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서정, 뼈의 기록

골목 서정, 뼈의 기록

– 윤석정, 『오페라 미용실』 (민음사, 2009)

 

김영희

 

 

 

 

19세기 파리의 거리에는 자본주의의 모나드로서의 ‘만보객’과 ‘창녀’가 있었다. 이를 윤석정 식으로 말해보면, 21세기 서울의 ‘골목에는’ 쪽방 두어 평에서 탈출해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사내(「골목들」)와 골목 벽에 기대어 헛웃음을 파는 여자(「파리」)가 있다. 골목 벽에 지린내를 흘리는 사내, “줄무늬 팬티를 즐겨 입는 여자”는 ‘골목의’ 만보객이고 창녀이다. 윤석정의 시에서 만보객과 창녀가 도시의 거리가 아닌 동네의 골목에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시인의 시선은 거대한 상품 전시장으로서의 도시와 인간관계가 상품관계로 치환되는 거리가 아닌, 저녁밥을 안친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고 일당과 맞바꾼 돼지고기로 삼겹살을 구워먹는 후미진 골목(「자목련이 활짝」)의 풍경을 탐사한다. 그러니까 윤석정은 도시의 지도에서는 표시되지 않는 동네 골목의 서정을, 시인의 눈을 통해 확대된 지도 위에 펼쳐놓는다. 이 지도의 배면에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음은 물론이다.

골목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잠시 거리의 풍경을 경유해야 한다. 『오페라 미용실』에서 거리의 세목을 묘사한 시로는 「충치」가 거의 유일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구역질이 넘실거리던 검은 거리 속에서 곪아 가는”이라는 표현은 도시 거리에 대한 시인의 사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에게 충치로 인한 ‘치통’과 거리에서 발생하는 ‘현기증’은 동일한 강도로 겹쳐진다. “자본이 가공한 심장을 태우는 거리”(「심장」)에서 시인은 거룩함을 가장한 비정한 도시의 생리를 치통과 현기증 속에서 감지하고 있다. 빌딩과 빌딩, 자동차 바퀴들과 붉은 신호등, 하이힐과 간판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소음 속에서 시인은 치과를 찾아 더듬거린다. 혹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시인이 직면하는 것은 “치사하고 치졸한” 도시, “비장하고 비정한” 거리에서 경험하는 “초라하고 초조한” 현기증, “아리고 시린” 치통이다. 그러므로 거리에서 “길 잃은 양떼”를 가정하여 ‘홍보하는’ 천국이란 결국 상품의 거대한 우주, 자본의 거룩한 나라에 다름 아니다. 물론 시인이 느끼는 현기증은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떠는 “현란을 극한 정오” 거리에서 느끼는(『날개』) 피로감만큼 ‘전면적’이지 않으며, 시인이 앓는 치통은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 개인이 느끼는(『오발탄』) 고통처럼 ‘상징적’이지 않다. 시인이 겪는 통증이란 어쩌면 부분적인 것이고, 다만 경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통증이 얼마간의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것이 ‘독기 잃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과 일정 부분 겹쳐지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김수영이 1950년대 거리를 걸으면서 목도했던,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거리2」)이 지닌 ‘독기’에는 변화 가능한 미래에 대한 낙관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것은 산보객으로서의 시인이 설움 속에서도 끝내, 쾌활할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윤석정이 더듬거리는 2000년대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흐물흐물 거리를 횡단하는 “안개들”로 묘사된다. 자본주의가 ‘운명처럼’ 고도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종교가 홍보하는 “거룩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거리에서 개인은 못내 초라하거나 초조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본의 우주에서 흐물거리는, 안개 같은 개인의 형상에서 벗어나 그것이 비루하든 명랑하든, 지독하든 아름답든 삶의 구체성이 넘쳐나는 동네 골목으로 들어간다.

좁다란 골목길에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오페라 미용실이 있다. 그곳에서는 가난하거나 무능하거나 병든 사람들의 삶이 비루하지만 비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오히려 “희희낙락 오페라”로 펼쳐진다(「오페라 미용실」). 모퉁이를 돌면 마음으로 “망가진 입술”을 수선하는 노인의 세탁소가 있다. 찢어진 바지 밑단을 “찢긴 입술”에 빗대어, 시인은 자신의 미숙한 언어가 누군가의 마음을 찢은 적은 없었던 가를 반성한다(「날아가는 재봉틀」). 그렇게 어느 골목에서는 “작고 쪼글쪼글한 노파”가 정지된 화면처럼 앉아 떠나간 사랑을 향수하고(「골목들」), 어느 골목에서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여자 아이가 전봇대와 고무줄놀이를 한다(「해바라기」).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 비음처럼 서글픈” 밤에도 시인은 골목에 있다. 집을 뛰쳐나온 자신이 “어느 골목에 앉아 / 울었는지 웃었는지”를, 연애 시절에 그녀는 바로 집으로 갔었는지 늦도록 골목 어귀에 있었는지를 ‘잠결에’ 생각해보는 것이다(「몽중인」). 도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아파트 신축 공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골목은 사라진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골목만은 아닐 것인데, 시인은 사라져가는 골목을 통해 무엇을 붙잡고 싶은 것일까. 골목의 안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슬레이트 지붕’에 감꽃이 떨어지는 봄밤이다. 어릴 적 그 ‘지붕에 충치를 던지기’도 했었다. 마당 한쪽에는 세상소식을 수신할 수 없는 ‘고물 라디오’가, 귀퉁이에는 폐물이 된 ‘삼천리 자전거’가 놓여 있다. ‘양철 지붕’ 위로 탁탁! 경쾌하게 튕기는 빗소리가 들린다. 윤석정 시의 소재들을 사용해 재구성해본 옛 동네의 정경이다. 물론 윤석정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 그가 의도하는 것은 어느 달동네의 서정적 복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슬레이트 지붕과 고물 라디오와 삼천리 자전거는 배경이나 소재로 사용될 뿐 시의 주제를 이루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삼천리 자전거는 충실히 달려왔으나 어느새 막장에 이른 인생이 다시금 가열한 의지를 다짐하는 시에 일종의 비유로서 사용된 것일 뿐, 80년대 자전거 중흥기를 이끌었던 삼천리 자전거의 명성이나 그에 얽힌 추억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에게 동네 골목의 기억은 ‘소재’와 ‘정서’의 측면에서 시인의 감성론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시인은 지금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동네에 산다.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진 자리에 다세대 연립주택이 들어섰다. 무더운 여름밤 그곳에서는 “런닝구와 삼각팬티 차림의”(「레슬러 부부의 왈츠」) 사내가 성인채널을 찾아 리모컨을 돌리고, 아들이 아버지의 네 박자에 맞춰 “뽕짝 뽕짝 뽕짜자작짝”(「타화자재천」) 술상을 두드린다. 어느 층에서는 약 냄새를 풍기며 노동을 마친 사내가 일당과 바꾼 삼겹살을 구워 한 점, 한 점 아이들 입에 넣어주더니 어느새 서로 “배꼽을 내밀”고 잠이 들었다(「자목련이 활짝」). 윤석정의 동네 골목은 주로 남성들의 차지인데, 이곳에서는 아이를 업고 장을 보는 것도(「일요일 없는 일요일」)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상추쌈을 싸주는 것도 모두 사내의 몫이다. 아내가 없거나 엄마가 없어서 혹은 백수이므로 살림살이는 자주 그들의 몫이다. 그 골목 다세대 주택 위로 지금 달빛이 내리고 자목련이 활짝 피었다. 이러한 장면에서 윤석정 시의 ‘골목 서정’은 가장 노골적으로 혹은 가장 애틋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골목 서정이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이에 “마음의 뼈”는 유용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시인은 “마음의 뼈는 그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자꾸 마음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것 / 빼내려 하면 할수록 더 아픈 것”(「단단해지는 법」)이다. 윤석정 시에 나타난 골목의 정서란 바로 ‘그리운 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는 물렁한 마음의 뼈를 나눠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생의 어둠까지 감아올려 “단단하게 여물어”(「떫은 생」) 가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다음은 어느 골목에서 소주를 마시며 ‘뼈를 나누는’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사는 게 왜 이러냐 목수밖에 할 짓이 없더라”(「달 목공소2」)라며 연달아 소주를 들이키는 젊은 목수는 왼쪽 손가락이 네 개다. 공장은 지폐와 닮아서 사각이고 굴뚝은 톱니바퀴를 닮아서 원(「발가락과 나뭇잎」)이라며 소주병을 움켜잡는 노동자는 지독히 가난하다. 이들과 연신 소주잔을 기울이던 한 사내는 시인이다. 목수이야기와 노동자이야기는 모두 이들이 드러누운 배경에 달빛과 바람과 이슬이 어우러지거나 깊은 가을 나뭇잎이 뒹구는 장면으로 끝난다. 자본주의라는 유령은 동네 골목에서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지만 윤석정의 시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것을 그의 소박한 현실인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그의 미학이 자음과 모음을 씨방으로, 언어를 꽃으로 비유하는(「난해한 독서」) 혹은 현실의 추함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기입하는 감수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창에 낀 먼지의 내력은 누가 기록했는가. 쪽방 두어 평에서 살아가는 짐승, 누렇게 부은 눈알들이 가파른 모퉁이로 굴러가는데 여전히 반달은 뜨나 절반은 어둠에 저당 잡힌 달, (…) 바람이 불어와요. 할머니, 사랑 노래를 부를까요. 눈알이 빠진 배고픈 짐승이 울어요. 그녀의 늘어진 살갗이 어둠에 홀려 모퉁이로 흘러가는데 그녀의 연애는 누가 기록했는가.

– 「골목들」

 

윤석정의 시에는 어둠에 저당 잡힌 삶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고, 목에 가시처럼 걸린 연애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시인은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 균형을 잡는다”(「난해한 독서」). 윤석정의 시는 이러한 내력들이 탄생하고 기록되기에 골목은 매우 ‘현실적’이며 ‘서정적’인 장소임을 보여준다. 골목의 서정을, 뼈의 기록을 실증한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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