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_2차_시] 선물 외 3편

 

 

 선물

 

 


  박성준

 

 

 

    액자처럼 문이 좁았다. 문은 고장 나 있고, 나는 책임이 없었다. 문이 고장 난 차에 어린 여자가 들어와 자고 있었다. 내겐 접촉사가 필요했다. 누구냐고. 어디서 왔냐고. 어떻게 들어왔냐고. 집은 어디냐고 묻는데 대답이 없다. 대답할 수 없이 선명하게, 서로 고장 난 부분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니 말해 보라고 어린 여자는 혁명에 실패한 듯, 나를 가만히 보다가 그렇게 보다가 주차장 저 편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꺅 소리도 지르고, 제가 넘어져 놓고 괜히 나를 흘기는 것이었다. 찡그린 미간 속에서 비장하게 엎질러진 문을 생각했다. 벽을 생각했다. 지하주차장에 발소리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혀로 앞니를 쓸어 아직 단단하다는 것에 안심했다. 자정은 어떤 인생만큼 멀리 가 있었다. 나를 대신해서 사연이 많아진 문을 믿기가 어려웠고, 운전석 시트에선 아주 어린 냄새가 났다.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로션이었다. 어린 여자의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은 지금, 괜히 그 냄새가 생각나는 밤이 있다. 집요하게도 나는 문을 고치기가 싫었다.

 

 

 

 

 

 조부의 자살

 

 

     주법을 잃어버린 악기를 연주했던 과거의 기후를 인용해 보자면 부고를 듣고도 나는 두꺼워지지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출처를 모르고 있지만 여전히 슬픕니다 그날 햇빛은 햇빛보다 많았는데 좀체

 

     내 몸에는 하늘이 돌지 않아 외출한 열 손가락을 다 불러다가 음악을 세고 싶었습니다 목련이 피고 지는 동안, 흰 것과 분홍 사이를 질투하며 유리창은 제 견고한 투명으로 간신히 모르는 한적을 향해 기울었을 테지요 달라지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아직 눈물이 물처럼 멀쩡합니다 돌 속이
     없는 돌처럼 빠르게 흘러갑니다

 

 

     사랑에 대해 기교를 부리던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기교만큼 살살 손목을 만지고 갑니다 여자는 영문도 모르고 여자가 되고, 남자는 영문도 모르게 제 이름의 철자를 자주 틀리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허나 이르지 못할 테지만, 부고를 들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얇아집니다 고통도 없이, 사형수가 매일 스스로에게 몰입하던 기도처럼, 모아 잡은 손바닥에 뜨거움처럼 새가 부리를 녹이며 울던 날이 있었겠지요 날지 못하는 그림자와 하늘을 비상하는 순간에만 흐릿해지는 그림자, 그런 엉망으로 엉켜 있는 냄새의 강인함이 있었겠지요

 

 

     잠시 내 몸의 윤곽이 궁금합니다
     부고 대신 죽은 이의 밀린 꿈이 궁금합니다

 

 

     대체, 악기도 없이 저마다의 주법들로 스스로를 연주하는 조문객들의 혀 모양이 가렵습니다 이를테면 조금 느슨하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집중하려면, 나는 꽤나 멀쩡한 물을 흘려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

 

 

 

아무도 믿지 않기로 했으나 그게 잘 안 되었다
그것뿐이었다
윗집으로 이사 온 목사 내외는 겸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미신으로 떡을 돌리기도 하고
손 없는 날에 맞춰 이사를 들어올 줄 아는
꽤나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목사의 여자는 얼굴이 하얬다
소음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양해를 구할 줄 알았고
모르는 나에게 쉽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줄 줄 알았다
나는 그런 결함 없는 친절함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무서웠다
새벽 두 시 이후가 돼야 사랑을 나누는 기척이라든가
늘 창문으로 소리가 경미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 두는 수고라든가
그런 것들이 목사 내외를 굉장히 예의바른 이웃으로 인지하게 했다
그럴수록 그들이 믿는 예수를 나는 더욱더 질투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화목했고 절실했고 평판이 좋았다
그뿐이었다
여자는 이따금씩 초대를 빙자한 전도를 강요했다
불필요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자주 생각했었다
어떤 표정이 굉장히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고
예수를 믿지 않는 나를, 여자는
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느 추운 날 지방 소도시, 시동을 걸어 놓은 버스 배기구에 손을 녹이고 있던 부랑자처럼
소파는 많이 낡았고 무방비였다
나는 그들과 적당히 친해졌고, 설교를 조금은 들어 줄 수 있었고
친절한 여자의 하얀 무릎을 뚫어져라 오래 볼 수도 있었다
한 번도 넘어져 본 적이 없는 뜨거운 무릎만큼
윗집으로 이사 온 목사 내외는 늘 그렇게 겸손했다
모르는 내 손을 꼭 붙잡아 주면서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서웠다
그들이 맹신하는 견고한 무엇이 더 무서워졌다
어떤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해줄 것만 같아서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용서가 필요한 내가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나비의 시력

 

 

    계단이 필요한 문이다
    전등이 갓을 쓰고 있다 옛날 사람이 아닌데 옛날에서 온 빛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이층집 남자는 얼굴의 얼굴을 거듭할수록
    성질이 깊어진다 누가 사전에나 나올 법한 말처럼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죽어 나갔다고 했다
    인기척이 없는 집은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떨고 있다, 어떤 잘못도 없이
    모르는 곳에서 음악은 살 냄새를 쥐었다 놓친다
    벽지에 뿌리내린 꽃들이 후드득, 이사를 가고 대칭이 맞지 않는 방에서 목숨같이 구슬 끓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곧 비눗방울은 멀리 가지 못해 터질 것이다
    생각이 시작되자 생각이 시작되었고 방은 나를 연습하였다
    그렇게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동안에만 뜻밖에
    눈가가 가려웠고, 먼 옛날처럼 밉상 없이 흔들려 봐야겠다고
    기척이 기척을 쓴다, 다시
    다른 문을 또 보아야한다 계단은 혼자를 사랑하려고
    척추를 끊는다 저 혼자 밖으로 떨어지는 꽃은
    안쪽이 몹시 소란스러웠다는 증거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_^

  저는 참치회를 좋아합니다. 선정되고 나서 안경테를 다른 색으로 바꾸고 참치회를 먹으러 갔어요. 소주도 마셨습니다.
 

2. 이 시는 언제,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쓰게 되셨는지 간단한 시작 메모를 좀 부탁드릴게요.

  시작 메모는 늘 하는 편인데요. 이렇게 영감 같은 걸 쓰라고 하면 좀 부끄럽고요. 저는 그냥 다양한 방법으로 메모를 하거든요. 늘 그랬지만 이번 시는 특히 경험한 사건들이 좀 많은 편인데, 시가 되기 이전 메모는 모두 낙서나 그림이었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이미 여러 산문으로 공개했다시피 저는 침대에 엎드려서 시를 씁니다. 앉아서 글 쓰는 걸 잘 못해서 카페 대신 여관에서 대실로 방을 잡고 글을 쓰기도 해요. 원래 숙박업소가 음기가 많은데 저는 약간 그런 음한 곳이 좋아요.

 

4. 동인 활동을 하신다든지, 글을 막 완성했을 때 가장 먼저 읽어주는 1차 독자가 있으신가요?

  ‘는’ 동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랑 최정진, 박희수, 김승일, 황인찬, 이이체 이렇게 여섯이서 동인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서로 합평을 하지는 않습니다. 발표를 할 때까지는 철저히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은 당연히 접니다. 저는 우선 저한테 칭찬받는 시를 쓰고 싶어요.

 

5. 지금 막 발을 뗀 신인이지만, 일평생 작가로 살면서 이것만은 꼭 쓰겠다, 라고 다짐한 주제나 소재가 있나요?

  이미 쓴 것 같아요. 욕심이 많아서 작년에 좀 과하게 첫 시집을 묶었습니다. 후회도 되고 안심도 돼요. 시 쓰는 일이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일이라는 걸 부쩍 많이 느끼고 있어요.

 

6.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보다는 늘 다른 걸 쓰고 싶어요.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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