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에 관한 기록

열망에 관한 기록

 

윤석정

 

 

 

 

드디어 시집이 나왔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첫 시집을 두 손으로 건네받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습작시절은 등단하기 전 즈음이었다. 오페라 미용실 옆 반지하방에서 지내며 흑석동이라는 이름처럼 시커멓게 그을렸던 시절. 대체 시가 무엇인지, 어찌 써야하는지, 되물으며 잘 써지지 않는 시를 열렬히 썼다. 시는 내 마음을 매일 밤마다 태워버렸다. 나는 왜 시를 쓰지 않으면 불안해 못 배겼던 것일까.

 

일기장

나는 가끔 서랍 속에 감춰둔 옛날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그때마다 나는 일기장 속 시공간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서둘러 나와야 했다. 내 마음으로 옮겨온 글자들이 눈을 따끔거리게 하거나 마음을 마구 간질여 끝까지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잊고 있었던, 아무리 떠올려 봐도 떠오르지 않던 사소한 내가 그득했다.

일기장 대부분을 사소한 고민들이 차지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는 분명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었을 고민들. 그리고 한 귀퉁이에는 나만 알아야 할 비밀이 수줍게 웅크리고 있었고 다른 한 귀퉁이에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이들이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등장했다. 누굴까? 아무리 떠올려 봐도 알 수 없는 이름들. 지금 그들은 잘 살까? 잘 살겠지. 또 한 귀퉁이에는 시가 오롯이 앉아있다. 아, 시! 나는 시로 인해 즐거웠고 시로 인해 아팠다. 그때도 그랬다.

일기장 속 사소한 나는 순박한 촌닭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시를 만났고 낙서를 하듯 시를 끼적거렸다. 나는 막연한 관념들을 시랍시고 공책에 적으며 어쭙잖게 인생이나 세월타령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했던 친구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나는 으쓱해졌고 시를 쓰는 게 즐거웠다. 가만, 처음 내가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뭘까. 그건 내가 감당하기 힘든 고독 때문이었다. 사는 게 버거웠고 뼛속까지 외로웠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시를 썼다. 시는 내 마음을 위로해줬다.

 

인연

한 학년 올라간 그해 봄, 어김없이 개학을 했고 늘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로웠다. 그러나 그해 봄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내게도 희망이라는 꽃이 피었다. 연유를 털어놓자면 내가 다니던 자그마한 시골 고등학교로 부임해 온 국어선생이 ‘시인’이었기 때문. 그게 뭐 대수냐고? 내게는 대수였다. 약간 부언을 하자면 이렇다. 국어선생이 새로 부임했던 날, 아침조회시간에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두고 교감은 말했다. “여러분,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시인입니다!” 그 순간 ‘저 사람이 네 인생을 바꿀 거야!’라고 누군가 내 귀에 소곤거렸다. 그 목소리는 또렷했고 무섭기보다 설다. 마치 하늘에게 내려준 희한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놀라웠다. 시인! 널따란 운동장에 혼자 있는 듯 고요했으나 내 심장은 요란하게 두근거렸다.

선생을 만난 뒤는, 입이 근질근질하나 구구절절해 이하 생략한다. 내가 들었던 그 목소리는 뭘까. 곰곰 생각하니 환청 같기도 하고 예언 같기도 하다. 대충 나는 내 마음이 미리 내게 귀띔해준 희망 같은 거라고 믿기로 했다.

 

사랑

대학시절로 이어진 희망은 열망으로 바뀌었다. 즉, 시인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열망으로 변했다는 것. 결국 비슷한 말처럼 들리나 시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피가 뜨겁게 끓었던 그 시절, 다 할 수 있다는 치기 어린 자신감도 있었지만 시는 다가갈수록 다다를 수 없는 나라였다. 어쩌면 저기 저 우주였다. 희망을 품었을 때는 전혀 알 수 없던 세계가 나에게 쳐들어 왔다.

나는 시를 잘 쓰고 싶어 술과 담배를 배웠고 시 때문에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순박한 촌닭이 하늘을 날려고 푸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시가 잘 써지지 않아 방황도 하고 미친 듯이 연극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럴수록 시를 쓰고자 하는 내 열망은 더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는 “네 시에는 사랑이 없어”라고 했다. 선배의 말은 첨예한 화살처럼 내 마음에 꽂혔고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사랑이 무엇인가, 내 시에는 왜 사랑이 없는가를 내게 물으며 고민 또 고민했다.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듯 나는 며칠 동안 답답했다. 그 선배는 나에게 “연애를 해봐” “이별도 해봐”라고 했다. 그 무렵 나는 희망을 열망으로 바꿔 뭐든 사랑할 준비를 했다. 나의 사랑은 희망하는 게 아니라 열망하는 것이었다.

 

공허

열망 뒤편에는 항상 공허가 숨어있다. 등단을 하면서 오래된 짝사랑이 이뤄졌다고 믿게 되었고 동시에 사랑은 열망하는 것이라는 내 뜻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한동안 공허가 나를 지배했다. 나는 배낭에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났고 한 해 동안 흑석동의 달을 볼 수 없었다. 낯선 나라의 낯선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나를 들여다봤다. 군 제대를 하고 나를 자세히 들여다봤던 시절,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새삼 알게 되었고 배낭여행을 하면서도 그랬다. 그때 내 열망의 대상이 바뀌지 않는 한 공허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허는 열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앞에 놓인 나의 첫 시집이 오래된 일기장처럼 낯설다. 갑자기 나는 내가 왜 시를 썼고 어떻게 시를 썼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는 공허한 상태다. 그러나 분명 오래 가지 않아 내 열망은 슬그머니 나를 찾아올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믿는 대로 그렇게 믿는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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