얼음을 찍으며 걷는 것이 어색하지만 무거운 발걸음도 몇 분이 지나자 익숙해진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크레바스가 가려졌으니 조심하라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빙하 조각을 넣은 위스키로 건배를 하는 게 투어의 마지막 순서다. 관광객들이 허세 때문에 빙하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원래 얼음이 겨울에는 자라고 여름에는 녹는 것이라고 한다. 위스키보다는 누군가 고이 모셔온 소주를 먹는 게 훨씬 맛있었다. 빙하를 바라보며 알고 있는 도수의 술을 마시는 것은 차가운 몸에 불붙인 장작을 집어넣는 것처럼 효과가 컸다.

 

 

   우수아이아

 

    세계의 끝에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있을까? 아니다. ‘엘 핀 델 문도(El Fin Del Mundo)’에는 카지노와 면세점이 기다리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최남단, 우수아이아에는 남극으로 떠나는 배들이 항구를 채우고 있다. 황량한 도시를 상상했는데 와서 보니 뜻밖에 면세 특구 지역이라 화려한 상점이 많고 물가도 높다.
    비글 해협 투어를 떠나자 다소의 실망감이 가라앉았다. 다윈이 탄 비글 호 항해에 유래해 비글 해협이라고 이름 붙은 이 바다에서는 펭귄과 바다사자를 만날 수 있다. 수족관이 아닌 바다에서 보는 펭귄과 바다사자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는데, 냉해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의 생물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이다.
우리는 열다섯 명이 정원인 작은 배에 탄 덕분에 펭귄이 사는 섬에 아주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장난기 많은 바다사자들이 배를 따라왔는데 배구공만 한 그 매끈한 머리통을 한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세상 끝의 등대’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렸다. 세찬 눈과 배의 모터 소리와 바위섬에 박힌 하얀 등대가 이루는 풍경은 ‘우수아이아’라는 지명이 주는 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장국영과 양조위가 나오는 오래전 영화 〈 해피투게더 〉 에서 이 등대가 나오는 장면을 한 번 더 보았다. 쿠스코에서 만났다가 발파라이소에서 재회해 여행 끝까지 같이 다니게 된 다섯 명의 친구들이 있어서 세상 끝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모두 함께 내 마지막 여정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갈 예정이었으니까.

 

 

   이구아수 폭포

 

    햇빛이 있는 한 이구아수에서는 항상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거대한 폭포 줄기에서 나오는 물방울 때문이다. 무지개를 통과하며 물방울을 맞는 것은 이구아수 폭포에서 경험하는 작은 환희에 불과하다.
    이곳에 못 온 친구에게 농담 삼아 ‘악마의 목구멍에서 나는 가글 소리가 얼마나 큰지 듣고 올게!’라고 큰소리쳤는데, 막상 폭포와 마주하자 얼이 빠진다. 275개의 물줄기가 합쳐져 말발굽 모양을 이루는 악마의 목구멍은…… 엄청 털이 많고 거대한 짐승의 내장이 갈래갈래 다 터져 있는 모습 같다고 할까, 내장의 융털 돌기까지 다 튀어나온 모습 같다고 할까, 왜 이렇게 끔찍한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모르나 풍경보다 차라리 살아서 비명 지르는 거대한 동물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더 가까이 체험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 보트를 탔다. 모터 모트를 타고 폭포 근처까지 한 바퀴 돌고 오는데 타는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듯 짧다. 그런데 이구아수 밑에 바싹 다가가 물벼락을 맞는 그 1, 2분의 경험이 굉장하기 때문에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꼭 해보라고 추천하게 된다. 거대한 폭포는 점점 다가오고, 사람들은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고, 마침내 폭포 근처로 가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찬 물줄기를 뒤집어쓰고 있노라면 또다시 ‘재세례파 운동’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우비를 아무리 단단히 입고 있어도 온몸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흠뻑 젖는데, 적당히 닦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의 더운 날씨 때문에 금세 마르기 마련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느 나라를 가든 수도를 싫어하는 나지만 이곳만은 제외해야 할 것 같다. 건축물도 멋있지만 산 텔모 지역의 오래된 LP 전문점이라든지, 18세기 엽서를 파는 골동품 가게라든지, 작고 특이한 모자 가게 같은 뜻밖의 장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탱고가 태어난 곳 아닌가. 〈 해피투게더 〉 에서 양조위가 일하는 곳으로 나오는 탱고 바 ‘바 수르’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다섯 테이블 남짓한 작은 공간을 악사들의 연주와 댄서들의 춤과, 가수의 노래가 번갈아 채우는데, 수준 높은 공연을 가까이서 보면서 공연자들의 표정까지 살필 수 있다. 도착한 지 나흘째 되는 밤이었는데 그제야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긴 왔구나’ 하는 실감이 제대로 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멋진 도시에 온다 한들 도착한 즉시 도시의 감수성에 접속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바 수르’에서 탱고 공연을 본 그날 밤에야 비로소 두 발뿐 아니라 마음까지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전문적인 공연을 하는 곳과 달리 일반인들끼리 탱고를 즐기는 ‘밀롱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창고를 밀롱가로 개조한 곳에 가보았는데(남자가 앉아 있는 여자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여자가 승낙하는 것 같으면 다가가 정식으로 춤을 신청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쿠바의 살사처럼 정열적이지 않지만 탱고는 절제된 관능이랄까, 찬란한 비애감 같은 양가적 에너지가 흐르는 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찬란한 슬픔의 시간은 나에게도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덧 일곱 달이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바투 다가온 것이다. 쿠스코에서 만나 지금까지 함께해 온 친구들과도 하나하나 헤어져야 했다. 날마다 맛있는 아사도(아르헨티나 스테이크)와 말벡 와인 등으로 저녁을 즐긴 나머지 우리 여섯은 처음 만날 때보다 전부 오동통해져 있었는데 누군가는 브라질로, 누군가는 파리로, 누군가는 미국으로, 누군가는 한국으로 뿔뿔이 흩어질 시간이었다.

 

    쿠바에서 시작해 멕시코와 남미를 거쳐 오는 동안 나는 많은 이별을 했다. 온기를 나눠 가진 인간과 사물들, 방과 문과 길과 골목과 친구들을 통과하는 일들에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이 시간은 달랐다. 모든 작별을 통과한 후 마지막으로 ‘이 여행과의 작별’ 하나만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올 때보다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공항까지 마중 나온 나의 작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이라는 말을 건네자 숱한 이별로 뚱뚱해진 나의 작별이 그건 내 이름인데-하며 웃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별을 상실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마다 자주 창밖을 바라보았다.
    남반부의 하늘이 밀려나고, 적도를 지나가고, 날짜변경선을 넘어가고, 얼마가 또 흐르자 마침내 ‘일상’이라는 이름의 도착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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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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