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평전 외 9편

 

 

  조각보 평전

 


  박옥위

 

 

 

아버지 서말지 논 물꼬 튼 조각조각

그 여름 뙤약볕에 생이가래 흰 꽃 피는

고향은 자투리바닥에 옹기종기 등을 댄다

어머니의 가난은 티도 없는 진솔기

들판을 걸어오던 거류산도 딱 멈추고…

샘솟는 이야기들이 홈질로 박혀 있다

깨감도 붉게 익은 시월상달 열사흘 날

수놓던 봉황새도 언니 따라 시집가고

뒤란에 숨어 운 울음도 실밥처럼 낡았다

골기와 절집 배래에 그믐달 걸리는 밤

늦은 귀가 길을 조각조각 기워내던

어머니 맑은 바늘귀, 지금 벽에 걸린다

 

 

 

 

 

  도두道頭에서의 일박

 

 

 

도두라고 불렀다 외돌아진 낯선 바다
동그랗게 안겨드는 이 말의 품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투리가 따스하다
참 고운 생각은 순수하게 받는 거라고
물결은 어둠속을 중얼대며 돌아와서
하얗게 몸을 부린다 손을 잡고 동그랗게
마음 끈 풀어 놓자 찾아가는 제자리
허접도 부족함도 가슴 에인 이야기도
곰삭은 사투리에 닿아 따스하게 읽힌다

 

 

 

 

 

  땅에도 끝이 있다
    ―해남생각

 

 

 

땅 끝이 어디 있나 찾아간 일 있습니다
바다에 이어졌고 길은 끝이 없습니다
시인은 거기 있습니다
바다같이 있습니다
땅 끝은 열사흘 달 밝기만큼 뜹니다
땅 끝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의 집입니다
땅 끝에 시인은 있습니다
아주 깊은 땅입니다

 

 

 

 

 

  조팝꽃 작은 기쁨

 

 

 

작고도 더 작은 슬픔들은 다 모여라
눈물 말고 모여라 눈물은 간직한 채
눈물이 사랑이라는 이 강을 건너려면
봄 오자 섬진강물 그리웁게 불어나고
조팝꽃 하얀 슬픔 슬픔끼리 손을 잡는
새파란 강가에서면 눈물보다 고운 이승
봄비가 눈물인 줄 아는 이는 사랑이다
눈물 아니고는 마른 땅을 어찌 적실까
슬픔이 잔등을 맞대며 기쁨을 불러 온다

 

 

 

 

 

  석류, 속 터지다

 

 

 

나무도 보물단지 동그랗게 빚을 때는
삐죽한 모서리를 별빛같이 오려내고
어린 꿈 차곡차곡 채워 향낭을 접는다
맑은 꿈 밝은 생각 양지마다 등을 켜고
속잎도 바짝 타는 잉걸불길 화염 속에
쟁여 둔 밑씨 눈망울 결을 알알 벼린다
폭풍우 질시 속에 빠개지고 구르다가
절망을 쏟아내던 시린 별밤을 보듬으며
울음도 타버릴 것 같은 엄마 같은 나를 본다

 

 

 

 

 

  화엄 들매화

 

 

 

길상암 앞 대숲에 키가 큰 화엄매화
이른 봄 하얀 구름 받들고 서 있는 건
그때가 꽃필 때라는 걸 스스로 안 탓이다
화엄의 깊은 골을 설설치는 흰 눈발
삼동 깊이 발을 묻고 견뎌 온 너의 봄이
그리운 내 꿈길마냥 그리 맑고 순하구나
절로 나서 절로 자라 돋음 발로 서보는
누가 버린 열매 하나 시 같은 눈을 뜨고
긴 목을 쑤욱 뽑는다 나와 인연 있는 듯이.

 

 

 

 

 

  아침 배들

 

 

 

아침결 모래 벌에 배들이 엎드렸다
어젯밤 곤한 잠에 꼼짝없이 빠졌던가
늦잠을 즐기는 배들, 기지개 펴고 있다
아빠가 아이하고 나란히 엎드린 채
작은 발가락과 큰 발가락이 꼬물꼬물
부딪는 발의 말들이 달콤하고 고소하다
아빠는 아이하고 작은 배는 큰 배하고
모처럼 함께 누워 아침 해를 받고 있다
파도가 달려오다가 하하 치고 달려간다

 

 

 

 

 

  겨울 서정시
    ―눈

 

 

 

겨울이 서정시를 읊어 주는 날이 있다
마른 숲에 살폿 앉는 맨발의 겨울 시詩
펼치자 첫 구절부터 눈물처럼 스러진다
빈 벌에 쌓여 가는 서정시는 차디차다
꽃이 되고 싶었던 그 아이의 생각들이
상록수 더벅머리에 눈꽃 소복 피워낸다
하늘이 서정시를 밤새 솔솔 읊어 주면
이 세상은 새하얀 시집詩集이 되겠다
아침엔 시집 밖으로 아이들이 나오겠다

 

 

 

 

 

  빈집

 

 

 

다정한 목소리가 날아올 듯한 골목길
그 끝을 다 지나도록 부르는 소리 없고
낮달도 반은 다 접혀 가는귀가 먹었다
낡아 간 스레트지붕 머리 맞대 낮아지고
돌담은 시린 등을 구부정히 가누는데
민들레 착한 웃음이 돌 틈 비집고 나온다
헛간채 지붕 위에 구름궁전 피워 두고
날 보소 날 좀 보소오 목젖까지 외로운
복사꽃 저 혼자 피다 혼자 지는 봄이 간다

 

 

 

 

 

  밤비

 

 

 

상추씨
뿌렸더니
저녁 답에
비 온다

 

딸아이의
게으름도
눈물도
인정하고

 

상추밭
물 뿌리신다
백두 살
눈먼
아버지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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